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만 할까 How Should We Then Live" 이 말은 프란시스 쉐퍼(Francis Schaeffer)가 쓴 유명한 책 제목입니다. 제가 며칠 전 쓴 글로벌경제가 우리를 원치 않는 죄인으로 만든다는 글에 내가 존경하는 한 목사님이  어느 분의 페이스북에 개인이 이를 속속들이 알 수가 없음을 한탄하는 댓글을 남긴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 말씀이 맞습니다. 도대체 내가 타고 있는 자동차의 철판이 브라질산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며, 브라질에서 생산되는 철강의 일부가 노예들이 생산한 숯으로 제련된다는 사실을 어떻게 개인이 알 수 있습니까?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나역시 같은 형편이고, 그래서 내가 늘 주장하는 말이 '소극적 세상바꾸기'입니다. 


나는 한국 교회가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길 기대합니다. 그리고 그런 관심에서 출발하여 몇 가지 작은 실천을 시작하자고 제안합니다. 


한국 사람들에게도 지금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할수만 있다면 공정무역상품을 구입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공정무역상품은 대표적으로 커피, 초콜렛, 설탕, 축구공 같은 공 등이 널리 거래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품들은 대부분 어린이 (노예) 노동으로 생산되어 왔고, 국제 NGO들이 여기에 뛰어 들어 어린이 노동이 배제되고 농가에 안정적인 적정 가격이 지불되는 시스템을 갖추고 생산하는 상품들입니다. 


또 단일 상품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어린이 노예노동 상품은 카펫트입니다. 주로 인도에서 생산되지요. 미국을 중심으로 카페트 소비가 많은 영국, 독일 등에 만들어진 단체가 GoodWeave이지요. 원래 미국에서 RUGMARK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가 이를 국제 단체로 확장한 것입니다. 


이들은 인도의 카펫트 공장을 심사하여 어린이 노동이 없이 생산된다는 것이 입증되면, 아래 사진과 같은 자기들의 인증마크를 부여합니다. 그리고 이 인증마크를 달고 판매된 카펫의 수익금 1%를 기금으로 징수하여 인도의 어린이들이 어린이답게 교육받고 성장하도록 지원합니다.





물론 이렇게 하려면 우리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합니다. 가격이 비싸서 소비를 줄이거나 지출 금액을 늘려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선한 마음(성령의 인도하심)이 있다면 그 마음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실천에 옮기는 것이지요. 우리 소비 전체를 갑자기 공정무역 상품으로 바꾸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두번째 교회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은 특정 국가들에서 생산된 저가품을 주일학교 선물이나 교회 기념품 등으로 사용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런 상품일수록 노예노동이 슬며시 끼어들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품은 보통 품질이 낮아서 바로 고장나거나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고 버리게 되는데, 이는 환경파괴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횟수를 줄이는 대신 제대로 생산된 국산 상품을 사용하실 것을 제안합니다.


한국 교회가 이런 실천만 해도 그 파장은 매우 강력합니다. 위에서 소개한 GoodWeave가 출범할 당시인 1995년에는 남아시아의 카펫트 산업에 어린이 노동자가 100만명(이들중 상당수가 노예입니다)에 달했으나 지금은 25만명 정도로 줄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공정무역 상품 소비를 조금씩 늘려가면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효과는 없는 것 같아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런 상품의 가격도 점차 낮아지고 이는 또 다시 소비 증가로 이어져 결국 노예를 줄이는 효과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늘 내가 너무 소극적이라는 사실에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극적이라도 행동하는 사람은 아예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 결코 다다를 수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글에 사용된 일부 정보는 Bales등이 쓴 Slavery Today를 참고하였습니다)

며칠전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중에는 Kevin Bales와 Becky Cornell이 공동으로 저술한 오늘날의 노예제도(Slavery Today, Groundwood Books, 2008년발행)라는 책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노예가 있음을 의미하는 책의 제목이 나를 자극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첫번째 장을 읽어 내려 갔습니다.

