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지방선거를 읽는 방법 1: 민심 혹은 여론
6.2지방선거가 끝났다. 한나라당은 민심을 읽지 못했다고 엄살이고 민주당은 국민의 승리를 운운하지만 속으로는 입이 찢어지는 듯하다. 청와대와 대통령은 여전히 막가파다. 세종시건은 국회로 공을 넘겨버리더니 돈 되는 4대강 사업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정도를 넘어 오히려 더 속도를 낸다. 왜 그럴까? 6.2선거를 읽어보아야 하는 이유다. 이글에서는 먼저 여론조사 결과를 읽어 보려고 한다.
여당 독주견제로 시작했던 민심에 천안함 약발 먹혀
사실 지방선거전이 본격적으로 불타오르기 전 이미 민심은 한나라당과 MB정권에 대한 심판론으로 들썩거렸다. 지난 4월 10일 <한겨레>가 리서치플러스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여당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43.7%인 반면, “국정 안정을 위해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쪽은 29%에 불과해 15%포인트 차를 보였다.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가 오세훈 후보와 6% 차이로 따라 붙었던 것도 이 때이다.
<여론조사 결과 그래프가 있던 곳입니다만 무슨 법이 금지한다고 하네요. 그래서 삭제>
그러나 갑자기 돌출한 천안함 사건으로 이런 분위기는 급반전된다. 5월 8일의 여론조사에서 한명숙과 오세훈의 차이는 다시 19.1%로 벌어졌다. 이는 MB정권 심판론이 널리 퍼지기 이전 수준이다. 적어도 여론조사로는 천안함 사건이 한명숙에 대한 “정치검찰의 탄압 논란”을 한꺼번에 잠재운 것이다. 이런 현상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나타났다.
물론 그 후의 여론조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론조사결과를 발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던 5월 14-16일에 조사된 방송3사의 16개 광역단체장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나라당은 9곳, 민주당은 4곳, 선진당 1곳, 무소속 2곳(이중 하나는 경남의 김두관)에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흔히 오차범위 내 접전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통계적으로 오차범위는 그 조사의 표본크기만을 고려한 것이므로 여러 기관의 조사에서 혹은 여러 차례의 조사에서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면 사실상 오차범위의 의미가 달라진다.
지나치면 가지 않은 것 보다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5월 20일에 있었던 천암함 사건 조사결과 발표는 뜻밖이었다. 애당초 나는 천안함 사건을 “은밀한 북풍”으로 처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북한의 도발이라 해도 이를 입증할만한 증거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당시 한미연합사가 훈련 중이었다는 일부 보도를 근거로 볼 때 한미 양군의 경계에 구멍이 있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게 사실이라면 한미 양군은 대대적인 숙청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15일의 여론조사 결과가 여당에 유리하게 나온 이상 이를 건드려서 더 얻을게 없기 때문에 발표를 선거이후로 미룬 후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다고 발표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합조단은 일반 국민들이 보기에도 의문투성인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오히려 합리적인 의문제기를 막는데 주력했다.
그리고 선거 직전 분위기는 5월 27일 한겨레의 기사, “한나라 ‘자신감’, 민주당 ‘위기감’”이라는 제목이 보여주듯이 한나라당의 일방적인 승리를 예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선거결과는 이런 예상과 전혀 달랐다. 한나라당은 6곳을 차지하는데 그쳤고 대신 민주당이 7곳을 거머쥐었다. 선진당은 1곳, 무소속은 2곳(경남의 김두관을 포함)이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한나라당이 승리한 지역구도 가까스로 이겼거나 혹은 득표율 격차가 여론조사결과보다 훨씬 적었다. 표면상 여당의 참패와 민주당의 선전으로 나타난 것이다.
여론조사가 엉터리였던 것은
이제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여론조사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아마 이번 선거 결과를 보며 비참했을 것이다. 이 정도라면 그냥 점쟁이에게 물어 보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이지만 표본의 문제가 있다. 전화에 의한 ARS조사는 전 연령층의 표본을 골고루 구하기 어렵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응답률이다. 노무현정부 때는 모든 사람이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전화조사도 30%에 육박하는 응답률을 보였다. 그러나 이명박정부 들어서 계속된 언론 탄압은 사람들에게 입을 열면 당할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심어주었을 것이고 여당에 반대하는 사람일수록 응답을 거부했을 것으로 평가된다. 그래서 응답률이 전화면접조사는 15% 이하, ARS조사는 10%에도 미치지 못해 과거 응답률의 절반에 불과했다. 이 응답거부자들의 상당수는 정부와 여당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고 이들의 의견이 여론조사에 반영되지 않았던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ARS조사에서 답지 순서의 문제가 있다. ARS 조사에서는 1번 답지에 무조건 응답하는 현상이 있다는 것은 통계학에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선거여론조사에서 답지의 순서는 보통 정당 순이기 때문에 현재 정당구조에서는 한나라당에게 유리한 왜곡이 발생한다. 이런 왜곡은 MB정부의 국정운영 지지도 조사에서도 똑 같이 나타날 수 있다.
개표 직전에 각 방송사가 출구조사를 통해 선거결과를 예측한 방송을 할 때 방송 3사와 달리 직접 출구조사와 ARS조사를 병행했던 YTN과 MBN의 예측이 지상파 3사에 비해 엉터리였던 점에서 이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만약 다른 이유에 의해 투표 며칠 전에 갑자기 민심이 변한 것이라면 직접 출구조사뿐 아니라 ARS에 의한 출구조사에서도 이런 변화가 나타나야만 한다.
나는 앞에서 천안함 사건이 너무 나아갔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천안함은 민심을 요동치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이었다. 처음에는 북풍의 효과가 크게 나타났으나 20일의 조사결과 발표와 MB의 전쟁불사 발언은 그 효과를 다시 잠재우고 원위치 시키는 효과를 발휘했다. 이런 일련의 발언 후에 특히 외국인 투자자의 매도 공세로 주가가 폭락하면서 ‘이것은 아니다’라는 민심의 동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미 우리 사회는 안정적인 삶을 중시하는 선진국에 들어서고 있는데 ‘전쟁’이라는 단어는 이제까지 쌓아 온 모든 것을 한순간에 날려 버린다는 점에서 매우 민감한 단어이다. 게다가 이런 압박은 범야권연대를 성공시키는 가장 큰 압력이 되었다. 이것이 여당이 천안함 사건으로 처음에 벌어 놓았던 표를 한순간에 다시 날려버린 직접적인 이유였다. 강남의 일부 구에서조차 오세훈이 쩔쩔 매야 했던 것은 이를 보여준다.
한나라당이 가진 저주의 고리
마지막으로 다시 덧붙인다면, MB의 국정지지도를 조사할 때마다 바닥 민심과 달리 항상 높은 지지도를 보였던 이해할 수 없던 현상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점이다. 낮은 응답률과 높은 1번 응답현상에 그 해답이 숨겨져 있다. 한마디로 ARS여론조사는 ‘엉터리’였던 것이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사업들, 4대강, 세종시, 천안함관련 외교 등에서 엉터리 국정지지도를 믿고 밀어붙이는 행위를 즉각 멈추는 게 좋을 것이다. 그것은 이번 지방선거와 다음 보궐선거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차기 정권 재창출과 총선까지 이어질 저주의 고리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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