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가 시작될 때, 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는 다음 두 가지라고 생각했다. 이 문제는 그 때 갑자기 생각했던 것이 아니라 오래 누적된 생각의 결론이었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1. 낮은 출생률
2. 고도 성장 불가

2번부터 거칠게 정리해보자

이미 한국경제는 과거와 같은 고도 성장이 불가능한 단계에 진입했다. 가난한 나라는 조금만 노력해도 빠르게 성장할 수 있지만 한국처럼 이미 충분히 성장한 나라는 조금만 성장해도 그 절대적인 증가량 규모는 가난한 나라의 10-20% 성장에 해당할 만큼 증가한다. 게다가 폐쇄경제에서 경제의 장기성장률은 인구증가율로 수렴한다. 인구증가율이 낮아지거나 아예 감소하면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방향으로 이동한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과거의 고도성장을 정치적으로 이용해먹고 싶은 자들이 계속 국민들을 속여온 것이다. MB가 대선에 777슬로건을 내세운게 대표적이다. 7%성장이라니…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물론 본인 재산은 그보다 훨씬 크게 늘렸을지도 모르겠다. 근본이 정치꾼(정치인이니 당연하고 사기꾼이라 해야 하나?)이다.

한국이 경제성장을 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 구조로는 수출밖에 없다. 무역의존도가 독일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세계경제에서 무역비중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로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중국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중국시장을 놓치면 독일과 한국은 바로 곤두박질 쳐서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종종 미국의 경제성장률을 끌어다가 사용한다. 아래 그림은 미국의 지난 10년간 경제성장률이다. 코로나 이후 잠깐 갑자기 높아진 데이터만 반영하면 마치 높은 성장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체로 2% 내외에 수렴한다. 2010년~2020년 미국의 인구증가율은 7.35%이다. 연간 0.7%쯤 되는데, 결국 진짜 경제성장은 1.3% 내외라는 뜻이다. 한국은 올해 성장률 1.5%로 예측되었다. 인구는 0.4% 감소할 것이다. 결국 내용상으로는 1.9%의 경제성장률이다. 여전히 미국보다 높다. 일본의 장기불황 중 일정 몫은 인구감소에 있다. 한국의 진짜 문제는 탈중국정책으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보다 더 끔찍한 장기불황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꾼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국민을 정신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힌 노인들을 기반으로 하는 국힘은 말할 것도 없고, 문재인+민주당, 그리고 진보를 표방한 정치집단 중 어느 하나도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

(그림) 마국의 경제성장률 추이(출처: https://ko.tradingeconomics.com/united-states/gdp-growth-annual)

빌바오, 지금은 전혀 다른 일을 하지만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던 아들이 종종 비정형성 건축의 상징이라고 말하던 빌바오구겐하임미술관이 있는 곳이다.(사진1 +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 나무위키 (namu.wiki) 참고) 이곳에 전시된 미술품보다 건물이 워낙 유명해서 내부 작품 관람에 큰 공을 들이지 않았다.(미술 까막눈이기도 하다^^). 미술관 건물을 안팎으로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입장료 값어치를 한다. 여행을 할 때는 가능한 그곳을 기억할 만한 기념품을 구입한다. 물론 그 나라의 명품 비슷한 것에는 눈도 돌리지 않아 큰 돈을 쓰는 것은 아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비싸게 주고 산(38유로) 미술관 전경을 담은 액자(사진2)가 내 책장의 한 칸을 차지했다. 

사진1: 빌바오구겐하임미술관 외관
사진2: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건진...

 
포드 모델A
호텔에 들어서니 로비에 1929년산 포드(Ford) 모델A 한 대가 전시되어 있다. 많은 분들이 잘 알고 있듯이 포드는 제조업(특히 자동차산업)에서 전설적인 인물이다. 20세기 들어와 유럽과 미국에는 많은 자동차 벤처기업이 우후죽순으로 설립되었는데, 특히 미국에 더욱 많은 자동차회사들이 생겨났다. 어떤 학자는 미국에 자동차회사가 1,500개쯤 세워졌다고 하고 또 다른 학자는 1,200개쯤 되었다고 했다. 내가 일일이 이름을 확인하면서(즉 기록이 남아있는) 조사한 자동차회사는 840여개쯤 된다. 물론 이 시기의 자동차회사는 전부 수공업생산방식으로 자동차를 만들었고, 그래서 1년에 수십대 이상 생산하는 회사는 없었다. 그러던 중 1910년경 테일러방식을 도입하여 대량생산을 시도하는 기업들이 생겨났고, 이를 위해 부품의 표준화를 고민하는 기업들도 나타났다.
포드는 1913년에 이런 움직임의 완결판을 제시했다. 당시에 넘쳐나는 이민자들을 저임금노동자로 활용할 수 있는 테일러방식에 컨베이어를 결합시켜 최초로 대량생산방식이라는 것을 창안했던 것이다.  이게 얼마나 혁명적이었는가 하면, 이렇게 탄생한 모델T의 가격은 $950로 기존 자동차의 평균가격 $2,129에 비해 현저히 낮아서 눈부시게 팔려나갔고,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노동자임금을 획기적으로 높여주었다. 또 그 고임금 일자리를 소외된 계층(이민자, 여성, 전과자 등)에 제공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포드의  모델T를 20세기 최고의 제조품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포드는 자신이 개발한 자동차에 모델A부터 차례대로 알파벳을 붙여나갔다. 그러니까 모델T는 20번째 개발한 모델인 셈이다.
문제는 워낙 인기가 있어서 모델T만 생산(단품종대량생산)한데서 발생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구매했고, 길에 굴러다니는 자동차는 거의 모두 모델T 한가지였다. 포드에 짓눌려 제대로 기를 펴지 못했던 많은 자동차회사들이 똘똘 뭉친게 바로 지엠(GM)의 시작이었다. 지엠은 슬론이라는 경영의 천재를 영입해서 다품종대량생산이라는 새로운 전략을 들고 나왔다. 갑자기 소비자들은 선택의 폭이 넓어졌고, 소비자들은 포드를 버리고 지엠으로 몰려갔다.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포드는 1927년 모델T를 단종하고 첫번째 모델이었던 모델A를 새롭게 설계해서 대량생산에 나서지만, 이미 대세는 기운 뒤였다.

