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자우너의 아버지는 미국인으로 마약에서 빠져나와 한국에 중고차판매원으로 왔다가 자우너의 엄마를 만나 결혼하고 자우너를 낳은 후 곧 미국으로 돌아갔다. 자우너는 그렇게 이민자 2세로 성장했다. 그(녀)는 인디 팝 밴드인 재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e Breakfast)의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다. 밴드의 이름은 결성할 당시 아침 식사를 일본식으로 먹고는 즉흥적으로 정한 이름이라고 한다. 세계 공연 여행을 다녔고, 한국 홍대 앞에서도 공연을 한 적이 있는 인디 팝계에서는 제법 알려진 밴드이다. 지은이는 이민 1세대인 자신의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중간중간 자신의 성장과정을 끼워 넣는다. 자우너의 성정과정은 한국의 이민자들 혹은 다문화가정의 쉽지 않은 미국사회 적응이나 부모-자녀 관계를 엿볼 수있다. <내 얼굴에, 원래 살던 곳에서 추방된 존재로 읽어내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다. 마치 내가 무슨 외계인이나 이국적인 과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넌 그럼 뭐야?”는 열두 살인 내가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왜냐하면 그 말은 내가 눈에 띄는 사람이고, 존재를 식별할 수 없는 사람이고, 집단에 속하지 않는 사람임을 기정사실화하기 때문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늘 내 절반이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 했지만, 이젠 갑자기 그것이 내 본질적 특징이 될까봐 두려워져 그 흔적을 지우기 시작했다.> 저자는 사랑받는 딸에서 사춘기의 예민한 시기를 거치면서 엄마를 편치 않게 만드는 딸이 되었다가 엄마가 말기 암이라는 소식을 듣고 엄마 곁에 머물면서 엄마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엄마를 이해하는 방법은 한국 음식을 통해서이다. 2년에 한 번씩 엄마와 함께 한국에 가서 외할머니, 이모, 사촌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자신의 피에 흐르는 한국인 디엔에이를 발견하고 한국인의 정체성은 한국 음식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한국 음식의 종류, 먹는 방법, 나아가 한국식 문화가 시종 펼쳐진다. 그래서 북미의 한국 식재료 수퍼마켓인, ‘H마트’에서 울다 라는 제목이 붙은 것이다. 저자는 엄마와 함께 먹는 한국음식이 상징하는 바를 이렇게 말한다. <음식은 우리끼리 나누는 무언의 언어이며, 우리가 서로에게 돌아오는 일, 우리의 유대, 우리의 공통 기반을 상징하게 됐다.> <작은 접시에는 총각김치를 썰어 담고 김칫국물을 한 국자 떠서 그 위에 부었다. 죽을 한입 떠서 목구멍으로 넘기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소하고 부드러워 마음까지 편안해졌다. 나는 몇 숟가락 더 떠먹고 나서 아삭하고 매콤새콤한 김치로 입가심을 했다.> 그래서 저자는 엄마의 죽음을 치유하는 것이 김치였다고 말한다. <그때부터 한 달에 한 번씩 김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나의 새로운 치유법이었다.> 한국의사들이 얼마나 친절한지를 묘사한 대목도 있다. <나는 한국에서 의사가 우리와 함께 보내는 시간에 깜짝 놀랐다. 오리건에서는 의사가 1분도 채 안 돼 부랴부랴 다른 방으로 떠나면 뒷일은 대부분 간호사들이 알아서 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의사가 우리를 돕는 데 진심을 다했고, 우리가 처음 도착했을 땐 엄마의 손까지 잡아주었다.> 그러나 엄마는 야속하게도 세상을 떠나고, 그 순간 모국어인 엄마의 언어가 터져 나온다. <“엄마, 제발 눈 좀 떠봐.” 나는 엄마를 깨울 작정이라도 한 듯이 소리쳤다. “나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제발, 엄마. 나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엄마! 엄마!” 나는 엄마의 언어로, 모국어로 절규했다.> <나는 얼굴 윤곽이건 피부색이건, 내 소중한 반쪽을 나타내던 것이 유실되기 시작해 두려웠다. 마치 엄마와 함께, 내 얼굴의 그 부분들에 대한 권리마저 사라지기라도 한 듯이.> <그때까지도 나는 엄마가 가장 자랑스러워 한 두 역할을 독선적인 태도로 얕잡아보았다. 양육과 사랑을 택한 사람에게도, 돈을 벌고 창작활동을 하려는 사람이 얻는 만큼의 성취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엄마의 예술은 엄마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고동치는 사랑이었고, 노래 한 곡 책 한 권만큼이나 이 세상에 기여하는 일, 기억될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사랑 없이는 노래도 책도 존재할 수 없으니까.> 이 책이 서양인들을 포함한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문화적 대비를 제공하고 있어 오랫동안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빠친코나 미나리와는 구별되는 이 책만의 특징이 있고 다른 책들보다 더 마음에 절절히 울리는 스토리였다.
