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올린 적이 있는 노예에 대한 책에서 읽은 내용 중에 잠시 상념에 잠기게 하는 내용이 있어 소개합니다. 전에 올린 글은 이곳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alafaya.tistory.com/260)


('그대 잊지말라!' 사진은 밴쿠버 시내의 한 공원에 있는, 헝가리국민들이 소련의 독재에 항거하였던 투쟁을 기념하여 세운 비석)



영어의 노예라는 단어 slave는 원래 게르만족들이 슬라브족(slav)을 잡아다가 로마제국에 노예로 팔았기 때문에 생겼다고 합니다. 이 노예제도가 결국 로마나 비잔틴을 지탱하는 힘이었고 오늘날 글로벌 유럽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이 노예제도가 미국으로 전파되어 미국으로 확대된 것이라는 거지요.


노예무역이라고 알려진 당시의 경제구조는 아프리카를 지배하던 식민지종주국의 노예상이나 아프리카 부족장 등에게 유럽의 상품을 공급하고 대신 노예를 받아서 이 노예를 아메리카에 판 뒤 이 돈으로 북아메리카의 1차상품을 구입하여 다시 유럽에 파는 3각 무역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영국에는 노예가 거의 없었지만, 18세기 당시에 영국은 이런 노예무역으로 막대한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 1787년 기독교의 한 종파인 퀘이커교도들과 대학을 갖 졸업한 또 다른 기독교종파인 성공회교도였던 토마스가 첫 인권단체를 결성하여 노예무역 종결을 주장하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791년 전국에 1300개 지부를 갖춘 이 인권단체는 대대적인 캠페인을 시작했고, 노예노동과 관련이 있는 상품에 대해 보이콧운동을 시작했습니다.


1807년 영불전쟁이 종료된 후 이 운동은 다시 추진되어 결국 1833년 노예폐지법안을 통과시켰고, 이는 미국으로 전파되어 역시 퀘이커교도들과 노예신분에서 탈출한 노예들을 중심으로 노예 해방운동을 하게 됩니다. 물론 노예 해방 이후에도 피오니지(peonage)라고 하는 변형된 노예제도가 오랫 동안 지속되었는데, 피오니지란 우리나라에서도 성산업의 성노예들에게 써먹었던 제도입니다.


피오니지란 노예노동을 시키고 그 댓가로 돈 대신 음식이나 물품 등을 구입할 수 있는 쿠폰을 지급하는데, 나중에 정산하면 항상 받아야할 금액보다 많아서 빚을 지게 만들고, 노예는 그 빚 때문에 할 수 없이 노예노동을 계속할 수 밖에 없는 제도입니다. 물론 이런 제도는 당연히 지역 경찰이나 정부와 같은 공권력의 비호 아래 유지되었으며, 이 빚을 그 자녀에게 물려주게함으로써 대대손손 노예노동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노예제도를 옹호한 사람들의 한결같은 주장은 '노예제도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의 경제적 성공'이었다고 합니다.


툭하면 일본의 보수주의자들이나 한국의 수구세력들도 일제의 한국 식민지지배가 한국을 근대화시켰다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박정희의 딸이라는 사람이 아버지의 유신독재가 한국의 경제 성장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도 합니다. 그런 큰 일 말고도 여기저기에 경제성장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고 저지르는 횡포와 억지, 그리고 민주적 절차의 폐기와 실체 위장이 난무합니다.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도 같은 논리를 들이대고 있고, 핵폐기장논의에서도 항상 그게 마법의 칼이었지요.


그래서 이들에게 경제성장은 다른 모든 가치를 파괴하는 이데올로기요, 우상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저항하지 않는 국민은 스스로 그들의 노예가 되기를 청하는 사람입니다.

며칠전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중에는 Kevin Bales와 Becky Cornell이 공동으로 저술한 오늘날의 노예제도(Slavery Today, Groundwood Books, 2008년발행)라는 책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노예가 있음을 의미하는 책의 제목이 나를 자극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첫번째 장을 읽어 내려 갔습니다.

