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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꼬라지/사회

세 가지 세습이야기: 야만과 혁명

세 가지 세습이야기: 야만과 혁명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일이 자기 아들 김정은에게 권력을 세습하기 위한 조치를 시작해 한 동안 말이 많았습니다. 나는 이 일을 보며 세 가지 세습을 생각했습니다. 이 사건들은 불행하게도 이 민족이 얼마나 야만적인가를 유감없이 드러내는 빙산의 일각이자 피를 부르는 소리로 들려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김정운의 세습

한겨레는 지난 9월 29일 밤 다음과 같이 보도했습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셋째 아들 김정은이 28일 열린 제3차 노동당 대표자회와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9일 보도했다. ...... 김정은은 인민군을 지휘하고 군사정책을 총괄하는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올라 중앙군사위 위원장인 아버지에 이은 군사 분야 2인자의 위상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직은 이번에 신설됐다. 김정은은 앞으로 이를 기반으로 김 위원장의 후원과 친위 세력의 지원 아래 군권을 장악하고 후계 체제를 확립해 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

 

이재용의 세습

삼성가의 재벌 세습도 말이 많습니다. 삼성의 창업자 고 이병철회장은 아들 이건희에게 물려 주었고 이는 다시 3대로 이어져 이재용에게 상속의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 불법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만, 세습은 거침없이 이루어집니다. 김용철변호사는 저서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거대한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를) 각 분야에 던져주어 부패시킴으로써 공적 기능을 무력화하고 ...... 자신들의 영속불변의 부당한 권력체계를 유지하고 확대하는 데 사용한다”고 했습니다. 이를 통해 ‘경영권 불법 세습 및 이 과정에서 저지른 법정 증거 조작’이 가능했다고 보지만 국가기관은 오히려 검증 절차를 통해 이런 주장들이 근거없다고 결론’ 내렸다는 취지입니다.

 

고급공무원의 세습

그런가 하면 외교통상부가 유명환 장관의 딸을 외교부에 ‘특채’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글자 그대로 특(혜를 주어)채(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 장관은 뒤늦게 사과하고 딸의 응모를 취소하겠다고 했지만 외교부는 채용 절차에는 흠이 없는데 오해를 받았다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1차 모집 때 응시자 전원을 불합격 처리한 것은 유효기간이 지난 영어인증시험 성적을 제출한 유 장관 딸을 뽑기 위한 것이었을 개연성이 충분합니다. 시작부터 조직적이고 집요하게 일을 도모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교육청에서도 비슷한 특혜채용이 있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데도 정부는 5급 공무원 특채 비율을 50%까지 늘리겠다는 행정고시 개편안을 내놓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보입니다. 모두 법률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검증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김정운에게 세습하는 것은 북한 체제 상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이재용에게 세습하는 것도 국가기관이 문제없다고 해주었습니다. 유장관의 딸을 특혜 채용한 것도 제도는 문제가 없기 때문에 5급공무원 특채를 늘리겠다고 합니다. 특채 확대는 필연적으로 상류층 자녀가 상류사회를 상속받는 통로로 사용될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김정일도 비난받을 게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야만은 더 큰 야만을 부릅니다. 합법을 가장한 힘의 세습은 언제나 있었고 그 모순이 극대화되면 시민 혁명이 따르곤 했습니다. 근대사회의 시작이 바로 그것이었지요. 공산주의 혁명은 어떤 의미에서 현대사회의 시작이었습니다. 반대로 세습체제를 조금이라도 연장하고자 하던 자들이 늘 택했던 방법은 국민의 눈과 귀를 막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방송통신위원회가 그 일을 앞장서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진 못합니다. 나는 오늘도 이 세상에서 부디 피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