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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음악*사진&생각

H마트에서 울다

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지음, 정혜윤 옮김, 문학동네 펴냄

지은이 자우너의 아버지는 미국인으로 마약에서 빠져나와 한국에 중고차판매원으로 왔다가 자우너의 엄마를 만나 결혼하고 자우너를 낳은 후 곧 미국으로 돌아갔다. 자우너는 그렇게 이민자 2세로 성장했다. 그(녀)는 인디 팝 밴드인 재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e Breakfast)의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다. 밴드의 이름은 결성할 당시 아침 식사를 일본식으로 먹고는 즉흥적으로 정한 이름이라고 한다. 세계 공연 여행을 다녔고, 한국 홍대 앞에서도 공연을 한 적이 있는 인디 팝계에서는 제법 알려진 밴드이다.
 지은이는 이민 1세대인 자신의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중간중간 자신의 성장과정을 끼워 넣는다. 자우너의 성정과정은 한국의 이민자들 혹은 다문화가정의 쉽지 않은 미국사회 적응이나 부모-자녀 관계를 엿볼 수있다.
 <내 얼굴에, 원래 살던 곳에서 추방된 존재로 읽어내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다. 마치 내가 무슨 외계인이나 이국적인 과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넌 그럼 뭐야?”는 열두 살인 내가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왜냐하면 그 말은 내가 눈에 띄는 사람이고, 존재를 식별할 수 없는 사람이고, 집단에 속하지 않는 사람임을 기정사실화하기 때문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늘 내 절반이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 했지만, 이젠 갑자기 그것이 내 본질적 특징이 될까봐 두려워져 그 흔적을 지우기 시작했다.>
 저자는 사랑받는 딸에서 사춘기의 예민한 시기를 거치면서 엄마를 편치 않게 만드는 딸이 되었다가 엄마가 말기 암이라는 소식을 듣고 엄마 곁에 머물면서 엄마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엄마를 이해하는 방법은 한국 음식을 통해서이다. 2년에 한 번씩 엄마와 함께 한국에 가서 외할머니, 이모, 사촌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자신의 피에 흐르는 한국인 디엔에이를 발견하고 한국인의 정체성은 한국 음식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한국 음식의 종류, 먹는 방법, 나아가 한국식 문화가 시종 펼쳐진다. 그래서 북미의 한국 식재료 수퍼마켓인, ‘H마트’에서 울다 라는 제목이 붙은 것이다.
 저자는 엄마와 함께 먹는 한국음식이 상징하는 바를 이렇게 말한다.
<음식은 우리끼리 나누는 무언의 언어이며, 우리가 서로에게 돌아오는 일, 우리의 유대, 우리의 공통 기반을 상징하게 됐다.>
 <작은 접시에는 총각김치를 썰어 담고 김칫국물을 한 국자 떠서 그 위에 부었다. 죽을 한입 떠서 목구멍으로 넘기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소하고 부드러워 마음까지 편안해졌다. 나는 몇 숟가락 더 떠먹고 나서 아삭하고 매콤새콤한 김치로 입가심을 했다.>
 그래서 저자는 엄마의 죽음을 치유하는 것이 김치였다고 말한다.
<그때부터 한 달에 한 번씩 김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나의 새로운 치유법이었다.>
 한국의사들이 얼마나 친절한지를 묘사한 대목도 있다.
<나는 한국에서 의사가 우리와 함께 보내는 시간에 깜짝 놀랐다. 오리건에서는 의사가 1분도 채 안 돼 부랴부랴 다른 방으로 떠나면 뒷일은 대부분 간호사들이 알아서 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의사가 우리를 돕는 데 진심을 다했고, 우리가 처음 도착했을 땐 엄마의 손까지 잡아주었다.>
 그러나 엄마는 야속하게도 세상을 떠나고, 그 순간 모국어인 엄마의 언어가 터져 나온다.
<“엄마, 제발 눈 좀 떠봐.” 나는 엄마를 깨울 작정이라도 한 듯이 소리쳤다. “나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제발, 엄마. 나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엄마! 엄마!”
나는 엄마의 언어로, 모국어로 절규했다.>
<나는 얼굴 윤곽이건 피부색이건, 내 소중한 반쪽을 나타내던 것이 유실되기 시작해 두려웠다. 마치 엄마와 함께, 내 얼굴의 그 부분들에 대한 권리마저 사라지기라도 한 듯이.>
 <그때까지도 나는 엄마가 가장 자랑스러워 한 두 역할을 독선적인 태도로 얕잡아보았다. 양육과 사랑을 택한 사람에게도, 돈을 벌고 창작활동을 하려는 사람이 얻는 만큼의 성취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엄마의 예술은 엄마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고동치는 사랑이었고, 노래 한 곡 책 한 권만큼이나 이 세상에 기여하는 일, 기억될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사랑 없이는 노래도 책도 존재할 수 없으니까.>
 이 책이 서양인들을 포함한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문화적 대비를 제공하고 있어 오랫동안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빠친코나 미나리와는 구별되는 이 책만의 특징이 있고 다른 책들보다 더 마음에 절절히 울리는 스토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