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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문화가 아니라면 따르려 애쓰지 말게

제대로 된 문화가 아니라면 따르려 애쓰지 말게

- 이라크 전투병파병 등 한두 가지 논쟁에 숨긴 의미 뛰어넘기 -


저는 최근 한 책을 읽었습니다. 모리 슈워츠라는 한 노교수가 죽기 몇 달 전에야 비로소 십수 년 전의 옛 제자 미치 앨봄을 만나서 화요일마다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쓰인 책입니다. 모리는 루게릭 병에 걸려 글자 그대로 하루하루 차츰 죽어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글의 제목은 그 책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지요.

제가 이라크 전투병파병, 부안 핵폐기장, 민주당의 분당사태, 노대통령의 지도력, 송두율교수 문제 등 우리 사회의 굵직한 현안들이 산적한 이 때에 느닷없이 평범한 한 베스트셀러를 들고 나온 것은 우리들의 가치관을 한번 쯤 짚어 보자는 의미입니다. 이런 작업을 통해 슬그머니 한두 가지 문제들에 대한 고민을 ‘툭’ 던져볼 생각입니다.


더 행복해지지 않았는데 발전했다고요?


앞서 말한 그 책에서 한 구절을 옮겨 봅니다.


“우리의 문화는 우리 인간들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네. 그러니 그 문화가 제대로 된 문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굳이 그것을 따르려고 애쓰지 말게.”


우리 아이들은 유치원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음악, 미술 등 온갖 교육을 받으러 다닙니다. 그런 교육을 강요하는 부모들이 다 자기 아이들이 예술을 통해 즐겁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가르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많은 부모들은 모든 면에서 내 아이가 일등 하기를 바라고 시키는 것 아닌가요? 가장 자유로운 인간의식 속에서 탄생하는 예술조차도 경쟁의식에서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때부터 시작된 경쟁의식은 죽는 순간까지 계속됩니다.

이런 경쟁의식은 때때로 목표달성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우리는 과거 한 때 ‘1만불소득 시대’라는 구호 속에서 국민소득이 1만불만 되면 모두 행복해지는 줄 알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는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고, 정부는 이제 또 ‘2만불 시대’라는 말로 우리를 현혹시키고 있습니다.

물론 경쟁이나 목표야말로 발전을 가져오는 동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문화는 행복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음을 알아야합니다. 지금 우리 문화가 강요하는 경쟁은 최종승리자 한사람의 행복을 위해 나머지 모든 사람들이 불행해야 하는 경쟁이기 때문입니다. 행복하고 아무 관계가 없는 발전은 더 이상 발전이 아닙니다.


사람의 목숨이 무시되는 비용과 수익 셈 표


그런데 갑자기 제 머리에 국익을 위해 이라크에 전투병을 파견해야한다거나 지역발전을 위해 핵폐기장을 반드시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요? 아마 다음 구절을 읽으면 제 느낌을 좀 더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위협을 받기 시작하면 자기만 생각하기 시작한다네. 돈을 신처럼 여기기 시작하는 거야. 그게 다 우리 문화의 속성이라구.”


돈을 신처럼 여기기 시작하면 그곳에는 인간과 자연이 서 있을 자리가 없어집니다. 지역발전과 국익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비용과 수익 셈 표에는 항상 사람들의 목숨과 위협받는 자연(이는 사실상 사람이 사는 환경이기 때문에 우리의 목숨과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에 대한 셈이 빠져 있습니다. 오직 물리적인 비용만을 계산에 넣는 것이지요.


죽음을 미화하기에 정신없는 악마들


그들은 보통 자신이나 자기 자식이 군대에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가리지 않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정치인들을 비롯하여 소위 우리나라의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자녀의 군 면제를 위해 미국 원정출산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최근의 몇 사건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에 대해서는 민족을 위한, 또는 국가의 발전과 이익을 위한 위대한 결단이라고 부추기기에 정신없습니다.

물론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선택한 것이니 당사자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일 뿐 자기들이 책임질 일은 전혀 없다고 하지요. 월남전에 파병되었던 많은 군인들이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생하는데도 정부가 해주는 일이라곤 그들을 장애인으로 인정해 몇 가지 혜택을 주는 게 고작입니다. 국제 관계에서도 이런 원칙은 그대로 적용됩니다. 미국은 미군들이 겪는 고엽제 후유증은 보상해 주면서도 한국군에 대해서는 외국인은 미국정부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막아 놓았습니다.

그래서 이라크 전투병 파병이 가져올 결과도 불을 보듯 뻔합니다. 우리가 파병으로 인해 곤경에 처했을 때 미국에 도움을 요청하면 그들이 무어라 할까요? 이 질문의 답을 모르는 사람들은 노무현 정부와 보수 정당, 보수 언론들뿐입니다. 아니 어쩌면 국내에서 제기될 보상 소송에 대해서 책임회피와 모르쇠로 일관하기 위해 지금부터 의도적으로 모르는 척 하고 있다는 게 더 정확한 분석이겠지요.


중요한 것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바로 자유인입니다


또 한 구절을 옮깁니다.


“작은 것들은 순종할 수 있지. 하지만 어떻게 생각할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길지 등  줄기가 큰 것들은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하네. 다른 사람이 - 혹은 사회가 - 우리 대신 그런 사항을 결정하게 내버려둘 순 없지.”


우리는 바로 우리의 행복을 위해 어떻게 생각할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길지 등에 대해서는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론이, 정부가 또는 어느 정당이 무어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대로 쫒아가서는 불행해질 뿐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이라크 파병 문제로 돌아가 봅시다. 최근 한나라당의 최대표가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에 대한 국정감사 자리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국민들에게 군대를 보낸다고 하면 누가 찬성하겠느냐.”라고 발언했던 적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이라크 파병에 대해서 정말 모르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유엔의 승인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 군대는 유엔이 통제하는 평화유지 목적의 평화유지군이 아니라 이라크를 적으로 간주하고 전투하기 위해 파병되는 다국적군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술지역의 치안상태가 안정되어 있다는 보고 자체가 국민을 속이려는 수작일 뿐입니다. 치안상태가 좋다면 다국적군 자체가 필요 없습니다. 그러니까 최대표는, 앞에 언급했던 부류의 대표답게, 미국이 요청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 청년들을 죽을 수도 있는 해외의 전투현장으로 보내자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들 말대로라면 그게 국가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인데, 미국은 지금 부시 행정부가 미 납세자들의 부담 없이 이라크의 원유판매 수입으로 재건비용을 충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 게 거짓임이 드러나 소란스럽습니다. 그런 미국이 한국에 전후 복구사업의 일부를 넘겨줄 수 있을까요? 이라크전쟁에 대해 거짓으로 일관하고 있는 그들을 신뢰한다는 것입니까?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방법으로 국익을 논해야


우리는 오히려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방법으로 국익을 챙겨야 합니다. 이라크의 모술지역에 전투부대 대신 재건과 질병치료를 돕기 위한 인력을 보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루 빨리 소요 상태를 종식시키고 이라크인 스스로에 의한 민주적인 독립국가를 세우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들 스스로가 자기 나라의 일을 풀어가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끝으로 모리교수가 했던 말을 약간 수정해서 적어 봅니다.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의미 있게 살려면 자신에게 생의 의미와 목적을 주는 일을 창조하는데 헌신해야 합니다.」

(2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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