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People’s History of Christianity
:The other side of the story
Diana Butler Bass, 2009, HarperOne
이 책의 저자 Diana Butler Bass(이하 DBB)는 듀크대학에서 교회사로 박사학위를 받고 캘리포니아대학교(U.C. Santa Barbara), Rhodes 대학, 버지니아 신학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그리고 지금은 워싱턴 국립대성당의 Cathedral College의 선임연구원(Senior Fellow)으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침례교 가정에서 자랐으나 당시의 미국 침례교는 인종차별에 동참했다. 10대 소녀일 때는 보수적인 무종파주의 교회에 다녔으며, 지금은 북미성공회(Episcopalian Church)의 신도이다.
DBB는 자신이 친구에게 들었던 이야기로부터 이 책을 집필하는 동기를 얻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일반적인 말로 바꿀 수 있다. ‘하나님은 인류의 역사에 개입하시는가? 사실 예수를 따른다는 종교로서의 기독교가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에 대해 냉담하게 만들었다. 압제, 이단심판, 분파, 캐토릭교회의 종교재판, 마녀사냥, 학살, 종교전쟁 등 인간적인 야망과 잔혹함의 역사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 이야기 속에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그 하나님은 무심하거나 악한 존재이고, 만약 존재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관심가질 게 없다’
DBB의 말에 따르면, 자유신학자들은 사람들이 예수의 이상대로 사는데 실패했고, 역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범한 실수에 대한 장황한 기록이라고 한다. 따라서 미래에는 나아질 것이라는 전통적인 믿음을 부인한다. 보수신학자들은 하나님이 거룩한 손길로 배우와 행동을 직접 조정함으로써 역사를 주관하신다고 한다. 또 자연적, 인간적 악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며 역사는 도덕적 교훈이나 학습이라고 한다. 그러나 DBB는 예수 이후의 기독교인들의 역사 속에서 기독교 이야기의 다른 측면을 발견할 수 있고 기독교인들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영을 분별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내가 이 책을 서론을 읽으면서 읽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한 용어는 다름 아닌 오늘날 주류 기독교를 Big-C 기독교라고 정의해 놓은 저자의 시각 때문이다. Big-C 기독교는 예수 (Christ), 콘스탄틴황제 (Constantine), 기독교국가 (Christendom), 캘빈(Calvin), 그리고 기독교국가로서의 미국(Christian America)으로 상징된다. 이는 호전적 기독교(militant christianity)이다. 캘빈의 종교개혁으로 청교도(Puritan)들이 탄생했으며 이들이 신대륙으로 건너가 미국이라는 기독교국가를 건설했다. 보수주의자이건 자유주의자이건 모두 ‘하나님의 뜻을 땅위에 건설한다는 의로운 목적을 위해’라는 수사적 표현과 함께 공격적이고 호전적으로 행동해 왔다. DBB는 이런 전승이 처음 Cotton Mather(1702)가 쓴 <Magnalia Christi America (미국에서 행한 그리스도의 위대한 역사)>에서 시작되어 지금까지 교회 역사의 일정한 형식이면서 동시에 미국문화를 형성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기독교는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은, 서구 기독교의 승리이야기가 펼쳐지는 Big-C 이야기는 현 시대의 요구를 이야기하는 데 실패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가 말한 대로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옳은 일을 하며 살기 위해 발버둥친 사람들의 전혀 호전적이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는 모두에 대한 겸손한 봉사로 세상을 변혁하고 인간사회에 은혜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그리스도를 따른다. 그래서 이를 Big-C기독교와 구별하여 ‘위대한 명령 기독교(Great Command Christianity)’라고 부른다. 이는 누가복음 10:25-37에 있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의 “가서 너희도 이같이 행하라(Go and do likewise)”를 따르는 기독교라고 한다.
이 책의 제목은 Howard Zinn의 “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에서 따온 제목이다. Zinn은 미국의 역사를 여성과 소외자들 그리고 노동자들의 관점에서 말함으로써 사회적 행동주의의 틀로 기술한다. 이 책은 그리스도인의 관점에서 예언자로서의 예수의 삶을 흉내 냈던 사람들에게 초점을 둔다. 즉 정통성이 아닌 하나님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던 예수의 부름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진짜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으로 행동했던 순간들에 초점을 맞춘다. 만약 기독교가 영적인 통찰력을 제공한다면 사람들은 교회사 속에서 예수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자신의 연구를 바탕으로, 로마시대의 기독교가 현 시대의 기독교와 완전히 다르지만, 초기 기독교의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신앙에 대한 초기 기록들을 관통하고 있는 놀라운 개념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즉 기독교는 혼란스러운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의 인생을 바꾸었기 때문에 계승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초기 500년 동안 사람들은 기독교를 교리체계가 아닌 삶의 방식으로 이해했고 따라서 초기 기독교인들은 ‘그 길을 따르는 사람들(the People of the Way)’이라고 불렸다 한다. 변화력을 지닌 그 길 때문에 당시 로마의 기독교 비평자들은 기독교 교리를 비난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의 헌신적 사랑의 실천이 급진적이며 사회분열적이라고 비난했다.