관점이 어떻든 한국의 의료시스템이 망가졌다는 것을 부인하는 의사는 없다. 그리고 지금 개업의로 돈을 잘 벌고 있어서 그냥 이대로 은퇴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소위 내 또래 부자 의사들도 자신이 늙어서도 현재와 같은 신속하고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지 걱정한다. 적어도 내가 알고 지내는 십여 명 의사들은 모두 그렇게 말한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머릿속에 그려진 그림은 단순하다. 그렇다고 해결도 단순한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시스템과 자본주의시스템 이분도 지적했지만(아래 링크), 공공의료시스템의 부재가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영국과 캐나다는 의료를 공공시스템으로 만들었다. 의사는 국가가 고용한 공무원이다. 당연히 큰돈을 벌지도 못한다. 그러나 노동자로서 모든 권리를 누린다. 근무시간이나 근무조건 등에서 한국의사들은 그곳이 천국이라고 말한다. 정작 그 나라 의사들은 대우에 불만을 가지고 같은 영어권인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으로 이주한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한국이나, 인도, 파키스탄, 아프리카의 의사들이 메우고 있다. 사회주의의 모순이다.
미국은 의료에도 자본주의가 적용된다. 정상분만일 경우 출산비용은 2만 달러(한화 약 2800만 원) 정도이다. 그래서 빈곤층의 의료비용을 국가가 세금으로 메꾸고 있어 국민 1인당 의료비 지출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병원에 못 가보고 죽는 사람이 매우 많다. 변호사 역시 많아서 의료분쟁이 붙으면 엄청난 손해배상 소송에 시달린다. 그래서 모든 의료행위에 돈이 붙는다. 예를 들어 환자를 옆 병원으로 이송하고자 할 때 환자가 걸어가도 충분할 때조차 앰뷸런스를 배치한다. 물론 우리 돈으로 100만원 이상의 비용을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만약 그냥 보냈다가 환자 보호에 소홀했다는 소송에 휘말리면 한마디로 주머니 털리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모순이다.
한국은 어떤가? 오바마 대통령이 칭찬했던, 국민건강보험은 전형적인 사회주의 시스템이다. 이시스템은 모든 국민이 소득(자산)에 비례하여 보험료를 납부하고 만들어진 보험료 풀에서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글쓴이가 착각한 부분인데, 그래서 한국 역시 제도상으로 모든 의료는 공공의료이다. 공공병원이어야만 공공의료인 것이 아니다.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용의 구조가 공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이론상) 예산을 전혀 투입하지 않고도 공공의료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심지어 저소득층에게는 특별지원이 있어서 거의 돈을 내지 않고 치료받고 있다. 그래서 공공의대건립을 주장하는 자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정치적인 목적으로 국민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공공병원이 부족하다는 주장도 시스템 차이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다.
한국의 좋은 제도가 완전히 망가지고 있다 의료비용을 사회주의시스템으로 해결하는 좋은 제도가 또 다른 방식으로 낭비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는 감기 증상으로 병원을 간다. 게다가 주말이나 저녁에는 응급실로 달려간다. 사회주의 시스템을 운영하는 캐나다에서 응급실을 이용하려면 자기 부담금이 크게 늘어난다. 우리는 별로 높아지지 않는다. 이게 응급실 사태의 또 다른 원인이다. 응급실 의료진의 혹사는 당연히 진짜 응급환자의 치료기회를 박탈할 뿐 아니라 의료사고 증가의 원인이 된다. 게다가 캐나다에서, 예를 들어 간초음파를 보려면 6개월이 걸린다. 실제로 필자는 밴쿠버에서 조카 부부가 모두 의사인데도 간초음파를 보려면 6개월이 걸린다고 해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와 진료받은 적이 있다. 만약 일찍 서비스를 받으려면 응급실로 가야 하고 비용을 자기가 부담해야 한다.
한국인이 얼마나 병원을 무작정 이용하는지는 2021년의 다음 통계가 보여준다. 고령화사회를 우리보다 훨씬 일찍 겪은 일본의 경우에도 국민 1인당 진료 횟수가 11회에 불과한데, 한국은 16회에 달한다. 세계적으로 유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 이 통계만으로도 의사 증원의 이유로 고령화사회를 제시한 정부나 시민단체, 언론의 주장은 거짓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또 공공의료시스템을 운영하는 나라는 의료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국가가 책임진다. 병원을 세우는 것도, 의사를 교육시키는 것도, 의사에게 월급을 주는 것도, 의료분쟁을 해결하는 것도 국가 책임이다. 한국은 사회주의시스템을 운영하면서도 모든 투자와 책임은 민간에, 특히 의사에게 떠넘기고 있다. 단 하나도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없다. 아니 국민건강보험공단이나 관련조직을 통해 국민이 낸 보험료를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기까지 한다. 여기서 비효율이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는 일에 비효율적이라는 뜻이다. 이번 의료대란으로 많이 듣게 된 필수의료 경시와 같은 것 말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실제 발생한 의료비용의 85%에도 미치지 못하는 보험수가이다. 병원이 환자를 치료하면 할수록 적자가 커진다. 당연히 적자를 메우려면 비급여항목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감기환자가 오면 의학적으로 전혀 쓸모없는 링거액을 맞게 하는 것이 그런 것이다. 비급여는 일반적으로 의학적으로 필요 없는 과잉진료에 해당한다. 이걸 조장하는 것이 대형병원을 운영하는 보험사를 가진 재벌들이 만든 실손보험이다. 그래서 개원의 소득이 높다. 정부는 OECD에 개원의 소득을 보고해서 의사 소득이 세계적으로 높다고 말한다. 그러면 다시 정부는 과잉진료를 엄벌하겠다고 나선다.
