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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미신/Willoughby Church

난민을 생각하는 예배시간에 주기도문을 한국어로

윌러비교회는 올 크리스마스를 전후해서 국제 난민 한 가정을 교회 식구로 받아들입니다. 그 가족은 지금 모처에서 외상후증후군 치료를 받으며 캐나다 생활에 적응하는 훈련과 함께 영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이미 지난 초여름에는 그 가족의 정착을 돕는 특별헌금을 해두었습니다. 그리고 마크 목사는 오늘부터 2주간 난민문제에 대해 하나님께서 무어라고 하셨는지를 주제로 연속 설교를 합니다. 이 시리즈 설교 역시 난민가정을 받아들이는 준비과정입니다.


이 난민가정은 북미 크리스천리폼드처치 교단에서 도울 난민가정들을 조사한 뒤 우리교회(나도 어느새 윌러비교회를 우리교회라고 부를 만큼 친숙해지기도 했고 또 몇 사람 친해진 사람들이 생겼습니다^^)에 의사를 타진했고 우리 교회가 여기에 기쁘게 참여한 것입니다. 


오늘 설교의 본문은 신명기 10장 12-22절에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예배시간마다 감탄하는 것입니다만, 언제나 예배는 그날 설교 주제나 본문에 맞추어 모든 프로그램이 같은 주제로 만들어집니다. 이런 프로그램에는 마크의 부인인 에린(Erin)도 중요한 역할을 하며 참여합니다. 그녀는 기독교세계관 분야에서 제법 유명한 Trinity Western University (트리니티웨스턴 대학교)의 교수(그분의 책은 한국에도 몇권 번역되어 있습니다)의 딸입니다. 사실 한국에서 목사사모는 스트레스가 매우 많다고 합니다. 제왕처럼 섬김을 받는 목사의 사모이면 함께 여왕 노릇을 하지만, 대부분의 사모는 자신의 능력에 상관 없이 소리없이 희생해야만 하고 게다가 집에서만 제왕노릇하는 남편 목사를 섬겨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에린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우리는 언제나 사모에 대한 편견에서 해방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은 세계지도를 앞에 붙여 놓고 아이들을 앞으로 불러 모은 후, 리즈 목사가 먼저 세계 지도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캐나다, 그리고 밴쿠버가 어디쯤인지 지도에서 찾아보라고도 하며, 우리교회에 교인들은 많은 수가 더치(네덜란드 사람)들이지만 다른 많은 유럽사람들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 한국에서 온 사람들도 있다고 소개합니다. 물론 이런 소개과정의 핵심은 세계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이들이 캐나다에 이주민으로 온 것이며, 아브라함도 그렇게 이주했었음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즉 우리 모두는 다 '나그네'라는 것을 이해시킨 것입니다. 이외에도 찬양곡이나 예배 중 찬양팀이 낭독하는 말씀들이 다 같은 주제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 순서가 지나고 내가 앞에 나가서 한국어로 주기도문을 읽었습니다. 물론 한국어를 알아들을 사람들은 없지만, 마크목사가 오늘의 주제를 감안할 때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주기도문을 들려주고 싶어 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들에게 너희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언어이지만 한국어로 주기도문을 읽겠다고 했고, 이어서 나는 주기도문을 읽을 때마다 북한에 있는 내 동포들이 생각난다고 말한 후 주기도문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오늘 본문 말씀을 영어로 낭독하고 내려왔습니다.


오늘 따라 예배 시간 내내 북한 동포들 생각에 눈물이 글썽였습니다. 예배 후 한 여성분(이분도 어느 학교의 교장선생님입니다)이 한국어로 읽는 주기도문이 영어로 읽을 때보다 길다고 말하길래, 난 눈물이 많아서 읽다가 중간중간 쉬어야 했다고 대답했습니다. 또 어느 분은 네 짧은 멘트가 오늘의 좋은 설교였다고 말해줍니다.


신명기를 가지고 설교하는 마크 목사는 언제나 처럼 진지합니다. 나중에 마크의 설교와 내 묵상을 합해서 블로그에 올려보고 싶습니다. 오래 전 한국에서 묵상하던 때에도 발견했던 부분이고, 또 언젠가 이곳에 이 말씀을 인용한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만, 신명기에서 하나님이 하신 명령이 특별한 이유는 다음과 같은 전이과정 때문입니다.


"[신 10:19] 너희가 나그네를 사랑해야 하는 것은, 너희도 한 때 이집트에서 나그네로 살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표준새번역의 말씀으로 인용하였습니다만, 영어번역본들을 보면 이 '나그네'를 여러가지 단어로 번역했습니다. 'alien(이방인)', 'sojourner(일시 체류자)', 'stranger(낯선 사람 혹은 나그네)', 'resident alien(거주 이방인)' 등이 그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이들 난민들을 사랑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들도 난민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난민을 사랑해야 하는 것은 우리도 난민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다분히 캐나디언들에게 해당하는 해석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나라에 있음을 기억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 모두는 다 이방인이요, 난민이라는 사실을 망각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 또 이들에게 한가지 배웁니다. 난민을 대하는 태도며, 난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이들이 보여준 신중하면서 철저한 준비과정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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