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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산업/자동차 굴러굴러

한국지엠과 군산공장?


(이 글이 베스트 자리에 올랐군요... 그만큼 한국지엠이 한국사회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나봅니다.)


지금 군산(전북)에서는 지엠의 먹튀 가능성과 군산공장의 운명에 대한 걱정이 많다. 이데일리가 ‘2014년 출시 예정인 지엠의 준중형차 쉐보레 크루즈의 후속모델(J400)이 한국을 제외한 미국 등 5개 공장에서 생산될 예정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나오는 이야기로는 이 모델의 개발은 독일의 오펠이 주도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이 모델은 처음 한국에서 시작했지만, 2015년부터는 수입차가 되는 것이다.

이 일로 군산시장이 지엠을 방문하는 등 요란스러운 모양이다. 자동차산업을 주요 연구분야로 삼고 있는 군산시민으로서 나도 걱정이다. 한편으로는 핵폐기장 논란이 있을 당시에 후보지가 한국지엠(당시 지엠대우) 공장 인근이어서 지엠이 반대하자 전시되어 있던 자동차를 부수며 지엠은 군산을 떠나라고 외치는 만행을 저질렀던 그 군산이 지금의 군산과 같은 도시인지 아리송하기도 하다.

 

먼저 지엠을 좀 자세히 살펴보자. 지엠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하던 시기는 사실 이미 지엠이 몰락의 길로 들어선지 오래였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로 미국의 자존심이었지만 경영지표 상으로는 수익성이 거의 없는 껍데기 회사였다. 그런 지엠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것은 순전히 큰 돈 안들이고 소형차 경쟁력을 확보하는 노다지였기 때문이다.

 

200012CNN의 보도에 따르면 지엠은 100년의 전통을 가진 자동차 브랜드인 올즈모빌의 브랜드 청산을 포함한 영국의 복스홀(Vauxhall)과 독일의 오펠(Opel) 등 유럽지엠도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었다. 이런 조정 작업은 2000년대 중반 이후, 과거에 실패했던 오펠 기반의 월드카전략과 유사하지만 조금 개념이 발전한 모델별 거점을 구축하는 전략으로 나타났다. 이때 한국지엠의 역할은 경소형차의 거점이었고 이를 위해 한국에 연구개발센터를 세우기로 하였다.

 

아마 내가 여기저기에서 이 연구소를 군산으로 유치하지 못하면 군산공장의 운명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지엠의 거점 전략이란 거점에서 개발 및 생산하여 세계에 공급하지만 거점에 해당하지 않는 차종은 해외에서 수입하여 판매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거점 차종의 생산량이 많지 않으면 연구소 인근의 공장 외에는 쓸모없는 공장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이때도 군산시나 정치, 언론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 후 2008년의 불경기와 금융위기로 지엠은 결국 정부의 구제금융으로 목숨을 연명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 위기는 유럽의 신용위기로 이어져서 지엠은 유럽에서도 곤경에 처해있다. 10월 말에 나온 오토모티브 월드(AutomotiveWorld)의 자료에 따르면, 유럽 자동차 판매는 영국만 증가하고 독일은 혼조세이며, 나머지 모든 나라들이 큰 비율로 하락하였다. 거의 20년 만에 겪는 최대 위기이다. 이런 시장 환경에 더하여 유럽지엠은 수년간 적자행진을 지속하고 있는데 적자규모는 금년 3/4분기에만 478백만달러에 달한다. 오펠은 1999년 이래 누적적자가 150억 달러 이상이다.

 

한편 한국지엠은 지난해 과거의 지엠대우라는 브랜드를 버리고 쉐보레로 전환하였다. 나는 이문제로 오랫동안 함께 자동차시장을 연구해온 한 연구자와 대화한 적이 있었다. 그 연구자는 한국 시장에서 쉐보레 브랜드가 대우라는 브랜드보다 젊은 층에 더 어필하기 때문에 분명히 손해가 아니라고 했으나, 나는 생각이 달랐다. 국내시장에서는 분명히 손해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더 이익이지도 않다. IT수단이 매우 널리 퍼져있고, 또 젊은이들의 IT 활용률이 극단적으로 높은 한국에서 브랜드 바꾸기는 어설픈 눈속임으로 치부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시장을 크게 늘릴 수 없을 것이라고 보았다.

 

더 큰 문제는 해외시장에 있다. 지엠이 유럽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은 아주 단순한 상품성 문제이다. 상위 시장에서는 BMWMercedes-Benz와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확고하게 자리하고 있고, 중형차 이하에서는 일본과 한국의 자동차들이 이미 시장을 잠식한 상태이다. 금년 9월까지 유럽의 자동차판매 실적을 보면, 재규어-랜드로버(JLR)32% 늘어난 것을 제외하면, 현대가 9.6%, 기아가 20.5% 증가하였고 폭스바겐이 3.5% 증가했다. 나머지 회사들은 모두 감소했다. 소규모 프리미엄 브랜드인 JLR을 제외하면 사실상 현대-기아의 잔치였다.

