2025-2026년에 호주가 투발루 주민 280명을 호주에 전적으로 정착시키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투발루에는 약 10,0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데, 그중 4,000명 정도가 응모했다고 합니다. 추첨으로 선발된 사람은 호주에 도착 즉시 영주권이 부여되고 노동, 의료서비스, 교육받을 권리를 갖게 됩니다.
이 기사를 읽으며 꿈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전라북도가 이런 프로그램을 시행하면 좋겠다.’ 마침 이재명 정부이기도 하니 기회는 좋습니다. 지구온난화로 삶의 터전이 물에 잠기고 있어 더 이상 살기 어려운 그 땅의 사람들을 이전시켜 생존을 돕는 일이야말로 인권을 넘어 생명의 일입니다.
물론 따뜻한 바다에서 살던 사람들을 새로운 환경에 정착시키는 것은 그 자체로 그들에게 또 다른 폭력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바다에 서서히 잠겨 몰살당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유태인들이 저지르는 팔레스타인 인종청소를 지켜보는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물론 엄청난 수고와 비용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래서 꿈이라고 적었습니다. 그러나 2018년부터 유학생의 한국 정착프로그램 도입을 주장했고, 비록 허접한 상태이지만 그런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것을 보면 마냥 꿈만은 아닌 듯합니다.
지구온난화가 산업화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오래전 나사가 작성한 기온변동 그림을 보다가 전쟁을 메모해보았다. 온난화 조짐은 2차대전 때 이미 나타났었다. 다만 산업시설의 파괴 등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이 줄어 이후 정상화 되었다가 베트남 전쟁 시기 부터 다시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챗지피티에게 물어보니 미국에서 아프간전쟁과 이라크 전쟁으로 배출된 이산화탄소 양을 추정한 적이 있었나보다. 전쟁이 만들어내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상상을 초월한다. 1차 세계대전 당시만 해도 파괴력이 작았지만 이후 전쟁은 갈수록 많은 양과 파괴력(이산화탄소 배출도 비례한다)으로 발전(?)했다. 2차대전 당시의 배출량 증가는 상징적이다. 전쟁이 미국을 제외한 모든 산업국가를 파괴하여 산업이나 민간부문의 배출은 크게 줄었지만(1945년 이후 급격한 온도 하락이 이를 보여준다) 온난화는 더 심각해졌었다. 이 분야 전문가들이 제대로 된 분석을 보여주면 좋겠다. 전쟁은 직접적으로 그리고 동시에 간접적으로 지구를 말살하는 범죄이다.
오랫동안 <파이낸셜 타임즈>에 애플 관련 보고서를 썼던 기자, [패트릭 맥기]가 최근 뉴욕에서 발간한 책이다. 어느 지인이 이 책에 대해 말한 것을 보고 성급하게 주문했으나 두번이나 배송이 지연된 끝에 받았다. 그만큼 미국 내에 주문한 독자가 많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덕분에 그 사이 환율이 크게 낮아졌지만 비싸게 구입했다(^^;;). 이글은 전체 내용의 요약이 아니고 프롤로그에 대한 설명이다. 400쪽이 넘는 영어책을 요약하면서 읽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요약없이 그냥 읽을 생각이다.
1996년 다 망해가던 애플이 미국과 아일랜드, 싱가폴에 공장을 열었지만, 이듬해 애플로 복귀한 스티브 잡스는 이 전략을 버리고 차례대로 한국, 대만, 멕시코, 웨일즈, 그리고 중국으로 생산 거점을 이전했다. 2009년부터는 거의 모든 생산이 중국에서 이루어졌다. 생산 거점 이전 지역을 선정한 기준은 ‘낮은 임금, 낮은 복지, 그리고 낮은 인권보호 수준’이었다. (애플은 1970년대 후반, 시작부터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불법체류자를 노동에 투입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애플이 획득한 핵심 노하우는 스스로는 전혀 제조에 참여하지 않으면서도 세계 최고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애플이 어떻게 중국을 거점으로 삼아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회사가 되었는지,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회사의 미래를 무자비한 권위주의 국가와 불가분의 관계로 묶었는지에 대한 이야기’ 라고 밝히고 있다.
저자는 (보통 대만의 폭스콘이 중국에 투자하고 노동자 교육을 시킨 것으로 알고 있지만) 애플이 중국에서 생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자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을 교육했는지, 그리고 또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는지를 나열하고 있는데, 이런 것을 통해 애플의 노하우가 중국에 넘겨졌다고 말한다. 소위 스필오버(Spill-over)이다. 아무튼 저자가 밝히는 이 책의 흐름 중 하나는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공급망을 구축한 회사인 애플이 어떻게 대부분의 운영을 단일 지역에 집중시키는 초보적이고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의 관점은 이렇다. 중국 공장들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인프라와 교육에 투자해 온 애플은 중국 정부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붉은 공급망(Red supply chain)"으로 알려진, 국가의 보조금을 받는 중국 기업들이 애플의 오랜 파트너인 미국, 대만, 일본 기업들을 희생시키면서 더 많은 주문을 따내고 아이폰의 “부동산”은 점점 더 중국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자의 문제 중 하나는 현장의 작동원리에 대해 무지하다는 점이다. 공급망의 길이가 길어지면 그만큼 비용과 리스크도 커지기 때문에 부품을 중국 내에서 공급받는 것은 저자의 생각과 반대로 현명한 선택이다.
애플은 전 세계에 약 1,500개의 협력사들을 갖고 있지만 생산의 90%가 중국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베트남과 인도에서도 일부 조립이 이루어지지만 중국에 중심을 둔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다. 아이폰 생산만 해도 중국 내 200개 생산 라인에서 하루 평균 3,330대를 생산하는데, 이는 연간 약 2억 5천만 대에 달한다고 한다. 2007년부터 2019년까지 모든 아이폰은 중국에서 활동하는 대만 업체들이 조립했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 정치적 지원을 받는 중국 본토 업체들이 필요한 기술을 전수받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저자는 베이징의 전략이 대만의 "두뇌 유출"을 유도하고 필요한 모든 것을 학습한 후 "현금화"하여 장악하는 것이라고 전한다.
애플과 중국 간의 관계는 정치적으로 불안정해졌지만, 사업적 관계는 여전히 끊어질 수 없다. 매년 약 5억 개에 달하는 고급 제품을 출하하는 데 필요한 품질, 규모, 유연성의 적절한 조합을 제공하는 국가는 중국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애플 역시 세계 최대 중산층이 있는 중국에 대한 판매를 중단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애플이 중국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니고 미국의 자본가들이 중국과 공생하고 있는 셈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이러한 문제 의식은 바이든 행정부가 수립한 ‘반도체특별법 CHIPS & Science Act)’이나 트럼프 정부의 관세전쟁과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스필오버 효과는 뛰어난 기업이 있으면 그 주변에서 거래 관계를 통해 기술이나 노하우가 확산되는 것을 말하며, 당연한 현상이기 때문에 폐쇄 경제가 아니라면 막을 방법이 없다. 아니 반대로 모든 나라가 산업클러스터를 구축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이런 스필오버 효과를 노골적으로 추구하는 정책이다.
만약 그것이 싫으면 100% 수직계열사를 통해 모든 부품생산부터 조립까지 전체 과정을 스스로 해야만 한다. 당연히 가능하지 않고, 그런 기업은 바로 경쟁력을 잃어 도태된다. 애플이 처음에는 폭스콘을 가르쳤을지라도, 폭스콘의 제조기술이 없었다면 애플도 생존할 수 없었다. 물론 폭스콘은 중국이라는 저임금이고 인권보장이 허술한 나라가 없었다면 애플을 백업해줄 수 없었다. 결국 애플이 중국에 쏟아 부은 투자는 100배 1,000배의 수익이 되어 애플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21대 대통령선거일, 2025년 6월 3일 아침부터 라벨의 볼레로를 듣는다. 조용히 시작해서 갈수록 휘몰아치며 음량을 높여가는 오케스트라. 생각없이 들으면 반복되는 멜로디가 무료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휘몰아치는 연주는 세상의 많은 곳에서 우울한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희망의 음악이었다. 라벨의 볼레로가 사용된 두 개의 영화를 소개한다. https://alafaya.tistory.com/484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청년들을 모아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평화콘서트를 기획한다. 텔아비브에서는 모일 수 없어서 이탈리아로 옮겨가 연습을 한다. 갈등 속에서 겨우 겨우 나찌 부역자의 아들로 온갖 시련을 겪으며 살아온 지휘자 (위대한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이다) 에게 평화를 배우며 함께 연습하며 희망을 보던 그들에게 사건이 발생한다. 이스라엘 소녀와 팔레스타인 소년이 사랑에 빠지면서 자유로운 사랑을 찾아 탈출을 꿈꾸는 것이다. 그러나 경호대가 이들을 찾아 나서고, 중동상황에 길들여진 그들은 터무니없이 도망치다 교통사고로 소년이 죽는다.
그리고 평화 콘서트는 취소되고 귀국길에 오르는 단원들은 이탈리아의 공항에서 전광판의 뉴스를 보다가 대합실에서 취소된 평화 연주를 한다.
마지막 연주곡이 라벨의 볼레로이다. 거슴 벅찬 연주가 울려퍼진다. 영화제목 크레센도를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이 떠올릴 수 있는 곡이기도 하다. 볼레로는 시작부터 끝까지 크레센도로 연주하는 곡이니까. 평화를 찾아가는 길은 결코 빨리, 그리고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시민들의 과감하고도 중단없는 전진이 점점 크레센도로 휘몰아칠 때 비로소 가능하다.
보는 내내 가슴이 미어졌다. 평화의 가장 큰 적은 정치인들의 권력욕심이다.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 정치인들이 선동하면, 언론이 충실한 개 노릇을 하며 역사를 휘저어 놓는다. 그리고 이게 가능한 것은 바로 우리 마음 역시 무언가에 쫓기듯 속아줄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영화내용이 아님)
크레센도. 우리는 평화를 향해 끊임 없이 크레센도로 전진하고 있는가?
(원래 2021년 7월 10일에 쓴 글인데, 2025년 6월 3일 21대 대통령선거일에 복원했다)
“제5장 결정: 민주주의와 잠체주의의 간략한 역사”의 일부 (194p.) : 윤석열정부 3년 동안 벌어진 일과 너무나 닮았다. 대법원판사들을 구성한 것이나 이진숙을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임명해 맘대로 방송국을 매각하고 인사권을 불법적으로 사용하는 등…
“강압적인 지도자들이 민주주의를 망가뜨리기 위해 사용하는 가장 흔한 방법은 자정 장치를 차례로 공격하는 것이다. 대개 법원과 언론부터 시작한다. 전형적인 독재형 지도자들은 법원의 권한을 박탈하거나 법원을 자기 사람으로 채우고, 모든 독립적인 언론 매체를 폐쇄하는 한편 전방위적 선전 기계를 구축한다.
법원이 더 이상 법적 수단으로 정부 권력을 견제할 수 없게 되고, 언론은 정부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 적기만 하면, 정부에 감히 반대하는 기관이나 개인은 모조리 반역자, 범죄자, 또는 외국 스파이로 매도되어 박해받을 수 있다. 학술 기관, 지방자치체, NGO, 민간 기업은 해체되거나 정부의 통제를 받는다.
이 단계에 이른 정부는 선거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기 있는 야당 지도자를 구속하거나, 야당이 선거에 참여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선거구를 제멋대로 고치거나, 유권자의 투표권을 박탈할 수 있다. 이런 반민주적인 조치들을 고발하면, 정부가 심어놓은 판사들이 이를 기각한다. 강력한 지도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보통 이런 과정을 반민주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자들은 로마 시대와 이어서 근대 서구제국주의가 강국이었던 20세기의 마지막(1999년)까지의 역사를 통해 제국이 어떻게 등장하고 제국의 중심이 어떻게 이동해 왔는지 설명한다. 역사학자들의 책-특히 유발 하라리-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수백년을 넘나드는 동안 발생한 소수의 사건이나 현상을 엮어서 개념을 만들어내는데는 탁월하지만, 산만하다는 느낌과 팩트가 아닌 픽션을 읽는 느낌을 받는다.
아무튼 저자들의 논지는 분명한데, 제국주의가 몰락하는 과정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주변부에 경제적인 부가 쌓이고 반대로 중심부는 다양한 위기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특히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는 주변부를 어떻게 인식해야하는가에 대해 내부적인 정치 갈등이 발생하여 더욱 빨리 몰락한다. 로마제국시대에 북유럽과 페르시아가 그런 주변부였고, 지금 서구제국주의시대에는 중국이 그런 주변부일 것이다. 또 정치적 혼란은 영국의 브렉시트-Brexit-와 미국에서 반복되는 트럼프 집권이 상징적이다.]
로마제국주의와 서구제국주의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발전은 이탈리아 무역망에 엮인 북유럽의 경제발전을 가져왔다. 또 이탈리아가 동방무역을 기반으로 발전하는 것을 본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신항로를 개척(결과적으로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하기도 함)하여 발전했다. 결국 유럽경제의 중심은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 외곽으로 이동하였다.
영국은 토지사유화(엔클로저 운동)를 허용하고 토지를 얻은 부자와 토지가 없는 값싼 노동자를 탄생시켜 산업혁명을 시작하게 된다. 영국과 네덜란드는 산업혁명을 통해 함대 구축 능력을 확보해 세계를 식민지로 만들 수 있었다. 미국은 영국에 면화를 공급했다. 독립 후 미국은 제조업을 자유시장에 맡기고 제조업 육성정책을 시행했다. 덕분에 영국은 미국 기반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미국은 광대한 서부 개척을 이용하여 이민자를 받아 경제성장을 했으며, 19세기 말 이미 영국을 능가했다. 이상을 통해 볼 때, 노동력과 원자재 가용성에 따라 경제성장의 지역이 바뀌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제국은 정적인 실체, 즉 ‘사물’이 아니라 경제∙정치적 통합을 위한 역동적인 체계였다.
로마와 서구의 역사는 모두 명백하게 최대의 번영을 누리는 시점에 위기가 닥쳐왔고 두 체계 모두 경제∙정치적 지배력의 내부 진원지가 주기적인 변화를 겪었다. 두 제국은 지배력을 행사하며 주변 세계를 통해 부유해졌다. 그렇게 함으로써 두 제국은 의도치 않게 자신들이 활동하고 있던 전략∙지정학적인 맥락을 변화시켰고, 여기에 몰락의 뿌리가 놓여 있었다.
