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어느 날 작성했으나 잃어버린 글이었는데, 퇴직하면서 사무실을 비우다가 기적적으로 최초 메모한 것을 발견하여 다시 작성했다.)
나는 한국현대사에서 선생님처럼 위대한 스승이 또 있다는 말을 아직 듣지 못했다. 내 이야기가 허풍이라고 생각되는 분은 부디 <김교신-그 삶과 믿음과 소망, 김정환지음, 한국신학연구소>를 읽어 보시기 바란다.
물론 선생님은 1945년 4월에 44세를 일기로 돌아가셨으니, 내가 태어나기 무려 15년 전의 일이다. 선생님에 대해서는 류달영교수(https://ko.wikipedia.org/wiki/류달영)의 제자였던 선친을 통해서 어렴풋이 들어 알았고, 성인이 되어서 비로소 몇 가지 간단한 문헌을 통해 선생님을 배웠다. 그리고 선친의 뜻을 따라 나 역시 교육자가 되었다. 마침 내가 서점에서 우연히 위 책을 발견한 것이 1994년, 즉 내가 한 재벌그룹의 경제연구소에서 대학으로 직장을 옮긴 해였다.
손기정선수(https://ko.wikipedia.org/wiki/손기정)의 담임선생이기도 했던 선생은 친히 손선수를 훈련시켜 올림픽 금메달의 주인공으로 성장시키기도 했다.(아래 손기정선수의 증언) 선생이 주간이 되어 발행하던 잡지 <성서조선>에 조와(개구리를 애도함)라는 제목의 자신의 글을 실었는데, 일제는 이 글이 조선의 독립정신을 고취시킨다고 하여 성서조선을 폐간시켰고 선생님은 옥고를 치러야 했다(아래에 전문). 이는 한글을 연구하던 민간단체인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여러 사람이 옥고를 치렀던 것보다 1년 전의 일이다.
말년(44세에 돌아가셨으니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다)에는 흥남비료공장에 들어가서 징용되어 온 한국인 노무자들을 돌보며 사셨다. 그러나 노무자들 사이에 전염병(발진티푸스)이 퍼졌고 감염자들을 보살피다가 선생님도 감염되어, 해방을 눈앞에 둔 1945년 4월 25일 끝내 해방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선생님의 글 중에서 내가 교육자로 살아가면서 좌우명처럼 기억하게 된 것은 다음 글이다.
“『성서조선아, 네가 만일 그처럼 인내력을 가졌거든 너의 창간일자 이후에 출생하는 조선사람을 기다려 면담하라, 담론하라. 동지를 한 세기 후에 구한들 무엇을 한탄할손가. (1927년 7월호)“
교육자로서 당장 눈앞의 교육성과를 위해 살지 않기. 그래서 나는 언제나 학생들을 미래 한국사회를 지탱하는 시민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려고 최선을 다했다.
손기정선수의 증언(위 책에서 옮김)
교사에는 지식으로 사람을 가르치는 교사가 있고 덕으로 가르치는 교사가 있다. 지식으로 가르치는 교사한테서는 기술자한테 기술을 배우듯이 지식을 배울 뿐이지만, 덕으로 가르치는 교사한테서는 인생 그 자체를 배운다. 그러므로 후자의 경우는 뭘 배운다기보다 마치 어머니의 젖과도 같이 먹으면 살이 되어 성장하게 된다. 이런 교사야말로 참 교사가 아니겠는가? 내가 배운 김교신 선생님은 바로 이런 분이시다. 어쩌면 선생님은 나면서부터 인생의 지도자가 될 사명을 띠 셨는지도 모르겠다. … 선생님처럼 옳은 일이라면 그것을 곧 직접 실천에 옮기는 분도 아마 그리 흔하지 않을 것같이 생각된다.
조와 전문
작년 늦은 가을 이래로 새로운 기도터가 생겼다. 층층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가느다란 폭포 밑에 작은 연못을 형성한 곳에 평탄한 반석 하나가 연못 속에서 솟아나 한 사람이 꿇어앉아서 기도하기에는 하늘이 마련해 준 성전이다.
이 반석 위에서 때로는 가늘게 때로는 크게 기도하고 간구하고 찬송하다 보면, 전후좌우로 엉금엉금 기어오는 것은 연못 속에서 바위의 색깔에 적응하여 보호색을 이룬 개구리들이다. 산 속에 큰일이나 생겼다는 표정으로 새로 온 손님에게 접근하는 친구 개구리들. 때로는 5,6 마리, 때로는 7,8마리.
늦가을도 지나서 연못 위에 엷은 얼음이 붙기 시작하더니 개구리들의 움직임이 날로 날로 느려지다가, 나중에 두꺼운 얼음이 연못의 투명함을 가리운 후로는 기도와 찬송의 음파가 저들의 고막에 닿는지 안 닿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이렇게 소식이 막힌 지 무릇 수개월 남짓!
봄비 쏟아지던 날 새벽, 이 바위틈의 얼음 덩어리도 드디어 풀리는 날이 왔다. 오래간만에 친구 개구리들의 안부를 살피고자 연못 속을 구부려 찾아보았더니 오호라, 개구리 시체 두세 마리가 연못 꼬리에 둥둥 떠다니고 있지 않은가!
짐작컨대 지난 겨울의 비상한 혹한에 연못의 적은 물이 밑바닥까지 얼어서 이 참사가 생긴 모양이다. 예년에는 얼지 않았던 데까지 얼어붙은 까닭인 듯. 얼어 죽은 개구리의 시체를 모아 매장하여 주고 보니 연못 바닥에 아직 두어 마리가 기어 다닌다. 아, 전멸은 면했나 보다! (현대어 번역 www.biblekorea.net, 재인용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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