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그러지마소’
이 말은 1970년대 중반에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교실의 달력에 12월 25일 성탄절 위에 덧 써 놓았던 낙서이다.
예수는 인류 구원을 위해 죽어야만 하는 존재로 태어났다. 그런 아기 예수가 탄생한 날을 오직 흥청대며 살아가는 교회와 세상이 이상했다. 그 날은 애통해하며 동시에 감사하는 날이지 환희를 누리는 날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크리스마스가 이렇게 흥청대는 날이 되었던 것은 유신독재체제의 유지 수단의 하나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청소년들에게 정치 관심 갖지 말고 그냥 놀기나 해라, 뭐 이런. 물론 상상이다.
아무튼 이런 생각은, 훗날 교회와 목사가 주입해주는 내용이 아닌 스스로 성경을 읽으며 신앙을 키워가면서 읽은 마태복음 2장에서 절정에 달했다. 헤롯은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해, 동방박사들의 말을 토대로, 베들레햄과 그 일대의 두 살 아래 어린이들을 모두 학살했다. 그들의 이유없는 죽음은 바로 우리의 구원을 위한 희생이었다.
11월호(2025년) <복음과 상황>는 백지윤님의 글, ‘이 죽음을 기억하라’가 실려있다. 백지윤은 4.16 세월호 사고로 스러져간 수많은 어린 생명들을 기억하며, 바로 베들레햄의 어린이들을 생각해낸다. 자식을 잃은 엄마에게는 어떤 위로도 소용없다. 위로를 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의 죽음을 온갖 거친 말로 조롱하고 유족에게 고통을 주던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저주가 있어야만 한다고 믿는다.
“라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울부짖으며, 크게 슬피 우는 소리다.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우는데, 자식들이 없어졌으므로, 위로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마태복음서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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