의료를 돈벌이로 만들려는 집단의 폭거 한국의 공공의료시스템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민간보험회사들이다. 자본으로 의료를 장악하는데 최대 장애요인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주목한 것은 보험의 의료비 보장수가가 낮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비보험 의료비용을 보상해 주는, 실손보험이라는 이름의 불평등한 의료시스템을 도입했다. 이게 자기들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열심히 영업해서 많은 가입자를 확보하면, 비용 걱정이 없는 실손 가입자들이 더 좋은 병원으로 몰려가 점점 소위 탑 5 병원이라는 것이 등장하고 그들만 돈을 벌어들였다. 지방대학병원들은 적자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한국 양대 보험회사를 거느린 두 재벌그룹이 국내 최대 병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래서 전공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지금은 법으로 주당 노동시간을 80시간으로 줄였지만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법정노동시간이 100시간을 훌쩍 넘었다. 당연히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이다. 그동안 우리를 치료하던 전공의가 편의점 알바생이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 노동착취를 통해 우리네 병원들이 적자를 면하고 있었다. 얼마전 서울의대 교수 셋이 성명을 내 언론 등의 찬사를 받았다. 악랄한 인간들이다. 교수가 되면 전공의 도움 없이 환자를 볼 수가 없다. 시간이 부족해서이다. 하루 12시간을 일하지 않으면 대학병원이 돌아갈 수가 없다. 의사를 제외한 병원인력은 철저히 노동법 기준을 적용받지만 의사들은 예외이다. 이번 의대정원사태는 실손보험으로 환자를 싹쓸이하던 서울의 대형병원들이 더 많은 환자를 빨아들이려고 수도권에 6,600 병상을 늘리는 과정에서 전공의가 아니면 돈벌이가 불가능하니 의대정원을 늘려야만 했다는 주장이 있다.
2025년 의대입시 중단 없이 의료문제 해결 어렵다 2025년 의대입시를 중단해야 하는 이유는 산수 문제이다. 현재 의대교육시스템은 약 3000명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를 갑자기 1500명 증원했다. 게다가 재학생이 모두 휴학해 버렸다. 2025년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사람들이 자꾸 4500명을 교육시킨다고 오해하는데 사실은 3000+ 3000+ 1500=7500명 (100이하는 무시)을 교육시켜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의학교육은 국어수업이 아니다. 이 정도 상황이라면 교육은 어떤 방법으로도 불가능하다. 교육은 여건이 안되면 무조건 부실해지고 의대교육이 부실해지면 엉터리 의사가 나올 수밖에 없다. 노조의 파업은 찬양하면서 왜 이들의 현장이탈을 욕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정치권의 책임 호시탐탐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던 정당에서 갑자기 필수의료 강화나 지방에 의사를 공급하겠다며 추진한 증원이 사실은 영리 병원을 위한 포석인 셈이다. 물론 명분은 반대쪽 정당이 주장하던 공공의대 설립 논리를 차용한다. 지금도 전남에서는 의대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그래서 지지정당과 상관없이 많은 국민이 지지한다. 그것이 바로 국민 자신들에게 족쇄가 된다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이런 모든 사태의 배후에는 정치권이 있다. 어느 당에서는 의료민영화로 의료를 재벌의 돈벌이로 만들어 주기 위해 공공의료를 파괴하려 하고, 또 다른 정당에서는 의사를 괴롭히는 정책으로 국민의 인기를 얻는다. 그들이 지금 한국의 의료시스템을 파괴하고 있고, 나의 노후 건강에 칼을 들이대는 주범들이다.
오늘 용산의 멧돼지 한마리가 사람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꽥꽥거리는데, 기자라는 자들은 꿀먹은 벙어리요, 언론은 알아들을 수 없는 멧돼지 소리를 중간중간 속보라고 전하기 바쁘다. 그건 그거고…
미국의 대선 결과를 놓고 해리스와 바이든 vs 트럼프 구도가 아닌 민주당 vs 공화당 구도로 접근한 분들이 보인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좀 낫고, 공화당은 나쁘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그러나 두 당의 출발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아는 것과 반대라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민주당은 남부지방에서 노예제도를 사수하던 집단이다. 북부에서 산업화를 추진하던 기업가, 자본가들은 남부의 노예들을 북부의 공장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이를 위해 링컨의 공화당은 노예해방과 남북전쟁을 진행한다. 당연히 링컨이 원했던 것은 노예해방이 아니다. 나중에 흑인노예들이 남북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해방을 압박하자 끌려가듯 노예해방을 선언했다.(링컨을 존경하는 사람들에겐 충격이겠다)
19세기 후반 노동운동이 강화되고 노조가 결성된다. 민주당은 농민(토지소유주)의 이익에만 치중하여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고, 19세기 후반은 록펠러나 카네기 같은 악마기업가들이 정치인(양대 정당 모두의)들의 비호아래 노조원들을 학살하던, 자본에 의한 노동의 암흑시대였다. 탄압이 아니라 실제 기관총으로 사살했다.
노예제도가 불법인 된 20세기에 와서도 아주 오랫동안 민주당기반의 남부는 흑인차별법을 이용하여 변형된 노예제도를 유지했다. 2차대전을 거치면서 군수산업을 중심으로 산업자본의 후원을 받는 공화당이 전쟁을 벌이면서 민주당과 공화당이 현재와 같은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바이든의 민주당 정부는 부시의 공화당 정부와 전혀 구별되지 않는 전쟁광 정부였다. 어쩌면 자신도 관리하지 못할 정도의 노인인 바이든이 당선된 것은 다루기 쉽다는 판단을 한 군산복합체들의 영향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미국의 양대 정당을 비교하는 것은 도토리 키재기이고, 그렇게 거대 제국이 몰락하고 있는 것일 게다.