사진3: 빌바오의 호텔 로비에서 발견한 포드 모델A 1929년 모델

 
바스크민족주의
빌바오에서 반드시 기억해야할 일의 하나는 바로 바스크민족주의 문제이다. 바스크지방은 프랑스나 스페인과 완전히 다른 언어와 문화를 지닌 독립된 지역이다. 19세기부터 독립된 국가를 만들고 싶어했지만, 위 아래에서 강대국이 압박하고 있는 모양새여서 바스크의 독립은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19세기는 물론 20세기 전반까지도 제국주의(식민주의)가 세계를 휩쓸고 있었다. 2차대전이 끝나고 바스크 민족주의자들은 독립을 위한 행동에 나선다. 이런 독립운동이 유럽의 관심을 받게된 것은 1959년 ETA(바스크민족해방운동)가 결성되어 군사투쟁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이들은 스페인 정부 인사들을 암살하기 시작했다. 이 전쟁은 1978년 스페인정부가 바스크를 자치주로 인정하면서 시들해졌다가, 2011년 ETA가 무장투쟁 종식을 선언하면서 끝났다. 자치주를 인정하는 것은 마오쩌둥의 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바스크를 식민지로 가진 프랑스(북부 일부)와 스페인(대부분지역)은 물론이고, 아일랜드에서 유사한 학살 전쟁을 벌이던 영국과 중동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을 지원하던 미국이 나서서 ETA를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바스크를 압박했다. 이렇듯 1960~1970년대는 약자들이 세계에서 다양한 테러를 벌였다. 일본의 적군파까지 테러리즘의 시대였다. 이런 테러의 근본 원인은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살던 곳을 식민지로 만들고 저항하면 무자비하게 학살했던데 있다. 1980년대 이후 이런 테러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데, 그것은 사람 세상이 평화를 갈구하는 고상한 인문학적 성찰 때문이 아니고 군사력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만들어진 때문이다.
아무튼 이 전쟁은 스페인 내전, 국제사회와 정치적이념(좌우, 민족주의, 파시즘, 프랑코주의 등등) 등이 총동원되어 벌어진 군사적 정치적 충돌로, 단순히 테러라고 규정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많은 전쟁 현장이나 테러 현장, 그리고 학살 현장에서 힘을 장악한 자들은 압박받고 학살당한 자들을 단순하게 한가지 개념으로 규정하곤 한다. 그러나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오직 승자의 바램만을 반영한 것일 뿐 진실과는 거리가 있음을 발견할 때가 많다. 제주 43사태가 그렇고, 노근리 학살이 그러했다. 가깝게는 광주항쟁을 그렇게 규정하기도 했었다.

(사족: 사진4 ) 이런 발칙한(^^?) 무지개색 건물… 멋지다! 다양성의 압살은 바로 창의성의 압살이기도 하다.

사진4: 빌바오 시내의 한 건물. 창문이 무지개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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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장신대 차정식교수가 이끄는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여행에 신청해서 함께 하기로 했다. 일정이 너무 빡세서 여러번 고민했지만, 나름 의미 있는 여행이 될 것 같았다. 인천을 출발해서 두바이를 거쳐 마드리드에 도착한 후, 다시 긴 시간을 육로로 이동해 빌바오에 도착했다. 첫날 부터 이번 여행이 얼마나 힘든 여정이 될지 암시하는 듯 했다.
도착 후 저녁식사 장소는 우리식으로 하면 기사식당 비슷한 곳이었다. 대륙을 운행하는 대형트럭들의 정비소가 밀집되어 있고 운전기사들이 잠을 자는 동네로 보였다. 우리네 기사식당이 그러듯이 지친 몸에도 식사는 맛있었다.
식당 내부에는 벽화가 가득 그려져 있었고, 흥미를 느낀 내가 벽화를 사진 찍자, 사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마당을 둘러 싼 담장에도 벽화가 가득 그려져 있었는데, 부천시만화진흥원이 공모했던 만화대회에서 1등을 했던 '윤석열차' 사건을 알고있는지 보여준 벽화는 바로 열차그림이었다. 물론 상징하는 내용은 달랐지만...
이렇게 시작부터 흥미진진하다.

윤석열차?
식당입구
실내 벽화;

극동아시아에서 시작하는 육지는 계속 서쪽으로 이어져 이곳 ‘까보 다 로카’에서 드디어 대서양을 만나면서 끝난다. 포르투갈에 있는 땅끝마을이다. 성서 속의 이야기, 요나가 야훼의 명을 거부하고 도망치려던 곳 다시스가 이곳이 아닐까? 잠시 막연한 추측을 해본다. 이곳에는 십자가를 위에 얹은 돌탑이 서있다. 거친 바다바람이 날리는 모래가 종아리를 때려 따끔거린다. 사진을 찍고 싶어 폰을 꺼내지만 바람에 몸을 가누기 어려워 원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뜻을 세우고 살아가지만,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모진 바람과 시련을 이기면서 나아가지 않으면 방향을 잃게 마련이다. 끊임없이 내가 가는 길이 내 욕심이 아닌지 살펴보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정치인이 되는 것과 정치하는 삶은 일치하지 않을 수가 있다. 김문수나 이재오가 이미 보여주지 않았던가? 그대는 왜 같은 길을 가는가? 정치인은 내가 잘나서 가는 길이 아니다. 사람들이 그길로 가도록 선택해주기 때문에 가는 길이다. 사람들이 선택해주지 않으면 언제나 중단하고 정치하며 살아가야 한다. 최소한 자신의 과거 기여보다 더 큰 상처를 사람들에게 남겨주는 악마는 되지 않아야 할 것 아닌가?

정치인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만이 아니다. 시의원도 지자체장도 모두 정치인들이다. 심지어 선거로 선택받는 조합장들도 정치인들이다. 반대로 우리 모두는 정치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사회복지든 교육자든 무슨 일을 하든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거나 기여하는 일을 하며 살면 그게 바로 정치하는 것이다. 자기 밥벌이만 하면 정치인도 정치하는 사람이 아니다. 정치자영업자일뿐.

세상에는 왕정국가도 많고 일당지배 국가도 적지않다. 흔히 일당지배국가라고 하면 쉽게 중국의 공산당을 떠올리지만, 사실은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국가 중에도 있다. 그 대표가 일본이다. 물론 일본에는 많은 군소정당이 있다. 그러나 수구보수진영의 양대 정당이었던 자유당과 민주당의 야합(1955년)으로 탄생한 자유민주당(자민당)은 일본 국민들의 변화요구에 잠깐 정권을 놓은 것을 빼면 줄곧 정권을 놓지 않은 장기집권 정당이다. 풀뿌리 정치를 빼면 사실상 일당지배국가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1990년 위기에 몰린 군부 쿠데타세력은 당시 4개 정당으로 나뉜 정당체제 중에서 3개의 정당을 통합하여 민주자유당(민자당, 일본 자민당과 글자 순서만 다르다)을 출범시킨다. 일본식 영구집권 시도였다. 지금의 국민의힘의 원조이다. 그리고 당시에 홀로 남은 한 정당이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이다.

일본은 야합이 성공하였지만, 한국에서는 처음에는 성공하는듯 했지만 결국 양당체제가 자리잡아 실패하였다. 한국 국민의 선택이 일본 국민과 달랐던 것이다.