Justin Matyr(?100-?165, 캐토릭과 정교회에서 성자로 추앙하는 기독교 변론가)는 ‘과거에는 무엇보다 부의 획득과 소유에 가치를 두었던 우리들이 지금은 모든 소유를 공동으로 돌리고 필요한 모든 사람과 나눈다. 서로 미워하고 파괴하며 사는 방법이 다르다고 서로 다른 종족과는 함께 살지 않으려 하던 우리가 지금은 그리스도의 오심 때문에 그들과 다정하게 살며 우리의 적을 위해 기도한다.’라고 적었다고 한다. 예수 안에서 새 길이 열린 것이며, 기독교는 분열적인 것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 안에 품는 종교였다.
DBB는 바로 그 길이 마가복음 12:28-34에 기록된 예수의 가르침에 기초한 것이라고 이해한다. 한 서기관이 주께 모든 계명 중 첫째 되는 계명을 묻자 예수가 대답한,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던 명령 말이다. 그래서 ‘위대한 명령’이다. 누가는 여기에 덧 붙여 주님이 ‘이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누가 10:28)’라고 했다고 적었다. 이 길이 바로 구원의 길이라는 것이다. 초기 기독교인의 지침서인 The Didache(12사도의 가르침)도 같은 취지로 말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교회사를 통 털어 마로 이런 삶의 기독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실천하며 살았던 기독교의 흔적을 유명한 저자들의 글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실천하며 살았던 사람들의 기록을 통해 추적하고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추적의 기록이다.
<사족>
그러나 Big-C 기독교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313년,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식적인 종교로 인정하면서 기독교인들은 국가로부터 많은 부조를 받았다. 교회는 물론 목사나 사제도 부자가 되었다. 그러자 교회는 ‘너희는 소유를 팔아 가난한자들을 위해 주라’는 것과 같은 말씀들을 비유와 상징으로 읽는 원칙을 세웠다.
콘스탄틴은 옛 비잔틴을 콘스탄티노플로 화려하게 재건하였다. 콘스탄틴 이후의 황제들도 계속 이 도시에 보물을 쏟아 부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자들이 넘쳐 나는 영향력 있고 무한한 권력을 가진 기독교 로마제국의 수도로 만들었다. 별로 놀랄 것도 없이 이런 환경 속에서 교회도 변하였다. 교회의 자선행동의 비용이 국고 대체되어 기독교인들의 윤리나 실천은 느슨해졌다. 이때 실제로 목사나 사제들이 자신의 화려한 생활을 위해 구호물자나 헌물을 훔치는 성물매매가 있었다.
또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로마의 종교가 되는 길을 열어주자 당시 기독교인들은 콘스탄틴 황제를 13번째 제자라고 칭송했다. 콘스탄틴의 대대적인 기독교진흥사업과 조치들로 박해는 그쳤고 순교는 기억에만 남아있게 되었다. 심지어 5세기에는 로마군인은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는 자격조건이 생겼다.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이 세상의 일시적인 체류자가 아니라 로마와 하늘나라 두 곳의 시민권을 가진 이중국적자가 되었다. 또 많은 교회 지도자들에게 로마는 바로 지상에 임한 하나님나라였다. 그리스도인의 모순은 사라졌다.
그러나 410년 영원할 줄 알았던 기독교회의 요람 로마가 고트족에게 침범 당하자, 라틴어 성경을 번역했던 제롬(Jerome)은 ‘영원한 도시 로마가 무너지면 세상에 무엇이 안전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탄식했다.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두 도시의 시민임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476년 로마는 멸망하고 피난민들이 히포로 몰려오자 어거스틴은 이들을 불쌍히 여기며 설교했다.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의 꾐에 빠져 자신의 진짜 시민의식을 망각했다는 것이다.
비록 로마가 한 동안 믿음의 울타리였지만, 이것 역시 사람의 도시이고 그 삶의 방식이 궁극적으로 이기심에 기초한 곳이었다. 하늘의 도시인 순례자 사회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지혜를 구하며 구제와 환대를 실천하는 곳이다. 현실에서 이 두 도시는 섞여 있다. 때때로 사람의 도시는 하늘의 도시를 존중하기도 하지만 또 때때로는 그렇지 않다. 로마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자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던 삶의 길로 돌아가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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