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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꼬라지?/살면서 가끔...

세월호 단식을 보며 횡설수설

요즘 많은 분들이 단식을 하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만들려는 노력이다. 그런데 금식하는 분들을 보니 그저 쓸데없는 옛날 일들이 생각나 횡설수설 글을 적게 된다.


대학생 시절 이야기이다. 넉넉지 않은 생활을 해야 했다.(그렇다고 내가 불쌍했다는 주장을 하려는게 아니다. 그 시절 우리 또래의 대부분은 대학을 가지 못하고 바로 산업전선에 뛰어들어 돈을 벌어야 했으니 난 정말 혜택받은 사람이다.) 책을 읽고 싶은데 돈이 없었던 내가 택하였던 방법은 점심을 굶는거였다. 용돈수준이 점심 때 라면 하나를 사먹을 정도였는데, 이 정도 비용이면 당시에 문고본이라고 불리던 작은 크기의 책을 한권 사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점심을 건너뛰고 그 돈으로 책을 사 읽었다. 10여분 거리의 집으로 자취방을 이사할 때 책무게를 감당 못해 리어카라고 불리던 손수레아저씨를 불렀었다. 그 아저씨가 자취생이라고 해서 가볍게 갈줄 알았는데 책짐이 한 리어카라고 웃으시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미 돌아가셨을 나이지만.


후배들을 몰고가서 분식집에서 한끼 식사를 하려면 일주일 동안 점심을 굶어야 했다. 덕분에 얼마나 날씬했던지 허리 사이즈가 26인치를 넘은 적이 없고 성인용 바지는 맞는게 없어서 늘 아동용 바지 중에서 큰 것을 골라 사야했다. 요즘 32인치를 넘나들어 아내에게 허리 뱃살 빼라는 지시를 받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비교된다.(가끔 내게 밥 얻어먹었던 후배들은 회개하라. 그거 다 내 뱃살이었다. ^^)


아버지가 서울에서 공부하는 아들을 보러 왔다가 바지 꼴을 보고 처음으로 기지바지(성인용 정식바지를 그렇게 불렀었다)를 사 주신 다음날 나는 그 바지를 입고 가두시위에 나섰다가 두둘겨 맞는 바람에 바지가 다 찢어졌다. 내 성인바지 시대는 그렇게 일일 천하로 끝났다.(90을 눈앞에 두고 계신 아버지께 지금이라도 고해성사를 해야 할까? ^^)


대학원에 다니면서 알바 수준의 직업을 가진적이 있다. 지금처럼 회원들의 후원을 받는 시민단체가 없었던 시절이어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던 후배들은 재정문제로 큰 압박을 받았다. 그 적은 월급을 받던 월급날이 되면 찾아와 후원을 받아가는 후배가 있었다. 결혼하고 큰 딸아이가 태어난 나는 생계가 너무 힘들어 한번은 그 후배에게 '일부 비용은 스스로 돈을 벌어서 보충하면서 운동을 하면 안되겠느냐'고 해서는 안될 말을 해버렸다. 그 후 그 후배는 연락을 끊었고 지난해 말 정말 오랜만에 다시 연락이 되기 시작했는데, 아직까지 그 때 일을 사과하지 못했다.(ㅠ.ㅠ)


그런데 머리가 멍청한 탓에 그렇게 읽어댔던 책들의 내용은 물론이고 책의 제목조차 기억이 가물거린다. '분명히 읽은 책인데'라거나 혹은 '이런 책도 읽었나?' 라며 머리를 갸우뚱 거리기만 한다. 참 쓸모없다. 아니 어쩌면 다 내 마음의 양식이 되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텐데, 문제는 요즘은 저작권이 어떻고 출처가 어떻고 등등등 사람을 쓸데 없이 갈구는 시대여서 쓸모없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려면 어떠리. 인생은 그곳에 갇혀있는게 아닌데.


진짜 문제는 지금의 내가 이미 밥 한끼 금식을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밥 시간이 조금만 늦어져도 아내에게 짜증이나 내는 졸장부가 되어버린지 오래라는 점이다. 우리 지역에서도 몇 분이 동조단식 중이라고 한다. 오늘 저녁엔 그곳에 가서 한 시간쯤 함께 앉아 있기라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