한국에서 다시 이런 음모가 진행되는 듯 하다. 군부 대신 검찰이 국민의힘을 장악했고, 검찰정권이 장기집권을 획책하고 있다. 그 첫 단추가 불체포특권의 폐기이다. 검찰이 야당 의원을 체포하여 영원히 여당이 다수당인 국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논의는 검찰이 변호사 이외의 직업을 가질 수 없도록 강제하는 특별법과 현재 검찰의 인적 청산이 이루어질 20년쯤 뒤에나 실천되도록 거론할 일이다. 지금 진행되는 이런 일은 한국에서 또 다시 민자당을 만들려는 음모일 수 있다. 기자들이 함께 음모의 주체가 되지 않길 바란다.

https://mnews.jtbc.co.kr/News/Article.aspx?news_id=NB12132131&mibextid=Zxz2cZ

어제 엔화 환율이 100엔당 800원대에 진입했다. 표면적으로는 한국은 이자율이 높고 일본은 낮은 탓이다. 당장 나타날 일은,
1)한국에서 일본으로 떠나는 관광객이 늘어날 것이다. 시간이든 돈이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원화가치가 높아 일본관광의 유혹이 크기 때문이다. 이게 문제는 아니다.
2)일본이 과거사 문제로 화이트리스트 배제라는 자충수를 두었고 한국은 소부장 국산화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화이트리스트 품목들을 국산화하거나 대체수입선을 발굴해서 한국경제는 아무 문제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환율변화는 심각하다. 국산품이나 대체수입품의 가격이 일본산보다 비싸져서 그동안의 노력이 도로아미타불이 되기 때문이다.
3)이미 대중관계 악화로 무역수지 적자가 심각한 수준인데 대일 무역적자는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그동안 중국과 무역에서 번 돈이 일본으로 빠져나간다.
2023.6.20.

미국이 인플레감축법이라고 이름을 붙이고서는 사실상 무역장벽을 높게 쌓아올리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로 미국은 더 이상 자유무역을 추구하지도, 자유시장국가라고도 우길 수 없게 되었다(여전히 이렇게 믿는 나라는 미국을 제외하면 한 나라뿐인듯 하다). 여기에 한국산 전기차들이 규제치를 통과하지 못해 전기차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다들 우와좌왕하고 있다. 그래서 이법은 중국을 겨냥한 듯 보이지만, 노골적으로 한국을 겨냥한 법이다. 중국산전기차를 미국에 수출하기에는 원가경쟁력은 높아도 제품경쟁력은 높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 자동차회사들은 아직 전기차 시대에 진입하지 못했다. 미국의 입장에서 그 법의 성공여부는 5년쯤 뒤에나 확인할 수 있겠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않을 것 같다.
첫째는 과거 경험이 그렇다고 말한다. 미국은 1970년대 말~1980년대 초에  일본 자동차기업의 미국 수출이 계속 증가하자, 두 가지 조치를 취해서 이를 억제하려고 했다. 하나는 '자동차수출 자율규제'라는 이름으로 일본기업들에게 강제로 수출 물량을 제한하게 했다. 두번째는 일본 엔화의 가치를 폭등시켜서('플라자합의') 일본 메이커들이 미국에 수출해서 돈을 벌 수가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일본 기업들은 그대로 있지 않았다. 주요 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지어 미국산 자동차로 판매했던 것이다. 혼다의 경우에는 미국내 생산이 일본내 생산을 초과할 정도였다. 기업은 유기체와 같아서 본능적으로 살길을 찾아낸다.
둘째는 원가 때문이다. 요즘 미국내에 전기차공장, 특히 배터리 공장을 새로 짓는다는 뉴스가 많다. 기업들은 투자비용보다 운영이익에 관심이 크다. 보통 투자에는 다양한 보조금이 있고, 일단 투자한 다음에는 이것이 자산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결국 기업의 시장 경쟁력은 투자비용이 아닌 변동비용(운영수익)에 의해 결정된다. 지금 미국은 투자 바람이 불어서 일자리를 늘리는 효과를 보겠지만(1980년대에도 그랬다) 이 기회에 미국 기업들이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정치인들을 위한 보여주기가 될 뿐이다. 90년대 들어 미국 자동차회사들이 점점 쪼그라들어, 지금은 후진국 사람들이 선망하는 브랜드일 뿐이다. 원가를 낮추고 경쟁력있는 제품을 만드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당분간은 보조금 덕분에 경쟁력을 회복하고 다시 회생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정부가 영원히 보조금을 줄수는 없으므로 결국 원가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 정부의 바램과 달리, 포드와 테슬라는 중국의 최대 배터리 업체인 CATL과 배터리 합작회사를 미국내에 설립하기로 했다.
셋째는 앞의 두 요인의 결합으로, 결국 고 품질을 유지하면서 가격경쟁력을 가진 기업의 제품이 승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에 중국 배터리 관련기업들의 투자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기업들 입장에서는 미중경제전쟁은 그것이고 자기들은 살아야한다는 절박감이 넘쳐날 수밖에 없다. 이때 택할 수 있는 전략은 우회전략이다. 그 우회전략의 중간기착지로 한국이 적당하다. 우리 기업들에게는 유럽이 적당하다. 아무튼 적당한 우회경로를 모색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 핵심은 두 가지 전략이다. 어차피 전기차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고급차 시장을 공략하는 것과 또 하나는 보조금을 받는 조건에 맞추지 못해도, 보조금을  받는 미국산 자동차만큼  싸게 만들면 된다. 이때의 핵심은 중국과의 관계가 좋아야 하고 제품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이미 현대-기아차는 이런 야심적인 도전이 가능할 만큼 성장했다. 

요즘 미국을 중심으로 틱톡이 무슨 핵무기나 되는 것처럼 난리다. 이런 일은 미의회 청문회를 계기로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그러나 정작 청문회에서 드러난 증거는 아무 것도 없다. 제노포비아. 중국과 연관되면 모두 악마라고, 제재해야 한다고 외칠 뿐이다. 오랫동안 이슬람에게 하던 행동의 대상만 바뀌었을 뿐이다.
내게는 틱톡이나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심지어 카카오톡도 본질적으로 전혀 다르지 않다. 몇달 전까지 사용하던 페이스북 마저 탈퇴했다. 나의 인생이 그곳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 정보가 다른 나라로 이전되는 것에 동의해야 사용할 수 있다. 아예 드러내놓고 정보수집용으로 활용하겠다며 동의하라고 압박한다.
이 모든 메신저들이 돈벌이를 위해 내 정보를 기업들에 팔아넘기는 것을 비즈니스모델이라고 부르며 칭찬한다. 아무리 정보이관을 거부해도, 그렇게 정보를 사가는 기업 중에는 정보기관의 페이포 컴퍼니가 있을 개연성이 있다.
나는 현재 카카오톡만을 사용하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국내기반 기업이어서 항의할 수단이라도 있기 때문이다. 항의도 못하는 서비스를 어느 나라 기업이 만들었는가를 기준으로 좋다, 나쁘다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편리하면 그냥 사용하면 될 일이다. 불만이면 사용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림에서 빨간색 국가는 틱톡을 전면 통제하는 나라, 검은색은 정부 및 공공부문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나라)

영국이 우크라이나에서 열화우라늄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겠다고 한다. 러-우 전쟁을 걱정하는 것은 이 전쟁에 핵이 사용될 가능성 때문이다. 미-영은 이미 이 포탄을 이라크와 발칸에서 사용했다. 그러나 상대방이었던 국가들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파장이 작았다. 그럼에도 기형아 탄생이 급증했었다. 게다가 러-우 전쟁은 다르다. 러시아가 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앵글로색슨들이 핵전쟁을 유도하고 있다.

