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중순 대전에서 열렸던 화물연대 시위현장에 노조원들이 깃발을 들고 행진에 나섰다가 깃발을 걸었던 대나무 깃대로 경찰에 맞서서 휘두르게 되었답니다. 이일에 대해 대통령이 "수많은 시위대가 죽창을 휘두르는 장면이 전 세계에 보도돼 한국 이미지에 손상을 입혔다. 이런 후진성을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런 논란에서 과연 우리들은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언론은 죽창이라고 쓰기가 조심스러워서 죽봉이라고 쓰려고 했다고 합니다. 사실 사람들은 흥분했을 때 손에 무언가가 쥐어 있으면 그것이 무엇이던 휘두르게 됩니다. 그래서 시위대는 손에 아무것도 쥐지 않는 것이 좋고, 경찰은 시위대가 무엇인가를 쥐고 있다면 자극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번에도 만장을 들고 가는 시위대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흥분한 시위대가 만장을 달았던 대나무를 휘둘렀던 것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갑자기 ‘죽창’이라고 말하면서 다시 시끄러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창이라는 표현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대통령이 이를 ‘한국 이미지의 손상’으로 이해하고 있고 나아가 극복해야 할 ‘후진성’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자유선진국이라면 국민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의사표시를 합니다. 그리고 그 의사표시가 강제로 차단되거나 무시되고 있다고 느낄 때는 과격한 방법으로 의사표시를 시도하게 됩니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에서 노동자나 학생들의 과격 시위는 종종 있는 일이며 이는 의사가 반영되지 않을 때 택하는 일상적인 방법입니다. 게다가, 최근 태국이나 중국에서 본 것처럼, 선진국에 비해 의사표시의 자유가 훨씬 제한되는 개발도상국들이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 있음을 가장 강력하게 보여주는 현상이 바로 과격 시위입니다.
따라서 과격 시위 자체가 그 국가의 이미지에 손상을 입히는 것도 아니고 후진성을 보여주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오히려 과격한 시위가 발생할 정도로 의사표시의 길이 막혀있거나 국민의 의견이 묵살되고 있는 후진국이라는 점이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것이야말로 국가 이미지의 손상이며, 극복해야할 후진성입니다.
기독교방송(CBS)과 인터뷰에서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스스로 가지지 못하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에 대해 전전긍긍하는 우리 사회의 구시대적인 인물의 모습을 그대로 잘 드러낸 심리는 아닐까. … 그때의 심리상태는 항상 자기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지 못하고 남의 눈을 통해 자기를 볼 수밖에 없는 전근대적이고 식민지적인 사고방식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지적을 많이 하거든요. … 일차적으로 대통령께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보는가의 문제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200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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