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인플레감축법이라고 이름을 붙이고서는 사실상 무역장벽을 높게 쌓아올리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로 미국은 더 이상 자유무역을 추구하지도, 자유시장국가라고도 우길 수 없게 되었다(여전히 이렇게 믿는 나라는 미국을 제외하면 한 나라뿐인듯 하다). 여기에 한국산 전기차들이 규제치를 통과하지 못해 전기차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다들 우와좌왕하고 있다. 그래서 이법은 중국을 겨냥한 듯 보이지만, 노골적으로 한국을 겨냥한 법이다. 중국산전기차를 미국에 수출하기에는 원가경쟁력은 높아도 제품경쟁력은 높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 자동차회사들은 아직 전기차 시대에 진입하지 못했다. 미국의 입장에서 그 법의 성공여부는 5년쯤 뒤에나 확인할 수 있겠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않을 것 같다.
첫째는 과거 경험이 그렇다고 말한다. 미국은 1970년대 말~1980년대 초에  일본 자동차기업의 미국 수출이 계속 증가하자, 두 가지 조치를 취해서 이를 억제하려고 했다. 하나는 '자동차수출 자율규제'라는 이름으로 일본기업들에게 강제로 수출 물량을 제한하게 했다. 두번째는 일본 엔화의 가치를 폭등시켜서('플라자합의') 일본 메이커들이 미국에 수출해서 돈을 벌 수가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일본 기업들은 그대로 있지 않았다. 주요 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지어 미국산 자동차로 판매했던 것이다. 혼다의 경우에는 미국내 생산이 일본내 생산을 초과할 정도였다. 기업은 유기체와 같아서 본능적으로 살길을 찾아낸다.
둘째는 원가 때문이다. 요즘 미국내에 전기차공장, 특히 배터리 공장을 새로 짓는다는 뉴스가 많다. 기업들은 투자비용보다 운영이익에 관심이 크다. 보통 투자에는 다양한 보조금이 있고, 일단 투자한 다음에는 이것이 자산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결국 기업의 시장 경쟁력은 투자비용이 아닌 변동비용(운영수익)에 의해 결정된다. 지금 미국은 투자 바람이 불어서 일자리를 늘리는 효과를 보겠지만(1980년대에도 그랬다) 이 기회에 미국 기업들이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정치인들을 위한 보여주기가 될 뿐이다. 90년대 들어 미국 자동차회사들이 점점 쪼그라들어, 지금은 후진국 사람들이 선망하는 브랜드일 뿐이다. 원가를 낮추고 경쟁력있는 제품을 만드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당분간은 보조금 덕분에 경쟁력을 회복하고 다시 회생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정부가 영원히 보조금을 줄수는 없으므로 결국 원가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 정부의 바램과 달리, 포드와 테슬라는 중국의 최대 배터리 업체인 CATL과 배터리 합작회사를 미국내에 설립하기로 했다.
셋째는 앞의 두 요인의 결합으로, 결국 고 품질을 유지하면서 가격경쟁력을 가진 기업의 제품이 승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에 중국 배터리 관련기업들의 투자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기업들 입장에서는 미중경제전쟁은 그것이고 자기들은 살아야한다는 절박감이 넘쳐날 수밖에 없다. 이때 택할 수 있는 전략은 우회전략이다. 그 우회전략의 중간기착지로 한국이 적당하다. 우리 기업들에게는 유럽이 적당하다. 아무튼 적당한 우회경로를 모색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 핵심은 두 가지 전략이다. 어차피 전기차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고급차 시장을 공략하는 것과 또 하나는 보조금을 받는 조건에 맞추지 못해도, 보조금을  받는 미국산 자동차만큼  싸게 만들면 된다. 이때의 핵심은 중국과의 관계가 좋아야 하고 제품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이미 현대-기아차는 이런 야심적인 도전이 가능할 만큼 성장했다. 

올해 여러 자료를 읽고 정리한 내용입니다. 공학자가 아니고 촛점이 자동차회사들의 신기술도입에 대한 태도를 말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급발진사고에 대한 해답을 기대하고 읽으시면 실망하시겠지만, 미국의 자료를 널리 살펴보고 정리한 것이라 관심을 가지신 분이 있다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연말에 출판된 상태 그대로 PDF 파일로 첨부합니다. 내용을 인용하고자 하는 분들은 반드시 인용원칙에 따라 논문집 등이 명기된 출처를 밝히셔야 합니다.)


11 김현철(공개).pdf



[그림 ] 도요타 렉서스 폭주사고(세일러 일가의 사망 사고)지점 설명: 좌회전을 위해 서서히 이동 중이던 다른 차의 뒷부분을 받고(‘A’인근, 1차 충돌) 펜스를 부수고 도로를 벗어나 흙으로 쌓은 제방에 충돌한 뒤 다시 튕겨나(‘B’인근, 2-4차 충돌) 강변의 경사면을 지나 ‘C’인근의 강변 잡목 숲에 떨어져(5차 충돌) 불에 탐.(구글 맵스의 위성사진에 필자가 설명을 위해 대략적인 위치표시를 했음)

최근  한국지엠 사장이 군산을 방문해서 그저 그런 답을 했다고 몇 분이 허탈해 하는 글을 쓴 것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10월에 받았으나 바빠서 읽지 않았던 미국 와튼스쿨의 경영대학원에서 보내오는 정기 레터에 지엠의 CFO(재무담당최고경영자)와 와튼스쿨의 자동차산업 전문가 맥더피의 대담 내용이 있더군요. 요지는 이렇습니다


1. 지엠은 모델 라인을 완전히 정비하여 곧 신모델들을 연속적으로 세계시장에 투입할 수 있다. 이를 위해 2년 동안 자본투자를 2배 늘렸다. 이는 미래를 위한 투자이다.