오늘날에도 전 세계적으로 2700만명 정도의 노예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대부분(1500-2000만명)이 인도, 파키스탄, 네팔과 같은 남부아시아에 있고, 동남아와 서부 및 남부 아프리카에도 제법 밀집되어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남아메리카에도 분포되어 있으며, 적지만 선진국에도 있습니다.

과거의 노예는 소유에 관심이 있었지만 오늘날의 노예는 보통 세 가지 속성을 갖는다고 합니다.
1) 폭력성: 폭력에 의해 완전히 통제되고 있어 스스로 헤어나오거나 자신의 삶의 어느 것도 자신이 결정할 수 없음.
2) 자유의지의 상실: 노예주인에 의해 완전히 통제되고 있어 정부조차도 이들을 통제할 수 없음.
3) 경제적 착취: 노예는 돈벌이를 위해 유지됨.

그래서 저자들은 이 세가지를 합하여 노예제도를 다음과 같이 종합적으로 표현합니다. 
"slavery is a social and economic relationship in which a person is controlled through violence or the threat of violence, is paid nothing, and is economically exploited"

오늘날의 노예제도는 세가지 특징을 갖는데,
1) 저렴한 가격: 1850년경 미국의 목화농장 노예는 현재 가치로 $40,000정도였는데, 오늘날에는 저렴한 지역의 경우, $10 ~ $100 정도에 거래됨.
2) 노예기간의 단기화: 저렴하기 때문에 노예자체가 갖는 자산 가치가 없어서 장기간 보유하려는 의지가 없고, 노예주인들은 노예들의 생명이나 건강에 신경쓰지 않음.
3) 노예의 글로벌화: 많은 나라가 동일한 경제시스템을 채택하고 있어서 동일한 형태의 노예제도가 보편화됨.

이런 노예제도가 증가하는 이유로 저자들은 또 세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1) 2차대전 이후의 급갹한 인구증가: 1927년 20억이었던 세계인구는 1999년 60억으로 증가
2) 급격한 글로벌 경제변화: 가난한 취약 계층 양산. 예를 들어 미국은 연간 $30억어치의 목화 생산을 위해 목화재배농가에 연간 $40억을 보조금으로 지급하여 후진국의 목화농업은 생존을 위해 노예제도에 쉽게 유혹받음.
3) 정부의 부패: 폭력적인 노예제도는 노예주인들과 부패한 공권력의 결탁으로 유지됨.

* 모든 전쟁은 노예를 양산한다.
버마(미얀마)의 인종전쟁, 유고슬라비아의 인종전쟁, 아프리카 및 남아메리카의 여러 곳에서 벌어지는 내전, 심지어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후 미국 정부와 계약한 외국인 노동자들 중에도 네팔에서 납치되어 온 노예가 포함되어 있었음.

* 환경파괴와 노예제도는 순환고리 속에 있다.
댐 건설 등으로 자기 농토에서 쫒겨 난 농민들은 빚에 시달려 결국 노예가 되고 이들 노예는 다시 불법 벌목과 같은 환경파괴 노동에 동원됨.

* 경제적 재앙은 노예를 발생시킨다.
가난한 지역에서 노예가 발생하는데, 가난한 나라들은 자원이 부족해서 가난한 게 아님. 그런 나라들은 보통 시민이 경제에 대한 통제를 상실했기 때문에 가난함. 노예제도가 극심한 나라일수록 빚더미에 앉은 나라인데, 그 빚은 보통 독재자가 착복하거나, 혹은 국민을 압제하기 위해 수입한 무기 때문에 발생한 것임.

저자들은 외채와 노예제도 사이에 명백한 관계가 있음을 통계데이터를 가지고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족) 저자들이 지적한 "시민이 경제에 대한 통제를 상실했기 때문에 가난하다"는 말에 공감하면서, 노예제도문제와는 좀 거리가 있지만, 나는 지금 정부가 무분별하게 체결하는 FTA들이 결국 국민들 스스로 우리 경제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게 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미래전망을 흐리게 하고 있다는 우려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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