제국주의 체제에 편입된 양상은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완전히 통합한 속주, 실질적으로 통합한 내부 주변부, 그리고 훨씬 덜 통합한 외부 주변부이다. 내부 주변부와 외부 주변부를 가르는 기준은 거리와 이동시간이다. 내부 주변부는 식민지는 아니지만 언제든 경제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지역으로 교역은 외부 주변부보다 많았다. 총생산과 소득 성장은 완전히 통합한 속주 > 실질적으로 통합한 내부 주변부 > 훨씬 덜 통합한 외부 주변부 순서였다. 주변부의 장기적인 경제발전은 필연적으로 광범위한 정치적 결과를 낳았다.
2차 대전 후, 공식적인 탈식민지화 과정은 서구 제국주의의 종말이라기보다는 서구 제국주의가 새롭고 매우 창의적인 형태로 재표현되는 것을 의미했다. 로마 제국 체제가 자신의 작동 때문에 생성된 더 강력한 연맹을 염두에 두고 스스로 작동방식을 조정해 여전히 궁극적인 통제를 행사했던 것처럼, 심지어 탈식민지화 속에서도 서구 제국 체제는 새로운 메커니즘을 통해 옛 식민지 주변부 대부분을 계속해서 지배했다.
그 핵심은 브레턴우즈 협정으로 전후 무역과 자본 흐름에 대한 제한을 최소화하면서 동시에, 서구 열강의 지속적인 지배를 보호하기 위한 일련의 제도를 창설했다. 1)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으로 회원국들은 관세를 점진적으로 축소함으로써 세계가 대공황 시기의 폐쇄 경제로 돌아가는 것을 방지했다. 2) 회원국들이 매년 분담금을 내 세계적 비상기금으로 사용하기 위한 국제통화기금(IMP)의 창설. 3) 세계은행의 설립. 원래 전쟁으로 황폐해진 유럽의 재건을 위한 자금 지원이 목적이었으나, 전후 탈식민지화 과정에서 부상한 신생 국가들로 인해서 주변부의 자본주의 발전으로 관심을 돌렸다. 4) 마지막으로 새로운 세계 질서를 완성한 것은 유엔(UN)이었다. 유엔은 연합군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며 (제국의 새로운 중심지가 어디인지 의심의 여지가 없도록) 뉴욕에 본부를 두었다. 근본적으로, 브레턴우즈는 세계 자원이 2차 대전 후에도 과거 제국주의 주변부에서 서구제국 중심지로 계속 이동하도록 세계 상업 질서를 제도화했다.
특히 GATT는 제조업에 대해서는 자유무역을 보장했지만, 농산품에 대해서는 자유무역을 적극적으로 보장하지 않음으로써 서구의 제조품은 주변부로 수출하지만, 주변부의 농산품은 서구로 수출하지 못하게 해 주변부의 성장을 막았다. 또 기축통화를 달러로 정함에 따라 전 세계 국가들은 뉴욕의 은행에 달러를 예치해야 했고 따라서 높은 이자를 지급할 필요가 없어진 미국은 낮은 이자율(결과적으로 낮은 인플레율)을 유지할 수 있게 되어 결과적으로 전 세계 국가들이 미국에 보조금을 지급한 셈이었다.
복지서비스는 산업화를 통해 정부가 이용할 수 있게 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잉여 세입과 이를 관리하려 개발한 관료주의의 역량 증가로 가능했다. 이 특별한 체계는 저개발 국가에서 서구로 가는 부의 흐름을 바탕으로 건설되었으며, 그들이 서구 필요 수입의 상당 부분을 제공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반면, 세계화에 따라 탄생한 새로운 경제 질서는 주로 서구 사회 내의 특정 집단으로 가는 부의 흐름을 증가시키고 다른 많은 사람의 생계는 악화시켰다.
즉, 세계 경제 조직의 주요 승자와 패자가 이전처럼 다수의 패자가 정치적으로 안전한 거리인 해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 같은 국경 내에 나란히 사는 상황이 생긴 것이었다. 가장 확실한 경제적 수혜자는 해외로 생산을 이전한 기업의 소유주와 주주였다. 그러나 이러한 이득은 저숙련 및 미숙련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얻은 것이었다. 이들은 과거 자신들이 직접 참여했던 부의 창출 과정이 해외로 옮겨지는 것을 바라봐야 했고, 실질 소득이 떨어지는 경제 환경에서 서비스 일자리를 놓고 점점 더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제국의 몰락 로마제국의 멸망 원인은, 1) 내부 주변부에서 농업생산성과 인구밀도의 증가 2) 페르시아의 정치 군사적 재편 -> 로마 세수의 75%를 군대 유지에 사용 -> 데나리온의 평가 절하 -> 초 인플레이션 3) 제국의 거대화는 통신 지연으로 내전 예방 곤란 로마는 5세기 야만족연합의 인정과 증세 문제에서 정치적 분열을 경험했다. 서구 제국주의는 영국의 브렉시트, 미국의 트럼프 집권(트럼프 1기 집권과 브렉시트는 모두 2016년에 발생)은 현대 서구의 세계 민족국가 개념에 실존적 위협이었다. 동시에 자본의 해외 이전으로 주변부 국가가 세계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점점 늘려가고 있다.
로마가 겪었던 것과 같은 미래(정치적 분열의 증가, 불안정성의 증가, 민주주의와 법과 인권 존중의 쇠퇴, 공공 서비스 약화, 생활 수준의 저하 등)가 서구에 닥칠 수 있다. 즉 서구는 여전히 풍부한 수입을 통제하고 있지만, 로마제국과 비교하면 두 가지 분명히 비슷한 현상이 있다. 1) 자체 구조가 작동해 주변부였던 곳에 강력한 새로운 세력이 나타났다. 2) 심각한 재정문제도 유사하다. 로마가 재식민지화로 수명을 연장했던 것처럼, 서구는 정부와 시민 모두 미래 수익으로부터 어느 정도는 차입할 수 있기 때문에 붕괴를 면하고 있다.
서구는 지금 어려운 조정 필요하다. 국내에서는 노령화와 출산율 저하로 인구적 맥락에서 이민의 역할에 대해 훨씬 더 솔직한 토론이 필요하다. 해외에서는 구 서구 열강과 중요한 문화적, 제도적 유산을 공유하는 신흥 강대국과 새로운 연합을 구축할 실질적인 기회가 있다면, 그들을 훨씬 더 공감과 평등으로 대해야만 한다.(안타깝게도 트럼프 2기는 오히려 동맹국과의 연합을 파괴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보편적 기본소득, 적절한 가격의 주택 공급 정책, 소득이 아닌 부에 더 무거운 세금(부유세) 부과, 노동법 강화로 고용안정성 신장, 조세 피난처의 조세 회피 단속이나 조세 차익 거래를 줄이는 국제조약(2021년에 법인세율 15%를 글로벌 최저세로 하자는 OECD의 요구에 130개 국가 서명), 탄소세 도입하고 이를 대중에게 배당하는 제도와 연계, 그리고 연금의 생존가능성 회복 등이다.
아무튼, 세계 경제의 근본적인 구조가 너무 심오하게 변화했기 때문에, 일부 지도자들은 다시 위대해질 수 있는 척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이명박 이래로 한국의 대통령이나 그 후보들도...)
아래 사진은 슬로우뉴스의 한 조각이다.(슬로우뉴스는 이메일로 뉴스를 받아보는데, 주요 기사를 잘 요약하여 전달해준다. 바쁜 사람들이나 온라인으로 뉴스를 보는 사람들이 겪는 혼란을 줄여주는 좋은 매체이다.) 2001년에는 지멘스 미국에서 당시 내 대학 연봉의 세배를, 그리고 2016년에는 중국의 대학에서 내 연봉의 다섯배를 제안 받은 적이 있다. 2001년에는 아직 한국에서 내가 기여할 일이 많다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2016년에는 퇴직 후에 가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퇴직의 기쁨을 포기할 수 없어 23년에 가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왜 중국으로 갈까? 이 질문에 대해 윤석열의 연구비 삭감만으로 퉁치면 본질에서 벗어나도 너무 벗어난다. 시작은 IMF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IMF가 터지자 정부가 세출을 줄이기 위해 국가연구소들을 통폐합하고 연구원들을 해고했다. 한국에서 법대 선호현상은 매우 오래된 일이지만, 의대 선호현상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해고된 연구원들이 대학에 시간 강사로 유입되면서 자신의 자녀는 해고가 없는 의대로 보내기 위해 힘쓰기 시작했다. 기업의 연구원들도 마찬가지였다. 90년대까지만 해도 기업과 대학 사이에 교류가 활발했는데, 주로 연구원들이 자신이 하고 있는 실용연구를 대학에 와서 강의해주는 방식이었다. 이들 역시 기업에서 해고했다. 이유는 대학에 가서 자리잡으면 되지? 였다. 그렇게 70-80년대에 공학, 과학으로 몰려 갔던 인재들은 자녀들만은 의대로 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당연히 의사가 되는 목적도 해고되지 않는 직업이라는 것이었다.
이걸 또 한쪽에서는 의사가 돈을 잘 벌어서 그렇다고 주장한다. 모든 부를 소수의 자본가에게 몰아주자는 말밖에 안된다. 마치 정규직노동자의 소득이 많다고 공격하면서 정작 비정규직을 늘리는 자들의 말과 같다. 연구자들을 천대해서 빚어진 일을 해결하기 위해 의사를 천대하자는게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공계기피현상은 연구비를 늘려서 해결해야 맞다. 이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연구자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대학이 이공계 연구자를 담고 있는 댐이 되어 나라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윤석열이 카르텔이라며 공격하던 연구비는 사실 많아서 문제가 아니라 적어서 문제였다. 우리 사회가 이공계 기피현상으로 몰락해가는 것을 막을 유일한 수단이 국가 연구비였는데, 그걸 더 줄이겠다고 하는 바람에 벌어진 일을 만약 내가 들은 것만 공개해도세계적인 망신이 될 것이다. 이미 하바드대학과 칭화대학의 1년 예산이 서울대의 열배나 되는데 더 줄이겠다면 어쩌자는 건가?
1.계속 사무실의 짐을 버리고 있다. 원서들을 버리는 것이 한편으로는 아깝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오랜 시간 나를 억누르던 짐을 벗는 것 같아 시원하기도 하다. 쓸데 없이 연구해보고 싶은 주제가 많았던 탓에 폭넓은 분야의 책을 사두었으나 결국 비싼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다.(환경오염범)
1-2.서랍에서 오래 전 제자들이 보낸 손편지들이 한묶음 나왔다. 지금은 대부분 이름도 기억 못하지만 가슴 따뜻해지는 편지들을 다시 하나씩 읽어보면서 파쇄기에 집어넣었다. 추억은 그 자체로 이미 내 삶의 자양분이었으니 남겨둘 필요는 없다.
2.지난 10년 이상을 한중 민간교류가 동아시아 평화 유지에 핵심이라고 믿고 추진하던 학생교류, 오는 1월에도 한다. 정년을 이제 두 달 앞두고 있지만 이번에도 거의 모든 준비를 혼자하고 있다. 내가 정년한 후에는 오랫동안 공을 들여온 프로그램들이 그대로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 회사 꼴이 나라꼴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쉽지만 과로하며 살아온 시간들과 단절하는 것이 행복하다.
2-2.박그네 때 교수 하나가 친위대 성명에 가담하고 지금 교무처장 하는 것을 보니 부러웠나? 이번에도 윤서결 친위대 성명에 한 사람이 가담했다. 몇 년 뒤, 교무처장 감이다.(?) 나는 상관 없는 시간이니 그것도 담담하다.
3.연금으로 살아가려면 그동안 후원하던 것들을 줄여야 할텐데 이것이 가장 큰 마음의 짐이다. 아직도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청지기로 살기가 녹록하지 않다.
4.정년 후 시간에 대해 아무 것도 정하지 않았다. 교수가 부족해 대학원 강의를 반드시 해줘야 한다는 학과장 요청 때문에 갈등이다. 해방을 만끽하고 싶고, 그나마 남은 자들이 만장일치로 요청하는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마 자립마을 프로젝트(여러 나라 가난한 마을의 자립기반을 만들어주는 일)에 내 재능을 발휘할 수 있을 듯 하다.
5. 2024년, 나에게는 가장 끔찍했던 해로 기억될 것이다. 그 악몽의 끝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계엄사태였다. 4월과 10월, 그리고 12월. 강한 멘탈로 버텼다. 그 모든 죽음 앞에 망각만이 나를 구원하리라 여기며 버티고 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속히 오시옵소서.
5-2.고등학생 나이 때부터 친구였던 이들의 단톡방에서 조용히 나왔는데, 몇 주가 지난 뒤 누군가 내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는지 다시 초대해서 불려들어갔다. 오랫 동안 친구로 지내왔지만, 차별금지법을 넘어서지 못하는 기독교인들과 더 이상 친구로 지낼 자신이 없다.
6.죽은 자들이 죽은 자의 장사를 지내게 하고 나는 산 자들 속에서 삶을 세우며 살아야 할텐데……
2025년 4월 15일 국민일보 속보에 중국이 보잉여객기 인도중단 명령을 내렸다는 소식이 떴다. 물론 기자는 그 의미를 생각도 안해보고 쓴듯하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경제 이슈로 갈등이 생기면, 중국이 미국을 달래는 수단은 거의 항상 보잉사의 여객기를 구매하는 것이었다. 보잉사는 만년 적자에 시달리지만, 미국의 군수산업에서 중요한 기업 준 하나이기 때문에 망하면 절대로 안되는 기업이기도 하다. 그래서 중국이 보잉여객기를 구매하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으로 미국을 달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보잉여객기를 구입함으로써 미국이 유일하게 압도적인 세계 1위인 군사력을 유지시켜주는 지원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정책의 배경으로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중국이 스스로 미국보다 더 강력한 국가가 되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군사적으로 미국을 자극할 생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는 중국이 자주 대외적으로 선언하는 평화굴기, 즉 평화롭게 강대국이 되겠다는 것의 상징으로 미국의 군수업체인 보잉사를 유지시키는데 도움을 준다는 점이다. 자국의 영토문제(대만, 홍콩 등)가 아니라면 간섭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미국 달래기이다.
그러나 관세전쟁이 생각보다 일찍 중국이 미국의 핵심 아킬레스건에 칼을 대게 만들었다. 미중 관세전쟁은 결국 미국의 몰락과 중국의 상승을 확실하게 만들고 그 시계의 회전속도까지 빠르게 만들 수 있다.
아무튼 다음 대통령이 누가되든 한국의 핵심 이익은 미중 사이에서 적절히 균형을 잡는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대부분의 언론이 서방의 관점만를 반영해 트럼프 대 시진핑의 대결로 다루고 있지만, 이는 중국을 너무 모르는 관점이다.