2. 오펠이 지난 14년 동안 연속적자를 보인 것은 생산능력은 과잉인데, 수요는 낮기 때문이다. 유럽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어 근본적인 비즈니스 재구축(restructuring)이 필요하다. 그래서 오펠은 공장이나 생산직이 아닌 사무직과 스텝진 그리고 경영직에서 인원 감축을 실시한다.(이점은 한국지엠에서 사무직 대상 명퇴신청을 받았던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3. 피아트의 회장 Sergio는 근본적인 조치로 합의에 기초한 유럽에서 생산설비 감축을 주장하지만, VW은 필요 없다고 반응했다.

4. 오펠의 회생전략은 새 모델 투입과 이를 판매하는데 있다. 이를 위해 Adam이라는 city car와 Mokka라는 소형 SUV를 준비하고 있다.(정정: 아담은 소형차이고 모카는 한국모델명 트랙스의 유럽모델명입니다)

5. 지엠이 중국에서 성공한 요인은 최초 진출자 잇점과 상하이지엠과의 상호이익적인 유대관계 때문이다.

마지막 부분(5)이 좀 거슬리는 부분입니다. 제가 만났던 상하이지엠 관계자들은 한국지엠 덕분에 성공했다고 말하면서 계속 한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또 지엠이 최초 진출자가 아닙니다. 이미 오래전 폭스바겐이 진출해 있었고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도 몇 개 진출해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 분이 일관되게 자동차업체의 성공은 상품성에 있다고 했고 또 이를 위해 전적으로 노력한다고 했으면서도 정작 중국지엠의 성공요인을 언급하면서 상품성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습니다. 중국에서 팔리는 차는 거의 대부분이 한국지엠이 개발한 모델들입니다.


문제는 1950년대 이래 지엠의 9명의 최고경영자 중 7명이 재무부문출신입니다. 따라서 이분이 차기 CEO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인식 수준으로 볼 때 한국지엠은 역할과 기능에 관계 없이 찬밥 신세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은 것 같습니다.물론 이런 인식은 지엠 자체의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않을 뿐 아니라 지엠 먹튀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기도 해서 걱정됩니다.

지엠은 정말 정신을 차린 걸까?

 

지엠이 쉐보레 스파크EV(전기자동차)를 이달 말 열리는 LA모터쇼에 출품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전기자동차를 핑계로 미국 내 판매용 스파크를 미국 내에서 직접 생산한다는 주장이 솔솔 들린다. 일단 나는 이 주장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미국 내 생산을 위해서는 조립라인과 부품 조달을 위한 공급사슬(supply chain)을 재구축해야 하는데, 지엠에 그만한 자금 여유가 없을 뿐 아니라 스파크가 그렇게 할 수 있을 만큼 수익성이 좋은 차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지엠이 모든 제품라인을 재구축하는 중이라는 점도 자금 사정을 더욱 압박하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오히려 EV도 한국에서 생산하여 미국에 판매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합리적이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이미 크루즈 생산을 독일의 부실 자회사인 오펠로 넘기기로 결정한 상태에서 스파크 생산마저 미국으로 넘기면 당연히 지엠먹튀를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는 점이다. 이건 쉽지 않은 결정인데, 오펠이 크루즈를 가져가서 회생한다는 보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아니 내 생각에는 3-4년 뒤부터는 오히려 한국지엠이 생산할 때보다 나쁜 상황을 맞을 가능성이 더 많다. 스파크 역시 미국 내 생산으로 상황이 나아진다는 기대는 아직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먹튀로 낙인찍힌 뒤 다시 한국으로 복귀해야 하는 아주 곤궁한 처지가 될 수 있다. 소형차의 보물인 한국에서 뒷문을 닫고 떠나는 멍청한 짓을 할 만큼 지엠 사정이 녹록치 않다.

 

지엠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집단이라면 한국은 여전히 경소형차의 거점으로 유지할 것이다. 신흥국시장에서는 현지 생산으로 감당할 수 있지만, 고품질의 경소형차가 필요한 선진국 시장을 공략하는 데는 여전히 한국이 최적의 개발 및 생산기지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생산하는 차를 미국에서 판매할 수 있으려면 앞으로도 10-20년은 더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쯤이면 이미 중국은 세계 제일의 경제강국이 되어 현재와 같은 저임금국가에서 저 멀리 떠난 뒤가 된다.


