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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꼬라지?/살면서 가끔...

정년을 앞 두고

(2024. 12. 25 적음)
정년을 앞두고,

1.계속 사무실의 짐을 버리고 있다. 원서들을 버리는 것이 한편으로는 아깝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오랜 시간 나를 억누르던 짐을 벗는 것 같아 시원하기도 하다. 쓸데 없이 연구해보고 싶은 주제가 많았던 탓에 폭넓은 분야의 책을 사두었으나 결국 비싼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다.(환경오염범)

1-2.서랍에서 오래 전 제자들이 보낸 손편지들이 한묶음 나왔다. 지금은 대부분 이름도 기억 못하지만 가슴 따뜻해지는 편지들을 다시 하나씩 읽어보면서 파쇄기에 집어넣었다. 추억은 그 자체로 이미 내 삶의 자양분이었으니 남겨둘 필요는 없다.

2.지난 10년 이상을 한중 민간교류가 동아시아 평화 유지에 핵심이라고 믿고 추진하던 학생교류, 오는 1월에도 한다. 정년을 이제 두 달 앞두고 있지만 이번에도 거의 모든 준비를 혼자하고 있다. 내가 정년한 후에는 오랫동안 공을 들여온 프로그램들이 그대로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 회사 꼴이 나라꼴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쉽지만 과로하며 살아온 시간들과 단절하는 것이 행복하다.

2-2.박그네 때 교수 하나가 친위대 성명에 가담하고 지금 교무처장 하는 것을 보니 부러웠나? 이번에도 윤서결 친위대 성명에 한 사람이 가담했다. 몇 년 뒤, 교무처장 감이다.(?) 나는 상관 없는 시간이니 그것도 담담하다.

3.연금으로 살아가려면 그동안 후원하던 것들을 줄여야 할텐데 이것이 가장 큰 마음의 짐이다. 아직도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청지기로 살기가 녹록하지 않은 시대이다.

4.정년 후 시간에 대해 아무 것도 정하지 않았다. 교수가 부족해 대학원 강의를 반드시 해줘야 한다는 학과장 요청 때문에 갈등이다. 해방을 만끽하고 싶고, 그나마 남은 자들이 만장일치로 요청하는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마 자립마을 프로젝트(여러 나라 가난한 마을의 자립기반을 만들어주는 일)에 내 재능을 발휘할 수 있을 듯 하다.

5. 2024년, 나에게는 가장 끔찍했던 해로 기억될 것이다. 그 악몽의 끝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계엄사태였다. 4월과 10월, 그리고 12월. 강한 멘탈로 버텼다. 그 모든 죽음 앞에 망각만이 나를 구원하리라 여기며 버티고 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속히 오시옵소서.

5-2.고등학생 나이 때부터 친구였던 이들의 단톡방에서 조용히 나왔는데, 몇 주가 지난 뒤 누군가 내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는지 다시 초대해서 불려들어갔다. 오랫 동안 친구로 지내왔지만, 차별금지법을 넘어서지 못하는 기독교인들과 더 이상 친구로 지낼 자신이 없다.

6.죽은 자들이 죽은 자의 장사를 지내게 하고 나는 산 자들 속에서 삶을 세우며 살아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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