중국은 개방 이후 집단지도체제를 해체한 적이 없다. 시진핑의 장기집권은 다른 나라들(특히 미국)의 절대권력과는 성격이 다르다. 지금 트럼프는 윤석열처럼 본인이 나서서 망나니짓을 하고 있고 보좌진(장관 포함)을 똑 같은 자들로 구성해서 함께 칼춤을 춘다. 누구도 막지 못할 뿐 아니라 두 나라의 공권력은 헌법이고 뭐고 없이 대통령이 시킨 짓을 수행한다.
반대로 시진핑은 절대권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국가운영은 집단지도체제(당은 물론이고 학자들을 포함하는)로 이루어진다. 아마 대부분 이상하게 느끼지 못하겠지만, 중국의 핵심 정책을 시진핑이 발표하는 것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모두 해당 부처에서 발표한다. 시진핑이 정책을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은 주로 전인민대회에서 비전을 발표할 때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 발표문은 해당 분야 학회에서 제안하고 전문위원회가 검토한 후 다시 상무위원회의 승인을 거친 것이다. 그래서 적어도 내가 관심을 갖는 산업정책은 매우 전략적이고 합리적이다. 정책이 발표되면, 이는 이미 다양한 문제들을 모두 검토했고, 그래서 비록 중국도 피해를 입지만 상대방에게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을 바라볼 때 장기집권이라는 겉만 보고 집단지도체제의 속을 파악하지 않으면 칼의 손잡이를 잡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날을 쥐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국민일보 속보 제목은 조금만 생각해봐도 가짜인 것으로 보인다. 관세전쟁으로 보잉 여객기 가격이 거의 2.5배 인상되어 구태여 구매 중단을 명령하지 않아도 중국 항공사들은 에어버스를 구매할 수밖에 없다.
(1994년 어느 날 작성했으나 잃어버린 글이었는데, 퇴직하면서 사무실을 비우다가 기적적으로 최초 메모한 것을 발견하여 다시 작성했다.) 나는 한국현대사에서 선생님처럼 위대한 스승이 또 있다는 말을 아직 듣지 못했다. 내 이야기가 허풍이라고 생각되는 분은 부디 <김교신-그 삶과 믿음과 소망, 김정환지음, 한국신학연구소>를 읽어 보시기 바란다. 물론 선생님은 1945년 4월에 44세를 일기로 돌아가셨으니, 내가 태어나기 무려 15년 전의 일이다. 선생님에 대해서는 류달영교수(https://ko.wikipedia.org/wiki/류달영)의 제자였던 선친을 통해서 어렴풋이 들어 알았고, 성인이 되어서 비로소 몇 가지 간단한 문헌을 통해 선생님을 배웠다. 그리고 선친의 뜻을 따라 나 역시 교육자가 되었다. 마침 내가 서점에서 우연히 위 책을 발견한 것이 1994년, 즉 내가 한 재벌그룹의 경제연구소에서 대학으로 직장을 옮긴 해였다. 손기정선수(https://ko.wikipedia.org/wiki/손기정)의 담임선생이기도 했던 선생은 친히 손선수를 훈련시켜 올림픽 금메달의 주인공으로 성장시키기도 했다.(아래 손기정선수의 증언) 선생이 주간이 되어 발행하던 잡지 <성서조선>에 조와(개구리를 애도함)라는 제목의 자신의 글을 실었는데, 일제는 이 글이 조선의 독립정신을 고취시킨다고 하여 성서조선을 폐간시켰고 선생님은 옥고를 치러야 했다(아래에 전문). 이는 한글을 연구하던 민간단체인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여러 사람이 옥고를 치렀던 것보다 1년 전의 일이다. 말년(44세에 돌아가셨으니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다)에는 흥남비료공장에 들어가서 징용되어 온 한국인 노무자들을 돌보며 사셨다. 그러나 노무자들 사이에 전염병(발진티푸스)이 퍼졌고 감염자들을 보살피다가 선생님도 감염되어, 해방을 눈앞에 둔 1945년 4월 25일 끝내 해방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선생님의 글 중에서 내가 교육자로 살아가면서 좌우명처럼 기억하게 된 것은 다음 글이다.
“『성서조선아, 네가 만일 그처럼 인내력을 가졌거든 너의 창간일자 이후에 출생하는 조선사람을 기다려 면담하라, 담론하라. 동지를 한 세기 후에 구한들 무엇을 한탄할손가. (1927년 7월호)“ 교육자로서 당장 눈앞의 교육성과를 위해 살지 않기. 그래서 나는 언제나 학생들을 미래 한국사회를 지탱하는 시민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려고 최선을 다했다.
손기정선수의 증언(위 책에서 옮김) 교사에는 지식으로 사람을 가르치는 교사가 있고 덕으로 가르치는 교사가 있다. 지식으로 가르치는 교사한테서는 기술자한테 기술을 배우듯이 지식을 배울 뿐이지만, 덕으로 가르치는 교사한테서는 인생 그 자체를 배운다. 그러므로 후자의 경우는 뭘 배운다기보다 마치 어머니의 젖과도 같이 먹으면 살이 되어 성장하게 된다. 이런 교사야말로 참 교사가 아니겠는가? 내가 배운 김교신 선생님은 바로 이런 분이시다. 어쩌면 선생님은 나면서부터 인생의 지도자가 될 사명을 띠 셨는지도 모르겠다. … 선생님처럼 옳은 일이라면 그것을 곧 직접 실천에 옮기는 분도 아마 그리 흔하지 않을 것같이 생각된다.
조와 전문 작년 늦은 가을 이래로 새로운 기도터가 생겼다. 층층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가느다란 폭포 밑에 작은 연못을 형성한 곳에 평탄한 반석 하나가 연못 속에서 솟아나 한 사람이 꿇어앉아서 기도하기에는 하늘이 마련해 준 성전이다. 이 반석 위에서 때로는 가늘게 때로는 크게 기도하고 간구하고 찬송하다 보면, 전후좌우로 엉금엉금 기어오는 것은 연못 속에서 바위의 색깔에 적응하여 보호색을 이룬 개구리들이다. 산 속에 큰일이나 생겼다는 표정으로 새로 온 손님에게 접근하는 친구 개구리들. 때로는 5,6 마리, 때로는 7,8마리. 늦가을도 지나서 연못 위에 엷은 얼음이 붙기 시작하더니 개구리들의 움직임이 날로 날로 느려지다가, 나중에 두꺼운 얼음이 연못의 투명함을 가리운 후로는 기도와 찬송의 음파가 저들의 고막에 닿는지 안 닿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이렇게 소식이 막힌 지 무릇 수개월 남짓! 봄비 쏟아지던 날 새벽, 이 바위틈의 얼음 덩어리도 드디어 풀리는 날이 왔다. 오래간만에 친구 개구리들의 안부를 살피고자 연못 속을 구부려 찾아보았더니 오호라, 개구리 시체 두세 마리가 연못 꼬리에 둥둥 떠다니고 있지 않은가! 짐작컨대 지난 겨울의 비상한 혹한에 연못의 적은 물이 밑바닥까지 얼어서 이 참사가 생긴 모양이다. 예년에는 얼지 않았던 데까지 얼어붙은 까닭인 듯. 얼어 죽은 개구리의 시체를 모아 매장하여 주고 보니 연못 바닥에 아직 두어 마리가 기어 다닌다. 아, 전멸은 면했나 보다! (현대어 번역 www.biblekorea.net, 재인용 위키백과)
이 책은 2024년 소설부문 판매 1위라고 해서 손에 잡았다. 소설은 단순해서 순식간에 읽을 수 있다. 다만 번역자가 처음 도입 문장을 번역하기 힘들었다고 고백하는 것처럼 소설의 서술은 매우 섬세한 묘사체로 되어 있다. 그러나 스토리 전개는 복잡하지 않다.
아일랜드의 한 마을에서 석탄과 장작 등 땔감을 공급하며 살아가는 주인공 펄롱은 어느 날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갔다가 석탄 광에 버려진 한 소녀를 발견한다. 그 소녀는 자신을 도망치게 도와달라고 했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자살할 수 있게 강물로 데려다 달라고 한다. 그러나 펄롱은 그 소녀를 수녀원장에게 데려다 준다. 수녀원장은 수녀들에게 그 소녀를 잘 대해주는 모습을 연출하도록 하고 동시에 펄롱에게는 발설하지 말라고 무언의 압력을 행사한다.
이쯤에서 이 소설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게 번역자가 끝에 달아 놓은 해설의 일부를 재편집하여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
‘이 소설에 나오는 막달레나 세탁소는 18세기부터 20세 기 말까지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하고 아일랜드 정부에서 지원한 같은 이름과 명분의 여러 시설 가운데 하나다. '타락한 여성'들을 수용한다는 명분으로 설립했으나, 성매매 여성, 혼외 임신을 한 여성, 고아, 학대 피해자, 정신이상자, 성적으로 방종하다는 평판이 있는 여성, 심지어 외모가 아름다워서 남자들을 타락시킬 위험이 있는 젊은 여성까지 마구잡이로 이곳에 수용했고 교회의 묵인하에 착취했다. 동네 사람들은 세탁소의 실체에 대해 짐작하면서도 입을 다물고 높은 담 안에서 저질러지는 학대에서 눈을 돌린다.’ 이쯤에서 돌아보면 우리네가 목격했던 도가니 사건과 유사하다.
‘어쩌면 이렇듯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의 이야기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사소하다고 생각하며 지나가는 일들이 자신의 이해와는 무관하지만 겪는 사람에게는 끔찍한 일이고, 나아가 그것이 언젠가는 자신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와 고통이 되는 법이다. 그래서 펄롱은 이런 생각에 도달하기도 한다.
‘좋은 사람들이 있지, 펄롱은 차를 몰고 시내로 돌아오면 서 생각했다. 주고받는 것을 적절하게 맞추어 균형 잡을 줄 알아야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사람들하고 잘 지낼 수 있단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특권임을 알았고’
그러나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거기 일에 관해 말할 때는 조심하는 편이 좋다는 거 알지? 적을 가까이 두라고들 하지. 사나운 개를 곁에 두면 순한 개가 물지 않는다고. 잘 알겠지만."’ 그러면서 늘 덧붙이는 말이 있다. ‘"기분 나쁘게 듣지 말고."’
언제나 나쁜 세력은 뭉쳐서 서로 힘을 나누어 주며 나쁜 일을 해치운다. 윤석열의 계엄 사태가 빨리 종식되지 않는 것도 바로 그런 사람들이 온갖 절차와 법을 따져 그럴 듯하게 포장하여 나쁜 짓을 벌이기 때문이다. 이 때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며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말했듯이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만, 그 수녀들이 안 껴 있는 데가 없다는 걸 알아야 해.” …… "교단은 다르지만 다 한통속이야. 어느 한쪽하고 척지면 다른 쪽하고도 원수 되는 거야."’
그러나 펄롱은 그 소녀를 구출하여 자기집을 향해 걸었다. ‘얘가 누구냐고, 세탁소 계집애 중 하나가 아니냐’고 대놓고 따지는 한 부인의 비아냥도 무시했다. 그러다 펄롱은 깨닫는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미시즈 윌슨이 아니었다면 어머니는 결국 그곳에 가고 말았을 것이다. 더 옛날이었다면, 펄롱이 구하고 있는 이가 자기 어머니였을 수도 있었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펄롱이 자신의 양심과 신앙에 따라 그리고 자신의 과거를 극복하기 위해 과감하게 소녀를 구출한 것이 결국 가톨릭교회와 정부가 함께 만들어 놓은 이 악덕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작은 구멍이었음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힘은 한 사람의 선행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정의감에서 나오는 연대에서 오는 것임을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2025.3.)
희랍어시간은 한강이 쓴 장편소설이다. 먼저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강연, “빛과 실”에서 일부를 옮겨 보자.
…(전략)…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 그걸 잇는 금(金)실- 빛을 내는 실.
…(중략)…
세번째 장편소설인 <채식주의자>를 쓰던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나는 그렇게 몇 개의 고통스러운 질문들 안에서 머물고 있었다.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그걸 위해 더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중략)…
그 다음의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는 이 질문들에서 더 나아간다.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삶과 세계를 거부할 수는 없다. 우리는 결국 식물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정체와 이탤릭체의 문장들이 충돌하며 흔들리는 미스터리 형식의 이 소설에서, 오랫동안 죽음의 그림자와 싸워왔던 여주인공은 친구의 돌연한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분투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죽음과 폭력으로부터 온힘을 다해 배로 기어나오는 그녀의 모습을 쓰며 나는 질문하고 있었다. 마침내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는가? 생명으로 진실을 증거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다섯번째 장편소설인 <희랍어 시간>은 그 질문에서 다시 더 나아간다. 우리가 정말로 이 세계에서 살아나가야 한다면, 어떤 지점에서 그것이 가능한가? 말을 잃은 여자와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는 각자의 침묵과 어둠 속에서 고독하게 나아가다가 서로를 발견한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촉각적 순간들에 집중하고 싶었다. 침묵과 어둠 속에서, 손톱을 바싹 깎은 여자의 손이 남자의 손바닥에 몇 개의 단어를 쓰는 장면을 향해 이 소설은 느린 속력으로 전진한다. 영원처럼 부풀어오르는 순간의 빛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신의 연한 부분을 보여준다. 이 소설을 쓰며 나는 묻고 싶었다. 인간의 가장 연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 그 부인할 수 없는 온기를 어루만지는 것- 그것으로 우리는 마침내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덧없고 폭력적인 세계 가운데에서?
그 질문의 끝에서 나는 다음의 소설을 상상했다. <희랍어 시간>을 출간한 후 찾아온 2012년의 봄이었다. 빛과 따스함의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소설을 쓰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중략)…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중략)…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중략)…
그렇게 <소년이 온다>를 완성해 마침내 출간한 2014년 봄,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으며 느꼈다고 고백해온 고통이었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네번째 소설인 <바람이 분다, 가라>까지는 살아남기 위해 죽음과 폭력으로부터 탈출하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전환점이 될 수 있는 다섯번째 소설, <희랍어 시간>은 폭력적인 세계 한 가운데에서 연하디 연한 순 같은 존재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를 말하고 있다.
줄거리는 장편소설 답지 않게 단순하다. 한 인문학 아카데미의 희랍어 시간에 만난 두 사람, 희랍어를 배우는 여자와 희랍어를 가르치는 강사인 남자가 의지하고 지지하는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 소설에서 희랍어는 중요한 상징이다. 인류 중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 언어, 수동태·능동태 외에 중간태까지 갖춘 정교한 언어여서 유럽인들도 배우기 어려워하는, 그러나 사라진 언어. 오직 그리스 시대의 철학서적을 읽을 때만 필요한 언어이다.
여자는 열 일곱 살 때 처음 실어증에 걸렸을 때 낯선 불어 단어를 배움으로써 말을 되찾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데, 20년 만에 다시 말을 잃었다. 이혼한 뒤 혼자 키우던 아이를 소송 끝에 전 남편에게 빼앗겼고 예민한 그녀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던 엄마마저 여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다시 낯선 언어, 희랍어를 공부한다.
