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7.22 씀)
우리 세대는 마카로니 웨스턴이라고도 하는 이탈리아 서부극을 보면서 학생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엔니오 마리꼬네를 사귀었다. 그의 음악은 우리에게 영화를 기억하는 수단이었고, 울고 웃고 심각해졌다가 낄낄거리게 만드는 장치였다. 서부극에서 그의 음악이 재치 발랄한 효과음악이었다면, 미션에서는 웅장한 교향곡이었다. 그의 음악세계는 넓고 깊게 발전했다.

아카데미는 철저히 그를 덮으려 했다. 여러 차례 음악상 후보에 올랐고 많은 영화인들이 그의 수상을 예상했지만, 결국 오스카상의 인종차별이 국제적인 문제가 될 때쯤 여섯번 만에 음악상을 받을 수 있었다.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고, 그의 스승과 동료 작곡가들에게 영화음악을 한다는 이유로 정통을 벗어났다는 이유로 무시 당해 외로웠다고 한다. 말년에는 그들도 엔니오의 음악세계를 인정했다. 그러나 긴 시간을 힘들게 버텨온 후였다.

영화가 끝나고 스크립트가 다 올라가고서야 그의 천재성과 소위 정통이 아니어서 겪어야 했던 어려움, 그리고 그의 뛰어난 음악에 푹 빠져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목이 잠겨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었다. 한 시대를 넘어 오랫동안 기억될 천재가 더 이상 우리 곁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2023.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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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5.13. 씀)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나이가 들어가고 국제관계를 살펴볼수록 다른 나라의 인권에 대해 말하는 것이 사실은 전쟁을 하고 난민을 만들자는 말과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이 든다.

미.영 동맹이 인권을 주장하며 벌인 전쟁과 반군지원으로 죽은 민간인이 그 인권탄압으로 죽은 사람의 수십배에 달하고 그보다 수백배 많은 사람들이 난민으로 세계를 떠돌며 탄압받고 있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 인권이란 어떻게든 자기 나라에서 살아가게 돕는 것이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인권은 없다.

*전직 국가대표 수영선수인 아버지에게 수영 훈련을 받는 시리아 자매가 내전 중인 시리아를 탈출해 독일에 정착한다. 그 목숨을 건 탈출과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2023.5.13.