앞서 다른 글(http://alafaya.tistory.com/299)에서 말했듯이 군산공장의 문제에 대한 해법은 바로 여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문제는 지엠이 그정도로 정신을 차렸는가?이다. 혹시 아직도 '우리가 세계 최대야, 우리가 하면 다 되'라는 몽상에 머물러 있다면 무슨 짓을 못하겠는가? 부디 한국지엠과 지엠이 공생하는 길을 선택하길 바랄 뿐이다.

BBC(2012. 11. 14*) 보도에 따르면 도요타가 4주전에 740만대를 리콜한데 이어 다시 270만대를 리콜한다고 한다. 20091200만대 리콜에 이어 다시 대량 리콜을 하고 있는 것이다.

 

4주전의 리콜은 윈도우 스위치 결함으로 화재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 리콜에는 2세대 프리우스도 포함되는데, 리콜 원인은 하이브리드 워터펌프의 결함과 핸들 결함 때문이다. 이는 누구도 품질에서 완벽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증거이지만, 도요타가 받는 충격은 2009년과 같이 대형 충격은 아닐 것이다.

 

나는 2009년 대량리콜사태의 배경이 이미 1990년대 중반 이후 나타나기 시작한 도요타의 도요타다움의 상실에 있다고 했었다. 우리가 듣기도 하고 그래서 알고 있는 좋은 이미지의 도요타는 그 이전에 존재했던 도요타이고, 지금의 도요타는 그냥 여러 자동차 메이커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재현된 대량 리콜은 바로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 http://www.bbc.co.uk/news/business-20321932


(이 글이 베스트 자리에 올랐군요... 그만큼 한국지엠이 한국사회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나봅니다.)


지금 군산(전북)에서는 지엠의 먹튀 가능성과 군산공장의 운명에 대한 걱정이 많다. 이데일리가 ‘2014년 출시 예정인 지엠의 준중형차 쉐보레 크루즈의 후속모델(J400)이 한국을 제외한 미국 등 5개 공장에서 생산될 예정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나오는 이야기로는 이 모델의 개발은 독일의 오펠이 주도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이 모델은 처음 한국에서 시작했지만, 2015년부터는 수입차가 되는 것이다.

이 일로 군산시장이 지엠을 방문하는 등 요란스러운 모양이다. 자동차산업을 주요 연구분야로 삼고 있는 군산시민으로서 나도 걱정이다. 한편으로는 핵폐기장 논란이 있을 당시에 후보지가 한국지엠(당시 지엠대우) 공장 인근이어서 지엠이 반대하자 전시되어 있던 자동차를 부수며 지엠은 군산을 떠나라고 외치는 만행을 저질렀던 그 군산이 지금의 군산과 같은 도시인지 아리송하기도 하다.

 

먼저 지엠을 좀 자세히 살펴보자. 지엠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하던 시기는 사실 이미 지엠이 몰락의 길로 들어선지 오래였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로 미국의 자존심이었지만 경영지표 상으로는 수익성이 거의 없는 껍데기 회사였다. 그런 지엠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것은 순전히 큰 돈 안들이고 소형차 경쟁력을 확보하는 노다지였기 때문이다.

 

200012CNN의 보도에 따르면 지엠은 100년의 전통을 가진 자동차 브랜드인 올즈모빌의 브랜드 청산을 포함한 영국의 복스홀(Vauxhall)과 독일의 오펠(Opel) 등 유럽지엠도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었다. 이런 조정 작업은 2000년대 중반 이후, 과거에 실패했던 오펠 기반의 월드카전략과 유사하지만 조금 개념이 발전한 모델별 거점을 구축하는 전략으로 나타났다. 이때 한국지엠의 역할은 경소형차의 거점이었고 이를 위해 한국에 연구개발센터를 세우기로 하였다.

 

아마 내가 여기저기에서 이 연구소를 군산으로 유치하지 못하면 군산공장의 운명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지엠의 거점 전략이란 거점에서 개발 및 생산하여 세계에 공급하지만 거점에 해당하지 않는 차종은 해외에서 수입하여 판매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거점 차종의 생산량이 많지 않으면 연구소 인근의 공장 외에는 쓸모없는 공장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이때도 군산시나 정치, 언론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 후 2008년의 불경기와 금융위기로 지엠은 결국 정부의 구제금융으로 목숨을 연명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 위기는 유럽의 신용위기로 이어져서 지엠은 유럽에서도 곤경에 처해있다. 10월 말에 나온 오토모티브 월드(AutomotiveWorld)의 자료에 따르면, 유럽 자동차 판매는 영국만 증가하고 독일은 혼조세이며, 나머지 모든 나라들이 큰 비율로 하락하였다. 거의 20년 만에 겪는 최대 위기이다. 이런 시장 환경에 더하여 유럽지엠은 수년간 적자행진을 지속하고 있는데 적자규모는 금년 3/4분기에만 478백만달러에 달한다. 오펠은 1999년 이래 누적적자가 150억 달러 이상이다.