10대 때 가족과 함께 아버지의 해외 근무를 따라 독일로 간 남자는 두 문화의 균열 속에서 힘든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곳에서 안과의사의 딸과 잠시 조우하기도 하지만, 내성적인 그는 외국인이란 이유로 늘 남의 눈에 띄는 자신의 처지가 싫었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와서 처음 느낀 해방감은 자신이 더 이상 눈에 띄지 않는 존재라는 점이었다. 독특하게 뛰어난 희랍어 실력을 가졌지만, 부계 유전으로 점차 시력을 잃어간다. 그는 안전을 지켜주는 가족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오고 희랍어를 가르친다.
각자의 세계 속에 갇혀 살아가는 두 사람. 한 사람은 실어증으로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극도로 피한다. 다른 한 사람은 시력을 잃어가고 있어 오직 부치지 않은 편지로만 다른 사람과 대화한다. 이 두 사람에게 희랍어 수업은 유일하게 다른 사람과 접촉하는 시간이다. 이런 두 사람이 다른 학생들은 모두 결석한 날, 아카데미 건물 안으로 날아든 박새 때문에 빚어진 해프닝을 통해 접촉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 사이에 따스한 감정이 오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육체적 제약 때문에 연한 순 같은 두 사람에게 밀려들었던 삶의 폭력은 무력화된다. (2025.2.)
(2023.7.22 씀) 우리 세대는 마카로니 웨스턴이라고도 하는 이탈리아 서부극을 보면서 학생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엔니오 마리꼬네를 사귀었다. 그의 음악은 우리에게 영화를 기억하는 수단이었고, 울고 웃고 심각해졌다가 낄낄거리게 만드는 장치였다. 서부극에서 그의 음악이 재치 발랄한 효과음악이었다면, 미션에서는 웅장한 교향곡이었다. 그의 음악세계는 넓고 깊게 발전했다.
아카데미는 철저히 그를 덮으려 했다. 여러 차례 음악상 후보에 올랐고 많은 영화인들이 그의 수상을 예상했지만, 결국 오스카상의 인종차별이 국제적인 문제가 될 때쯤 여섯번 만에 음악상을 받을 수 있었다.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고, 그의 스승과 동료 작곡가들에게 영화음악을 한다는 이유로 정통을 벗어났다는 이유로 무시 당해 외로웠다고 한다. 말년에는 그들도 엔니오의 음악세계를 인정했다. 그러나 긴 시간을 힘들게 버텨온 후였다.
영화가 끝나고 스크립트가 다 올라가고서야 그의 천재성과 소위 정통이 아니어서 겪어야 했던 어려움, 그리고 그의 뛰어난 음악에 푹 빠져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목이 잠겨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었다. 한 시대를 넘어 오랫동안 기억될 천재가 더 이상 우리 곁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2023.7.22)
지은이 자우너의 아버지는 미국인으로 마약에서 빠져나와 한국에 중고차판매원으로 왔다가 자우너의 엄마를 만나 결혼하고 자우너를 낳은 후 곧 미국으로 돌아갔다. 자우너는 그렇게 이민자 2세로 성장했다. 그(녀)는 인디 팝 밴드인 재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e Breakfast)의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다. 밴드의 이름은 결성할 당시 아침 식사를 일본식으로 먹고는 즉흥적으로 정한 이름이라고 한다. 세계 공연 여행을 다녔고, 한국 홍대 앞에서도 공연을 한 적이 있는 인디 팝계에서는 제법 알려진 밴드이다. 지은이는 이민 1세대인 자신의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중간중간 자신의 성장과정을 끼워 넣는다. 자우너의 성정과정은 한국의 이민자들 혹은 다문화가정의 쉽지 않은 미국사회 적응이나 부모-자녀 관계를 엿볼 수있다. <내 얼굴에, 원래 살던 곳에서 추방된 존재로 읽어내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다. 마치 내가 무슨 외계인이나 이국적인 과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넌 그럼 뭐야?”는 열두 살인 내가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왜냐하면 그 말은 내가 눈에 띄는 사람이고, 존재를 식별할 수 없는 사람이고, 집단에 속하지 않는 사람임을 기정사실화하기 때문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늘 내 절반이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 했지만, 이젠 갑자기 그것이 내 본질적 특징이 될까봐 두려워져 그 흔적을 지우기 시작했다.> 저자는 사랑받는 딸에서 사춘기의 예민한 시기를 거치면서 엄마를 편치 않게 만드는 딸이 되었다가 엄마가 말기 암이라는 소식을 듣고 엄마 곁에 머물면서 엄마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엄마를 이해하는 방법은 한국 음식을 통해서이다. 2년에 한 번씩 엄마와 함께 한국에 가서 외할머니, 이모, 사촌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자신의 피에 흐르는 한국인 디엔에이를 발견하고 한국인의 정체성은 한국 음식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한국 음식의 종류, 먹는 방법, 나아가 한국식 문화가 시종 펼쳐진다. 그래서 북미의 한국 식재료 수퍼마켓인, ‘H마트’에서 울다 라는 제목이 붙은 것이다. 저자는 엄마와 함께 먹는 한국음식이 상징하는 바를 이렇게 말한다. <음식은 우리끼리 나누는 무언의 언어이며, 우리가 서로에게 돌아오는 일, 우리의 유대, 우리의 공통 기반을 상징하게 됐다.> <작은 접시에는 총각김치를 썰어 담고 김칫국물을 한 국자 떠서 그 위에 부었다. 죽을 한입 떠서 목구멍으로 넘기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소하고 부드러워 마음까지 편안해졌다. 나는 몇 숟가락 더 떠먹고 나서 아삭하고 매콤새콤한 김치로 입가심을 했다.> 그래서 저자는 엄마의 죽음을 치유하는 것이 김치였다고 말한다. <그때부터 한 달에 한 번씩 김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나의 새로운 치유법이었다.> 한국의사들이 얼마나 친절한지를 묘사한 대목도 있다. <나는 한국에서 의사가 우리와 함께 보내는 시간에 깜짝 놀랐다. 오리건에서는 의사가 1분도 채 안 돼 부랴부랴 다른 방으로 떠나면 뒷일은 대부분 간호사들이 알아서 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의사가 우리를 돕는 데 진심을 다했고, 우리가 처음 도착했을 땐 엄마의 손까지 잡아주었다.> 그러나 엄마는 야속하게도 세상을 떠나고, 그 순간 모국어인 엄마의 언어가 터져 나온다. <“엄마, 제발 눈 좀 떠봐.” 나는 엄마를 깨울 작정이라도 한 듯이 소리쳤다. “나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제발, 엄마. 나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엄마! 엄마!” 나는 엄마의 언어로, 모국어로 절규했다.> <나는 얼굴 윤곽이건 피부색이건, 내 소중한 반쪽을 나타내던 것이 유실되기 시작해 두려웠다. 마치 엄마와 함께, 내 얼굴의 그 부분들에 대한 권리마저 사라지기라도 한 듯이.> <그때까지도 나는 엄마가 가장 자랑스러워 한 두 역할을 독선적인 태도로 얕잡아보았다. 양육과 사랑을 택한 사람에게도, 돈을 벌고 창작활동을 하려는 사람이 얻는 만큼의 성취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엄마의 예술은 엄마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고동치는 사랑이었고, 노래 한 곡 책 한 권만큼이나 이 세상에 기여하는 일, 기억될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사랑 없이는 노래도 책도 존재할 수 없으니까.> 이 책이 서양인들을 포함한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문화적 대비를 제공하고 있어 오랫동안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빠친코나 미나리와는 구별되는 이 책만의 특징이 있고 다른 책들보다 더 마음에 절절히 울리는 스토리였다.
관점이 어떻든 한국의 의료시스템이 망가졌다는 것을 부인하는 의사는 없다. 그리고 지금 개업의로 돈을 잘 벌고 있어서 그냥 이대로 은퇴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소위 내 또래 부자 의사들도 자신이 늙어서도 현재와 같은 신속하고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지 걱정한다. 적어도 내가 알고 지내는 십여 명 의사들은 모두 그렇게 말한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머릿속에 그려진 그림은 단순하다. 그렇다고 해결도 단순한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시스템과 자본주의시스템 이분도 지적했지만(아래 링크), 공공의료시스템의 부재가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영국과 캐나다는 의료를 공공시스템으로 만들었다. 의사는 국가가 고용한 공무원이다. 당연히 큰돈을 벌지도 못한다. 그러나 노동자로서 모든 권리를 누린다. 근무시간이나 근무조건 등에서 한국의사들은 그곳이 천국이라고 말한다. 정작 그 나라 의사들은 대우에 불만을 가지고 같은 영어권인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으로 이주한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한국이나, 인도, 파키스탄, 아프리카의 의사들이 메우고 있다. 사회주의의 모순이다.
미국은 의료에도 자본주의가 적용된다. 정상분만일 경우 출산비용은 2만 달러(한화 약 2800만 원) 정도이다. 그래서 빈곤층의 의료비용을 국가가 세금으로 메꾸고 있어 국민 1인당 의료비 지출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병원에 못 가보고 죽는 사람이 매우 많다. 변호사 역시 많아서 의료분쟁이 붙으면 엄청난 손해배상 소송에 시달린다. 그래서 모든 의료행위에 돈이 붙는다. 예를 들어 환자를 옆 병원으로 이송하고자 할 때 환자가 걸어가도 충분할 때조차 앰뷸런스를 배치한다. 물론 우리 돈으로 100만원 이상의 비용을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만약 그냥 보냈다가 환자 보호에 소홀했다는 소송에 휘말리면 한마디로 주머니 털리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모순이다.
한국은 어떤가? 오바마 대통령이 칭찬했던, 국민건강보험은 전형적인 사회주의 시스템이다. 이시스템은 모든 국민이 소득(자산)에 비례하여 보험료를 납부하고 만들어진 보험료 풀에서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글쓴이가 착각한 부분인데, 그래서 한국 역시 제도상으로 모든 의료는 공공의료이다. 공공병원이어야만 공공의료인 것이 아니다.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용의 구조가 공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이론상) 예산을 전혀 투입하지 않고도 공공의료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심지어 저소득층에게는 특별지원이 있어서 거의 돈을 내지 않고 치료받고 있다. 그래서 공공의대건립을 주장하는 자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정치적인 목적으로 국민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공공병원이 부족하다는 주장도 시스템 차이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다.
한국의 좋은 제도가 완전히 망가지고 있다 의료비용을 사회주의시스템으로 해결하는 좋은 제도가 또 다른 방식으로 낭비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는 감기 증상으로 병원을 간다. 게다가 주말이나 저녁에는 응급실로 달려간다. 사회주의 시스템을 운영하는 캐나다에서 응급실을 이용하려면 자기 부담금이 크게 늘어난다. 우리는 별로 높아지지 않는다. 이게 응급실 사태의 또 다른 원인이다. 응급실 의료진의 혹사는 당연히 진짜 응급환자의 치료기회를 박탈할 뿐 아니라 의료사고 증가의 원인이 된다. 게다가 캐나다에서, 예를 들어 간초음파를 보려면 6개월이 걸린다. 실제로 필자는 밴쿠버에서 조카 부부가 모두 의사인데도 간초음파를 보려면 6개월이 걸린다고 해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와 진료받은 적이 있다. 만약 일찍 서비스를 받으려면 응급실로 가야 하고 비용을 자기가 부담해야 한다.
한국인이 얼마나 병원을 무작정 이용하는지는 2021년의 다음 통계가 보여준다. 고령화사회를 우리보다 훨씬 일찍 겪은 일본의 경우에도 국민 1인당 진료 횟수가 11회에 불과한데, 한국은 16회에 달한다. 세계적으로 유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 이 통계만으로도 의사 증원의 이유로 고령화사회를 제시한 정부나 시민단체, 언론의 주장은 거짓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또 공공의료시스템을 운영하는 나라는 의료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국가가 책임진다. 병원을 세우는 것도, 의사를 교육시키는 것도, 의사에게 월급을 주는 것도, 의료분쟁을 해결하는 것도 국가 책임이다. 한국은 사회주의시스템을 운영하면서도 모든 투자와 책임은 민간에, 특히 의사에게 떠넘기고 있다. 단 하나도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없다. 아니 국민건강보험공단이나 관련조직을 통해 국민이 낸 보험료를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기까지 한다. 여기서 비효율이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는 일에 비효율적이라는 뜻이다. 이번 의료대란으로 많이 듣게 된 필수의료 경시와 같은 것 말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실제 발생한 의료비용의 85%에도 미치지 못하는 보험수가이다. 병원이 환자를 치료하면 할수록 적자가 커진다. 당연히 적자를 메우려면 비급여항목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감기환자가 오면 의학적으로 전혀 쓸모없는 링거액을 맞게 하는 것이 그런 것이다. 비급여는 일반적으로 의학적으로 필요 없는 과잉진료에 해당한다. 이걸 조장하는 것이 대형병원을 운영하는 보험사를 가진 재벌들이 만든 실손보험이다. 그래서 개원의 소득이 높다. 정부는 OECD에 개원의 소득을 보고해서 의사 소득이 세계적으로 높다고 말한다. 그러면 다시 정부는 과잉진료를 엄벌하겠다고 나선다.
의료를 돈벌이로 만들려는 집단의 폭거 한국의 공공의료시스템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민간보험회사들이다. 자본으로 의료를 장악하는데 최대 장애요인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주목한 것은 보험의 의료비 보장수가가 낮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비보험 의료비용을 보상해 주는, 실손보험이라는 이름의 불평등한 의료시스템을 도입했다. 이게 자기들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열심히 영업해서 많은 가입자를 확보하면, 비용 걱정이 없는 실손 가입자들이 더 좋은 병원으로 몰려가 점점 소위 탑 5 병원이라는 것이 등장하고 그들만 돈을 벌어들였다. 지방대학병원들은 적자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한국 양대 보험회사를 거느린 두 재벌그룹이 국내 최대 병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래서 전공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지금은 법으로 주당 노동시간을 80시간으로 줄였지만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법정노동시간이 100시간을 훌쩍 넘었다. 당연히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이다. 그동안 우리를 치료하던 전공의가 편의점 알바생이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 노동착취를 통해 우리네 병원들이 적자를 면하고 있었다. 얼마전 서울의대 교수 셋이 성명을 내 언론 등의 찬사를 받았다. 악랄한 인간들이다. 교수가 되면 전공의 도움 없이 환자를 볼 수가 없다. 시간이 부족해서이다. 하루 12시간을 일하지 않으면 대학병원이 돌아갈 수가 없다. 의사를 제외한 병원인력은 철저히 노동법 기준을 적용받지만 의사들은 예외이다. 이번 의대정원사태는 실손보험으로 환자를 싹쓸이하던 서울의 대형병원들이 더 많은 환자를 빨아들이려고 수도권에 6,600 병상을 늘리는 과정에서 전공의가 아니면 돈벌이가 불가능하니 의대정원을 늘려야만 했다는 주장이 있다.