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지음, 정혜윤 옮김, 문학동네 펴냄

지은이 자우너의 아버지는 미국인으로 마약에서 빠져나와 한국에 중고차판매원으로 왔다가 자우너의 엄마를 만나 결혼하고 자우너를 낳은 후 곧 미국으로 돌아갔다. 자우너는 그렇게 이민자 2세로 성장했다. 그(녀)는 인디 팝 밴드인 재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e Breakfast)의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다. 밴드의 이름은 결성할 당시 아침 식사를 일본식으로 먹고는 즉흥적으로 정한 이름이라고 한다. 세계 공연 여행을 다녔고, 한국 홍대 앞에서도 공연을 한 적이 있는 인디 팝계에서는 제법 알려진 밴드이다.
 지은이는 이민 1세대인 자신의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중간중간 자신의 성장과정을 끼워 넣는다. 자우너의 성정과정은 한국의 이민자들 혹은 다문화가정의 쉽지 않은 미국사회 적응이나 부모-자녀 관계를 엿볼 수있다.
 <내 얼굴에, 원래 살던 곳에서 추방된 존재로 읽어내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다. 마치 내가 무슨 외계인이나 이국적인 과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넌 그럼 뭐야?”는 열두 살인 내가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왜냐하면 그 말은 내가 눈에 띄는 사람이고, 존재를 식별할 수 없는 사람이고, 집단에 속하지 않는 사람임을 기정사실화하기 때문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늘 내 절반이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 했지만, 이젠 갑자기 그것이 내 본질적 특징이 될까봐 두려워져 그 흔적을 지우기 시작했다.>
 저자는 사랑받는 딸에서 사춘기의 예민한 시기를 거치면서 엄마를 편치 않게 만드는 딸이 되었다가 엄마가 말기 암이라는 소식을 듣고 엄마 곁에 머물면서 엄마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엄마를 이해하는 방법은 한국 음식을 통해서이다. 2년에 한 번씩 엄마와 함께 한국에 가서 외할머니, 이모, 사촌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자신의 피에 흐르는 한국인 디엔에이를 발견하고 한국인의 정체성은 한국 음식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한국 음식의 종류, 먹는 방법, 나아가 한국식 문화가 시종 펼쳐진다. 그래서 북미의 한국 식재료 수퍼마켓인, ‘H마트’에서 울다 라는 제목이 붙은 것이다.
 저자는 엄마와 함께 먹는 한국음식이 상징하는 바를 이렇게 말한다.
<음식은 우리끼리 나누는 무언의 언어이며, 우리가 서로에게 돌아오는 일, 우리의 유대, 우리의 공통 기반을 상징하게 됐다.>
 <작은 접시에는 총각김치를 썰어 담고 김칫국물을 한 국자 떠서 그 위에 부었다. 죽을 한입 떠서 목구멍으로 넘기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소하고 부드러워 마음까지 편안해졌다. 나는 몇 숟가락 더 떠먹고 나서 아삭하고 매콤새콤한 김치로 입가심을 했다.>
 그래서 저자는 엄마의 죽음을 치유하는 것이 김치였다고 말한다.
<그때부터 한 달에 한 번씩 김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나의 새로운 치유법이었다.>
 한국의사들이 얼마나 친절한지를 묘사한 대목도 있다.
<나는 한국에서 의사가 우리와 함께 보내는 시간에 깜짝 놀랐다. 오리건에서는 의사가 1분도 채 안 돼 부랴부랴 다른 방으로 떠나면 뒷일은 대부분 간호사들이 알아서 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의사가 우리를 돕는 데 진심을 다했고, 우리가 처음 도착했을 땐 엄마의 손까지 잡아주었다.>
 그러나 엄마는 야속하게도 세상을 떠나고, 그 순간 모국어인 엄마의 언어가 터져 나온다.
<“엄마, 제발 눈 좀 떠봐.” 나는 엄마를 깨울 작정이라도 한 듯이 소리쳤다. “나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제발, 엄마. 나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엄마! 엄마!” 나는 엄마의 언어로, 모국어로 절규했다.>
<나는 얼굴 윤곽이건 피부색이건, 내 소중한 반쪽을 나타내던 것이 유실되기 시작해 두려웠다. 마치 엄마와 함께, 내 얼굴의 그 부분들에 대한 권리마저 사라지기라도 한 듯이.>
 <그때까지도 나는 엄마가 가장 자랑스러워 한 두 역할을 독선적인 태도로 얕잡아보았다. 양육과 사랑을 택한 사람에게도, 돈을 벌고 창작활동을 하려는 사람이 얻는 만큼의 성취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엄마의 예술은 엄마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고동치는 사랑이었고, 노래 한 곡 책 한 권만큼이나 이 세상에 기여하는 일, 기억될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사랑 없이는 노래도 책도 존재할 수 없으니까.>
 이 책이 서양인들을 포함한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문화적 대비를 제공하고 있어 오랫동안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빠친코나 미나리와는 구별되는 이 책만의 특징이 있고 다른 책들보다 더 마음에 절절히 울리는 스토리였다.

관점이 어떻든 한국의 의료시스템이 망가졌다는 것을 부인하는 의사는 없다. 그리고 지금 개업의로 돈을 잘 벌고 있어서 그냥 이대로 은퇴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소위 내 또래 부자 의사들도 자신이 늙어서도 현재와 같은 신속하고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지 걱정한다. 적어도 내가 알고 지내는 십여 명 의사들은 모두 그렇게 말한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머릿속에 그려진 그림은 단순하다. 그렇다고 해결도 단순한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시스템과 자본주의시스템
이분도 지적했지만(아래 링크), 공공의료시스템의 부재가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영국과 캐나다는 의료를 공공시스템으로 만들었다. 의사는 국가가 고용한 공무원이다. 당연히 큰돈을 벌지도 못한다. 그러나 노동자로서 모든 권리를 누린다. 근무시간이나 근무조건 등에서 한국의사들은 그곳이 천국이라고 말한다. 정작 그 나라 의사들은 대우에 불만을 가지고 같은 영어권인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으로 이주한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한국이나, 인도, 파키스탄, 아프리카의 의사들이 메우고 있다.  사회주의의 모순이다.

미국은 의료에도 자본주의가 적용된다. 정상분만일 경우 출산비용은 2만 달러(한화 약 2800만 원) 정도이다. 그래서 빈곤층의 의료비용을 국가가 세금으로 메꾸고 있어 국민 1인당 의료비 지출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병원에 못 가보고 죽는 사람이 매우 많다. 변호사 역시 많아서 의료분쟁이 붙으면 엄청난 손해배상 소송에 시달린다. 그래서 모든 의료행위에 돈이 붙는다. 예를 들어 환자를 옆 병원으로 이송하고자 할 때 환자가 걸어가도 충분할 때조차 앰뷸런스를 배치한다. 물론 우리 돈으로 100만원 이상의 비용을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만약 그냥 보냈다가 환자 보호에 소홀했다는 소송에 휘말리면 한마디로 주머니 털리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모순이다.