 

한편 한국지엠은 지난해 과거의 지엠대우라는 브랜드를 버리고 쉐보레로 전환하였다. 나는 이문제로 오랫동안 함께 자동차시장을 연구해온 한 연구자와 대화한 적이 있었다. 그 연구자는 한국 시장에서 쉐보레 브랜드가 대우라는 브랜드보다 젊은 층에 더 어필하기 때문에 분명히 손해가 아니라고 했으나, 나는 생각이 달랐다. 국내시장에서는 분명히 손해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더 이익이지도 않다. IT수단이 매우 널리 퍼져있고, 또 젊은이들의 IT 활용률이 극단적으로 높은 한국에서 브랜드 바꾸기는 어설픈 눈속임으로 치부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시장을 크게 늘릴 수 없을 것이라고 보았다.

 

더 큰 문제는 해외시장에 있다. 지엠이 유럽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은 아주 단순한 상품성 문제이다. 상위 시장에서는 BMWMercedes-Benz와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확고하게 자리하고 있고, 중형차 이하에서는 일본과 한국의 자동차들이 이미 시장을 잠식한 상태이다. 금년 9월까지 유럽의 자동차판매 실적을 보면, 재규어-랜드로버(JLR)32% 늘어난 것을 제외하면, 현대가 9.6%, 기아가 20.5% 증가하였고 폭스바겐이 3.5% 증가했다. 나머지 회사들은 모두 감소했다. 소규모 프리미엄 브랜드인 JLR을 제외하면 사실상 현대-기아의 잔치였다.

 

과거 도요타와 닛산, 그리고 혼다라는 일본의 3대 자동차메이커가 세계시장에서 성공하면서 다른 일본 업체들도 덩달아서 수출이 증가했던 것처럼, 현대-기아의 인지도 제고와 판매증가는 다른 한국 업체에 외부효과로 작용하여 판매 증가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브랜드를 쉐보레로 바꾸면 그런 효과를 얻을 수 없다. 그래서 브랜드 변경은 손해 볼 게 없는 선택이 아니라 득 될 게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지엠도 이를 염려해서인지 크루즈의 후속모델은 기존 크루즈보다 등급을 상향조정하여 내놓을 계획인 것 같다. 아래 등급으로 내려갈수록 일본이나 한국 자동차와 경쟁에서 견뎌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기저기에서 문제투성이인 지엠이 그나마 좋은 실적을 거두고 있는 곳은 중국시장이다. 중국의 지엠은 과거 압도적으로 중국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폭스바겐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경쟁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 배후에 한국지엠이 있다는 것은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문제는 지엠 본사이다. 이들은 한국지엠이 한국인의 고용유지를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자기들의 이익 확대를 위해 필요할 뿐이다. 이것을 욕할 수는 없다. 그것이 기업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군산공장을 닫는 것이 이익이면 닫을 것이고 유지하는 것이 이익이면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정부의 구제금융으로 버티고 있는 지엠이 미국 내 공장은 무작정 폐쇄할 수가 없다. 뉴욕타임즈의 보도에 따르면,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한 것은 미국 내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다는 국민들의 인식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고 한다. 오바마정부는 지엠이 미국 내 공장을 줄이지 못하도록 더욱 압박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엠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너무 빤하다. 개발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는 한국이나 독일에서 개발하고 생산은 시장 가까운 다른 곳에서 하는 것이다. 한국시장에서 판매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생산지 경쟁에서 한국이 불리하다. 군산으로서는 우울한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놓치면 안 되는 점이 있다. 바로 이렇게 되면 이는 다시 과거에 실패한 월드카전략으로 회귀해 버린다는 점이다. 오래전 지엠이 오펠을 통해 르망이라는 소형차를 월드카라고 선전하며 야심차게 내놓은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 유럽에는 '길가에 고장으로 서 있는 차는 볼 것도 없이 오펠의 르망이다.'라는 말이 있었다. 이때부터 오펠은 내리막길을 걸었고 결국 지금의 부실기업이 된 것이다. 그래서 지난 번 지엠의 회생절차가 시작되었을 때도 오펠은 당연히 정리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슬그머니 오펠 매각은 없던 일이 되었다. 내가 볼 때 월드카전략이 실패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런데 미국공장 유지를 위해 그 실패했던 카드를 지엠이 다시 꺼내들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그럼 대책은 무엇인가? 사실 연구소를 유치하지 못했을 때 이미 선택 가능한 방법은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에 상상력을 동원하기 쉽지 않다. 기대하는 것은 한국지엠이 경소형차의 거점으로 확실히 자리매김 되는 것이다. 거듭되는 금융위기로 세계적으로 빈부격차가 벌어져 경소형차의 판매가 크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내 생산량은 더욱 늘어날 것이고 군산공장은 생산차종을 바꾸어 유지할 수 있다. 적어도 지엠의 구상은 이것이지 무작정 군산공장에서 철수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또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 거점전략이다.