Ukraine war: UK defends sending depleted uranium shells after Putin warning https://www.bbc.co.uk/news/world-europe-65032671

Ukraine war: UK defends sending depleted uranium shells after Putin warning

The UK says the depleted uranium shells, which it is sending to Ukraine, are "standard".

www.bbc.com


이번에는 러시아가 벨라루스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하겠다고 선언했다. 핵전쟁의 위험은 갈수록 높아진다.

Putin: Russia to station nuclear weapons in Belarus https://www.bbc.co.uk/news/world-europe-65077687

Putin: Russia to station nuclear weapons in Belarus

The Russian leader says the move would not violate nuclear non-proliferation agreements.

www.bbc.com


“그러니까 저는 이 사람이 천벌 받는 것을 전제로 용서했던 거죠. 용서라는 말을 함부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스스로 고통스럽지 않을 때가 되어야 비로소 용서를 할 수 있어요. 계속 피를 흘리고 있을 때는 용서할 수가 없죠.”

공원의 매화가 피기 시작한다.
단 두 송이가 피었는데, 핀 꽃의 향기가 코끝에 맴돈다.
그렇게 향기나는 삶은……


한국교회사 100년에서 제법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교회 72개를 담채화로 그린 책이다. 코로나 기간 동안 이근복목사님이 손수 그린 그림들이다. 물론 그림만 있는 그림책은 아니다. 그 교회를 왜 선택했는지를 암시하는 두 쪽 남짓의 글이 함께 있다. 이근복목사님은 한국 현대사에서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순간마다 현장에 있었다. 1991년 봄, 백병원 앞에서 만나뵌 이후 간간히 소식만 들었는데, 반가운 책을 발견했다.

청파교회 김기석목사님이 적은 추천사의 일부를 옮겨본다.
“그가 그린 교회 그림을 유심히 바라보다 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중략)… 각 교회의 역사와 결정적 순간들을 떠올리며 그 빛나는 순간이 재현되거나 지속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음을 알기에 각각의 그림을 무심히 바라볼 수 없었다. 형태가 어떠하든 교회 건물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응고된 기억이다. 수많은 사람의 기도와 찬송이 배어 있고, 숨죽인 채 흐느끼던 사람들의 눈물과 아픔이 서려 있다. …(중략)… 각 교회가 걸어왔던 간략한 역사 이야기는 교회가 서야할 자리는 어디이고,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되기에 충분하다. …(중략)… 이 아름답고 소박하고 진정성이 느껴지는 글과 그림을 통해 많은 이들이 다시 한번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의 꿈을 꿀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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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테라  (0) 2022.08.06

미국의 역사에서 남북전쟁이 끝난 후, 1800년대 후반은 산업혁명이 절정에 이르러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낳았다. 카네기 같은 입지전적인 부자가 탄생한 시절이기도 하다. 이들이 기업 합병이나 담합을 통해 사회적으로 끼친 죄악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기업합병과정에 전투가 벌어지는가 하면, 노조를 상대로 전투를 벌이기도 하지만, 사법처리 대상은 오직 노동자들뿐이기도 했다. 인종 카스트가 부활하고, 링컨이 주장했던 노예 해방은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았다. 휴가나 쉬는 시간이 없이 이루어지는 장시간 노동에 임금은 낮았고, 노동환경은 끔찍했다.

1890년에만 2,451명의 철도 노동자가 근무중에 목숨을 잃었고 다친 사람은 22,000명이 넘었다고 한다.(<세상에서 가장 짧은 미국사>, 폴 S.보이어 지음, 김종원 옮김, 위즈덤하우스, 2021) 그래도 이 시기에 미국이 잘한 일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1890년에 바로 셔먼법이라고 하는 독점금지법을 제정한 일이었다. 그러나 자본가의 친구들이 되어 버린 보수 사법부는 이 법을 1894이 되어서야 비로소 적용하였는데, 그 첫 사례가 가소롭게도 미국철도노조에 대한 것이었다. 노조를 독점집단이라고 본 것이다.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도 미국의 독점금지법처럼 그 취지가 기업의 독과점에 따른 폐해를 막고 기업들의 담합행위를 막기 위한 조직이다. 그런 공정거래위원회가 건설노조에 대해 공정거래법을 적용하여 벌금을 부과하였다고 한다. 그동안 특수고용노동자를 사업자로 보는 한국과 달리 이미 국제사회에서는 이들을 노동자로 보는 추세이다. 심지어 가장 자본친화적인 미국조차도 자영업자와 노동자를 구분하는 판단 지침을 가지고 있어 플랫폼 노동자나 특수고용직의 노동자성을 인정한다. 그래서 고용노동부도 노조설립을 인가해주었다.

그렇다면, 이들의 불법행위는 노조법을 바탕에 두고 형사법에 의해 처벌해야 한다. 경쟁법(공정거래를 보장하기 위한 법)을 노조에 적용하는 것은 130년 전의 미국의 불법시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정위 직원이 뇌물 수수를 했는데, 이를 경쟁법 위반으로 보고 공정위를 해산시키겠다는 심판과 다를 게 없다. 노조의 불법을 기업의 불법을 다루는 법으로 처벌하겠다는 것은 불법을 처벌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노조를 탄압하겠다는 공공연한 선언이다. (기사는 아래 링크 참조)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1073581.html

노조를 ‘사업자단체’ 잣대로 제재…공정위, 도넘은 노동탄압

특수고용 노동조합에 공정위 최초 제재 사례1인 자영자에 ‘경쟁법 적용’ 않는 게 국제 기준

www.hani.co.kr

2018년 크리스마스에 우리나라 언론을 도배질 했던 중국 뉴스. “크리스마스가 사라진 중국”.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다. 나는 언제부터서인가 중국뉴스는 언론사(홍콩의 언론사 포함)에 상관없이 믿지 않게 되었다. 내가 가서 본 것과 중국 밖에서 듣고 보는 뉴스는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한미의 언론은 의도된 조작이거나 크게 양보해도 무식한 공상인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이 중국에 대해 착각하는게 있다. 시스템은 고도로 발전했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추적하고 처리하는 시스템이 좋다고 해서 사전에 통제가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 착각. 중국은 인구가 많고 국토가 넓어서 완벽한 통제가 불가능하다.

두번째는 해외 경험을 한 인구가 넘쳐나고 그래서 이미 국민의 생활 속에 서구문명이 깊숙이 들어와 있는데, 크리스마스를 없앤다고?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은 마치, 내가 전방에 잠깐 근무할 때, 북한 괴뢰는 뿔이 달린 마귀라고 배우고 군에 입대하여 포대경으로 북쪽을 감시하다가 북한 병사도 우리와 똑 같이 생긴 사람임을 발견하고 당황해서 나에게 이 사실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했던 병사와 같은 수준으로 세뇌된 사람들의 착각이다.