2025년 의대입시 중단 없이 의료문제 해결 어렵다 2025년 의대입시를 중단해야 하는 이유는 산수 문제이다. 현재 의대교육시스템은 약 3000명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를 갑자기 1500명 증원했다. 게다가 재학생이 모두 휴학해 버렸다. 2025년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사람들이 자꾸 4500명을 교육시킨다고 오해하는데 사실은 3000+ 3000+ 1500=7500명 (100이하는 무시)을 교육시켜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의학교육은 국어수업이 아니다. 이 정도 상황이라면 교육은 어떤 방법으로도 불가능하다. 교육은 여건이 안되면 무조건 부실해지고 의대교육이 부실해지면 엉터리 의사가 나올 수밖에 없다. 노조의 파업은 찬양하면서 왜 이들의 현장이탈을 욕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정치권의 책임 호시탐탐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던 정당에서 갑자기 필수의료 강화나 지방에 의사를 공급하겠다며 추진한 증원이 사실은 영리 병원을 위한 포석인 셈이다. 물론 명분은 반대쪽 정당이 주장하던 공공의대 설립 논리를 차용한다. 지금도 전남에서는 의대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그래서 지지정당과 상관없이 많은 국민이 지지한다. 그것이 바로 국민 자신들에게 족쇄가 된다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이런 모든 사태의 배후에는 정치권이 있다. 어느 당에서는 의료민영화로 의료를 재벌의 돈벌이로 만들어 주기 위해 공공의료를 파괴하려 하고, 또 다른 정당에서는 의사를 괴롭히는 정책으로 국민의 인기를 얻는다. 그들이 지금 한국의 의료시스템을 파괴하고 있고, 나의 노후 건강에 칼을 들이대는 주범들이다.
오늘 용산의 멧돼지 한마리가 사람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꽥꽥거리는데, 기자라는 자들은 꿀먹은 벙어리요, 언론은 알아들을 수 없는 멧돼지 소리를 중간중간 속보라고 전하기 바쁘다. 그건 그거고…
미국의 대선 결과를 놓고 해리스와 바이든 vs 트럼프 구도가 아닌 민주당 vs 공화당 구도로 접근한 분들이 보인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좀 낫고, 공화당은 나쁘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그러나 두 당의 출발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아는 것과 반대라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민주당은 남부지방에서 노예제도를 사수하던 집단이다. 북부에서 산업화를 추진하던 기업가, 자본가들은 남부의 노예들을 북부의 공장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이를 위해 링컨의 공화당은 노예해방과 남북전쟁을 진행한다. 당연히 링컨이 원했던 것은 노예해방이 아니다. 나중에 흑인노예들이 남북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해방을 압박하자 끌려가듯 노예해방을 선언했다.(링컨을 존경하는 사람들에겐 충격이겠다)
19세기 후반 노동운동이 강화되고 노조가 결성된다. 민주당은 농민(토지소유주)의 이익에만 치중하여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고, 19세기 후반은 록펠러나 카네기 같은 악마기업가들이 정치인(양대 정당 모두의)들의 비호아래 노조원들을 학살하던, 자본에 의한 노동의 암흑시대였다. 탄압이 아니라 실제 기관총으로 사살했다.
노예제도가 불법인 된 20세기에 와서도 아주 오랫동안 민주당기반의 남부는 흑인차별법을 이용하여 변형된 노예제도를 유지했다. 2차대전을 거치면서 군수산업을 중심으로 산업자본의 후원을 받는 공화당이 전쟁을 벌이면서 민주당과 공화당이 현재와 같은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바이든의 민주당 정부는 부시의 공화당 정부와 전혀 구별되지 않는 전쟁광 정부였다. 어쩌면 자신도 관리하지 못할 정도의 노인인 바이든이 당선된 것은 다루기 쉽다는 판단을 한 군산복합체들의 영향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미국의 양대 정당을 비교하는 것은 도토리 키재기이고, 그렇게 거대 제국이 몰락하고 있는 것일 게다.
한국에서 이런 근본적인 이슈들을 토론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사회는 학살과 집단사망사고가 이어지는 곳이라 무관심한지, 아니면 내가 무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큰 어려움 없이 세 아이를 낳고 길렀기 때문에 남의 일처럼 느낀 탓도 있을 것이고요.
그러나 좀 더 넓게 보면, 생명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슈여서 무심하게 스쳐지나갈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침 폴리티코에 실린 이 기사를 차분히 읽었습니다.
미국의 기독교입양단체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인 “Snowflake babies” 입니다. 체외수정(이 기사를 이해하려고 찾아보니 난자와 정자를 따로 체취하여 수정시킨 후 초기 세포분열이 진행된 며칠 뒤 여성의 자궁에 이식하는 것이랍니다)을 하게 되면 여러 개의 수정된 배아가 만들어지는데, 실제 자궁에 이식되는 것은 한 개 뿐이므로 나머지 배아는 사용되지 않아 냉동보관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보관된 냉동배아가 미국에만도 수백만개가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들은 결국 버려질 운명입니다. 보수적인 생명윤리관으로는 살인이지요.
이 프로그램은 이런 냉동배아를 마치 어린이입양처럼 입양하는 캠페인입니다. 자신의 자궁에 이식하여 자신의 아이로 키우는 것이지요. 비록 유전자는 상관없지만, 한국식으로 표현한다면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이 되는 것이지요.
생명에 대해 보수기독교와 페미니스트 그룹 사이에 논쟁이 오랜 지속되는 미국사회에 새로운 절충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배아 단계부터 생명성을 인정하는 보수기독교 입장에서는 생명의 유지이고, 진보진영에게는 자유로운 형태의 임신을 보장하는 방법입니다. 물론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많습니다. 차별금지법를 동성애권장법이라고 우기는 한국 교회의 부모가 미국기독교이니… 일단 미국침례교는 이 단체를 반대하고 있다 합니다.
저자의 설명을 요약해보자면, 이타(利他)란 '이타적 행위'를 말한다. 이타적 행위는, 행위 주체가 자신에게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을 감내하면서 타자에게 이익을 주는 행위다. 자기손실의 양상과 범위는 대단히 다양하고 넓다. 재화나 노동력의 감소, 시간이나 기회의 상실, 나아가 신체•생명의 희생까지 포함한다. 이타적 행위의 주체는 보상을 바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이타적 행위를 했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한다. 이것을 이타적 행위 주체의 ‘보상 기대 부재', '자기망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타적 행위는 다양하지만 가장 많은 경우는 경제적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돕기 위해 자기 소유의 재화를 일방적으로 양여하는 것이었다. 재화의 일방적인 양여를 과거 문헌에서는 '시여(施與)'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머리말의 끝을 다음과 같이 맺고 있다. 자본주의의 심부에 도달한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모두 경제인(economic man)이다. 경제인인 우리에게 '이타'와 '시여'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 즉, 저자는 자본주의가 심화된 상태의 한국 사회에 조선시대 이타와 시여에 관한 문헌들이 어떤 현대적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탐구하겠다는 것이다.
제1장 홍순언 이야기와 이타적 심성의 작화력
<허생전>, 이타적 인간의 형상
박지원의 <허생전>을 먼저 소개한다. 간단히 요약하면, 허생은 과일과 말총을 매점매석하여 막대한 돈을 번 뒤 변산반도의 군도를 찾아가 돈을 나눠 준다. 도둑들이 뭍으로 가서 배우자를 구하고, 농작에 필요한 농기구와 소를 사서 돌아오자, 허생은 미리 보아 두었던 나가사키와 사문 사이에 있는 무인도로 들어가 아나키anarchy 공동체를 만든다. 그 섬에서 허생은 나가사키에 기근이 들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 나가사키에 곡물을 파는 무역을 한다.
그런데, 몰락 사족(양반) 허생이 상업에 뛰어들고 나가사키와 무역을 한 것, 엄청난 규모의 화폐를 획득한 것은 양반 사회에서 대단히 이색적 사건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국문학계와 사학계는 박지원이 양반의 유식성(遊食性, 놀고먹는 것)을 비판하고 상업과 무역 활동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저자는, 허생이 상인으로 자기 정체성을 바꾸었다면, 또 이 작품이 자본주의적 발전 과정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의 상행위는 세 차례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허생이 나가사키로 곡물을 실어 나른 것은 이윤을 얻기 위해 상품을 수출한 것이 아니라, 나가사키 기민의 생명을 구제하려는 이타적 행위였다는 것이다. 또 허생이 벌어들인 화폐는 자가증식하는 자본으로서의 성격은 없었다고 한다. 나가사키에서 받은 은100만 냥 중 50만 냥을 바다에 쓸어 넣고, 남은 50만 냥 중 40만 냥은 국내 빈민을 구제하는 데 쓰고 10만 냥은 변 부자에게 빌렸던 돈을 갚았기 때문이다. 화폐의 수장은 화폐를 경멸하는 퍼포먼스였다고 해석한다.
조선 사회에서 군도(도적 떼)는 농토에서 의지할 데 없이 내몰린 토지 없는 농민이었다. 이 책의 뒷부분에서 상세히 언급하지만 조선 후기 농민이 급속도로 토지를 상실했던 큰 이유 중 하나는 화폐 때문이었다. 그런데 허생의 화폐는 토지를 잃고 삶의 위기에 빠진 농민에게 농토를 되돌려주는 수단이었다. 화폐가 생명을 되돌려주는, 이타적 목적을 실현하는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나가사키에 쌀을 판매한 것은, 기아로 죽음을 목전에 둔 생명을 살리는 이타적 행위였고, 그 과정에서 벌어들인 은화는 다시 국내의 기민 구제에 쓰였다. 즉 변산의 군도에게 무인도를 찾아 생업을 마련해 준 것이 국내에서의 이타적 행위라면, 나가사키의 경우는 국외에서의 이타적 행위였다고 해석한다.
이타-보상담의 생성과정: ‘홍순언 이야기’를 중심으로
<옥갑야화>에는 허생전 앞에 5편의 짧은 이야기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홍순언 이야기이다. 홍순언 이야기'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역관 홍순언이 북경에서 기방을 찾아간다. ② 남경 호부상서의 아름답고 젊은 딸이 아버지를 구해 내기 위해 은 1,000냥에 몸을 팔고자 하였다. 어떤 사건으로 가산은 몰수되었고, 1,000냥을 추징당했기 때문이다. ③ 홍순언은 불쌍히 여겨 1,000냥을 주었고 여성과 성관계를 맺지 않고 돌아왔다. ④ 뒤에 여성은 병부상서 석성토의 아내가 되어 홍순언에게 보은단(보은의 비단) 등 보화를 주어 은혜를 갚았다. 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병부상서 석성은 홍순언의 의로움을 높이 평가하여 명나라의 조선 파병에 큰 도움을 주었다. 저자는 여러 자료를 통해 이 이야기가 정확한 사실이 아니라 사실과 소설이 섞인 이야기임을 보여준다.
아무튼 이런 구조의 글이 많은데, 특히 역관이 포함된 이야기가 많다고 한다. 예를 들면 역관 곽지원은 북경 가는 길에, 땅과 노비를 모두 팔아 부채를 갚은 탓에 유리걸식할 위기에 빠진 중국인을 만난다. 그가 울면서 곽지원에게 자기 사정을 하소연하자 곽지원은 자기가 가지고 있던 은을 털어 주고 이름을 묻지도 않고 떠났다. 곽지원의 행위는 홍순언의 그것과 사실상 동일하다. 간단한 이야기지만, 곽지원의 행위는 ‘위기에 빠진 타자를 돕는다’,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로 요약할 수 있다. 이외에도 <동휘야집>에 실린 <베트남에 간 역관>, 변씨의 이야기도 '이타- 보상'의 구조 위에 다시 축조된 것이다. 기존의 이야기를 이타-보상의 구조 위에서 다시 축조하고자 하는 의지를 이타적 심성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제2장 이타- 보상담의 출현
이타-보상담의 양태
〈허생전》을 썼던 박지원은 이에 대해 소중한 발언을 남겼다고 한다. ‘힘으로 남을 구하는 것을 ‘협(협행)’이라 하고, 재물로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을 '고(고휼)'라고 한다. '고'를 실천하면 명사가 되고, '협'을 실천하면 전을 짓는다. '협'과 '고'를 겸하면 '의'라고 한다.’
이중에서 고휼, 즉 재화의 순수 증여에 관한 이야기로 다섯가지를 소개한다. 이 중 <거여객점>은, 김기연이라는 인물이 무과에 합격한 뒤 벼슬을 얻기 위해 서울 재상가를 들락거리며 엽관운동에 골몰했지만 벼슬은 얻지 못하고 가산을 탕진한 채 고향 경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은 경주로 돌아가는 길에 들른 거여의 객점에서 여자 거지가 헐벗은 채 아이 하나를 안고 있는 것을 보고, 가련한 마음에 돈 2꿰미를 준다. 나중에 그녀는 돈을 벌어 수소문 끝에 곤궁하게 살고 있던 김기연을 찾아와 도움을 준다. 주인공이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서울에서 돈을 마구 쓴 행위가 그를 구제한 것이 아니라, 단 한 차례의 이타적 행위, 곧 순수한 재화의 증여가 그를 구원한 것이다.
또 다른 작품 〈비부>의 주인공인 시골의 몰락 양반 오가(吳哥)는 짚신 장수를 하다가 양반 권세가의 계집종 눈에 띄어 그녀의 적극적인 구애로 결혼을 한다. 〈비부>는 가치관의 대립을 반영하고 있다. 아내는 상행위를 통한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오가는 아내와는 반대로 재화보다는 이타적 행위를 선택한다. 결과적으로 오가와 비녀에게 재화를 가져다준 것은 상행위가 아니라 이타적 행위였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 속에는 사채나 관채 혹은 환곡을 갚지 못해 남편이 죽고, 죽은 남편을 대신해 모욕을 당하거나 사형을 당할 위기에 처한 여성을 돕는다는 설정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저자가 뒤에서 이야기하는데, 이점이 중요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협행, 폭력의 이타행
이타적 행위는 '고휼'이 주류를 이루고 '협행'은 상대적으로 희소하다. 조선에서 협행, 곧 폭력을 수단으로 하는 이타성의 실천은 흔하지 않다. 아마도 그것은 폭력을 수단으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권겸산전>의 주인공 권옥도 당연히 시여, 곧 순수 증여를 좋아하여 넉넉했던 재산이 바닥이 날 때까지 가난한 친척과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런데 호서 지방에 권세를 믿고 남의 땅에 투장한 토호가 있었는데, 묘주는 억울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사정을 들은 권옥은 사방의 행상과 떠돌이 수천 명을 불러 모아 산에 올라가 무덤을 파헤친 뒤 관을 빠개고 토호 아버지의 시신을 꺼내어 토호의 집에 던져 놓고 말했다. "너는 모기 같은 힘을 믿고 죽은 아비를 팔아 분수에 넘치는 복을 바라는데, 오늘 네 아비가 지금 어디 있느냐? 네가 돈을 써서 탐관오리의 입에 재갈을 물릴 수야 있겠지만, 나 같은 사람은 어찌할 것이냐?