한국에서 이런 근본적인 이슈들을 토론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사회는 학살과 집단사망사고가 이어지는 곳이라 무관심한지, 아니면 내가 무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큰 어려움 없이 세 아이를 낳고 길렀기 때문에 남의 일처럼 느낀 탓도 있을 것이고요.
그러나 좀 더 넓게 보면, 생명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슈여서 무심하게 스쳐지나갈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침 폴리티코에 실린 이 기사를 차분히 읽었습니다.
미국의 기독교입양단체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인 “Snowflake babies” 입니다. 체외수정(이 기사를 이해하려고 찾아보니 난자와 정자를 따로 체취하여 수정시킨 후 초기 세포분열이 진행된 며칠 뒤 여성의 자궁에 이식하는 것이랍니다)을 하게 되면 여러 개의 수정된 배아가 만들어지는데, 실제 자궁에 이식되는 것은 한 개 뿐이므로 나머지 배아는 사용되지 않아 냉동보관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보관된 냉동배아가 미국에만도 수백만개가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들은 결국 버려질 운명입니다. 보수적인 생명윤리관으로는 살인이지요.
이 프로그램은 이런 냉동배아를 마치 어린이입양처럼 입양하는 캠페인입니다. 자신의 자궁에 이식하여 자신의 아이로 키우는 것이지요. 비록 유전자는 상관없지만, 한국식으로 표현한다면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이 되는 것이지요.
생명에 대해 보수기독교와 페미니스트 그룹 사이에 논쟁이 오랜 지속되는 미국사회에 새로운 절충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배아 단계부터 생명성을 인정하는 보수기독교 입장에서는 생명의 유지이고, 진보진영에게는 자유로운 형태의 임신을 보장하는 방법입니다. 물론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많습니다. 차별금지법를 동성애권장법이라고 우기는 한국 교회의 부모가 미국기독교이니… 일단 미국침례교는 이 단체를 반대하고 있다 합니다.
저자의 설명을 요약해보자면, 이타(利他)란 '이타적 행위'를 말한다. 이타적 행위는, 행위 주체가 자신에게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을 감내하면서 타자에게 이익을 주는 행위다. 자기손실의 양상과 범위는 대단히 다양하고 넓다. 재화나 노동력의 감소, 시간이나 기회의 상실, 나아가 신체•생명의 희생까지 포함한다. 이타적 행위의 주체는 보상을 바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이타적 행위를 했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한다. 이것을 이타적 행위 주체의 ‘보상 기대 부재', '자기망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타적 행위는 다양하지만 가장 많은 경우는 경제적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돕기 위해 자기 소유의 재화를 일방적으로 양여하는 것이었다. 재화의 일방적인 양여를 과거 문헌에서는 '시여(施與)'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머리말의 끝을 다음과 같이 맺고 있다. 자본주의의 심부에 도달한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모두 경제인(economic man)이다. 경제인인 우리에게 '이타'와 '시여'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 즉, 저자는 자본주의가 심화된 상태의 한국 사회에 조선시대 이타와 시여에 관한 문헌들이 어떤 현대적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탐구하겠다는 것이다.
제1장 홍순언 이야기와 이타적 심성의 작화력
<허생전>, 이타적 인간의 형상
박지원의 <허생전>을 먼저 소개한다. 간단히 요약하면, 허생은 과일과 말총을 매점매석하여 막대한 돈을 번 뒤 변산반도의 군도를 찾아가 돈을 나눠 준다. 도둑들이 뭍으로 가서 배우자를 구하고, 농작에 필요한 농기구와 소를 사서 돌아오자, 허생은 미리 보아 두었던 나가사키와 사문 사이에 있는 무인도로 들어가 아나키anarchy 공동체를 만든다. 그 섬에서 허생은 나가사키에 기근이 들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 나가사키에 곡물을 파는 무역을 한다.
그런데, 몰락 사족(양반) 허생이 상업에 뛰어들고 나가사키와 무역을 한 것, 엄청난 규모의 화폐를 획득한 것은 양반 사회에서 대단히 이색적 사건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국문학계와 사학계는 박지원이 양반의 유식성(遊食性, 놀고먹는 것)을 비판하고 상업과 무역 활동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저자는, 허생이 상인으로 자기 정체성을 바꾸었다면, 또 이 작품이 자본주의적 발전 과정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의 상행위는 세 차례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허생이 나가사키로 곡물을 실어 나른 것은 이윤을 얻기 위해 상품을 수출한 것이 아니라, 나가사키 기민의 생명을 구제하려는 이타적 행위였다는 것이다. 또 허생이 벌어들인 화폐는 자가증식하는 자본으로서의 성격은 없었다고 한다. 나가사키에서 받은 은100만 냥 중 50만 냥을 바다에 쓸어 넣고, 남은 50만 냥 중 40만 냥은 국내 빈민을 구제하는 데 쓰고 10만 냥은 변 부자에게 빌렸던 돈을 갚았기 때문이다. 화폐의 수장은 화폐를 경멸하는 퍼포먼스였다고 해석한다.