한국과 서방에서 중국교회가 강제로 철거되고 있다는 동영상이 한 바탕 휩쓸고 지나간 적이 있다. 그 1년쯤 뒤에 중국 대학에 방문했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그 대학 주차장에 주차된 차의 뒷 유리에 익수스(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는 제자 베드로의 고백의 첫 글자들을 모아서 물고기 그림안에 적어 놓은 기독교의 상징물)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차를 여럿 보았기 때문이다.

중국뉴스는 믿기 전에 의심부터 하라.

(사진은 2018년 경험을 적은 김희교선생의 책 짱깨주의의 탄생의 도입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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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영석교수님의 부고를 들었다. 2010년대 중반 내가 몰입했던 주제는 제4차산업혁명이었다. 그리고 이교수님은 영국사, 특히 산업혁명기 역사에 두분의 대표학자 중 한분이다. 이교수님은 역사학자, 그리고 다른 한분은 경제사 학자이다. 이 당시 나는 이교수님의 연구를 많이 참조했고, 기회가 되면 만나뵙고 혜안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동료교수들과 조금 다른 관점에서 책(AI시대와 영화, 그리고 시)을 내고 이어서 바로 벌어진 지엠군산공장 철수 사태 때문에 이 주제는 한쪽으로 제켜둘 수 밖에 없었다. 그 사이에 이교수님의 부고를 듣게 된 것이다. 더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이교수님의 부인이 알고 보니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 부터 알았던,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로는 몇차례 잠시 스쳐가며 인사를 했을 뿐, 제대로 인사를 나눌 기회가 없었던 선배였다. 어쩌면 그렇게 스쳐가며 인사할 때 이교수님도 뵈었을텐데... 이제는 그분의 축적된 혜안을 듣지 못한다는 게 우울하다.
그러고 보니 기억나는 또 한분 손용엽교수. 2000년대 중반 자동차산업에서 완성차와 부품의 관계에 고민을 할 때였다. 어느 학회에서 내가 주제발표를 한 후에 손교수님이 내 테이블에 오셨다. 그리고 의기투합해서 한국 자동차부품산업에 대한 대형 연구과제를 만들어보기로 했었다. 그래서 함께 초안을 만들었으나, 이후 소식이 없었다. 나중에 연구재단에 제출했으나 떨어졌다는 답을 들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서인가 뵐 수도 없고 소식도 잘 오지 않았다. 무심코 시간을 보냈다. (나는 찾아오는 사람은 누구나 환영하지만, 내성적이어서 내가 먼저 연락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2010년대 중반 손교수님이 재직중인 학교에 갈 일이 있어서 연락을 드렸다. 반갑게 함께 점심식사를 했는데, 식사중 본인이 암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1년이 지나지 않아 고인이 되셨다. 그분과 삶의 궤적이 겹치는 데가 없어서, 장례식장을 찾아 갔을 때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아니 최근까지도 대통령후보군으로 언론에 오르내리다가 은퇴해서 뉴스가 사라진 정치인이 와있었고 대부분 그분 주변에 몰려 있어서 내가 아는 얼굴이 있는지 찾아보기가 민망해서 바로 나왔던 기억이 난다. 살아계셨으면, 좋은 선배가 되어주셨을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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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우리나라에서 마음으로 존경하는 세 여성이 있다. 물론 젊어서는 나보다 선배들을 존경했는데, 요즘은 내가 늙어서 나보다 젊은 분들을 존경하게 된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후생가외.

임영신, 이라크 전쟁에 인간방패로 참가하셨고, 이후로도 이매진피스를 통해 평화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유가일(유은하), 임영신님과 함께 이라크 전쟁에 인간방패로 참가하셨고, 이후에도 제주강정기지 반대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문제는 그 후유증을 심각하게 겪었고 최근에는 노동을 하면서 많이 회복되었다. 그래서 새로운 평화활동을 위해 뒤늦은 유학을 준비중이다.(이글을 처음 쓴 때로부터 4달이 지나 비자 문제로 중단되었다)
임은정, 우리 시대 진정한 검사이시다. 검새가 아닌… 온갖 핍박 속에서도 검찰의 바른 자리매김을 위해 묵묵히 싸우고 있다.

이분들 덕분에 내가 사는 세상이 조금 밝아지고 있다.
(20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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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주의: 내가 어울렸던, 정확하게는 나를 외국인이라고 외로울까봐 친구가 되어주었던 이들은 성경을 읽을 때 언제나 현재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했다. 예술, 학문, 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서 자기 분야에서 창조질서를 이야기 하며, 그래서 장애나 난민 문제 등을 하나님의 창조세계 속에서 캐나다라는 축복 받은 땅에 사는 자기들의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실천했었다. 이 모임이 진행되는 Swallowfield farm은 드그루씨의 집 겸 농장이다. 드그루씨는 노예무역을 자기 조상인 네덜란드 무역상들이 시작했다는 사실을 늘 고백하고 회개했다.

(사족1: 지성이라곤 약에 쓰려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이 윽박지르는 반지성주의 말고…)
(사족2: 이런 행사를 준비할 때면 이들은 보통 한사람이 1000달러-100만원 정도를 기부한다.)
(사족3: 한국의 대형교회는 그 자체로 사이비 종교이다. ‘한국의 요셉’ 파동을 보니 더욱 확신이 든다)

키가 큰 침엽수가 밀집해 있는 숲속에 활엽수 한 그루가 외롭게 서있다. 곁 가지를 내놓은 흔적 하나 없이 가늘게 위로만 솟아올라 마침내 침엽수 위로 하늘을 향해 잎을 피워내고 햇빛을 만끽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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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장의 잎이 난 다음부터 나오는 잎은 잎에 큰 구멍이 생긴다고 한다. 나중에 난 잎이 더 빠르게 성장하면서 이미 난 잎을 덮게 되는데, 햇빛이 가려져서 먼저 난 잎이 살수 없게 되는 것을 막으려고 잎에 구멍이 나는 것이라고 한다.

추측컨데 monstera라는 이름은 monster(괴물)와 어원이 같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나중에 난 잎이 더 싱싱하고 큰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나중에 난 잎이 자신을 키우는데 필요한 양분을 제공했던 먼저 나온 잎을 배려하는 이 식물은 결코 몬스터가 아니다. 오히려 세대갈등으로 전전긍긍하면서 그것을 정의라고 말하는 대한민국이 진짜 몬스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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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를 덮으면서 온갖 상념이 스쳐지나간다.

하나는 한국사람들은 여전히 조총련과 민단으로 분열된 듯이 일본에 대한 태도가 분열되어 있음. 일본은 전쟁범죄에 대해 늘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자신들의 전쟁범죄를 원폭의 희생자였음을 내세워 덮으려 한다. 당하기는 미국에 당해놓고 자신들이 아시아에 가한 범죄를 퉁치려는 야비함. 미국에 항의하지도 못한다. 유럽에서 당한 박해를 팔레스타인에 되돌려주면서도 돈으로 장악한 언론을 통해 적절히 미화하는 유태인들 흉내를 내려는 것인지 모르지만 유태인들이 도와줄리가 없다.