 

그렇지만 기업의 의사결정은 전적으로 기업의 몫이다. 그 의사결정이 환경오염이나 노동착취, 부당해고 등 사회적 의미가 있을 때는 그 지역사회가 개입하고 성토해야한다. 그러나 기업 고유의 전략적 선택에 대해서는 우리의 지혜를 전달할 수는 있지만 성토하거나 시위하는 등의 행동은 오히려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군산으로 입주를 희망하는 다른 기업이 이런 모습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아마 한번 군산에 발을 들여 놓았다가는 지역사회의 경영간섭을 피할 수 없겠구나 하면서 주저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지역사회가 해야 할 노력은 군산, 전북지역의 부품업체들이 군산공장의 생산량이 줄어들어도 생존할 수 있도록, 세계 각지(이데일리 보도대로라면 5)의 공장에 부품을 공급함으로써 오히려 부품 생산량이 늘어나게 유도하는 것이다. 미국 자동차회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이 한국의 부품이다. 만족할 만한 품질에 저렴한 가격이 장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아직 군산 철수를 운운할 단계는 아니다. 그러나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또 적당히 엄포를 놓으면서 지역사회로부터 지원을 받아낼 속셈도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 진실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역사회가 함께 지역의 기업들을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대화함으로써 공동의 발전을 꾀하는 것이다.

(2012.11.7.에 처음 썼다가 11.26. 서해타임즈에 싣기 위해 수정함)



지난 1월 발간된 자동차경제 2012년 1월호에 실렸던 졸고입니다. 당시에 반응이 뜨거웠는데, 이제야 올립니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에서 작성한 PDF형식의 파일을 첨부하여 올리는 방식으로 밖에 올리지 못함을 양해바랍니다. 관심있는 독자의 의견을 기대합니다.

(사진은 서울모터쇼에 출품되었던 한국의 전기자동차)


도요타친환경아키텍처(Jan2012).pdf

  

 

나는 지난 해 초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포스트 도요타를 말해왔다. 영원히 한 산업을 이끌어가는 기업은 없다. 지금 당장은 아니겠지만 도요타도 미래의 어느 날, 지엠이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1위 자리를 넘겨주게 될 것이다. 지금 포스트 도요타를 생각한다면 VW, 혼다, 현대-기아차그룹 정도가 가능하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포스트 도요타 논의의 초점은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하는 점이 아니고 그 자리에 오를 기업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품질의 대명사였던 도요타가 최근에 겪은 경영위기의 본질은 오랫동안 1위 자리를 지켰던 지엠이 누적된 문제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부진한 틈에 갑자기 1위로 올라서는 과정에 내재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도요타 자신은 오랜 세월 도요타시스템을 구축하며 준비해왔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지엠이 몰락하고 도요타가 이 자리를 대체하는 과정이 지나치게 빨리 이루어지면서 신중함이라는 도요타 특유의 정신이 사라졌다. 물론 현대-기아차 그룹이 중국에서 빠르게 성장하여 위기의식을 자극한 점도 신중함을 포기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와 동시에 일본 내 종업원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점, 또 도요타생산방식이 급성장과정에 변질되고, 무리하게 해외에 이식하면서 현장피로감이 증폭된 점 등도 문제의 원인일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후지모토교수는 복잡성의 문제라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글로벌경영의 문제라고 말하고 싶다. 즉 누구든 도요타 이후 자동차산업의 리더가 되려면 다양한 차원에서 글로벌경영의 문제를 연구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연구주제들 중 몇 가지를 살펴보자.

 

글로벌경영의 문제를 다른 각도로 말한다면 생산대수 600만대의 장벽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엠과 도요타, 포드가 모두 생산대수 기준으로 600~700만대의 장벽을 넘으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또 대규모 합병으로 600만대의 벽을 넘었거나 넘기려 했던 르노-닛산, 다임러-크라이슬러 등도 2008년 미국발 부동산버블붕괴로 시작된 경제위기 때 500만대에 못 미치는 기업들에 비해 더 큰 위기를 맞았다. 생산규모가 커진다는 것은 글로벌경영을 한다는 것과 동의어이고 모두 글로벌경영에서 위기를 맞은 것이다. 따라서 생산대수 규모 600~700만대의 장벽이 과연 존재하는지 또 존재한다면 그 원인을 밝혀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인지를 연구해야만 할 것이다.

 

두 번째로 살펴볼 것은 기술지배력의 문제이다. 도요타는 90년경까지 모든 자동차기업들이 연구에 매달리던 전기자동차의 실용성에 의문을 품고 하이브리드에 주력하여 이 부분에서 기술지배력을 분명하게 확보했다. 그렇다면 현대-기아차그룹은 어떤 종류의 차세대자동차에서 기술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일본과 유럽이 선도하는 하이브리드나 클린디젤에서는 추격자로서 제품의 품질로 경쟁하면 되지만 선도기업이 되려면 자신이 지배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리고 기술지배력은 정확한 예측과 막대한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다.

 

세 번째로 생각 할 문제는 선진국시장의 정체 원인 규명이다. 일반적으로 선진국시장은 포화상태여서 정체상태에 있고, 이를 예측할 수 있는 적절한 모형을 개발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나는 최근에 이것이 양극화경제성장과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밝힌 바 있다. 양극화경제성장의 추이를 살펴서 선진국시장의 수요를 적절히 예측하면 좀 더 합리적인 시장관리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미국과 일본 두 나라의 자동차기업들은 모두 양극화경제성장의 쇼크를 겪었으며,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내수시장의 예측과 관리에도 이는 중요한 요소이다.