조선 사회에서 군도(도적 떼)는 농토에서 의지할 데 없이 내몰린 토지 없는 농민이었다. 이 책의 뒷부분에서 상세히 언급하지만 조선 후기 농민이 급속도로 토지를 상실했던 큰 이유 중 하나는 화폐 때문이었다. 그런데 허생의 화폐는 토지를 잃고 삶의 위기에 빠진 농민에게 농토를 되돌려주는 수단이었다. 화폐가 생명을 되돌려주는, 이타적 목적을 실현하는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나가사키에 쌀을 판매한 것은, 기아로 죽음을 목전에 둔 생명을 살리는 이타적 행위였고, 그 과정에서 벌어들인 은화는 다시 국내의 기민 구제에 쓰였다. 즉 변산의 군도에게 무인도를 찾아 생업을 마련해 준 것이 국내에서의 이타적 행위라면, 나가사키의 경우는 국외에서의 이타적 행위였다고 해석한다.
이타-보상담의 생성과정: ‘홍순언 이야기’를 중심으로
<옥갑야화>에는 허생전 앞에 5편의 짧은 이야기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홍순언 이야기이다. 홍순언 이야기'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역관 홍순언이 북경에서 기방을 찾아간다. ② 남경 호부상서의 아름답고 젊은 딸이 아버지를 구해 내기 위해 은 1,000냥에 몸을 팔고자 하였다. 어떤 사건으로 가산은 몰수되었고, 1,000냥을 추징당했기 때문이다. ③ 홍순언은 불쌍히 여겨 1,000냥을 주었고 여성과 성관계를 맺지 않고 돌아왔다. ④ 뒤에 여성은 병부상서 석성토의 아내가 되어 홍순언에게 보은단(보은의 비단) 등 보화를 주어 은혜를 갚았다. 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병부상서 석성은 홍순언의 의로움을 높이 평가하여 명나라의 조선 파병에 큰 도움을 주었다. 저자는 여러 자료를 통해 이 이야기가 정확한 사실이 아니라 사실과 소설이 섞인 이야기임을 보여준다.
아무튼 이런 구조의 글이 많은데, 특히 역관이 포함된 이야기가 많다고 한다. 예를 들면 역관 곽지원은 북경 가는 길에, 땅과 노비를 모두 팔아 부채를 갚은 탓에 유리걸식할 위기에 빠진 중국인을 만난다. 그가 울면서 곽지원에게 자기 사정을 하소연하자 곽지원은 자기가 가지고 있던 은을 털어 주고 이름을 묻지도 않고 떠났다. 곽지원의 행위는 홍순언의 그것과 사실상 동일하다. 간단한 이야기지만, 곽지원의 행위는 ‘위기에 빠진 타자를 돕는다’,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로 요약할 수 있다. 이외에도 <동휘야집>에 실린 <베트남에 간 역관>, 변씨의 이야기도 '이타- 보상'의 구조 위에 다시 축조된 것이다. 기존의 이야기를 이타-보상의 구조 위에서 다시 축조하고자 하는 의지를 이타적 심성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제2장 이타- 보상담의 출현
이타-보상담의 양태
〈허생전》을 썼던 박지원은 이에 대해 소중한 발언을 남겼다고 한다. ‘힘으로 남을 구하는 것을 ‘협(협행)’이라 하고, 재물로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을 '고(고휼)'라고 한다. '고'를 실천하면 명사가 되고, '협'을 실천하면 전을 짓는다. '협'과 '고'를 겸하면 '의'라고 한다.’
이중에서 고휼, 즉 재화의 순수 증여에 관한 이야기로 다섯가지를 소개한다. 이 중 <거여객점>은, 김기연이라는 인물이 무과에 합격한 뒤 벼슬을 얻기 위해 서울 재상가를 들락거리며 엽관운동에 골몰했지만 벼슬은 얻지 못하고 가산을 탕진한 채 고향 경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은 경주로 돌아가는 길에 들른 거여의 객점에서 여자 거지가 헐벗은 채 아이 하나를 안고 있는 것을 보고, 가련한 마음에 돈 2꿰미를 준다. 나중에 그녀는 돈을 벌어 수소문 끝에 곤궁하게 살고 있던 김기연을 찾아와 도움을 준다. 주인공이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서울에서 돈을 마구 쓴 행위가 그를 구제한 것이 아니라, 단 한 차례의 이타적 행위, 곧 순수한 재화의 증여가 그를 구원한 것이다.
또 다른 작품 〈비부>의 주인공인 시골의 몰락 양반 오가(吳哥)는 짚신 장수를 하다가 양반 권세가의 계집종 눈에 띄어 그녀의 적극적인 구애로 결혼을 한다. 〈비부>는 가치관의 대립을 반영하고 있다. 아내는 상행위를 통한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오가는 아내와는 반대로 재화보다는 이타적 행위를 선택한다. 결과적으로 오가와 비녀에게 재화를 가져다준 것은 상행위가 아니라 이타적 행위였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 속에는 사채나 관채 혹은 환곡을 갚지 못해 남편이 죽고, 죽은 남편을 대신해 모욕을 당하거나 사형을 당할 위기에 처한 여성을 돕는다는 설정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저자가 뒤에서 이야기하는데, 이점이 중요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협행, 폭력의 이타행
이타적 행위는 '고휼'이 주류를 이루고 '협행'은 상대적으로 희소하다. 조선에서 협행, 곧 폭력을 수단으로 하는 이타성의 실천은 흔하지 않다. 아마도 그것은 폭력을 수단으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권겸산전>의 주인공 권옥도 당연히 시여, 곧 순수 증여를 좋아하여 넉넉했던 재산이 바닥이 날 때까지 가난한 친척과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런데 호서 지방에 권세를 믿고 남의 땅에 투장한 토호가 있었는데, 묘주는 억울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사정을 들은 권옥은 사방의 행상과 떠돌이 수천 명을 불러 모아 산에 올라가 무덤을 파헤친 뒤 관을 빠개고 토호 아버지의 시신을 꺼내어 토호의 집에 던져 놓고 말했다. "너는 모기 같은 힘을 믿고 죽은 아비를 팔아 분수에 넘치는 복을 바라는데, 오늘 네 아비가 지금 어디 있느냐? 네가 돈을 써서 탐관오리의 입에 재갈을 물릴 수야 있겠지만, 나 같은 사람은 어찌할 것이냐?