 

과거 도요타와 닛산, 그리고 혼다라는 일본의 3대 자동차메이커가 세계시장에서 성공하면서 다른 일본 업체들도 덩달아서 수출이 증가했던 것처럼, 현대-기아의 인지도 제고와 판매증가는 다른 한국 업체에 외부효과로 작용하여 판매 증가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브랜드를 쉐보레로 바꾸면 그런 효과를 얻을 수 없다. 그래서 브랜드 변경은 손해 볼 게 없는 선택이 아니라 득 될 게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지엠도 이를 염려해서인지 크루즈의 후속모델은 기존 크루즈보다 등급을 상향조정하여 내놓을 계획인 것 같다. 아래 등급으로 내려갈수록 일본이나 한국 자동차와 경쟁에서 견뎌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기저기에서 문제투성이인 지엠이 그나마 좋은 실적을 거두고 있는 곳은 중국시장이다. 중국의 지엠은 과거 압도적으로 중국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폭스바겐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경쟁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 배후에 한국지엠이 있다는 것은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문제는 지엠 본사이다. 이들은 한국지엠이 한국인의 고용유지를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자기들의 이익 확대를 위해 필요할 뿐이다. 이것을 욕할 수는 없다. 그것이 기업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군산공장을 닫는 것이 이익이면 닫을 것이고 유지하는 것이 이익이면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정부의 구제금융으로 버티고 있는 지엠이 미국 내 공장은 무작정 폐쇄할 수가 없다. 뉴욕타임즈의 보도에 따르면,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한 것은 미국 내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다는 국민들의 인식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고 한다. 오바마정부는 지엠이 미국 내 공장을 줄이지 못하도록 더욱 압박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엠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너무 빤하다. 개발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는 한국이나 독일에서 개발하고 생산은 시장 가까운 다른 곳에서 하는 것이다. 한국시장에서 판매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생산지 경쟁에서 한국이 불리하다. 군산으로서는 우울한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놓치면 안 되는 점이 있다. 바로 이렇게 되면 이는 다시 과거에 실패한 월드카전략으로 회귀해 버린다는 점이다. 오래전 지엠이 오펠을 통해 르망이라는 소형차를 월드카라고 선전하며 야심차게 내놓은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 유럽에는 '길가에 고장으로 서 있는 차는 볼 것도 없이 오펠의 르망이다.'라는 말이 있었다. 이때부터 오펠은 내리막길을 걸었고 결국 지금의 부실기업이 된 것이다. 그래서 지난 번 지엠의 회생절차가 시작되었을 때도 오펠은 당연히 정리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슬그머니 오펠 매각은 없던 일이 되었다. 내가 볼 때 월드카전략이 실패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런데 미국공장 유지를 위해 그 실패했던 카드를 지엠이 다시 꺼내들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그럼 대책은 무엇인가? 사실 연구소를 유치하지 못했을 때 이미 선택 가능한 방법은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에 상상력을 동원하기 쉽지 않다. 기대하는 것은 한국지엠이 경소형차의 거점으로 확실히 자리매김 되는 것이다. 거듭되는 금융위기로 세계적으로 빈부격차가 벌어져 경소형차의 판매가 크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내 생산량은 더욱 늘어날 것이고 군산공장은 생산차종을 바꾸어 유지할 수 있다. 적어도 지엠의 구상은 이것이지 무작정 군산공장에서 철수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또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 거점전략이다.

 

그렇지만 기업의 의사결정은 전적으로 기업의 몫이다. 그 의사결정이 환경오염이나 노동착취, 부당해고 등 사회적 의미가 있을 때는 그 지역사회가 개입하고 성토해야한다. 그러나 기업 고유의 전략적 선택에 대해서는 우리의 지혜를 전달할 수는 있지만 성토하거나 시위하는 등의 행동은 오히려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군산으로 입주를 희망하는 다른 기업이 이런 모습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아마 한번 군산에 발을 들여 놓았다가는 지역사회의 경영간섭을 피할 수 없겠구나 하면서 주저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지역사회가 해야 할 노력은 군산, 전북지역의 부품업체들이 군산공장의 생산량이 줄어들어도 생존할 수 있도록, 세계 각지(이데일리 보도대로라면 5)의 공장에 부품을 공급함으로써 오히려 부품 생산량이 늘어나게 유도하는 것이다. 미국 자동차회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이 한국의 부품이다. 만족할 만한 품질에 저렴한 가격이 장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아직 군산 철수를 운운할 단계는 아니다. 그러나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또 적당히 엄포를 놓으면서 지역사회로부터 지원을 받아낼 속셈도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 진실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역사회가 함께 지역의 기업들을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대화함으로써 공동의 발전을 꾀하는 것이다.

(2012.11.7.에 처음 썼다가 11.26. 서해타임즈에 싣기 위해 수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