 

또 다른 시장의 문제로 중국시장을 연구하는 일이 있다. 이미 시장 주도권은 미국과 일본 중심에서 중국 중심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중국 역시 다른 선진국처럼 U자형 성장을 할 것인지, 아니면 사회주의가 가미되어 다른 성장궤도를 따를 것인지를 연구하며 준비해야 한다. VW은 모두가 중국에 들어가길 두려워할 때 과감하게 뛰어 들어 아직도 중국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시장처럼 앞으로 중요한 시장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는 곳이 또 없을까? 이런 관심은 현대-기아차의 시장 포지셔닝에도 중요한 해결방안이 될 것이다. 아마 여기에 노동문제와 도요타 리콜사태의 원인과 해결과정을 연구하여 미리 대비하는 것 정도를 더하면 포스트 도요타를 위한 준비의 대부분이 될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우리나라의 기업이 포스트 도요타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우 다양한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연구는 그 기업이 스스로 모두 다 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다. 이 나라의 많은 연구자들이 함께 이런 문제들을 연구하고 준비해야 한다.


(자동차경제 2010.7월호)
(사진: Toyota Lexus는 2009년 Saylor 일가족 사망사고의 어두운 기억을 씻고 다시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효율화가 중요한 화두가 되자 많은 우리 기업들이 인건비 절감을 위해 중국으로 몰려가는 것이 유행이었다. 다행이 성공한 케이스들도 많지만 실패했다는 소식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인건비가 싸다는 장점만을 믿고 깊은 분석과 전략 없이 뛰어든 결과이다. 숙련된 인력의 부족과 부품소재산업의 낙후를 극복할 전략을 명확하게 수립하지 않으면 오히려 거대한 블랙홀에 빠질 수도 있다. 이런 일은 중국을 시장이 아닌 생산기지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다.

흔히 우리 산업은 샌드위치 신세라고 한다. 고급제품은 일본이나 독일 등 선진국이, 중저가품은 중국이 차지해 가운데 낀 신세라는 것이다. 이 우려할 만한 상황을 해피엔딩으로 끝내려면 중고급시장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 아무리 중국으로 옮겨가도 여전히 우리 기업은 중국기업에 비해 고비용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고, 반대로 중국에서 고급제품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을 갖춘다면 그 조건은 경쟁기업들에게도 똑같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세계 승용차시장은 그 동안 2대 시장이 이끌어 왔다. 북미승용차시장은 미국만으로 픽업을 제외하고 연간 800만대 수준에 이르는 거대시장이며, 서유럽은 1,500만대 내외이다. 일본이 단일 국가로는 미국 다음인 연간 450만대 수준이지만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시장이 크지 않아 아시아시장은 상대적으로 소홀이 다루어졌다. 그러나 사정이 달라졌다. 중국의 2006년 승용차 판매대수가 515만대에 달하면서 극동아시아시장은 세계 3대 자동차시장의 역할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지난다는 판매의 귀재 도요타의 태도에서도 이런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아주 오랫동안 중국과의 합작사업은 오직 기술지도로 일관했고, 합작투자를 결정하고도 시간을 끌던 도요타가 합작생산을 개시하기 무섭게 하이브리드를 투입하고 나선 것이다. 이는 폭스바겐, 지엠 등이 시장을 선점하였으며, 혼다는 기술의 혼다라는 이미지를 확고하게 구축한 상태에서 중국시장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적절한 전략이다. 환경과 기술을 결합한 이미지를 통해 중국 시장을 잠식하고자 하는 계산된 행동이다.

1년 전 만났던 상해시자동차행업협회 서기장 Tang앞으로 도시소비자용 자가용차를 농촌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농촌형모델 개발에 적극 나서겠다.”고 했다. 이는 저가차 시장을 형성해 나가겠다는 말로 바야흐로 저가차부터 최고급차에 이르기 까지 매우 다양한 자동차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곧 미국보다 더 완벽한 자동차시장이 될 것이다.

중국 시장에서 한국 자동차는 투입 초기부터 호조를 유지하며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필자가 시장조사한 바에 따르면 여러 가지 자동차 마케팅 이미지 중 중국소비자들에게 한국차가 경쟁차에 비해 더 어필하는 것은 스타일과 광고였다. 이 속성들은 소비자가 그 제품을 직접 구매하지 않아도 획득할 수 있는 외생적 속성이어서 소비집단의 형성과 확산에 유리하다. 이 사실은 한국자동차가 투입 초기부터 호조를 보이는 이유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가능하게 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초기의 호조가 계속되기 위해서는 품질, A/S, 고객만족 등과 같은 내생적 속성들에서 만족도를 높여 같은 가격대의 모델 가운데 고급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딜러 CI 작업을 통해 점포이미지를 구축하는 것도 고급화 전략의 하나로 고려해볼만하다.

