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느헤미야의 실천과정을 봅시다.
왕의 총애를 받는 관원으로서, 유다의 총독으로 부임했으니 기고만장할 법한 일 아닙니까? 일제 때 그랬다고들 하지요? 역대 대통령의 자녀들이 그랬다지요? 최근에 서울시장에 취임하신 분[그 분 지금은 대통령이지요]이 그랬다더군요.
그런데 느헤미야를 보십시오.
조용히 밤중에 나가서, 오직 가장 충직한 부하 몇 만 데리고 말입니다, 자기 할 일을 살핍니다. 현실을 자기 눈으로 확인하면서 의지를 더욱 불태웁니다. 그리고는 자기 민족에게 고합니다. 우리의 처지는 우리 스스로의 눈으로 보고 있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역설적이지만 그 땐 언론이라는 게 없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이상한 오리무중의 말로 독자의 눈을 홀리는 그런 이상한 것들 말입니다.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을 이제 해결하자고 외칩니다. 그러니 백성들은 잘 따르겠지요.
그러나 그 길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오랜 역사를 지내오면서 유다 땅에는 이방 민족들이 버젓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소위 앗시리아의 식민지 시절부터 시작된 강제 이주정책 때문이지요. 이들이 딴죽을 걸고 나옵니다. 그것은 역사가 바른 길을 가야할 때면 언제나 등장하는 시험입니다. 민족 간의 이해, 학연, 지연이라는 이해, 이런 것들이 역사의 흐름을 왜곡시키려고 날뜁니다. 그래서 인류는 평화를 눈앞에 두고서도 금 새 사탄의 유혹에 빠져 다툼으로 치닫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 가까운 사람의 대들보는 먼지로 보이고 남의 먼지는 대들보로 보입니다. 그래서 남에겐 정의를 외치지만 자기가 한 일은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아하, 벌써 눈치 채셨군요. 그렇습니다. 이들이 바로 장차 느헤미야가 극복해야할 준비된 또 다른 시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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