이타적 행위로서의 의료
의료행위는 신체기관의 기능 장애에서 오는 고통과 신체 소멸의 위기를 해소하는 것을 지향하기에 원천적으로 이타적 속성을 갖는다. 다만 그것이 그 행위에 대해 반대급부를 요구한다면 그것 은 등가교환일 뿐 이타성은 소거된다. 만약 의료행위를 하되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면, 혹은 의식하지 않는다면 행위 주체의 자기손실과 자기망각을 포함하므로 이타적 행위가 된다. 저자는 역시 다섯 가지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중에서 침의 조광일이라는 인물을 보자.
‘침의 조광일’, 홍양호, <이계집>에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조광일은 이익이 아니라 병자의 치료를 목적으로 삼았고, 실제 그대로 실천했다. 그래서 이런 대화가 나온다고 한다.
①내가 이 기술을 펼치는 것은 이익을 바라서가 아니라, 나의 뜻을 실천하고자 하는 것일 뿐입니다.
②또 내가 침을 쥐고 사람들 사이에서 노닌 지 10년입니다. 혹 하루에 몇 사람을 치료하고 한 달에 십수 명을 살리기도 했습니다. 온전히 살린 사람 전부를 헤아려 보면 수백 수천 명 아래로 내려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 올해 나이 마흔 남짓인데, 다시 수 십 년이 지나면 만 사람을 살릴 수 있겠지요. 살린 사람이 만에 이르면 내 일도 끝나겠지요.
제3장 이타적 심성의 작동원리
저자는 3장에서 이타적 심성의 작동원리를 자신의 많은 독서로부터 정형화하여 소개한다.
이타적 행위의 대상, 타자
(위기에 처한 타자) 이타-보상담에서 타자는 빈곤•기아•질병 등으로 인해 생명이 소거되거나 혹은 소거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에 준하는 위기에 처해 고통을 느끼며 살거나, 사회적으로 의미 없는 존재, 곧 비존재로의 존재, 달리 말해 '헛것'으로 존재해야만 하는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타자성의 정도) 행위의 주체가 타자와 이해관계의 정도가 낮을수록 반비례하여 타자성은 높아진다. 이타적 행위의 대상이 친족집단이거나 지역공동체의 구성원이라면 타자성은 당연히 낮다.
이타적 행위의 과정과 속성
(공감) 이타-보상담에서 이타적 행위의 주체는 공감력이 크기 때문에 타자의 고통에 쉽게 공감한다.
(자기손실) 타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을 기반으로 하여 이타적 행위가 이루어질 때 주체에게는 자기손실이 발생한다. 다만 자기손실에 대한 평가는 행위 주체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보상기대 부재) 이타적 행위의 주체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어떤 보상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혹은 않아야 한다는) '보상 기대 부재'의 원칙을 갖고 있어야 한다.
(자기망각) 이타적 행위의 주체가 자신이 과거 타인을 일방적으로 돕고 그 사실을 잊는 것을 '자기망각'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지속성, 반복성, 넓은 범위) 이타적 행위가 일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 반복적으로 이루어질수록 높이 평가받는다. 또한 이타적 대상의 범위가 클수록 이타성의 평가치는 높아진다.
보상의 의무와 방법
(보상의 의무와 주체) 이타-보상담에서 이타적 주체는 자신의 행위 자체를 망각하거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야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행위 대상자에 의해 보상이 주어진다. 보상 주체가 이타적 행위의 주체에게 직접 보상하는 경우를 보은이라 부를 수 있다. 음보는 이타적 행위가 의식하지 못하는 보상을 말한다. 이타적 행위의 주체가 보상을 받을 수 없다면, 그 후손이라도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보상의 방식)
1)물질적 가시적(주로 관직) 보상, 2)평판으로서의 보상, 3)사회적 기억으로서의 보상: 조선 사회에서 인물에 대한 기억은 한문학에서 인물을 기념하는 장르인 비문이나 지문 혹은 전과 행장 등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제4장 이타-보상과 동물담
저자는 이타-보상담으로 동물이 매개된 것들만 따로 다룬다. 이런 대표적인 예는 흥부전이다. 그런데 흥부전의 다양한 이본들을 보면 흥부의 신분이 매우 다양하다고 한다. 이 다양한 신분과 처지에 있는 흥부의 공통 속성은 '빈곤한 자'이다. 이것이 바로 빈곤과 부의 극단적 편중이라는 심각한 사회문제에 대한 민중의 집약적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부의 편중에 대한 해결방법은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 조선 후기 지식인들이 제안한 수많은 개혁 프로그램을 현실화하는 것, 곧 실천에 옮기는 것이었다. 두 번째, 민중의 반란에 의한 체제의 전복이 있을 수 있다. 마지막 방법이 민중적 상상력을 통해 이타성을 회복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고 말하면서 《흥부전》은 극단적인 빈부격차란 사회문제를 낭만적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의식의 산물이라고 해석한다.
생명의 공유
인간은 위기에 처한 동물의 고통에 공감한다. 생명의 차원에서 인간은 동물과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연속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의 이야기가 잠시 주제를 벗어나 성호사설의 <식육>에 대한 것으로 이동하기도 하지만, 결국 동물담도 ‘타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측은지심)을 통해 이타적 심성의 발현을 확인하고 그것을 백성에 옮겨 실현할 것을 요구하는 목적이라고 해석한다.
제5장 이타적 심성의 현실적 발현, 시여
시여의 역사와 시여문화
‘이타-보상담은 이타적 심성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것을 환기하려는 의도를 내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타적 행위에 대한 서술은 현실적일 수 있으나 보상이 이루어지는 부분은 개연성이 떨어진다. 그렇다면 이처럼 개연성이 떨어지는 허구와 달리 이타적 심성은 실제 사회에서 어떻게 발현되었는가?’
시여라는 단어는 <한비자>에 기원을 둔다. 한편,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는 대승불교의 보살이 실천해야 할 여섯 가지 덕목을 육바라밀이라고 한다. 육바라밀에는 보시가 있는데, 보시는 다시 재시(財施), 법시, 무외시로 구성된다고 한다. 이 재시가 바로 시여에 해당한다. 그래서 조선 초기까지 불교적 이타행과 시여가 두드러지게 존재했다는 것이다. 또 조선시대에는 경재시여(輕財施與, 재물을 가볍게 여기고 남에게 배풂)는 한 인물의 인격이 존중할 만한 것임을 입증하는 관습적인 표현이 되었다고 한다.
이타적 행위자로서의 시여인
당연히 시여를 자기 정체성으로 갖는, 혹은 정체성이 부여되는 인물은 부자일 수밖에 없었다. 또 그런 인물은 저명한 양반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조귀명이 쓴 <김유련전>에서 조귀명은 최종적으로 김유련을 이렇게 평가했다. “사적 목적이 있어서 어떤 일을 하는 것을 이(利)라 하고, 사적인 목적이 없는데도 하는 것을 의(義)라고 한다. 의는 군자도 실천하는 것을 어렵게 여기거늘, 하물며 향리의 천한 백성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저자는 많은 인물의 사례 나열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상인 최순성에 대한 책은 3가지가 있다고 한다. 그는 급인전(急人錢, 가난하여 급히 돈이 필요한 사람을 위한 금고)을 설치했는데, 즉 최순성은 '시여하는 인간'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의 시여에 대한 몰입은 '어리석은 짓'으로 알려질 정도였고, 그의 호 치당(癡堂)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5장에서 다룬 많은 산문의 주인공, 곧 이타적 행위자로서 시여인의 존재는, 실제 그런 이타적 행위가 현실 속에서 광범위하게 실천되고 있던 상황을 알리고 있다. 곧 이타- 보상담의 이타적 행위와 보상은 현실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회적 현상이기도 했다는 것이다고 한다.
제6장 이타-보상담 출현의 역사적 이유
6장은 저자가 이타-보상담이 출현한 시대적 배경을 추론하는 내용이다.
흉작, 기민, 전염병
먼저 저자는 이렇게 전제한다. ‘이타적 행위를 자기 정체성으로 삼는 사람들이 연이어 나타났다는 것은, 역으로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폭증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할 터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생명의 위기를 일상적으로 체험하는 사회가 도래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몇 가지 정보들을 나열한다. 먼저 흉작과 기민의 시대임을 보여준다. 그런 증거로 1)16세기중반~19세기중반가 소빙기 시대여서 기후변화가 심각해져 농산물 수확이 감소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1592년의 임진왜란과 1636년의 병자호란으로 유민과 아사자 크게 발생했다는 것이다. 다른 연구자들의 논문 등에서 구체적인 통계 추정치를 함께 제시하고 있다. 또 질병이 원인이 되기도 했는데, 경기지방 가구 및 인구의 1/4 이상이 콜레라로 사라졌음을 말한다.
즉 이타-보상담의 확산은 경제적 빈곤에 내몰린 자들이 광범위하게 발생했던 조선후기 상황을 직간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족(양반)-관료체제의 수탈
빈곤의 또 다른 원인은 사족체제의 강화된 수탈도 포함된다. 18세기 조선 사회의 관찰자 이익은 <유민 환집 流民還集>이라는 글에서 학정에 시달린 백성(농민)의 현실을 드러내면서 학정을 금하려면 장법 贓法을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장은 뇌물을 말한다. 따라서 장은 국가권력을 사유화한 사족들이 사적으로 수탈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 임병양란 이후 국가는 거대한 수탈권력이었고 그것을 운영하는 사족-관료들은 수탈의 집행자였다고 지적한다.
화폐의 유통
저자는 부와 빈곤의 극단적 편중이 나타난 또 다른 원인으로 화폐의 유통을 꼽고 있다. 일반적으로 1678년(숙종 4)부터 유통된 상평통보의 보급으로 인해 조선 사회에 실물경제에서 '화폐경제로의 전환'이 일어났다고 판단한다. 그런데 국가가 여러 차례 발행한 금속화폐의 유통이 계속 실패로 돌아갔던 것은, 농민의 무지와 불합리한 일상습관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생활 자체에 금속화폐가 별로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금속화폐의 유통은 농민의 입장에서는 화폐 발행권을 빼앗기는 일대 사건이었다. 그 이전의 교환수단은 곡물과 포목, 즉 미포였고 농민이 생산한 물건이기 때문에 화폐발행권이 농민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1678년 상평통보가 통용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시기 청나라와 일본을 잇는 중개무역으로 벌어들인 은이 풍부하여 은 1냥은 상평통보 400 문이라는 일종의 은본위 시스템을 적용해 그 값을 고정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본과 청이 직접 무역을 하면서 중개무역이 종식되자 조선은 은 부족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유통되기 시작한 상평통보는 화폐로서 계속 기능했고, 정부는 재정이 부족하면 으레 상평통보를 주조했다. 심지어 흉년에 쌀은 비싸고 돈이 흔한 데도 불구하고 조정은 진휼 자금의 마련을 위해 주전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곡물의 가격이 오르는 인플레가 발생했다. 화폐 주조에 이렇게 몰두한 것은 이익이 남았기 때문이다. 1772년 자료에 의하면 100만 냥을 주조하여 20만 냥의 이익을 남겼고, 심지어 구리 함량이 낮은 악화를 만들어 이익을 남기는 데 골몰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허생전>에 따르면, 도고(都賈)라는 것이 있는데 ‘물건이 흔할 때 사들이고 귀할 때 팔아서 돈을 버는 것’으로 이는 화폐 때문에 가능해졌다. 그동안 미포라는 실물을 생산한 만큼 화폐 기능이 생기는데 비해 화폐 주조는 실물과 분리되어 만들어짐으로써 화폐를 이용한 대토지소유자가 나타나고 반대쪽에는 무토농민(토지가 없는)을 대거 발생시킨다. 그래서 또다른 빈부의 극심한 편중이 나타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비윤리적 부의 축적
이 외에도 화폐를 이용한 고리대가 나타났고, 전환(錢還, 지방관리가 춘궁기에 관이 보유한 가치가 낮은 쌀을 팔아서 돈으로 바꾼 후 일부를 착복하고 나머지를 민간에 빌려준 후 가을에 그 곡식에 이자를 더하여 받는 것)이 있었는데, 이는 환곡을 빙자한 고리대금업이었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저자는 임병양란이란 미증유의 전쟁과 함께 기후변화로 인한 흉작과 기근, 전염병의 유행, 사족- 관료체제의 수탈 강화, 여기에 화폐의 도입은 사회적으로 출현한 빈곤화, 비윤리적 부의 축적, 윤리의 파괴를 초래하고 강화하였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죽음(신체적, 사회적) 앞에 선 사회적 약자를 대거 출현케 하였는데, 조선 후기의 문학은 이타-보상담으로 이 문제에 대해 답하고자 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제7장 공유와 공생의 사회
이타-보상담이 지향한 사회
저자는 <흥부전>을 다시 소환한다. 놀부로부터 돈과 토지를 빼앗는 자들의 특징은 대부분 토지에서 축출된 주변부 인간들이다. 이들이 놀부에게서 돈을 뜯는다는 설정은, 비윤리적 부의 축적에 대한 깊은 분노와 강렬한 비판의식을 내장하고 있다. 또한 놀부의 부가 여러 사람들에게 분배되는 것은, 부는 공유되어야 한다는 생각의 존재를 암시한다고 한다.
‘농민이 토지를 잃고 빈곤해지는 것은 분명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였다. 일부 지식인들이 개진한 토지제도 개혁책은 소수에게 토지가 집중되는 것을 막고 농민에게 토지를 돌려주려는 것, 곧 농민의 빈곤화를 타개하려는 방안이었다. 하지만 국가와 사족-관료들은 그것을 실행에 옮길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곧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사족-관료들이 지주였기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흥부전>은 문제 해결의 방법으로 이타적 심성과 행위를 소환했다고 지적한다. ‘임병양란을 거치며 조성된 거대한 위기 앞에 조선 사회의 집단 심성은 다수의 이타-보상담을 만들기 시작했다. 다양한 장르에서 이타- 보상의 구조에 시대적 구체성을 장착한 새로운 이타-보상담이 유포되며, 현실 속에서도 시여를 자기 정체성으로 삼는 인간들을 출현시켰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부의 공유를 실현하는 수단
이런 행위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독점과 사유가 아닌 공유의 관념이다. 한문 단편 <월출도>에는, '백여만금의 재산을 축적하고 있는' 영남의 사족을 턴 군도의 대장이 설파하는 '재물은 천하에 공변된 것(財者, 天下公器)’이라는 말에서 재화는 원래 공유하는 것이 정상이라는 공유의 관념을 끌어낼 수 있다.