여기에 더하여 저가차 시장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중국정부가 압박하는 독자브랜드 혹은 독자모델 개발 요구를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기존의 모델 개발과 전혀 다른 중국식 모듈형 오픈아키텍처 방식을 부분적으로 실험해 보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경제 2007.5월호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현대자동차)

(사진은 베이징현대 공장전경)




도요타가 갑자기 품질불량의 나락으로 떨어진 까닭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많은 자동차를 리콜(이미 판매한 자동차를 회수하여 불량을 수리한 후 돌려주는 것)하고 있는 자동차회사는, 믿기 어렵겠지만, 일본의 도요타이다. 최근 언론보도에서 드러난 것처럼 2009년 말 부터 리콜한 것만 해도 총 480만대에 이르며, 결국 지난 1월 26일 북미지역 5개 공장이 생산 중단에 들어갔고 8개 차종의 판매도 중단했다. 이는 그동안 도요타 성공신화의 배경이었던 고강도의 노동현실이 이제는 반대로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미국에서 도요타 렉서스 ES350을 타고 가던 일가족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처음에는 차량 매트의 결함이라고 발표하면서 북미시장에서 426만대를 리콜했지만, 다시 가속패달에 문제가 있음(가속패달에서 발을 떼어도 되돌아오지 않아 계속 가속되는 현상)이 밝혀져 추가로 리콜을 실시하면서 생산 및 판매 중단이라는 이번 조치로 이어진 것이다. 판매가 중단된 8개 차종에는 도요타 신화의 주역인 캠리와 코롤라도 포함되어 있다.


사실 일반 소비자들이 도요타의 자동차를 사랑하는 동안에도 이미 전문가들은 도요타의 품질문제를 우려해왔다. 소비자들만 짝사랑을 해왔던 것이다. 지난 2006년 7월 24일, 일본의 대표적인 경제전문지 [주간동양경제]는 커버스토리로 도요타의 품질신화가 붕괴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2000년대 들어 급증한 리콜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에는 일본에서도 판매대수보다 더 많은 자동차를 리콜했다. 2001년 일본에서 판매대수의 1.4%만을 리콜했던 도요타가 2005년에는 판매대수의 34%에 달하는 자동차를 리콜했다. 반대로 혼다는 2001년에 21.9%를 리콜했으나 2005년에는 3.6%만을 리콜했다. 2005년에는 미국에서 크라이슬러보다도 더 많은 자동차를 리콜해야했다. 품질저하는 당연히 인명사고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번 사태가 이 글의 제목처럼 갑자기 터진 일은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결코 갑자기 터진 일이 아니다


리콜 사태는 유럽과 중국으로 번져 도요타는 세계적인 리콜사태에 빠졌다. 지난 수년 동안 리콜을 미루면서 시간을 끌어 왔던 것이 한꺼번에 터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일부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이번 사태가 설계결함 때문으로 밝혀지면 생산현장의 품질문제가 연구개발부문으로 확대되는 것을 의미해 도요타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 수도 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품질의 대명사였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의 기업들이 도요타를 배우자고 외쳤는데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도요타 생산방식에 있다. 여기에 최근 몇 년 동안 급성장으로 세계 1위 자동차기업이 되면서 보수적인 경영방침에서 후퇴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도요타생산방식은 노동자들을 단 한순간도 한눈팔지 못하고 노동에만 매달리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도요타를 방문하고 돌아와서 말하는 소감의 첫 마디는 ‘노동자들이 뛰어다니면서 일한다’는 말이었다. 거기에 정부나 경제단체들은 ‘도요타가 고수익에도 불구하고 임금을 동결하고 있다고 보고 좀 배우라’고 다그치곤 했다. 그러나 바로 이 고강도의 노동과 임금인상 억제라는 경영정책이 세계 1위가 된 지금 도요타의 발목을 잡고 있다.


과거 도요타의 노동자들은 2차대전 패전 후 복구와 도요타의 부도위기 극복과정에서 만들어진 공감대를 바탕으로 이런 정책을 말없이 수용하였다. 그러나 그 세대 노동자들은 정년퇴직으로 노동현장에서 사라지고 이 자리는 경제대국 일본의 신세대 노동자들로 채워지면서 이런 정책은 도전에 직면하였다. 행복하지 않은 노동자는 결코 높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원가절감 요구는 하청업체 역시 도요타생산방식을 통해 대응하게 만들었고 도요타와 같은 노동의 문제를 야기한다.


행복하지 않은 노동자에게 높은 품질 기대할 수 없어


다가 세계 1위라는 욕심 때문에 안전위주의 경영이라는 도요타의 본래 모습과 반대로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해외공장을 늘렸다. 해외공장의 노동자들은 이런 노동조건을 더더욱 수용할 수 없는데도 도요타는 해외공장에 많은 본사 노동자들을 파견하여 같은 생산시스템을 강요해왔기 때문에 해외에서 품질 저하는 예견된 일이었다. 그런데 본사 노동자의 해외파견 증가는 다시 본사의 인력부족을 가져왔고 이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웠다. 이는 본사의 노동품질 저하를 가져와 일본 내 자동차품질도 떨어트리는 악순환에 빠졌다.