두번째는 우리 안의 외국인(노동자)을 대하는 혹은 대응하는 우리의 태도가 일본인들보다 도대체 나은 점이 있는가 하는 의문. 외견상으로는 좀 나아보이겠지만, 100년의 시차를 고려하면 정말 야만국가 아닌가?

15년쯤 전에 남는 시간을 보내려고 들어간 서점에서 눈에 띈 책. 싸박싸박 읽을 요량으로 사 들고 나왔지만, 그 오랜 시간을 책장의 장식품으로 앉아 있었다. 문득 꺼내 들었는데, 멋진 말이 눈에 들어온다. 요즘 새파란 정치인들에게선 날내가 난다. 나잇 살 들어 원로 행세를 하는 자들에게선 군둥네가 난다. 나도 군둥네 날 나이이다.

한국 조선업이 일본을 이긴 것은 빠르게 IT화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본 조선업은 역사가 오래되어 전통적으로 도면을 문서로 보관했는데 비해 우리는 뒤늦게 뛰어들어 경쟁을 했기 때문에 일찌감치 도면을 디지털상태로 보관했지요. 덕분에 수주경쟁에서 빠르게 도면을 제시하면서 일본을 넘어섰습니다.

그러나 조선업 공정의 대부분은 용접이고, 선박용접은 자동차와 달리 자동화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점이 저가 공세로 추격해오던 중국을 따돌릴 수 있는 무기가 되었습니다. 용접숙련공들은 중국의 비숙련 상태의 노동자들보다 고품질의 용접을 했고(설계도면대로 블럭을 이어붙이면 용접오차가 발생하는데 이 오차가 거의 없게 용접하는 것이 핵심 중 하나라고 합니다) 중국은 건조시간과 원재료비용에서 한국을 따라잡을 수 없었던 것이지요.

문제는 조선사들이 용접부분을 물량팀에게 맡기면서 지금 조선사에는 숙련공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미 조선현장을 떠난 용접공들이 다시 조선소로 돌아갈 이유가 전혀 없다는 점이 또다른 문제입니다. 결국 아무리 수주해도 더 이상 고품질로 신속히 건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반대로 중국은 과거 우리가 축적했던 기술을 확보해나아가고 있어서 우리가 비웃던 중국, 즉 수주해놓고선 건조가 지연되어 적자에 빠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원칙을 버리면 부메랑이 돌아오는 법입니다.

https://m.hani.co.kr/arti/economy/marketing/1052346.html?_fr=fb&fs=e&s=cl

외국인이 건보 흑자에 기여한 금액이 누적으로 1조 4천억에 달한다. 그런데도 한 야당 후보가 외국인이 건보재정에 기여없이 숟가락을 얻는다고 말했단다.

1. 건보료에 대해 부인과 장모가 모두 의혹이 있는 후보가 스스로 건들이지 말아야 하는 주제 아니던가?

2. 해외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했겠지만 우리와 다른 의료체계를 갖는 나라에서 병원에 가는 일은 정말 힘들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길들여진 익숙한 체제이지만, 외국인에게는 너무 낯설어 학습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중국유학생 중에는 건보가입이 의무화되어있는 것에 대해, 한국정부가 유학생을 착취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외국인 건보는 태생적으로 흑자사업이란 뜻이다.

3. 캐나다에 가면 한국 장애인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치료할 수 없거나 혹은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캐나다로 가서 치료를 받다가 아예 정착한 사람들이다. 기본적으로 결핵과 같은 전염병이 아니면 막지않는다. 그것은 일종의 선진국 책무같은 것이다.

지난해 여름에 비해 주가가 크게 떨어졌다. 오래 동안 존경해온 은퇴 학자 한 분이 이것 때문에 깊은 염려를 담아 글을 쓴 것을 읽었다. 그 분과 생각이 다르다. 연휴를 이용해서 오랜만에 긴 글을 쓰려고 한다.

1. 선진국은 모두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돈을 풀어야 했다(금리인하 포함).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가장 적은 돈을  풀었다. 이 돈을 풀지 않았다면, 많은 자영업자들이 기아선상에서 헤매야 했을 것이다. 세계 10대 경제 강국에서 이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그러나 이는 필연적으로 유동성을 증가시켰고, 주식과 함께 많은 자산 가격이 폭등했다.

2. 오미크론 이후 코로나에 따른 봉쇄를 완화시키면서 돈을 많이 푼 나라일수록 유동성 증가로 인한 위기가 크게 닥쳐오고 있다. 초과 유동성을 흡수하는 것은 금리인상 밖에 없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금리인상을 자주 언급하였고 또 인상하고 있다. 우리 역시 같은 속도로 인상할 수 밖에 없다. 금리인상은 당연히 바로 자산 가격 하락으로 이어진다. 만약 우리가 이 대열에서 이탈하면 외국자본의 급격한 탈출이 일어난다. 자본은 이자율이 높은 나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3. 이렇게 된 것은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금융자본주의 때문이다. 그래서 상품이 국경을 넘을 때 부과하는 관세처럼 자본의 이동에 대해서도 국경세(토빈세라고 한다)를 부과해야만 한다. 국제사회가 이를 합의하지 않으면 무슨 말, 무슨 정책도 작동할 수 없다. 그러나 불과 손가락에 꼽을 정도에 불과한 자본투자 국가들이 가로 막아 도입되지 못하고 있다.

4. 우리의 국가재정은 결코 부족하지 않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세수 추계를 잘 못하는 문제가 반복되었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실물경제를 모르는 전문가들이 문제였다. 코로나로 글로벌 공급망이 망가지면서 동남아에서 들여오던 부품을 대부분 국내에서 생산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많은 중소기업들이 야간 작업을 하면서 생산하고 있다. 당연히 세수는 급증했다.

5. 가계부채가 선진국 중에서 가장 높은 축에 드는 한국이야말로 돈을 확실하게 풀어야 했다. 그래야 금리 정책을 통해 유동성을 흡수해도 부도 내는 가계가 줄어든다. 당시에 포퓰리즘이라고 반대하던 자들은 어디에 갔나? 그들이 바로 서민들을 수탈하여 빈부 격차를 늘린 주범이다. 결국 미국이 금리인상에 나서면서 우리나라도 연동할 수밖에 없는데, 가계가 위기에 빠질 것이고 과거 IMF때나 금융위기 때 처럼 또 한차례 서민은 죽어나갈 것이다.  

6. 그럼에도 지금 선거판이 포퓰리즘을 염려할 수준에 가깝다는 점은 동의한다. 포퓰리즘을 염려하는 것은 대표적으로 수익자 부담인 사회보험의 수혜를 늘린다는 공약 때문이다. 사회보험은 기업과 노동자가 분담하여 부담하는데, 마치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처럼 오해하고있다. 경기 효과가 불균형 상태인 지금, 이런 비용을 늘이면 어려운 기업은 더 심각하게 위기에 빠진다.

여름 콩국수

내가 중학생이 된 뒤로 아버지의 직장이 순천의 OO여자중고등학교로 옮겨지고 나는 전주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고등학생 때 여름방학을 맞아 부모님께 갔었는데, 아버지는 점심을 먹자며 나를 동네의 작은 국수집으로 데려가셨다.