저자는 마침내 이타-보상담은 공생의 사유를 문학으로 형상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끝맺음
저자는 끝으로 이렇게 묻는다. “지금 여기 이기적 욕망에 기초한 화폐의 부단 한 축적과 제한 없는 소비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조건 없는 증여를 기초로 공생을 지향하는 이타적 행위는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
젊은 시절, 기적을 구하는 기도를 하거나 혹은 들을 때면 가졌던 의문이 있었다. 왜 현대 과학이 이룩한 엄청난 성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상적으로 기적을 구하는가? 왜 어느 종교이든 기적을 구하는 일이 보편적으로 나타나는가?
내가 많이 들었던 간증 중에는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해 OOO원의 돈이 필요했는데, 간절히 금식기도를 하는 중에 아무개가 어떻게 알고(혹은 우연히) 같은 금액을 헌금했다는 스토리가 많았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기적을 구한다면, 많은 경우에 다른 사람에게 나타나야할 기적이 나에게 오므로써 누군가에게는 절망이 되지 않겠는가? 그 금액이 필요했던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그것은 절망이라는 뜻이다. 이런 의문을 해결한 단초는 성서의 예수 그리스도가 말했던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자를 구해주는 이야기에서 찾았었다.
누기복음 10장 30절 부터 시작하는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원래 내 이웃이 누구인가에 대한 설명을 하려고 예수가 한 비유이다. 대략 이런 이야기이다. 어떤 사람이 여행 중에 강도를 만나 모든 것을 빼앗기고 거의 죽을 지경으로 버려졌다. 그때 그 곳을 지나던 사람들 중에는 제사장이나 레위인(고대 이스라엘에서 레위인은 제사장의 가문으로 구별된 신분) 등은 그 자리를 피해 가지만 한 사람, 사마리아인(순혈주의 유대인에게 사마리아인은 혼혈이라는 이유로 경멸의 대상이다)은 강도 만난 자에게 응급조치를 해주고 여관으로 데려가 여관 주인에게 보살펴 주라며 돈을 주고 떠난다.
여기에서 기적은 무엇일까? 언뜻 생각하면 강도를 당한 자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을 만난 것이 기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보자. 만약 그 사람이 기적을 만난 것이라면, 그 전에 강도를 만나 죽을 지경이 된 것은 뭐지? 처음부터 강도를 만나지 않는 것 혹은 우연히 강도가 기다리는 곳을 피해가게 되는 것이 기적이지 어떻게 죽을 지경이 된 뒤에 사마리아인을 만난 것이 기적이 될 수 있는가? 모든 사람이 기적을 구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모든 사람이 위기에 빠지고 다시 구조를 받아야 기적이란 말인가?
내가 찾은 해답은 이 이야기를 뒤집으면서 찾아졌다. 기적은 강도를 당한자에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사마리아인에게 일어났던 것이다. 구해줄 수 있는 치료제와 여관에 치료를 맡길 돈을 가지고 있었던 그에게 도와줄 대상이 나타난 것이 기적이라는 뜻이다. 모든 사람이 나에게 기적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능력이나 재물 등으로 살릴 수 있는 사람이, 혹은 후원을 할 수 있는 대상이 나타났을 때 그렇게 실천하는 것이 기적이다. 그러니까 기적은 나에게 도움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기도를 해야 할 일이다.
디베르티멘토: 희유곡(喜遊曲).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에 걸쳐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등에서 특히 유행된 다악장의 곡이다.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의 경우는 격식에 치우친 음악이라기보다 오히려 마음 편히 들을 수 있는 음악 또는 오락적 요소가 짙은 음악으로, 궁정이나 귀족사회의 일종의 살롱음악에 가까웠다.(위키피디아) 아랍계 프랑스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쌍둥이 자매 중, 자히아는 어려서 부모와 함께 TV에서 시청했던 라벨의 볼레로를 들으면서 저절로 손을 흔든다. 영화 속에서 이들 자매는 비올라와 첼로를 배우는 고등학생이었다. 동생 페투마는 계속 첼리스트로 살아가지만, 언니 자히아는 세계에 몇명 안되는 여성지휘자의 길을 간다. 이들 자매는 파리 외곽의 스탱이라는 가난한 동네에 살았지만, 지휘와 첼로를 배우기 위해 파리의 명문 음악고등학교로 전학을 간다. 그리고 이곳에서 자히아는 세가지 차별에 시달리며 좌절하게 된다. 처음 전학 갔을 때는 인종차별, 지휘자의 길을 시작했을 때는 성차별, 그리고 당연한 듯이 나타나는 빈부(혹은 출신성분)차별. 이런 차별 속에서도 즐겁게 자신의 길을 가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던 자히아는 끝내, 이런 차별이 복합적으로 자신이 만들어 가던 기회를 박탈하자 좌절하고 만다. 그러나 자신과 관계를 맺어왔던 주변 음악인들의 플래시몹. 자신의 아파트 앞에서 연주되는 볼레로는 그를 다시 불러내어 이들을 지휘하게 만든다. 볼레로는 내가 학생시절부터 즐겨듣던 음악이다. 거의 똑 같은 리듬의 곡을 처음에는 음량이 작은 플루트로 시작해서, 점점 음량이 큰 악기가 추가되어 나중에는 웅장한 음악이 되는 이 곡을 듣다보면 언제나 가슴 벅찬 흥분을 느낀다. 디베르티멘토는 자히아가 실제로 만든 오케스트라의 이름인데,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고 영화의 한 장면에서 그가 밝히는 포부에 등장한다.(자히아는 실존 인물이다) 또 영화 속에서는 그가 좋은 지휘선생님을 만나 사사받는다. 그리고 영화의 끝 장면의 볼레로 플래시몹에 잠깐 스쳐지나가는 한 알제리 출신 이민자 소녀가 손을 흔드는 장면. 또 다른 자히아의 잉태이자, 프랑스 사회에서 인종 및 성차별을 넘어 새로운 지휘자가 탄생할 것을 기원하는 암시이다.(알제리는 오랜 프랑스 식민지였고, 독립시위를 무산시키기 위해 프랑스가 고용한 용병에 의해 잔인한 민간인 학살이 있었던 곳이다. 광주항쟁 이전에 뜻있는 지식인들은 알제리를 민간인 학살의 대명사로 사용했다가 광주항쟁이 벌어지면서 이제는 광주가 그런 대명사이다.) 클래식 연주를 듣게되는 것은 이 영화 시청이 주는 감동의 덤이다. (8월. 전주독립영화관에서 관람할 수 있다)
배터리 제조사와 관계없이 화재가 나는 전기차는 모두 NCM계 배터리를 장착한 차이다. 배터리는 크게 두 종류이다. NCM계, LFP계. 요즘 전고체배터리가 무슨 전가의 보도처럼 언급되지만, 실제로 성공한다 해도 이게 자동차에 장착되는 것은 아마 2030년 이후가 될 것이다.
NCM은 충전효율이 높지만, 가격이 비싸고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한국은 이 NCM에 올인한 상태이다. LFP는 충전효율이 낮어서 전기차 성능을 높이는데 한계가 있다. 그러나 가격이 싸고 안정성이 뛰어나다. 초기에 중국기업들은 기술적 한계 때문에 LFP에 집중했다. NCM은 화재 위험이 높은 리튬을 이온화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화재가능성이 높아진다. 이것이 소위 열폭주의 배경이다. 그렇다 해도 화재 가능성은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훨씬 낮다. 내연기관 자동차의 화재는 익숙해서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 다만 배터리 화재는 아직 소화기술이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사후처리에 애를 먹고 있다.
결국 배터리시장의 경쟁은 NCM을 안정성이 높고 저렴하게 만드는 것과 LFP를 가볍고 충전효율을 높이는 것 사이의 대결이다. 어느 쪽이 먼저 소비자를 만족시키느냐에 따라 전고체가 본격 사용될 때까지의 전기차시장을 장악할 것이다. 그래서 산업부는 LFP배터리에 대해서도 연구개발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중국에서 판매되는 전기차는 대부분이 LFP배터리를 사용하기 때문에 화재 사고가 더 적다. 문제는 벤츠이다. 중국에서 생산하는 벤츠 전기차는 중국에서 배터리를 조달하고, 한국시장의 조건에 맞추어 수출을 위해 저렴한 중국산 NCM배터리를 채용했다. 당연히 경험이 축적되지 않아 화재가 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 문제는 테슬라도 마찬가지이다. 한동안 테슬라차에 화재가 발생한 배경이다.
그런데 환경부는 올해 전기차보조금 제도를 갑자기 바꾸면서 LFP배터리를 사실상 사용하지 못하게 막았다. 보통 뉴스에서는 NCM배터리가 화재를 냈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얼마전 벤츠전기차의 화재에 대해 처음에는 벤츠에 불이났다고 하다가 점점 중국배터리에 화재가 났다고 보도가 바뀌었다. 배터리가 화재가 나는 것이 아니다. 본질은 배터리를 관리하는 소프트웨어인 BMS의 문제이다. BMS는 많이 사용해봐야 정보가 누적되어 개선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벤츠가 중국산 NCM배터리를 탑재한 경험이 적어서 생기는 문제이다.
이렇게 언론이 헛다리를 짚는 동안 사람들은 점점 불안해서 전기차를 구매하지 않는다. 덕분에 돈을 버는 것은 내연기관차에서 국내시장을 독점적으로 지배하는 현기차이다. 내연기관차는 연구개발 없이 기존 기술로 돈만 벌기 때문에 수익률은 크게 높아진다. 이는 환율과 함께 요즘 현기차 영업이익이 폭증하는 배경이다.
결국 환경부-언론-현기차의 삼각 카르텔이 한국에서 전기차를 죽이고 온난화를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시사인 2024년 3/26일자의 커버스토리에 양승훈교수의 의견이 실렸다. 그는 사회학자여서 산업을 연구하는 나와는 다른 물에서 놀고 있지만, 아마 한번쯤은 어디선가 만났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가 울산의 제조업에 대해 내놓은 걱정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제조업은 구상과 실행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구상과 실행이 분리되면, 양교수의 걱정처럼, 지방은 더욱 빠른 속도로 망가진다. 지금 한국이 그렇다. 미국은 실행에 해당하는 생산을 해외로 빼돌리고 구상만 하면서 부가가치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애플이 미국에서는 설계만 하고 생산은 중국에서 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국가는 기업 덕분에 부자여도 국민은 가난한 이유이다. 그래서 미국이 IRA법이나 반도체관련 법을 들고 나온 것이다. 아예 모든 가치사슬을 미국내에서 하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아마 하버드대학에서 출간한 피사노와 시의 저서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이 책의 번역판이 국내에서도 출간되었다) 오래전 한국지엠이 연구소 부지를 물색할 때, 내가 무조건 군산에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부가가치가 높은 부문은 수도권에서 이루어지고 노동만 남은 지방의 경제가 어렵고 청년인구가 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때도 무식한 말을 하면서 내 말을 묵살했던 것은 지역의 언론과 정치권이었다. 다만 한 가지 더 고려할 점은, 기업가정신의 영향이다. 중국은 반도체도 자동차도 구상은 없고 실행만 가진 나라였다. 그러나 미국이 오금 저려하며 중국을 견제하게 만든 것은 실행의 축적을 통해 구상을 창조한 능력 때문이다.(이 부분은 이정동, 축적의 시간을 보기 바란다) 중국을 이렇게 만든 것은 바로 기업가정신이다. 기업을 일으켜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의 욕망과 정부의 정책지원이 실행의 축적을 통해 구상력을 창조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애플은 중국을 생산기지로 이용하여 돈을 벌었지만, 동시에 화웨이, 오포, 비보, 샤오미 같은 경쟁자를 탄생시키는데도 기여한 셈이다. 세계의 유수한 자동차회사들은 중국에서 돈을 버는데 성공했지만, 비야디, 지리자동차, 창안자동차, 둥펑자동차, 샤오펑, 웨이라이, 리샹 같은 세계적인 자동차회사들이 탄생하는 기반이 되었다. 요즘은 다들 EV는 중국이 앞서 간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진짜 무서운 것은 자율주행차이다. 중국 대륙에서 대형트럭들이 자율주행 실증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 더 큰 위협이다. 그러나 요즘 중국의 창업학 교수들을 만나보면, 그런 중국도 점점 기업가정신이 사라져 걱정이라고 한다. 이미 부자가 된 중국 청년들도 우리 처럼 도전보다는 안주를 원한다고 한다. 한국은 어떤가? 구상기능이 수도권으로 이전했는데, 생산기반을 가진 지방에서 기업가정신이 발휘되어 생산기술 기반으로 새로운 구상력을 창조할 수있을까? 한국의 재벌체제가 이를 허용할리 만무하다. 그렇게 한국은 다시 유교가 나라를 갉아먹던 조선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저자인 정한욱원장은 많은 나라에서 개안수술 등의 봉사를 하다가 마침내 무연고인 고창에 내려가서 안과를 개원했다. 시골에 노인을 위해 안과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일게다. 내가 이분을 알게 된 것은 여러 재난지역에 의료봉사 활동을 하며 돌아다니다가 아프리카에 수년간 의료선교사로 머물렀던 형님과 페북친구여서 나도 다리 건너 페북으로 친구가 되었지만, 아직까지 한번도 만난 적은 없다. 지난 2년간 고창군을 지원하는 일을 하면서도 병원에 찾아가질 않았으니 전형적인 온라인 친구인 셈이다.
내가 페북을 탈퇴했다가 복귀한 후에도 친구를 신청한 이유는 이분의 독서편력 때문이다. 폭넓게 다양한 책을 읽을 뿐 아니라 읽은 책을 요약 정리하는데 정말 진심이다. 사실 이분이 정리한 글을 읽으며 내가 읽을 책을 선택해보지만, 이미 책 내용이 다 파악되어 스스로 읽을 의욕이 사라진다(😜)
이 책은 현대 기독교인이라면, 그리고 기독교를 개독교라 비난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 속에 품었을 의문 혹은 질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저작을 통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이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의 인문학적 성찰 결과를 읽다보면, 저절로 ‘아! 그렇구나!’ 공감하게 된다.
