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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꼬라지?/살면서 가끔...

신분호칭의 함정

내가 이곳에서 가장 부러운 것 중 하나는 아무하고나 이름을 부른다는 점이다. 우리는 유교적문화전통에 따라 감히 윗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무례한 일로 취급된다. 그런데 나는 이것이 우리 사회를 왜곡시키고 있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존대말이 있기 때문에 이름을 직접 부르기도 힘들다.

한국의 학교에서 내가 아무리 학생들과 가까워지고 싶어도 종내는 교수와 학생의 관계로 회귀한다. 그들은 자신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어도 교수님 말씀이면 여지없이 묵살당한다. 물론 전공분야의 지식에 있어서는 그게 옳은 경우가 많겠지만, 인생이라는 넓은 수업에서는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 이곳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세미나에서는 아무리 세계적인 석학이나 유명인사가 와서 발표해도 학생들이 아주 꼬치꼬치 따져 질문한다. 그렇다고 무례하게 말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개인적으로 이 모습이 정말 부러웠다! (교수님 대신 아저씨 정도로 부르면 어떨까... 김아저씨, 제동이 아저씨 등등 ^^)


온라인 상에서 한국의 젊은이들과 대화하다보면 나는 정 반대의 감정을 느낀다. 오프라인에서 알고 지내는 사이가 아니면, 말은 존대말을 사용하지만 내용은 그냥 비아냥거리는 말 일색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논리도, 가치관도 없다. 그냥 나와 다른 편이면 속된 말로 씹어댄다. 거기에는 아무런 예의도 없다. 그럴바에야 그런 존대말은 없는 게 낫다. 물론 존경심을 갖는 것과 내 생각이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목사, 장로 등의 신분명칭에 존칭의 의미를 갖는 님자까지 붙이면 더욱 심각해진다. 겉으로는 예의 바른 제도이지만 사실 그 제도는 신분에 따른 계급의식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한 나무의 여러 가지일 뿐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제도로 나아간다. 지금 한국교회의 우스꽝스러운 모습 중 상당부분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 계급제도에 원인이 있다. (내가 오랫동안 출석했던 교회의 목사보다 10개월도 안된 이곳 교회 목사와 더 편하게 대화하는 이 모순의 원인도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의 경우도 비슷하다. 이론적으로 이들은 국민의 심복이다. 심지어 국민의 투표로 뽑히기도 한다. 그런데 일단 손에 권력이 쥐어지면 안하무인으로 돌변한다. 소위 '완장차고 나선다'는 꼬락서니이다. 왜 그럴까? 만약 이명박대통령을 '헤이 명박이'라고 부르는 사회라면 국민이 멸시하고 저지하기 때문에 5년 내내 그런 야만적인 행패만 부리다 그만두는 일은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 적어도 영화제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가 '부시씨, 챙피한줄 좀 아쇼! Shame on you, Mr. Bush, shame on you.'라고 말할 수있었던 사회는 되었을 게다.


내가 지금까지 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취한 소극적인 대안은 정반대로 가능한 모든 사람에게 존대말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후배나, 학생 등 모든 사람에게 가능하면 존대말을 사용해 왔다. 초기에는 학생들에게 언제나 그렇게 대하려고 했는데 그게 부작용도 있다는 지적이 있어서 사적인 자리에서는 반말을 한다. 그 부작용이란 오히려 더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아우성이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우리 사회에 바로 이런 이상한 시스템이 정착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존대말은 형식적인 관계에 있을 때 사용하는 말이고 반말이 친근한 언어라는... 즉 존대말은 아직 거리감이 있는 혹은 동류의식을 갖지못할 때 사용하는 언어이고, 반말은 동류에 들어왔다는 의미에서 사용하는 언어말이다. 문제는 동류의식에 같은 패거리에 들었다는 의미를 갖는 패거리주의가 작동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언어는 정말 오래 세월에 걸쳐 형성된 그 민족의 문화이다. 그 문화가 하루 아침에 바뀔리는 전무하다. 오죽하면 일제가 우리 말과 글을 말살하려 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칭문제만 생각하면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해답없는 아우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