아버지는 콩국수를 먹자고 하셨는데, 원래 국수를 좋아하셔서 어렸을 적에는 아버지가 손수 끓여주신 국수를 종종 먹었다. 지금도 당시에 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기준으로 국수를 삶는다. 문제는 처음 먹어보는 콩국수가 너무 비려서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그후 대학원생일 때 지도교수님이 문득 콩국수를 먹자며 성균관대 근처 혜화동의 한 콩국수집에 데리고 가셨다. 나는 과거의 경험 때문에 먹기 싫었지만, 내색도 못하고 먹게 되었는데… 이럴수가? 너무 맛있었다. 내가 드디어 청소년에서 성인이 된 것인가?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콩물을 만드는 방법이 달라졌다고 한다. 내가 순천에서 먹었던 콩물은 진짜 두유수준이었고 요즘은 좀 더 고소하게 만든다고 한다.(그저 풍월로 들은 것이니 진실 여부는 모르겠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매주 함께 식사하던 것이 이제 어머니 한분만 모시고 나가야 한다. 그래서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국수를 먹는 횟수가 줄었고, 요즘에는 여름이면 아내는 로컬푸드 매장에서 콩물을 사다가 직접 콩국수를 끓여준다. 한대접 콩물까지 다 먹고 나면 여름의 점심은 포만감과 함께 끝난다.

소바 혹은 메밀국수

광화문에서 재수를 하던 시절, 같은 반의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러 학원 밖으로 나온 적이 있다. 늘 학원 식당에서 라면만 먹었는데, 한 친구가 바람을 넣었고 여러명에 끼어 그렇게 나섰다. 광교 어디쯤이었을텐데, 메뉴판을 보니 가격이 나는 오면 안될 곳이었다.

가장 싼 메뉴가 소바였다. 그것이 무언지도 모르고 주문했다. 문제는 종업원이 소바는 두짝이 1인분인데 메뉴에는 한 짝의 가격을 적은 것이라고 했다. 곱하기 2의 가격을 보고 속으로 떨었지만 어떠겠는가? 자존심 때문에 주문을 했고, 비싼 돈을 지불했지만 그 나이의 나에게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 양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은퇴 후의 아버지는 소바를 좋아하셨다. 그래서 여름이면 거의 매주 한번씩 소바집에 모시고 갔었다. 지금도 여름이면 외식할 때 제일 먼저 떠 올리는 메뉴 중에 하나이다.

증조할아버지가 조선말기 제법 괜찮은 지위의 양반이셨는데, 무슨 이유때문인지 전북 김제로 오셨다고 한다. (기독교회의 영수를 하셨다는 것으로 미루어보건데, 조선말기 쇄국정책의 와중에 좌천되어 오셨던 것 아닌가 싶다. <- 이렇게 추측했는데, 2025년에 알게된 사실은 김제에 집성촌이 있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기독교의 영향으로 일제 치하에서 농민운동을 하시다가 옥살이를 하기도 하시면서 건강을 해쳐서 아버지가 세 살 때 돌아가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시집온 후에 한양에서 몰려 내려온 증조할아버지의 양반 손님들 식사대접에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손님 한사람 마다 개인 밥상을 두 줄로 늘어놓고 양반들이 양쪽에 한 줄로 앉아서 마주 보며 대화하며 먹는 식사 대접...

내가 대학생 때 집안 역사를 추적하려고 첫째 큰 아버지 인터뷰를 시도한 적이 있다. 첫째 큰 아버지는 일제 치하에서 10대의 나이로 할아버지와 같은 죄목으로 6개월 감옥살이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큰아버지는 입을 굳게 닫고 오히려 내게 그런데 관심 갖지말고 그냥 살라고 했다. 전두환시절, 그런 역사를 들춰내다가 가족 중에 또 다른 누군가가 감옥살이 하는게 죽기만큼 싫었을게다. 나라를 위한 사람들이 두고두고 고생하는 그것을 정말 싫어했던 것 같다.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 마저 일찍 돌아가셨으니 그 후의 삶이 얼마나 피폐했을지는 상상이 된다. 할머니가 순회 목사(당시에는 목사가 적어서 목사가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교를 했다)가 김제에 오면 가난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식사대접을 했기 때문에 그 순회목사가 목포에서 설교를 할 때면 같은 역할을 하던 부잣집 마나님이었던 외할머니에게 말해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중매가 되었고, 오직 신앙 좋다는 이유로 결혼을 했다.(외할머니 사후에 유품을 정리하는 중에 늘 끼고 살던 성경에 내 돐사진 한 장만 들어있었다고 하니, 내가 어려서 외갓집에서 얼마나 사랑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선생님이셨던 아버지가 전주로 전근을 가게 되어 나는 태어난지 2년만에 전주로 이사를 왔다. 결혼 초기에 비해 사정이 조금 나아지기는 했어도 가난하기는 매한가지였던 전주 생활 초기, 다행히 전주에는 사실상 오늘의 전북대를 만든 당시 총장이셨던 이모부가 계셨다. 이모네는 부유했고, 어릴적에는 특별히 잘생겼던(?) 나는 그 집에서 늘 환영받는 귀염둥이였다.

어느날 동네 친구들을 몰고 이모집에 갔다. 5-6살이나 되었을까? 국민학교 입학을 7살에 했으니 분명히 7살이 되기 전이다. 물론 우리 이모네는 부자라고 자랑하기 위해서였다. 조카가 동네 개구장이들을 몰고 왔으니 참 황당했을텐데, 이모는 수박을 내주면서 친구들과 먹고 놀라고 하셨다. 마당이 넓은 일본식 가옥이어서 마당에서 놀만했었다.(그 이모는 벌써 100살쯤 되셨을텐데 아직 살아계신다. 이분의 결혼 스토리 역시 글로 쓸만큼 당시로서는 파격적인데...)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가난해서 수박을 시장에서 파는 것만 보았지, 그때까지 먹어본 적이 없었으니 어떻게 먹어야 할까? 고민하다가 그만 껍질부터 먹었다. 이모는 아이를 수박도 못 먹어본 아이로 키운다고 어머니를 야단쳤고, 어머니는 그날 울면서 수박을 사오신 후 수박을 자주 사주셨다. 이 이야기는 내가 성인이 된 후에도 종종 등장하는 이야기꺼리이다. ^^

올해 처음으로 로컬매장에서 수박을 사왔다. 수박을 사오면 언제나 내가 이렇게 해체해서 통에 담아 보관한다. 껍질부터 먹는 실수를 절대로 반복할 수 없게...🤗😝🤪😅😂

1. 내가 대학생일 때 들었던 정치학개론 수업의 교수는 미국에서 귀국한지 오래되지 않은 젊은 교수였다. 그는 미국에서 정치학 수업 한 과목을 듣는데 10권쯤 되는 책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평생 미국에서 정치학 수업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 뭐 확인할 길은 없다.