오늘날에도 전 세계적으로 2700만명 정도의 노예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대부분(1500-2000만명)이 인도, 파키스탄, 네팔과 같은 남부아시아에 있고, 동남아와 서부 및 남부 아프리카에도 제법 밀집되어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남아메리카에도 분포되어 있으며, 적지만 선진국에도 있습니다.

과거의 노예는 소유에 관심이 있었지만 오늘날의 노예는 보통 세 가지 속성을 갖는다고 합니다.
1) 폭력성: 폭력에 의해 완전히 통제되고 있어 스스로 헤어나오거나 자신의 삶의 어느 것도 자신이 결정할 수 없음.
2) 자유의지의 상실: 노예주인에 의해 완전히 통제되고 있어 정부조차도 이들을 통제할 수 없음.
3) 경제적 착취: 노예는 돈벌이를 위해 유지됨.

그래서 저자들은 이 세가지를 합하여 노예제도를 다음과 같이 종합적으로 표현합니다. 
"slavery is a social and economic relationship in which a person is controlled through violence or the threat of violence, is paid nothing, and is economically exploited"

오늘날의 노예제도는 세가지 특징을 갖는데,
1) 저렴한 가격: 1850년경 미국의 목화농장 노예는 현재 가치로 $40,000정도였는데, 오늘날에는 저렴한 지역의 경우, $10 ~ $100 정도에 거래됨.
2) 노예기간의 단기화: 저렴하기 때문에 노예자체가 갖는 자산 가치가 없어서 장기간 보유하려는 의지가 없고, 노예주인들은 노예들의 생명이나 건강에 신경쓰지 않음.
3) 노예의 글로벌화: 많은 나라가 동일한 경제시스템을 채택하고 있어서 동일한 형태의 노예제도가 보편화됨.

이런 노예제도가 증가하는 이유로 저자들은 또 세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1) 2차대전 이후의 급갹한 인구증가: 1927년 20억이었던 세계인구는 1999년 60억으로 증가
2) 급격한 글로벌 경제변화: 가난한 취약 계층 양산. 예를 들어 미국은 연간 $30억어치의 목화 생산을 위해 목화재배농가에 연간 $40억을 보조금으로 지급하여 후진국의 목화농업은 생존을 위해 노예제도에 쉽게 유혹받음.
3) 정부의 부패: 폭력적인 노예제도는 노예주인들과 부패한 공권력의 결탁으로 유지됨.

* 모든 전쟁은 노예를 양산한다.
버마(미얀마)의 인종전쟁, 유고슬라비아의 인종전쟁, 아프리카 및 남아메리카의 여러 곳에서 벌어지는 내전, 심지어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후 미국 정부와 계약한 외국인 노동자들 중에도 네팔에서 납치되어 온 노예가 포함되어 있었음.

* 환경파괴와 노예제도는 순환고리 속에 있다.
댐 건설 등으로 자기 농토에서 쫒겨 난 농민들은 빚에 시달려 결국 노예가 되고 이들 노예는 다시 불법 벌목과 같은 환경파괴 노동에 동원됨.

* 경제적 재앙은 노예를 발생시킨다.
가난한 지역에서 노예가 발생하는데, 가난한 나라들은 자원이 부족해서 가난한 게 아님. 그런 나라들은 보통 시민이 경제에 대한 통제를 상실했기 때문에 가난함. 노예제도가 극심한 나라일수록 빚더미에 앉은 나라인데, 그 빚은 보통 독재자가 착복하거나, 혹은 국민을 압제하기 위해 수입한 무기 때문에 발생한 것임.

저자들은 외채와 노예제도 사이에 명백한 관계가 있음을 통계데이터를 가지고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족) 저자들이 지적한 "시민이 경제에 대한 통제를 상실했기 때문에 가난하다"는 말에 공감하면서, 노예제도문제와는 좀 거리가 있지만, 나는 지금 정부가 무분별하게 체결하는 FTA들이 결국 국민들 스스로 우리 경제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게 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미래전망을 흐리게 하고 있다는 우려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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