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성경의 느헤미야서를 묵상하며 썼던 글입니다. 묵상노트 성격의 글인데, 최근 다시 읽어 보니 공개해도 될만한 글이고 또 최근 세상 돌아가는 모습 가운데에서 다시 생각할 만한 내용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신앙을 가진 분이 아니면 조금 거북한 말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분량이 많아 나누어 올립니다. 아, 이번에 몇마디 첨가한 것은 [ ]안에 따로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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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의 인물들 중 세례 요한과 느헤미야는 내게 중요한 선생들입니다. 그래서 그 분에 대한 묵상이 시작된 오늘이 참 좋습니다.
느헤미야는 늘 자기 조국과 민족의 처지가 마음에 걸렸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에게 현실을 묻습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사라진 조국과 민족의 처지를 묻는 일 말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말을 듣고 슬퍼합니다. 자기 조국의 현실에 대해 슬퍼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슬퍼한다는 말은 자신이 공동의 책임감을 가질 때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보통은 화를 내지요. 정치인이 잘못해서, 기업가들이 이기적이어서, 노동자들이 말을 안 들어서, 공무원이 교사가 부정하기 때문에, 교수가 실력이 없어서, 학생들이 버릇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기도합니다. 그 책임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자각은 우리를 기도하게 만듭니다. 먼저 자신과 자기 민족의 죄를 고백하고, 그리고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는 기도를 합니다. 자기 민족의 처지를 슬퍼함과 회개, 그리고 약속을 기억하는 기도가 오늘 느헤미야가 우리에게 온몸으로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가르침입니다.
이제 느헤미야에겐 큰 근심이 생겼습니다. 자기 조국과 민족의 처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왕이 느헤미야에게 묻습니다. 물론 느헤미야가 왕에게 가장 큰 신뢰를 받는 사람 중의 하나인 술 관원이었기 때문에 왕은 관심이 많았을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느헤미야의 행동을 살펴보십시오.
자기 조국의 현실을 이야기 하고 자기가 가서 예루살렘 성을 재건축하게 해 달라고 합니다. 왕의 신임을 받는 관리로써 편한 생활을 즐길 수 있는데, 아니 지금 그렇게 즐기면서 살고 있는데, 고생할 게 뻔히 보이는 그 곳으로 가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물론 성격은 좀 다릅니다만, 요즘[몇 년 전] 자식 군대에 안보내기 위해 여러 가지 불법과 편법이 자행되었다고 해서 시끄러운 우리 정치 지도자들의 현실과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곳까지 가는 도중에 만날 관리들에게 통행을 허가하라는 증서까지 요구한 것을 보면 그냥 편한 자리를 박차고 고생하러 가는 정도가 아닌 것 같습니다. 가는 도중에도 목숨에 위협을 받는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진정한 민족의 지도자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은 자신의 평안한 삶을 버리고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곳으로 기꺼이 떠난 데서도 찾을 수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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