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라 꼬라지/사회

공공서비스라는 말의 무게 혹은 의료는 아직 공공서비스가 아니다

코로나 상황에서 정부는 의료개혁 4대정책을 발표했고, 의사들, 특히 전공의들의 저항이 시작되었다. 여기에 의협회장의 돌출성까지 더해져서 의사들은 순식간에 온 국민에게 ‘공공의 적’이 되었다. 정치적 수사까지 더해져서 이 상황은 정치적선전만 난무하고 이성적인 토론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의료를 생명을 다루는 공공서비스라는 주장은 넘쳐나지만, 공공서비스의 기본 요건조차 관심을 가진 사람이 없다. 애당초 의사집단과 협의없이 코로나를 틈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 보건복지부의 시도는 적어도 겉으로는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파업이 장기화되면 결국 피해는 국민에 돌아온다. 지금이라도 늦지않았다. 근본을 살펴야 한다.

어느 국가나 모든 지출을 국가의 재정으로 하는 공무원이 있다. 이들은 단 1원도 스스로 투자하지 않고 살아간다. 그러면서 하는 일은 국가의 시스템을 유지하는 일이기 때문에 중단했을 때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커서 파업권리를 제약한다. 특히 군인과 소방관에게 이런 제한이 강조된다. 국공립학교의 교원들은 모두 공무원이다. 국공립학교는 아무도 투자한 사람이 없다. 전액 세금으로 지어지고 유지된다. 급여도 세금으로 지급한다. 그래서 교사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았었다. 전교조가 이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해 얼마나 고초를 겪어야 했던가? 그러나 지금은 정부가 ILO협약에 따른 핵심쟁점사항에 관해 법률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교사뿐 아니라 공무원의 노동권을 인정하는 것도 핵심쟁점사항이다.

반대편에 민간서비스가 있다. 민간서비스는 사업자가 모든 투자를 한다. 자신이 투자하고 시장의 원리에 따라 고객을 유치한다. 정부 가이드라인이 있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서비스의 댓가는 서비스 제공자가 정한다. 서비스의 품질에 따라 고객이 많으면 올리고 적으면 내리는게 일반적이지만, 사업자에 따라서는 사업의 목표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학원이나 과외교사는 자신이 투자하여 세운 학원에서 경쟁력에 따라 한 달에 수백만원을 하는 과외부터 불과 수만원짜리 학원 강좌를 운영한다. 이런 구조 때문에 아무리 교육이 중요해도 사교육을 공공서비스라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 공공서비스가 있다. 공무원이 직접수행하지 않지만 국가가 제공해야할 중요한 서비스를 민간이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서비스제공기관을 설립하는 것도 세금으로 하고 인건비를 포함한 운영비도 전적으로 국가가 책임진다. 원래 이런 서비스들은 국가가 제공하던 것이 아니고 민간에서 먼저 수요를 발견하고 민간서비스로 제공하던 것을 나중에 여러가지 이유로 국가가책임지게 된 것이다. 정부도 아닌데 공무를 수행하는 복지기관을 포함하여 산하기관들이 그런 것들이다. 사립학교도 마찬가지이다. 원래 사립학교들은 설립자가 투자하여 학교건물을 짓고 등록금을 공립학교와 달리 비싸게 받으며 교육서비스를 제공했다.

의무교육을 도입하려고 보니 사립학교가 제공하는 민간서비스를 공공서비스화 해야만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교원의 월급과 기타 서비스제공에 필요한 교과비용을 국가가 전적으로 지급했다. 여기에 비례해서 사립학교 등록금도 없애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교육시설(건물 포함)이 노후화 되자 이제는 이런 시설비용도 국가가 지급한다. 그렇지만 처음 설립할 때의 투자를 인정해서, 비록 논란은 있지만, 아직도 인사권을 포함한 모든 경영권을 학교재단 이사회가 행사한다. 이렇게 우리사회는 민간서비스를 공공서비스로 바꿔온 경험이 풍부하다.

지금의 의료는 어떤가? 많은 뜻있는 사람들의 희망과 전혀 다르게 개인병원들은 100% 민간서비스이다. 자기가 투자해서 병원을 열고 환자가 오지 않으면 망한다. 그런데 여기까지만 민간서비스이다. 투자하고 자기가 책임지는 딱 거기까지만이다. 인기가 있어서 아무리 환자가 많이와도 진료비를 올릴 수 없으니 죽으나 사나 오는 환자를 다 진료해야 한다. 환자가 적어지길 바라는 의사들이 의외로 많다. 그들도 인생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것은 국민건강보험 때문이다. 우리 보험제도는 정부에게만 세계에서 가장 좋은 제도이다. 사실 미국과 캐나다가 양 극단의 의료시스템을 가지고 있고, 우리나라는 그 사이에 위치한 합리적인 제도이다.