이타적 행위로서의 의료
의료행위는 신체기관의 기능 장애에서 오는 고통과 신체 소멸의 위기를 해소하는 것을 지향하기에 원천적으로 이타적 속성을 갖는다. 다만 그것이 그 행위에 대해 반대급부를 요구한다면 그것 은 등가교환일 뿐 이타성은 소거된다. 만약 의료행위를 하되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면, 혹은 의식하지 않는다면 행위 주체의 자기손실과 자기망각을 포함하므로 이타적 행위가 된다. 저자는 역시 다섯 가지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중에서 침의 조광일이라는 인물을 보자.
‘침의 조광일’, 홍양호, <이계집>에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조광일은 이익이 아니라 병자의 치료를 목적으로 삼았고, 실제 그대로 실천했다. 그래서 이런 대화가 나온다고 한다.
①내가 이 기술을 펼치는 것은 이익을 바라서가 아니라, 나의 뜻을 실천하고자 하는 것일 뿐입니다.
②또 내가 침을 쥐고 사람들 사이에서 노닌 지 10년입니다. 혹 하루에 몇 사람을 치료하고 한 달에 십수 명을 살리기도 했습니다. 온전히 살린 사람 전부를 헤아려 보면 수백 수천 명 아래로 내려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 올해 나이 마흔 남짓인데, 다시 수 십 년이 지나면 만 사람을 살릴 수 있겠지요. 살린 사람이 만에 이르면 내 일도 끝나겠지요.
제3장 이타적 심성의 작동원리
저자는 3장에서 이타적 심성의 작동원리를 자신의 많은 독서로부터 정형화하여 소개한다.
이타적 행위의 대상, 타자
(위기에 처한 타자) 이타-보상담에서 타자는 빈곤•기아•질병 등으로 인해 생명이 소거되거나 혹은 소거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에 준하는 위기에 처해 고통을 느끼며 살거나, 사회적으로 의미 없는 존재, 곧 비존재로의 존재, 달리 말해 '헛것'으로 존재해야만 하는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타자성의 정도) 행위의 주체가 타자와 이해관계의 정도가 낮을수록 반비례하여 타자성은 높아진다. 이타적 행위의 대상이 친족집단이거나 지역공동체의 구성원이라면 타자성은 당연히 낮다.
이타적 행위의 과정과 속성
(공감) 이타-보상담에서 이타적 행위의 주체는 공감력이 크기 때문에 타자의 고통에 쉽게 공감한다.
(자기손실) 타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을 기반으로 하여 이타적 행위가 이루어질 때 주체에게는 자기손실이 발생한다. 다만 자기손실에 대한 평가는 행위 주체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보상기대 부재) 이타적 행위의 주체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어떤 보상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혹은 않아야 한다는) '보상 기대 부재'의 원칙을 갖고 있어야 한다.
(자기망각) 이타적 행위의 주체가 자신이 과거 타인을 일방적으로 돕고 그 사실을 잊는 것을 '자기망각'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지속성, 반복성, 넓은 범위) 이타적 행위가 일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 반복적으로 이루어질수록 높이 평가받는다. 또한 이타적 대상의 범위가 클수록 이타성의 평가치는 높아진다.
보상의 의무와 방법
(보상의 의무와 주체) 이타-보상담에서 이타적 주체는 자신의 행위 자체를 망각하거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야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행위 대상자에 의해 보상이 주어진다. 보상 주체가 이타적 행위의 주체에게 직접 보상하는 경우를 보은이라 부를 수 있다. 음보는 이타적 행위가 의식하지 못하는 보상을 말한다. 이타적 행위의 주체가 보상을 받을 수 없다면, 그 후손이라도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보상의 방식)
1)물질적 가시적(주로 관직) 보상, 2)평판으로서의 보상, 3)사회적 기억으로서의 보상: 조선 사회에서 인물에 대한 기억은 한문학에서 인물을 기념하는 장르인 비문이나 지문 혹은 전과 행장 등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제4장 이타-보상과 동물담
저자는 이타-보상담으로 동물이 매개된 것들만 따로 다룬다. 이런 대표적인 예는 흥부전이다. 그런데 흥부전의 다양한 이본들을 보면 흥부의 신분이 매우 다양하다고 한다. 이 다양한 신분과 처지에 있는 흥부의 공통 속성은 '빈곤한 자'이다. 이것이 바로 빈곤과 부의 극단적 편중이라는 심각한 사회문제에 대한 민중의 집약적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부의 편중에 대한 해결방법은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 조선 후기 지식인들이 제안한 수많은 개혁 프로그램을 현실화하는 것, 곧 실천에 옮기는 것이었다. 두 번째, 민중의 반란에 의한 체제의 전복이 있을 수 있다. 마지막 방법이 민중적 상상력을 통해 이타성을 회복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고 말하면서 《흥부전》은 극단적인 빈부격차란 사회문제를 낭만적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의식의 산물이라고 해석한다.