질문의 범위가 목차 사진에서 보듯이 매우 넓으며, 그만큼 저자가 인용한 문헌들 역시 매우 다양하다. 매번 질문에 대한 생각을 적은 후에는 함께 읽을 문헌을 보여주는데, 이것이 함정이다(^^) 그 책들도 찾아서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주제별로 읽고 나면 책읽기 숙제를 몽땅 받은 느낌이 든다.
오래전 같은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았던 터라 어떤 분위기일지는 미리 짐작할 수 있었다. 전작에서는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수상(한국에서는 그녀가 위인전에 포함되어 어린이들에게 영웅으로 세뇌되고 있지만, 많은 영국사람들에게는 한 사람의 악마일 뿐이었다)이 세계 최초로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면서 벌어진 결과를 한 가족의 삶을 따라가면서 보여주었다. 그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던 사회복지제도가 직장을 잃은 그들을 어떻게 배신하는지를 보여주는 신자유주의 영국의 가난한 자들의 삶.
이번에 관람한 ‘나의 올드 오크’는 전작의 연장선에서, 시리아 난민을 영국의 폐광된 탄광도시, 더햄에 정착시키면서 발생하는 에피소드이다. 폐광으로 일자리를 잃은 주민들은 그렇지 않아도 팍팍한 자신들의 삶이 난민들이 들어와 더욱 불편하다고 근거없는 적개심을 드러낸다. 그러나 시리아에 문제만 없었다면, 여자 주인공 야라는 시리아에서 평화롭게 사진작가로 성장해갈 사람이었다.
이들을 화해시키는 것은 음식이었다. 함께 음식을 나누는 것. 이 행위가 영국이라는 부자나라에 사는 사라진 산업의 노동자들을 움직이는 힘이었다. 그리고 이 음식을 나누는 경험이, 이 영화의 거의 마지막 에피소드인, 야라의 아버지가 시리아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위로하러 찾아오는 동기라는 짐작을 하게 한다.
남자 주인공 TJ는 이들을 포용하면서 친구들을 설득한다. “삶이 힘들 때 우린 희생양을 찾아. 절대 위는 안 보고 아래만 보면서 우리보다 약자를 비난해. 언제나 그들을 탓해. 약자의 얼굴에 낙인을 찍는 게 더 쉬우니까." TJ의 말이다. 왜 가난할 수록 자신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든 보수정당에 투표할까? 아마 TJ의 말 속에 해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감독은 결국 그런 사람들끼리 연대와 단결 (Solidarity)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진으로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내가 볼 때, 바로 연대야 말로 진보임을 드러내는 유일한 통로이다. 대기업 노조가 절대로 진보가 될 수 없음은 이것, 즉 아래를 향한 연대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신자유주의로. 신자유주의는 가진자들이 더 쉽게 부를 증식할 수 있도록 모든 비효율성을 제거하는 체제이다. 여기서 후자에 주목하면 좋은 체제로 오해하게된다. 그래서 대처나 레이건이 영웅으로 소개되는 웃픈 일이 벌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목적에 해당하는 ‘오직 가진자들이 더 쉽게 부를 증식할 수 있도록’에 주목해야 한다.
당시 영국과 미국은 노동자들의 연대로 기업들이 돈을 벌 수가 없었다. 가난한 나라들은 노조 없이 저렴한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자유무역을 주장하던 미국과 영국이 과거에는 강력한 기업경제를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자유무역은 자기들이 돈을 버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자유무역을 하면 무역적자가 심각하게 증가한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자국내의 생산은 비효율적이라고 노조를 공격하면서 공장을 닫고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이었다. 대신 영.미의 절대적인 힘을 사용하여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기 위해 자본의 국경철폐를 관철시킨다. 이를 바탕으로 해외직접투자를 통해 후진국에서 생산한 값싼 물건을 들여와 판매하는 체제를 구축한다. 반대로 자기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IT, 의약 등의 분야를 수출산업화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했다. 주로 지식재산권에 대한 폭 넓은 인정이 그것이었다. 이를 혁신을 위해 필요한 조처라고 주장했지만, 심지어 미국 내에서조차 지재권에 대한 포괄적인 인정이 오히려 혁신을 방해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FTA(자유무역협정)는 후발국가들의 산업을 특정한 몇 개의 산업만 남기는데 기여했다. 많은 학자들이 산업의 다양화가 중요하다고 주장했지만 반대로 한국의 산업은 특정 몇 개로 더욱 집중화되었다. 어느 나라든지 그 특정산업을 지배하는 사람들은 대기업 노동자들까지도 영.미의 가진자들과 같은 특혜를 누리고, 한 나라 안에서도 그 산업에 속하지 못한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거나 열악한 삶으로 밀려났다. 그래서 경제는 성장하지만, 그 성장이 오히려 많은 사람들을 끝없는 추락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경제의 강건성(robustness)은 떨어져 국제정세 변화에 더욱 취약해졌다.
이 지점이 바로 더햄의 탄광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사라진 배경이다. 비효율이 아니라 다른 가난한 나라의 임금에 비해 비싸다는 이유로 제거된 일자리이다. 국민소득이 수만달러나 하는 부자나라에서 이에 반 쯤 되는 임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횡포의 피해자들이었던 더햄의 주민들이 자기들보다 더 열악한 상태에 있던 시리아 난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현실이 이 영화의 배경이다.
지난해 여름, 북경에 일이 있어서 갔다가, 전부터 북경에 갈 때마다 가고 싶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던 원명원을 방문했다. 방학 기간이라 중국인 관광객이 넘쳐났고, 더운 날씨에 힘들었지만, 역사를 되짚어 본다. 우리가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아픔만큼이나 학습할 게 많은 역사이기 때문이다. 원명원의 기원은 1700년대 초, 청나라 황제였던 강희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명원은 강희제가 넷째 아들 옹친왕에게 하사한 정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옹친왕이 옹정제로 즉위한 이후 증축했고 이후 건륭제 시절에도 거듭 증축되었다고 한다.
베이징 원명원의 파괴된 서양식 정원
그런데 건륭제 말기부터 관리들의 부패로 청나라가 쇠퇴하기 시작했고, 이 시기에는 마침 인도를 식민지로 만들었고, 다시 호시탐탐 아시아를 노리던 영국이 동인도주식회사를 통해 중국의 광둥지역에서 무역을 하고 있었다. 영국은 상류층이 즐기던 차, 도자기 등을 수입해가고 대신 모직물, 면직물 등을 중국에 수출했다. 당연히 영국의 수입초과 무역이었다. 그리고 이를 타개하려고 시도한 것이 바로 아편 무역이다. 영국계 상인들은 식민지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을 들여와 중국 서민들에게 팔기 시작했다.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군사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청나라는 아편 거래를 금지했다.
그러나 이들 영국계 상인들은 아예 무장한 선박을 타고 와 공개적으로 아편 장사를 했다. 이에 청나라는 1839년 대대적인 아편 단속을 벌였고 이렇게 시작한 충돌은 1839년 11월 영국의 원정군이 도착하여 전쟁으로 발전하였다. 몇 차례의 전쟁을 거쳐 청나라는 영국과 굴욕적인 난징조약을 맺게 되고 홍콩을 빼앗긴 채 5개 항구를 개항하게 된다. 이것이 1차 아편전쟁이다. 요즘 식으로 하면 마약을 공개적으로 거래하게 해달라며 침략전쟁을 벌인 것이다.
그렇게 했지만, 영국의 주력 상품이었던 면제품이 중국에서 별로 많이 팔리지 않았다. 아편을 사는데 은을 다 써버린 중국 사람들이 영국산 면제품이 아닌 중국산 면제품을 사용했던 까닭이었다. 결국 1차 아편전쟁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여전히 차를 수입하고 아편을 수출할 수밖에 없었다.
1856년 영국의 해적선 애로우호가 광저우 앞바다에 정박 중이었는데, 이 해적선을 단속한 중국관헌에 의해 영국기가 내려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1차 아편전쟁으로 광저우 사람들의 영국에 대한 적개심도 한몫했다. 그리고 영국은 영국기가 내려진 것이 국가모독이라며, 다시 전쟁을 벌인다. 이번에는 프랑스도 선교사의 죽음을 핑계로 영국과 연합했다. 1857년 영∙프 연합군은 광저우를 점령하고 민간인 학살 등 잔인한 폭거를 저질렀고, 그대로 북상하여 1858년 북경의 턱밑인 톈진에서 톈진조약을 맺는다. 이것이 2차 아편전쟁이다.
그러나 1859년 청나라의 강경파들이 미국의 도움을 받아 전투에 승리하여 톈진조약이 흔들리자, 1860년 영국은 거대한 규모의 군사력을 파견해 베이징을 함락한 후 외곽에 주둔하면서 수많은 약탈과 방화를 저질렀다. 이때 원명원도 약탈한 후에 방화했는데, 3일 동안 불에 탔다고 한다. 그렇게 2차 아편전쟁은 끝난다.
원명원은 최소한의 복원만 이루어진 채 불에 검게 그을린 폐허 상태로 보존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은 중국 사람들에게는 애국 사상의 교육 현장이기도 했다. 방학이 시작되자 많은 사람이 자녀를 데리고 관람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 폐허를 통해 두 가지 인민교육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관리의 부패가 나라를 망친다는 교육의 실제 사례라는 것이다. 실제로 북경의 공자 사당에는 공자의 사상의 핵심을 ‘관리의 청렴결백’이라고 설명하는 게시물이 있었다. 두 번째는 당연히 서양 세에 대한 경각심이다. 마약을 팔아서 사람들의 피폐하게 만들고자 하는 목적의 전쟁을 벌인 자들이고, 아직도 약탈해간 원명원의 보물들은 전혀 돌려주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김영삼 시절, 일제의 흔적을 지우는 데 급급했던, 그러나 여전히 일제의 농간 속에서 친일을 지배 수단으로 삼는 한국. 반대로 과거 치욕의 현장을 보존하여 늘 스스로 단속하는 중국. 누가 더 지혜로운지를 생각하면서 원명원의 폐허 속을 걷는 여름 오후 시간이 무더운 여름의 태양 때문에 더운 것인지, 마음속의 답답함 때문에 더운 것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신문을 읽다가 마음이 아픈 기사를 읽었습니다. 요즘, 단어에 대해 그 의미를 살펴 정정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아마 그런 일의 하나로 유모차를 유아차로 변경하고 있나봅니다.
1. 단어의 문자적 의미로나 또 역사적인 경험으로나 유모차가 적절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에 와서 단어를 그런 문자적의미로 사용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유모차라고 해서 크게 문제를 일으키거나 오해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걸 꼭 바꿔야 하느냐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 그런 단어가 한두개가 아닐 것입니다. 인정합니다.
2. 그러나 기사의 사진 속에서 발견한 글은 충격적입니다. 유아차는 중국에서 쓰는 말이라며 비아냥 대는 글 말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 단어 중에 (구체적으로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순 우리말은 30%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중국은 유아차라고 제대로 된 단어를 쓰는데 중국이 싫어서 우리는 유모차를 고집해야 할까요?
3. 저 댓글을 단 사람이 살아가면서 중국산을 다 빼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장담하는데 한달 안에 굶어죽거나 겨울이라면 얼어 죽을겁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은 자기들의 빈부격차가 폭동으로 이어지는게 두려워 세계화라는 미명하에 값싼 노동력을 갖거나 환경오염에 무지한 나라에서 싸게 조달한 물건을 자국민에게 공급해왔습니다. 어느 한 나라의 영향을 줄일 수는 있어도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는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미국이 앞으로는 중국봉쇄를 외치면서 뒤로는 살살 달래고 있는 이유입니다.
4. 줄이는 방법은 언제나 폭력적이었습니다. 1980년대 초 프라자합의를 통해 일본을 30년 이상 불황에 빠지게 했고, 1990년대 말에는 한국을 외환위기로 망가트렸지요. 2010년대 중반부터 중국을 봉쇄하려는 시도를 노골화했습니다. 다만 이를 위해 인도를 대안으로 선택했지만, 인도가 내부 사정으로 중국을 이어받지 못하자 베트남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인도와 베트남은 모두 중국과 인접국으로 중국과 부분적인 국경분쟁이 있는 나라들입니다. 아무튼 인도에 진출했던 미국의 자동차기업들은 모두 인도를 떠났습니다.
5. 우리가 경제적이득을 위해 미국의 이런 전략적 선택에 편승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 경제의 또 다른 축인 중국에 대해 적대적이라면, 한국의 미래는 없습니다.
어제 저녁(2023/9/23) 뉴스에서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시진핑주석과 한덕수총리가 만나서 우호적인 대화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이를 해석하는 기자나 인터뷰 및 외교부 관계자의 설명을 듣기가 민망했다. 지난 30년 이상 지속된 한반도주변 외교 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는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북은 언제나 2극외교를 견지해왔다.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자신의 필요를 따라 양쪽을 오가며 문제를 풀어나갔다. 핵무장에 대해 남측이 중국을 통해 압박하면 북측은 러시아에 우호적인 태도로 압박을 피해가는 식이다. 중러는 서로 비친미국가그룹의 수장역할을 하고 싶기 때문에 경쟁적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던 북측이 오랫동안 희망했던 중국식 개방정책을 실현하려면 대미관계를 풀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트럼프시절 끈질기게 북미관계 개선을 위해 공을 들이기도 했다. 문제는 남측이다. 우리는 미국 일극체제의 국제관계 속에 있어서 선택의 수단이 없다. 언제나 외교적 수단이 뻔하다. 그래서 외교라는 관점에서 보면 언제나 북측에 비해 어린애 같은 외교밖에 하지 못했다. 그래서 고 김대중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추진했던 전략이 미국을 통하지 않는 전략적 선택지를 늘리는 것이었고, 그것은 중러와 직접 외교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덕분에 중러와 교역을 늘리면서 경제적으로는 미국 의존도를 낮추면서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문재인정부에서는 대북 직접 외교를 더 크게 늘리려는 시도를 했다. 한반도의 안정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안정적 성장이라는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트럼프와 김정은의 직접 회담에 중간 다리 역할을 한 배경일 것이다. 이번 정부의 외교는 외교라는 단어를 쓸 수도 없는 수준으로 망가졌다. 대북관계의 악화는 물론이고, 대중, 대러 관계도 실종되었다. 당연히 경제는 망가지고 세수가 급감했다. 그런데도 정신을 못차리고 미국에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를 넘겨주었다. 일본에는 역사를 송두리채 넘겼다. 이런 지경인데, 뉴스해설에서 여전히 북핵문제에 대해 중국의 역할을 운운했다. 이런 주장은 미국이 한중관계를 나빠지게 만드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다. 그런데도 마치 양국관계가 좋아질 것처럼 보도하면서 이런 상충되는 해설을 내보내는 것을 어찌 해석해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