한국은 어떤가? 오바마 대통령이 칭찬했던, 국민건강보험은 전형적인 사회주의 시스템이다. 이시스템은 모든 국민이 소득(자산)에 비례하여 보험료를 납부하고 만들어진 보험료 풀에서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글쓴이가 착각한 부분인데, 그래서 한국 역시 제도상으로 모든 의료는 공공의료이다. 공공병원이어야만 공공의료인 것이 아니다.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용의 구조가 공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이론상) 예산을 전혀 투입하지 않고도 공공의료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심지어 저소득층에게는 특별지원이 있어서 거의 돈을 내지 않고 치료받고 있다. 그래서 공공의대건립을 주장하는 자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정치적인 목적으로 국민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공공병원이 부족하다는 주장도 시스템 차이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다.

한국의 좋은 제도가 완전히 망가지고 있다
의료비용을 사회주의시스템으로 해결하는 좋은 제도가 또 다른 방식으로 낭비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는 감기 증상으로 병원을 간다. 게다가 주말이나 저녁에는 응급실로 달려간다. 사회주의 시스템을 운영하는 캐나다에서  응급실을 이용하려면 자기 부담금이 크게 늘어난다. 우리는 별로 높아지지 않는다. 이게 응급실 사태의 또 다른 원인이다. 응급실 의료진의 혹사는 당연히 진짜 응급환자의 치료기회를 박탈할 뿐 아니라 의료사고 증가의 원인이 된다. 게다가 캐나다에서, 예를 들어 간초음파를 보려면 6개월이 걸린다. 실제로 필자는 밴쿠버에서 조카 부부가 모두 의사인데도 간초음파를 보려면 6개월이 걸린다고 해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와 진료받은 적이 있다. 만약 일찍 서비스를 받으려면 응급실로 가야 하고 비용을 자기가 부담해야 한다.

한국인이 얼마나 병원을 무작정 이용하는지는 2021년의 다음 통계가 보여준다. 고령화사회를 우리보다 훨씬 일찍 겪은 일본의 경우에도 국민 1인당 진료 횟수가 11회에 불과한데, 한국은 16회에 달한다. 세계적으로 유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 이 통계만으로도 의사 증원의 이유로 고령화사회를 제시한 정부나 시민단체, 언론의 주장은 거짓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또 공공의료시스템을 운영하는 나라는 의료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국가가 책임진다. 병원을 세우는 것도, 의사를 교육시키는 것도, 의사에게 월급을 주는 것도, 의료분쟁을 해결하는 것도 국가 책임이다. 한국은 사회주의시스템을 운영하면서도 모든 투자와 책임은 민간에, 특히 의사에게 떠넘기고 있다. 단 하나도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없다. 아니 국민건강보험공단이나 관련조직을 통해 국민이 낸 보험료를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기까지 한다. 여기서 비효율이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는 일에 비효율적이라는 뜻이다. 이번 의료대란으로 많이 듣게 된 필수의료 경시와 같은 것 말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실제 발생한 의료비용의 85%에도 미치지 못하는 보험수가이다. 병원이 환자를 치료하면 할수록 적자가 커진다. 당연히 적자를 메우려면 비급여항목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감기환자가 오면 의학적으로 전혀 쓸모없는 링거액을 맞게 하는 것이 그런 것이다. 비급여는 일반적으로 의학적으로 필요 없는 과잉진료에 해당한다. 이걸 조장하는 것이 대형병원을 운영하는 보험사를 가진 재벌들이 만든 실손보험이다. 그래서 개원의 소득이 높다. 정부는 OECD에 개원의 소득을 보고해서 의사 소득이 세계적으로 높다고 말한다. 그러면 다시 정부는 과잉진료를 엄벌하겠다고 나선다.

의료를 돈벌이로 만들려는 집단의 폭거
한국의 공공의료시스템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민간보험회사들이다. 자본으로 의료를 장악하는데 최대 장애요인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주목한 것은 보험의 의료비 보장수가가 낮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비보험 의료비용을 보상해 주는, 실손보험이라는 이름의 불평등한 의료시스템을 도입했다. 이게 자기들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열심히 영업해서 많은 가입자를 확보하면, 비용 걱정이 없는 실손 가입자들이 더 좋은 병원으로 몰려가 점점 소위 탑 5 병원이라는 것이 등장하고 그들만 돈을 벌어들였다. 지방대학병원들은 적자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한국 양대 보험회사를 거느린 두 재벌그룹이 국내 최대 병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래서 전공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지금은 법으로 주당 노동시간을 80시간으로 줄였지만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법정노동시간이 100시간을 훌쩍 넘었다. 당연히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이다. 그동안 우리를 치료하던 전공의가 편의점 알바생이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 노동착취를 통해 우리네 병원들이 적자를 면하고 있었다. 얼마전 서울의대 교수 셋이 성명을 내 언론 등의 찬사를 받았다. 악랄한 인간들이다. 교수가 되면 전공의 도움 없이 환자를 볼 수가 없다. 시간이 부족해서이다. 하루 12시간을 일하지 않으면 대학병원이 돌아갈 수가 없다. 의사를 제외한 병원인력은 철저히 노동법 기준을 적용받지만 의사들은 예외이다. 이번 의대정원사태는 실손보험으로 환자를 싹쓸이하던 서울의 대형병원들이 더 많은 환자를 빨아들이려고 수도권에 6,600 병상을 늘리는 과정에서 전공의가 아니면 돈벌이가 불가능하니 의대정원을 늘려야만 했다는 주장이 있다.