생명의 공유
인간은 위기에 처한 동물의 고통에 공감한다. 생명의 차원에서 인간은 동물과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연속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의 이야기가 잠시 주제를 벗어나 성호사설의 <식육>에 대한 것으로 이동하기도 하지만, 결국 동물담도 ‘타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측은지심)을 통해 이타적 심성의 발현을 확인하고 그것을 백성에 옮겨 실현할 것을 요구하는 목적이라고 해석한다.
제5장 이타적 심성의 현실적 발현, 시여
시여의 역사와 시여문화
‘이타-보상담은 이타적 심성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것을 환기하려는 의도를 내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타적 행위에 대한 서술은 현실적일 수 있으나 보상이 이루어지는 부분은 개연성이 떨어진다. 그렇다면 이처럼 개연성이 떨어지는 허구와 달리 이타적 심성은 실제 사회에서 어떻게 발현되었는가?’
시여라는 단어는 <한비자>에 기원을 둔다. 한편,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는 대승불교의 보살이 실천해야 할 여섯 가지 덕목을 육바라밀이라고 한다. 육바라밀에는 보시가 있는데, 보시는 다시 재시(財施), 법시, 무외시로 구성된다고 한다. 이 재시가 바로 시여에 해당한다. 그래서 조선 초기까지 불교적 이타행과 시여가 두드러지게 존재했다는 것이다. 또 조선시대에는 경재시여(輕財施與, 재물을 가볍게 여기고 남에게 배풂)는 한 인물의 인격이 존중할 만한 것임을 입증하는 관습적인 표현이 되었다고 한다.
이타적 행위자로서의 시여인
당연히 시여를 자기 정체성으로 갖는, 혹은 정체성이 부여되는 인물은 부자일 수밖에 없었다. 또 그런 인물은 저명한 양반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조귀명이 쓴 <김유련전>에서 조귀명은 최종적으로 김유련을 이렇게 평가했다. “사적 목적이 있어서 어떤 일을 하는 것을 이(利)라 하고, 사적인 목적이 없는데도 하는 것을 의(義)라고 한다. 의는 군자도 실천하는 것을 어렵게 여기거늘, 하물며 향리의 천한 백성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저자는 많은 인물의 사례 나열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상인 최순성에 대한 책은 3가지가 있다고 한다. 그는 급인전(急人錢, 가난하여 급히 돈이 필요한 사람을 위한 금고)을 설치했는데, 즉 최순성은 '시여하는 인간'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의 시여에 대한 몰입은 '어리석은 짓'으로 알려질 정도였고, 그의 호 치당(癡堂)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5장에서 다룬 많은 산문의 주인공, 곧 이타적 행위자로서 시여인의 존재는, 실제 그런 이타적 행위가 현실 속에서 광범위하게 실천되고 있던 상황을 알리고 있다. 곧 이타- 보상담의 이타적 행위와 보상은 현실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회적 현상이기도 했다는 것이다고 한다.
제6장 이타-보상담 출현의 역사적 이유
6장은 저자가 이타-보상담이 출현한 시대적 배경을 추론하는 내용이다.
흉작, 기민, 전염병
먼저 저자는 이렇게 전제한다. ‘이타적 행위를 자기 정체성으로 삼는 사람들이 연이어 나타났다는 것은, 역으로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폭증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할 터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생명의 위기를 일상적으로 체험하는 사회가 도래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몇 가지 정보들을 나열한다. 먼저 흉작과 기민의 시대임을 보여준다. 그런 증거로 1)16세기중반~19세기중반가 소빙기 시대여서 기후변화가 심각해져 농산물 수확이 감소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1592년의 임진왜란과 1636년의 병자호란으로 유민과 아사자 크게 발생했다는 것이다. 다른 연구자들의 논문 등에서 구체적인 통계 추정치를 함께 제시하고 있다. 또 질병이 원인이 되기도 했는데, 경기지방 가구 및 인구의 1/4 이상이 콜레라로 사라졌음을 말한다.
즉 이타-보상담의 확산은 경제적 빈곤에 내몰린 자들이 광범위하게 발생했던 조선후기 상황을 직간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족(양반)-관료체제의 수탈
빈곤의 또 다른 원인은 사족체제의 강화된 수탈도 포함된다. 18세기 조선 사회의 관찰자 이익은 <유민 환집 流民還集>이라는 글에서 학정에 시달린 백성(농민)의 현실을 드러내면서 학정을 금하려면 장법 贓法을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장은 뇌물을 말한다. 따라서 장은 국가권력을 사유화한 사족들이 사적으로 수탈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 임병양란 이후 국가는 거대한 수탈권력이었고 그것을 운영하는 사족-관료들은 수탈의 집행자였다고 지적한다.