2. “커피거래에 구독경제 개념을 도입하고 싶어요” “커피장사하지 마라. 망한다.” 며칠 전 학생과 나눈 대화이다. 물론 긴 대화였지만, 시작과 끝은 저랬다.

3. 이번 학기에 내게 소셜벤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7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 그 7권에 포함되어 있는 책이다. 나는 커피장사를 하려면 얼마나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하는지, 그리고 노력을 해야하는지를 느껴보라고 제시한 책인데, 멋있게만 보였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글재주가 좋은 저자의 책임이다. 😂

미얀마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1. 원초적인 책임은 영국에 있다.(일본도 대동아전쟁을 통해 부분적인 책임이 있다) 150여 부족의 땅을 식민지지배를 위해 한 덩어리로 묶어버렸다. 미얀마의 기원이다. 이질적인 부족들의 결합이 정치적 불안정의 기원이고 군부쿠데타가 쉬운 이유이기도 했다. 실제로 군부의 학살에 대항하기 위해 소수민족들은 오랫동안 무장투쟁을 했다. 이들중 일부는, 마치 콜롬비아 공산혁명군이 그랬던 것처럼, 양귀비를 재배하여 비용을 마련했다. 국제사회는 인종청소 군부가 아닌 마약재배 저항군을 처리하기에 급급했다. 그들에게는 누가 학살을 당하든 자신들에게 피해가 아니지만 마약의 피해는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2. 미얀마의 민주화 초입이라할 수 있는 2008년 발의된 신헌법은 국회의 25%를 군부가 차지하고 군대 및 경찰 통수권을 여전히 군 사령관이 갖는 등 한계가 많았고, 심지어 지도자인 수치여사는 대통령이 될 수 없게 되어 있어 실권이 없는 정신적지도자일 뿐이었다. 그런데 미얀마의 오랜 문제인 로힝야족 학살관련해서 국제사회는 근엄한척 거드름을 피우며 노벨평화상을 박탈하여 수치를 폐기처분했다. 수치는 군인의 단 한 명에게도 명령할 권한이나 힘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군부가 더 이상 수치를 고려하며 행동할 이유를 박탈했다. 수치는 중국과의 문제를 풀어나가지 않으면 미얀마 민주화가 불가능하고, 또 중국이 어느 나라든지 그 나라의 정권을 인정하는 태도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중국에 화해제스처를 보였는데, 여기에 불만을 품은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수치를 폐기처분한 셈이다. 사실 군부는 오랫동안 카렌족과 로힝야족 등 소수민족을 인종청소해왔다.

3. 미얀마에서 군부쿠데타는 늘상 반복된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천연자원을 해외기업에 팔아 벌어들이는 돈 때문이다. 그 돈은 군부 소유기업에 이전되고, 군인과 경찰의 급여는 대졸자 평균급여의 10여배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해외기업들은 군부가 제공하는 소수민족 노예를 통해 저비용으로 돈을 벌고 이를 미얀마군부에 상납한다. 이런 기업들에는 한국의 포스코도 포함되어 있다. 원래 대우그룹의 것이었다. 그래서 쿠데타에 성공한 군부 지도자가 늙으면 다시 새로운 군부가 중심이 되어 쿠데타를 하는 것이다.

4. 따라서 미얀마에서 반복되는 쿠데타와 군부독재의 진짜 이유는 바로 돈이다. 그렇다면, 대응방법도 분명해진다. 미얀마의 군부기업 뿐 아니라 이들과 협조하는 해외 다국적기업을 제재하면 된다. 아무도 그들과 거래할 수 없도록 경제제재조치를 취하면 더 이상 군부가 쿠데타로 얻을 것도 없고, 군경의 급여도 높일 수 없어 군부 내부로부터의 붕괴를 유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조치는 없었다. 지금도 미국은 군부소유기업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지만, 그들과 거래해서 돈을 버는 자국 기업이 아닌 군부기업에만 발길질이다.

5. 그래서 조금 더 넓게 보면 미중갈등도 무관하지 않다. 진정한 G2로 인정 받으려면, 미중이 진지하게 국제사회의 문제들에 대해서 토론하고 대응방안에 합의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미국이 서방측 기업들에 대해 제재조치를 취하면, 미얀마군부는 바로 중국기업들과 거래를 시작할 것이다. 미국은 이를 핑게로 근본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계속 생색만 낸다. 결국 미중 양측이 미국의 인종차별과 혐오범죄, 중국 내 소수민족 문제를 가지고 서로 입씨름하는 동안 국제사회에서의 지도력은 전혀 없는 힘만 가진 깡패로 전락하고 있는 셈이다. 바이든 정부가 근본적으로 미중관계의 구조를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을 하는 G2로 바꾸지 못하는 이상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결국 미중이 미얀마문제를 해결하는데 합의에 도달한다면 국제사회에 G2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을 보여주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어차피 앞으로 오래동안 G1은 불가능하다.

6. 결국 다시 내전이 시작될 조짐이다. 말이 내전이지 화력에서 절대적인 차이가 나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생명이 일방적으로 희생될 지 정말 걱정이다.

성경의 창세기에는 최초의 인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에덴이라는 곳에 하나님과 함께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뱀의 꾀임에 빠져 선과 악을 구별할 능력을 주는 선악과를 먹어서 에덴에서 좆겨났다는 이야기. 여기까지는 상식처럼 알려진 신화이다. 모든 신화가 그렇듯이 이 기록은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가치관이 탐구의 대상이어야 한다.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게 되자, 가인은 스스로 선과 악을 구별하여 질투심에 눈이 멀어 동생 아벨을 죽이는 죄를 짓는다. 그러나 판결은 하나님의 몫으로, 가인은 세상을 유리하는 자가 되게 하는 벌을 주고 그러나 도중에 만나는 자들이 가인을 추가로 체벌하지 못하도록 표를 주고 가인을 죽이는 자는 일곱 갑절의 벌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가인과 같은 자가 또 나타난다. 라멕이라는 자이다. 그는 가인처럼 살인죄를 짓는다. 그러나 처벌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스스로 보호하는 판결(가인을 해친 벌이 일곱 갑절이라면 라멕을 해치는 벌은 일흔일곱 갑절이다)도 스스로 한다.

그는 성경에 기록된 것으로는 최초로 부인이 둘이었던 자로 아마 당시에 가장 힘이 있는 자였을 것이다. 그리고 힘이 있는 자여서 죄를 짓고서 죄를 정하는 것도 본인이고 그 죄를 처벌하거나 보호조치를 취하는 것도 본인이다. 요즘 김학의 사건을 처리하는 소위 사법고시 출신들의 하는 짓이 딱 그거다. 공소시효를 넘기도록 시간을 끌고, 누구나 확인 가능한 영상을 보고도 확정할 수 없다고 판결하더니 급기야는 해외출국금지조치가 불법이었다고 당시 수사담당자들을 수사에 착수한 그들 말이다. 큰 범죄가 작은 범죄를 단죄하는 이 풍경이야말로 창세기적 관점에서 보면, 선악과를 따먹은 죄의 결과이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그 어떤 권력도 독점하도록 허용하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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