2025년 의대입시 중단 없이 의료문제 해결 어렵다
2025년 의대입시를 중단해야 하는 이유는 산수 문제이다. 현재 의대교육시스템은 약 3000명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를 갑자기 1500명 증원했다. 게다가 재학생이 모두 휴학해 버렸다. 2025년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사람들이 자꾸 4500명을 교육시킨다고 오해하는데 사실은 3000+ 3000+ 1500=7500명 (100이하는 무시)을 교육시켜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의학교육은 국어수업이 아니다. 이 정도 상황이라면 교육은 어떤 방법으로도 불가능하다. 교육은 여건이 안되면 무조건 부실해지고 의대교육이 부실해지면 엉터리 의사가 나올 수밖에 없다. 노조의 파업은 찬양하면서 왜 이들의 현장이탈을 욕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정치권의 책임
호시탐탐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던 정당에서 갑자기 필수의료 강화나 지방에 의사를 공급하겠다며 추진한 증원이 사실은 영리 병원을 위한 포석인 셈이다. 물론 명분은 반대쪽 정당이 주장하던 공공의대 설립 논리를 차용한다. 지금도 전남에서는 의대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그래서 지지정당과 상관없이 많은 국민이 지지한다. 그것이 바로 국민 자신들에게 족쇄가 된다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이런 모든 사태의 배후에는 정치권이 있다. 어느 당에서는 의료민영화로 의료를 재벌의 돈벌이로 만들어 주기 위해 공공의료를 파괴하려 하고, 또 다른 정당에서는 의사를 괴롭히는 정책으로 국민의 인기를 얻는다. 그들이 지금 한국의 의료시스템을 파괴하고 있고, 나의 노후 건강에 칼을 들이대는 주범들이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health/1167682.html

#미국의_민주당_공화당

오늘 용산의 멧돼지 한마리가 사람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꽥꽥거리는데, 기자라는 자들은 꿀먹은 벙어리요, 언론은 알아들을 수 없는 멧돼지 소리를 중간중간 속보라고 전하기 바쁘다. 그건 그거고…

미국의 대선 결과를 놓고 해리스와 바이든 vs 트럼프 구도가 아닌 민주당 vs 공화당 구도로 접근한 분들이 보인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좀 낫고, 공화당은 나쁘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그러나 두 당의 출발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아는 것과 반대라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민주당은 남부지방에서 노예제도를 사수하던 집단이다. 북부에서 산업화를 추진하던 기업가, 자본가들은 남부의 노예들을 북부의 공장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이를 위해 링컨의 공화당은 노예해방과 남북전쟁을 진행한다. 당연히 링컨이 원했던 것은 노예해방이 아니다. 나중에 흑인노예들이 남북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해방을 압박하자 끌려가듯 노예해방을 선언했다.(링컨을 존경하는 사람들에겐 충격이겠다)

19세기 후반 노동운동이 강화되고 노조가 결성된다. 민주당은 농민(토지소유주)의 이익에만 치중하여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고, 19세기 후반은 록펠러나 카네기 같은 악마기업가들이 정치인(양대 정당 모두의)들의 비호아래 노조원들을 학살하던, 자본에 의한 노동의 암흑시대였다. 탄압이 아니라 실제 기관총으로 사살했다.

노예제도가 불법인 된 20세기에 와서도 아주 오랫동안 민주당기반의 남부는 흑인차별법을 이용하여 변형된 노예제도를 유지했다. 2차대전을 거치면서 군수산업을 중심으로 산업자본의 후원을 받는 공화당이 전쟁을 벌이면서 민주당과 공화당이 현재와 같은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바이든의 민주당 정부는 부시의 공화당 정부와 전혀 구별되지 않는 전쟁광 정부였다. 어쩌면 자신도 관리하지 못할 정도의 노인인 바이든이 당선된 것은 다루기 쉽다는 판단을 한 군산복합체들의 영향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미국의 양대 정당을 비교하는 것은 도토리 키재기이고, 그렇게 거대 제국이 몰락하고 있는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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