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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꼬라지?/살면서 가끔...

성공해서 찾아뵙겠습니다.

성공해서 찾아뵙겠습니다.

 

어젯밤에 받은 전화 한 통이 날 기쁘게 한다. 아니 어쩌면 내가 선생이어서 행복한 순간들의 하나일 것이다. “교수님 오늘부터 출근 시작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성공해서 찾아뵙겠습니다.” 물론 마지막 말, 즉 성공해서 찾아뵙겠다는 말 때문은 아니다.

 

2월에 졸업하는 한 학생이 있다. 약간 어눌한 느낌을 주는 학생이었는데, 1학년 때부터 무언가 도전해보고 싶어 했다. 그런데 말로는 그렇게 말하면서 실제 행동은 전혀 따라주지 않더니, 어느 날 휴학하겠다고 했다. 그때도 이러저러한 이유를 말했지만, 건강에 약간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 것 외에는 그리 깊이 있게 알 수 없었다.

 

복학 후 다시 내 연구실에 들어와 생활했는데, 웬걸 휴학하기 전과 별 다를 게 없었다. 내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집중적으로 캐묻자 비로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이 드러났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한 후 알콜중독자가 되었고 가정 폭력이 있었다. 견디다 못해 어머니는 가출하여 아들들하고만 연락하고 지내고 있었다. 가출한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을 하며 적은 수입으로 살아가고 계셨는데, 아버지가 이혼에 합의해주지 않아 이 학생은 국가장학금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수입이 문제가 된 것이다.

 

후배 교수가 연구조원으로 활용하여 연구비의 인건비를 챙겨주었지만, 아버지는 툭하면 사고를 내서 그 돈이 그쪽으로 흘러들어가야만 했다. 자신을 배려해 준 교수들에게 미안해서 가능하면 마주치지 않고 피하고 싶게 만들었다. 폭력과 경제적 어려움이 이 아이를 어눌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지난 해 여름 이 학생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나는 서둘러 상속포기처리를 하도록 했고, 아버지라는 짐을 벗어던진 후 학생은 전보다 많이 밝아졌다. 취업 인터뷰를 대비해서 매주 TV토론 프로그램을 시청한 후 나를 찾아와 같은 내용으로 토론을 했다. 갈수록 말을 잘하고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해서 발표했다.

 

1학년 때 나를 찾아와서 했던 말이 컴퓨팅 분야를 하고 싶다고 했었다. 그러나 4학년 2학기라는 짧은 기간 동안 공부를 시키기 위해 아예 전문적인 분야를 집중적으로 교육시키는 프로그램을 소개 받아서 서울로 보냈다. 그리고 지난 해 12, 서울의 한 컴퓨팅회사에서 지인으로부터 추천해줄 학생이 있냐고 묻는 전화가 왔다. 나는 이 학생을 보냈다. 현재보다 미래를 보고 뽑아보면 어떻겠냐고 했는데 면접 후 채용을 확정했다. 그리고 어제(15) 첫 근무를 마치고 전화를 한 것이다.

 

나는 그 학생이 성공해서 찾아오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성공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이 아니다. 그냥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잘 살아간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어쩌다 들려오는 풍문으로나마 아무개가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만이다. 그게 선생이란 직업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