이 좋은 제도가 정부만 좋고 국민의 원성을 사는 이유는 진료에 대한 댓가가 원가에 크게 못 미치기 때문이다. 개인병원의 의사들은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만 소득이 유지된다. 그래서 환자는 언제나 의사를 만나서 진료를 받을 수 있지만 오랫동안 이야기할 시간이 없다. 대학병원은 전공의를 노예로 만든다. 주당 80시간노동에 인수인계 시간은 아예 노동시간에 잡히지도 않는다. 인수인계는 앞서 근무한 자가 다음 근무자에게 환자의 상세를 설명하는 일로 의료수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들이 버티는 이유는 한 가지이다. 총 15년 이상 걸리는 이 과정을 빨리 끝내고 개업해서 돈이나 벌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정책에 앞서 해야할 일은 의료수가의 현실화이다.

지금 이 사태. 정부가 의사들을 협박하고 의사들은 파업하는 사태는 결국 국민들만 골병들게 만든다. 언론사들은 진료공백으로 응급환자가 사망했다고, 수술이 지연되고 있다고 아우성이지만 정부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모두가 일을 벌인 정부가 아니라 의사를 원망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면 정말 극단적인 사태가 빚어질 수도 있다. 왜 그 좋은 경험, 민간서비스를 공공서비스화한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다지도 무식하게 싸움만 하고 있는 걸까?

공공서비스화 하는 과정은 매우 단순하다. 정말 지방에 의사가 부족하다면 지방에 공공병원을 지으면 된다. 병원의 설립부터 운영까지 모든 책임을 국가가 지면 된다. 정부가 이렇게 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실제로 공공병원은 일산에만 지었다. 왜 그럴까? 지방에 공공병원을 지으면 세금먹는 하마가 된다는 것을 가장 잘아는게 보건복지부이고 아마 이 문제가 기관평가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래서 공공의료는 절대로 지방에 혜택이 가지 않을 것이다. 또 다시 수도권을 위한 정책일 뿐이다.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진주의료원을 폐쇄했을 때 다들 비난만 했지 왜 폐쇄했는지에 대해서 대책을 논의하지 않았는데, 진주시 정도의 규모로도 공공병원을 유지할 만큼 인구가 안되는게 현재 한국의 의료전달체계이다. 그러나 공공서비스라는 것은 원래 세금으로 하는 것이다. 사실 진보는 원래 소수이다. 왜냐하면 공공서비스를 높이려면 국민이 싫어하는 세금 인상을 주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절대 다수당이 된 민주당이 세금을 올려야 하는 정책을 주장할 수 있을까?

공공병원 다음 단계는 민간병원의 의료인 급여를 포함해서 운영비를 국가가 책임지고 대신 진료비 보험화를 더욱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이다. 모든 진료의 보험화는 문재인케어의 정신이다. 보험화에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제도가 주치의 제도이다. 모든 국민은 가까운 개인병원을 주치의로 등록하고 환자는 응급이 아닐 경우 주치의에게 진료를 받게 하고 만약 더 큰 병원에 진료를 받아야 할 것으로 판단되면, 진료소견서를 써주고 스케쥴을 잡아준 병원으로 가서 진료받게 하는 제도이다. 의료전달체계라는 말로 표현하는 주장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이게 안되는 이유는 소위 서울의 거대병원들 때문이다. 지방에서 수술을 받지 못하는 것도 의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 거대병원들 때문이다. 전국에서 돈되는 환자를 싹쓸이 해서 돈을 벌고 있는데, 만약 주치의를 거쳐서 전문가의 판단을 거쳐서 대형병원으로 가야한다면 지방대학병원들이 정상화될 것이고 이는 곧바로 이들의 수입저하로 나타난다. 이를 허용하겠는가? 지방대학병원에도 수술할 의사가 일할 수 있으려면 충분한 비용을 지급하고 주치의를 통해 구태여 서울로 갈 필요가 없는 환자들이 지방에서 치료받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인구가 적어도 병원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캐나다처럼 월급제로 하거나 혹은 미국처럼 완전히 시장경제에 맡기면 국민이 불만을 가지는 1시간 기다려서 5분 진료받는다는 문제는 바로 해소된다. 하루에 20명 이상을 받지 못하고 한 환자당 30분을 진료하는 의료천국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월급을 주는 대신 진료환자수를 제한하거나 돈을 받고 싶은대로 받게해서 몇명만 진료해도 돈벌이가 충분하거나.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이것은 보건복지부의 공무원들이나 정말 지 밥그릇밖에 모르는 국회의 정치인들에게 맡길 일이 아니다. 진짜 생명이 중요하고 의료가 중요하다면, 의료를 공공서비스로 만들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치킨게임의 피해자는 국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