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효율화가 중요한 화두가 되자 많은 우리 기업들이 인건비 절감을 위해 중국으로 몰려가는 것이 유행이었다. 다행이 성공한 케이스들도 많지만 실패했다는 소식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인건비가 싸다는 장점만을 믿고 깊은 분석과 전략 없이 뛰어든 결과이다. 숙련된 인력의 부족과 부품소재산업의 낙후를 극복할 전략을 명확하게 수립하지 않으면 오히려 거대한 블랙홀에 빠질 수도 있다. 이런 일은 중국을 시장이 아닌 생산기지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다.
흔히 우리 산업은 샌드위치 신세라고 한다. 고급제품은 일본이나 독일 등 선진국이, 중저가품은 중국이 차지해 가운데 낀 신세라는 것이다. 이 우려할 만한 상황을 해피엔딩으로 끝내려면 중고급시장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 아무리 중국으로 옮겨가도 여전히 우리 기업은 중국기업에 비해 고비용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고, 반대로 중국에서 고급제품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을 갖춘다면 그 조건은 경쟁기업들에게도 똑같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세계 승용차시장은 그 동안 2대 시장이 이끌어 왔다. 북미승용차시장은 미국만으로 픽업을 제외하고 연간 800만대 수준에 이르는 거대시장이며, 서유럽은 1,500만대 내외이다. 일본이 단일 국가로는 미국 다음인 연간 450만대 수준이지만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시장이 크지 않아 아시아시장은 상대적으로 소홀이 다루어졌다. 그러나 사정이 달라졌다. 중국의 2006년 승용차 판매대수가 515만대에 달하면서 극동아시아시장은 세계 3대 자동차시장의 역할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지난다는 판매의 귀재 도요타의 태도에서도 이런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아주 오랫동안 중국과의 합작사업은 오직 기술지도로 일관했고, 합작투자를 결정하고도 시간을 끌던 도요타가 합작생산을 개시하기 무섭게 하이브리드를 투입하고 나선 것이다. 이는 폭스바겐, 지엠 등이 시장을 선점하였으며, 혼다는 ‘기술의 혼다’라는 이미지를 확고하게 구축한 상태에서 중국시장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적절한 전략이다. 즉 ‘환경과 기술’을 결합한 이미지를 통해 중국 시장을 잠식하고자 하는 계산된 행동이다.
1년 전 만났던 상해시자동차행업협회 서기장 Tang은 “앞으로 도시소비자용 자가용차를 농촌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농촌형모델 개발에 적극 나서겠다.”고 했다. 이는 저가차 시장을 형성해 나가겠다는 말로 바야흐로 저가차부터 최고급차에 이르기 까지 매우 다양한 자동차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곧 미국보다 더 완벽한 자동차시장이 될 것이다.
중국 시장에서 한국 자동차는 투입 초기부터 호조를 유지하며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필자가 시장조사한 바에 따르면 여러 가지 자동차 마케팅 이미지 중 중국소비자들에게 한국차가 경쟁차에 비해 더 어필하는 것은 스타일과 광고였다. 이 속성들은 소비자가 그 제품을 직접 구매하지 않아도 획득할 수 있는 외생적 속성이어서 소비집단의 형성과 확산에 유리하다. 이 사실은 한국자동차가 투입 초기부터 호조를 보이는 이유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가능하게 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초기의 호조가 계속되기 위해서는 품질, A/S, 고객만족 등과 같은 내생적 속성들에서 만족도를 높여 같은 가격대의 모델 가운데 고급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딜러 CI 작업을 통해 점포이미지를 구축하는 것도 고급화 전략의 하나로 고려해볼만하다.
여기에 더하여 저가차 시장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중국정부가 압박하는 독자브랜드 혹은 독자모델 개발 요구를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기존의 모델 개발과 전혀 다른 중국식 모듈형 오픈아키텍처 방식을 부분적으로 실험해 보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경제 2007.5월호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현대자동차)
(사진은 베이징현대 공장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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