이번 사태가 암시하는 또 다른 문제는 만약 이번 품질문제가 단순히 생산품질의 문제가 아니고 설계문제일 때 발생한다. 도요타생산방식을 린생산방식이라는 세계 제조업의 표준으로 자리 잡게 한 가장 큰 장점이었던 연구개발기간 단축이 허상일 수도 있다. 기간단축과정에 연구개발인력도 생산노동자들처럼 행복하지 않은 노동조건 속에서 설계품질 저하가 발생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결국 도요타가 세계 1위가 되는 시점을 뒤로 늦추고 노동자의 몫을 늘리면서 서서히 준비 했다면 오늘과 같은 사태에 이르지는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해외생산기지를 적정한 수준으로 억제하고 일본 내 생산에 좀 더 충실하면서 해외공장은 그곳의 문화에 적응한 새로운 생산시스템을 개발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번 사태는 현대자동차를 비롯하여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한 우리나라의 다른 거대 기업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결국 노동강도와 임금은 매우 정교하게 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자동차산업은 노동강도는 약하고 임금은 높은 구조 속에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반대로 도요타는 너무 높은 노동강도와 통제된 임금으로 크게 번성하여 세계 1위가 되었지만 즉각 위기에 빠졌다. 노동자에게만 도요타를 배우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결국 도요타처럼 1위에 오르면서 동시에 위기에 빠지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오히려 생명력이 더 강한 생산방식과 노동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생명력 강한 생산방식과 노동모델 만들어야


OECD의 어느 연구에 따르면 2008년의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 독일의 실업률이 급증할 것으로 예측했지만 실제로는 별로 증가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를 조사해 보니 독일의 주력산업인 기계/자동차부문에서 실업이 거의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 때 위기에 빠졌으나 위기를 맞았을 때 해고 대신 임금을 낮추어 함께 살고, 수익이 날 때는 임금을 적절히 지불해 숙련노동자를 유지해온 독일의 자동차기업들이 지금은 다시 예전의 명성을 되찾았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2010. 1. 29.최초 작성, 2. 2. 수정)

(사진: MotorTrends의 홈페이지에 실린 것으로 렉서스 브레이크가 작동되지 않은 이유를 보여주고 있음)


현대자동차 전주 중대형상용차공장이 지난 1년 가까이 지역뉴스는 물론이고 전국적인 화제꺼리가 되고 있다. 지난해 5월부터 추진해 온 주야2교대 근무체제를 놓고 노사가 서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대형상용차시장은 소수의 업체가 장악하고 있다. 예를 들면 스웨덴에는 승용차와 상용차를 생산하던 볼보, 승용차를 생산하는 사브, 그리고 한때 사브 계열로 상용차를 생산하는 스카니아가 있다. 그런데 볼보의 승용부문과 사브는 경쟁을 이기지 못하고 미국에 팔리고 말았으나 대형상용차를 생산하는 볼보상용차와 스카니아는 여전히 지구 반대편 우리나라까지 수출할 뿐 아니라 시장의 상당부분을 장악하고 있을 만큼 높은 수익을 자랑한다.


현대차는 최근 서울계동사옥과 울산공장에 노사전문위원회 사무실을 내고 활동을 개시했다. 노사전문위는 노사 양측이 추천한 각 5인의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연구와 자문 활동을 하는 조직으로 노사 양측 간부들로 이루어진 실무위원의 협조를 받아 현안 해결에도 나서게 된다. 이들은 노사간 신뢰구축을 통해 현재의 대결중심의 노사관계를 정책중심의 노사관계로 전환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노조에는 생산성 향상을, 회사에는 고용안정을 유도하는 역할도 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2005년 노사협의 때 합의한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방안을 연구하기 위해 구성된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이 방안이 노사 양측에 의해 원만히 수용될 때 비로소 성공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전주공장의 핵심 논쟁은 주간연속2교대냐 아니면 주야2교대냐 하는 점이라고 한다. 사실 주간에 활동하도록 만들어진 사람이 야간에 노동을 하면 사고 위험이나 피로감이 증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당연히 야간 근무를 기피한다. 이런 문제가 2005년 노동쟁의의 핵심 사안이었고 노사전문위원회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따라서 노사전문위의 연구결과에 의한 합의가 나오기 전에 어차피 주간2교대로 갈 것이니까 처음부터 주간2교대로 시작하자는 노조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반대로 이미 양자가 인식하고 있는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주야간2교대를 돌리자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중국에서 생산하겠다고 협박하는 회사나 이에 동조해서 노동자들을 압박하는 전라북도 및 일부 단체들의 처사 역시 정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미래지향적이지도 않다. 품질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중국에서 생산하면 생산적체는 해결되겠지만 고수익성 사업으로 발전시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특별사면에서도 확인되었듯이 비자금을 조성하고 뇌물을 상납한 경영자들은 사면되지만 노동쟁의과정에서 불법을 범한 노동자들은 사면 받지 못함으로써 노사가 법 앞에 공평하지 않기 때문에 그 둘 사이에는 결코 건너지 못할 선이 그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전주공장 사태 해결의 첫 단추는 노사전문위처럼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는 아니지만 입장이 분명한 중재자들이 타협을 중재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노동자들 앞에서 시위하는 것은 정면충돌을 조장하는 것일 뿐 사태해결 방법은 아니다. 노조 역시 적절한 타협점을 찾고자 노력하지 않으면 고립에 빠지게 되고 이는 과거로 회귀하는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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