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를 기념해야 할 때에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09년 교사들의 시국선언이 국가공무원법상 집단행동 금지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결했다고 합니다. 그 동안 유사한 사건에 대해 각 법원의 판결이 서로 달랐는데, 이번 판결은 앞으로 비슷한 사건을 판결하는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판결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몰이해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뉴시스(Newsis)에 실린 관련 기사의 일부를 옮겨 보면 이렇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19일 국가공무원법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전지부장 이모(54)씨 등 3명에 대한 상고심에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 등을 인정해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정치적·교육의 중립성이 요구되는 교원이 특정 세력에 대해 집단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현한 것은 교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국민의 신뢰를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행위"라며 "공무원법상 금지하고 있는 '집단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반면 박일환·이인복·전수안·이상훈·박보영 대법관은 "표현의 자유 범위 내에서 특정 사안에 대한 정부 정책과 국정 운영에 반대 의사를 표현하면서 개선을 요구한 것은 공익에 반하는 목적의 행위가 아니"라며 무죄 취지로 반대 의견을 냈다.
이 기사를 읽다가 내가 동의할 수 없었던 점은 ‘정치적·교육의 중립성’이라는 말입니다. 우선 공무원 혹은 교원의 중립성이란 교육현장에서 혹은 업무 처리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히고 행동하는 것은 헌법적 권리로 오히려 권장되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공무원법으로 헌법적 권리를 포괄적으로 제한할 수 있다는 발상을 인정했다는 사실이 납득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본성상 중립이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내 이야기가 아니고 최근 캐나다 대법원이 내린 판결문의 일부입니다. 판결문의 일부를 해석해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공공영역에서 중립성의 달성 노력이 이 나라(캐나다)의 주요 과제가 되고 있다. ...... 우리는 또한 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절대적 중립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도 받아들여야 한다.”
당연히 우리가 항상 중립적인 관점에서 모든 일을 공정하게 처리할 수 있다면 최상입니다. 그러나 캐나다 대법원은 인간이 그렇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결한 것이었지요. 사실 우리는 언론도 절대로 공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TV와 신문을 볼 때마다 매일 아니 매순간 느끼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 이 판결문이 나온 사건은 우리의 사건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사건입니다. 캐나다 퀘백주 정부는 강제로 종교다양성교육을 시키려 시도했습니다. 정부는 종교가 캐나다인들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종교를 공공영역이나 교육에서 배제할 수 없으므로 종교교육을 인정하는 대신 강제로 교육과정에 종교다양성교육을 포함시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단체를 포함한 일부 종교단체들이 그 교육의 내용이 특정 종교에 편향적이거나 또는 ‘모든 종교가 다 같은 것’이라는 교육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캐나다 대법원은 이 선언과 함께 원고승소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절대적 중립성이란 존재할 수 없는 소설이며, 이는 언제나 더 큰 힘을 가진 자가 힘없는 자들에게 가하는 폭력의 근거일 뿐입니다. 크게 양보해서 말한다면, 중립이 반드시 요구되는 사람 혹은 집단에게는 정당에 대해 포괄적 반대나 지지를 금지할 수는 있어도, 정부나 정당의 정책이나 인물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이런 활동이 허용되어야 합니다. 또 중립이란 모두 다 똑 같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전체주의적 발상일 뿐입니다.
또 한 가지 눈여겨봐야 할 것은 정부정책과 국정운영에 대해 반대하는 것을 ‘특정세력에 대해 집단적으로 반대’하는 것으로 해석했다는 점입니다. 나중에 이번 19대 총선결과에 대한 분석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만, 이는 오히려 ‘특정세력’이라고 지칭된 그 집단이 철저하게 계급의식 속에서 행동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정책에 반대하면 자기 집단에 대한 반대 혹은 나아가서 도전으로 둔갑해 버리는 것이지요. 한국에서는 오히려 빼앗기고 차별 받는 사람들에게 계급의식이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사실이 우리나라의 야만성을 잉태하는 자궁이지요.
나는 두 나라의 대법원이 각각 내린 두 개의 판결을 보면서 아직도 우리 대법원이 얼마나 인간의 본성에 대한 몰이해 속에서 계급적인 판결하고 있는지 그 무식한 용감함에 경악합니다.
(2012.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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