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이영석교수님의 부고를 들었다. 2010년대 중반 내가 몰입했던 주제는 제4차산업혁명이었다. 그리고 이교수님은 영국사, 특히 산업혁명기 역사에 두분의 대표학자 중 한분이다. 이교수님은 역사학자, 그리고 다른 한분은 경제사 학자이다. 이 당시 나는 이교수님의 연구를 많이 참조했고, 기회가 되면 만나뵙고 혜안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동료교수들과 조금 다른 관점에서 책(AI시대와 영화, 그리고 시)을 내고 이어서 바로 벌어진 지엠군산공장 철수 사태 때문에 이 주제는 한쪽으로 제켜둘 수 밖에 없었다. 그 사이에 이교수님의 부고를 듣게 된 것이다. 더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이교수님의 부인이 알고 보니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 부터 알았던,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로는 몇차례 잠시 스쳐가며 인사를 했을 뿐, 제대로 인사를 나눌 기회가 없었던 선배였다. 어쩌면 그렇게 스쳐가며 인사할 때 이교수님도 뵈었을텐데... 이제는 그분의 축적된 혜안을 듣지 못한다는 게 우울하다.
그러고 보니 기억나는 또 한분 손용엽교수. 2000년대 중반 자동차산업에서 완성차와 부품의 관계에 고민을 할 때였다. 어느 학회에서 내가 주제발표를 한 후에 손교수님이 내 테이블에 오셨다. 그리고 의기투합해서 한국 자동차부품산업에 대한 대형 연구과제를 만들어보기로 했었다. 그래서 함께 초안을 만들었으나, 이후 소식이 없었다. 나중에 연구재단에 제출했으나 떨어졌다는 답을 들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서인가 뵐 수도 없고 소식도 잘 오지 않았다. 무심코 시간을 보냈다. (나는 찾아오는 사람은 누구나 환영하지만, 내성적이어서 내가 먼저 연락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2010년대 중반 손교수님이 재직중인 학교에 갈 일이 있어서 연락을 드렸다. 반갑게 함께 점심식사를 했는데, 식사중 본인이 암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1년이 지나지 않아 고인이 되셨다. 그분과 삶의 궤적이 겹치는 데가 없어서, 장례식장을 찾아 갔을 때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아니 최근까지도 대통령후보군으로 언론에 오르내리다가 은퇴해서 뉴스가 사라진 정치인이 와있었고 대부분 그분 주변에 몰려 있어서 내가 아는 얼굴이 있는지 찾아보기가 민망해서 바로 나왔던 기억이 난다. 살아계셨으면, 좋은 선배가 되어주셨을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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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우리나라에서 마음으로 존경하는 세 여성이 있다. 물론 젊어서는 나보다 선배들을 존경했는데, 요즘은 내가 늙어서 나보다 젊은 분들을 존경하게 된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후생가외.

임영신, 이라크 전쟁에 인간방패로 참가하셨고, 이후로도 이매진피스를 통해 평화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유가일(유은하), 임영신님과 함께 이라크 전쟁에 인간방패로 참가하셨고, 이후에도 제주강정기지 반대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문제는 그 후유증을 심각하게 겪었고 최근에는 노동을 하면서 많이 회복되었다. 그래서 새로운 평화활동을 위해 뒤늦은 유학을 준비중이다.(이글을 처음 쓴 때로부터 4달이 지나 비자 문제로 중단되었다)
임은정, 우리 시대 진정한 검사이시다. 검새가 아닌… 온갖 핍박 속에서도 검찰의 바른 자리매김을 위해 묵묵히 싸우고 있다.

이분들 덕분에 내가 사는 세상이 조금 밝아지고 있다.
(20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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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주의: 내가 어울렸던, 정확하게는 나를 외국인이라고 외로울까봐 친구가 되어주었던 이들은 성경을 읽을 때 언제나 현재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했다. 예술, 학문, 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서 자기 분야에서 창조질서를 이야기 하며, 그래서 장애나 난민 문제 등을 하나님의 창조세계 속에서 캐나다라는 축복 받은 땅에 사는 자기들의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실천했었다. 이 모임이 진행되는 Swallowfield farm은 드그루씨의 집 겸 농장이다. 드그루씨는 노예무역을 자기 조상인 네덜란드 무역상들이 시작했다는 사실을 늘 고백하고 회개했다.

(사족1: 지성이라곤 약에 쓰려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이 윽박지르는 반지성주의 말고…)
(사족2: 이런 행사를 준비할 때면 이들은 보통 한사람이 1000달러-100만원 정도를 기부한다.)
(사족3: 한국의 대형교회는 그 자체로 사이비 종교이다. ‘한국의 요셉’ 파동을 보니 더욱 확신이 든다)

키가 큰 침엽수가 밀집해 있는 숲속에 활엽수 한 그루가 외롭게 서있다. 곁 가지를 내놓은 흔적 하나 없이 가늘게 위로만 솟아올라 마침내 침엽수 위로 하늘을 향해 잎을 피워내고 햇빛을 만끽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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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장의 잎이 난 다음부터 나오는 잎은 잎에 큰 구멍이 생긴다고 한다. 나중에 난 잎이 더 빠르게 성장하면서 이미 난 잎을 덮게 되는데, 햇빛이 가려져서 먼저 난 잎이 살수 없게 되는 것을 막으려고 잎에 구멍이 나는 것이라고 한다.

추측컨데 monstera라는 이름은 monster(괴물)와 어원이 같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나중에 난 잎이 더 싱싱하고 큰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나중에 난 잎이 자신을 키우는데 필요한 양분을 제공했던 먼저 나온 잎을 배려하는 이 식물은 결코 몬스터가 아니다. 오히려 세대갈등으로 전전긍긍하면서 그것을 정의라고 말하는 대한민국이 진짜 몬스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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