화폐의 유통
저자는 부와 빈곤의 극단적 편중이 나타난 또 다른 원인으로 화폐의 유통을 꼽고 있다. 일반적으로 1678년(숙종 4)부터 유통된 상평통보의 보급으로 인해 조선 사회에 실물경제에서 '화폐경제로의 전환'이 일어났다고 판단한다. 그런데 국가가 여러 차례 발행한 금속화폐의 유통이 계속 실패로 돌아갔던 것은, 농민의 무지와 불합리한 일상습관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생활 자체에 금속화폐가 별로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금속화폐의 유통은 농민의 입장에서는 화폐 발행권을 빼앗기는 일대 사건이었다. 그 이전의 교환수단은 곡물과 포목, 즉 미포였고 농민이 생산한 물건이기 때문에 화폐발행권이 농민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1678년 상평통보가 통용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시기 청나라와 일본을 잇는 중개무역으로 벌어들인 은이 풍부하여 은 1냥은 상평통보 400 문이라는 일종의 은본위 시스템을 적용해 그 값을 고정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본과 청이 직접 무역을 하면서 중개무역이 종식되자 조선은 은 부족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유통되기 시작한 상평통보는 화폐로서 계속 기능했고, 정부는 재정이 부족하면 으레 상평통보를 주조했다. 심지어 흉년에 쌀은 비싸고 돈이 흔한 데도 불구하고 조정은 진휼 자금의 마련을 위해 주전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곡물의 가격이 오르는 인플레가 발생했다. 화폐 주조에 이렇게 몰두한 것은 이익이 남았기 때문이다. 1772년 자료에 의하면 100만 냥을 주조하여 20만 냥의 이익을 남겼고, 심지어 구리 함량이 낮은 악화를 만들어 이익을 남기는 데 골몰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허생전>에 따르면, 도고(都賈)라는 것이 있는데 ‘물건이 흔할 때 사들이고 귀할 때 팔아서 돈을 버는 것’으로 이는 화폐 때문에 가능해졌다. 그동안 미포라는 실물을 생산한 만큼 화폐 기능이 생기는데 비해 화폐 주조는 실물과 분리되어 만들어짐으로써 화폐를 이용한 대토지소유자가 나타나고 반대쪽에는 무토농민(토지가 없는)을 대거 발생시킨다. 그래서 또다른 빈부의 극심한 편중이 나타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비윤리적 부의 축적
이 외에도 화폐를 이용한 고리대가 나타났고, 전환(錢還, 지방관리가 춘궁기에 관이 보유한 가치가 낮은 쌀을 팔아서 돈으로 바꾼 후 일부를 착복하고 나머지를 민간에 빌려준 후 가을에 그 곡식에 이자를 더하여 받는 것)이 있었는데, 이는 환곡을 빙자한 고리대금업이었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저자는 임병양란이란 미증유의 전쟁과 함께 기후변화로 인한 흉작과 기근, 전염병의 유행, 사족- 관료체제의 수탈 강화, 여기에 화폐의 도입은 사회적으로 출현한 빈곤화, 비윤리적 부의 축적, 윤리의 파괴를 초래하고 강화하였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죽음(신체적, 사회적) 앞에 선 사회적 약자를 대거 출현케 하였는데, 조선 후기의 문학은 이타-보상담으로 이 문제에 대해 답하고자 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제7장 공유와 공생의 사회
이타-보상담이 지향한 사회
저자는 <흥부전>을 다시 소환한다. 놀부로부터 돈과 토지를 빼앗는 자들의 특징은 대부분 토지에서 축출된 주변부 인간들이다. 이들이 놀부에게서 돈을 뜯는다는 설정은, 비윤리적 부의 축적에 대한 깊은 분노와 강렬한 비판의식을 내장하고 있다. 또한 놀부의 부가 여러 사람들에게 분배되는 것은, 부는 공유되어야 한다는 생각의 존재를 암시한다고 한다.
‘농민이 토지를 잃고 빈곤해지는 것은 분명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였다. 일부 지식인들이 개진한 토지제도 개혁책은 소수에게 토지가 집중되는 것을 막고 농민에게 토지를 돌려주려는 것, 곧 농민의 빈곤화를 타개하려는 방안이었다. 하지만 국가와 사족-관료들은 그것을 실행에 옮길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곧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사족-관료들이 지주였기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흥부전>은 문제 해결의 방법으로 이타적 심성과 행위를 소환했다고 지적한다. ‘임병양란을 거치며 조성된 거대한 위기 앞에 조선 사회의 집단 심성은 다수의 이타-보상담을 만들기 시작했다. 다양한 장르에서 이타- 보상의 구조에 시대적 구체성을 장착한 새로운 이타-보상담이 유포되며, 현실 속에서도 시여를 자기 정체성으로 삼는 인간들을 출현시켰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부의 공유를 실현하는 수단
이런 행위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독점과 사유가 아닌 공유의 관념이다. 한문 단편 <월출도>에는, '백여만금의 재산을 축적하고 있는' 영남의 사족을 턴 군도의 대장이 설파하는 '재물은 천하에 공변된 것(財者, 天下公器)’이라는 말에서 재화는 원래 공유하는 것이 정상이라는 공유의 관념을 끌어낼 수 있다.
저자는 마침내 이타-보상담은 공생의 사유를 문학으로 형상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끝맺음
저자는 끝으로 이렇게 묻는다. “지금 여기 이기적 욕망에 기초한 화폐의 부단 한 축적과 제한 없는 소비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조건 없는 증여를 기초로 공생을 지향하는 이타적 행위는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