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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꼬라지?/Vancouver, 2012

성탄절 예배가 주는 감동, 혹은 기억에 남는 목사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많은 교회에서 많은 목사들을 만났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사람들 중에 대학 때 잠시 나가던 교회 청년부의 박영선목사(당시에는 강도사였다. 지금 남포교회에 계신 것으로 안다)가 있다. 그 분은 기독청년들에게 적절한 비유로 신선하게 말씀을 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분은 내결혼예식에 주례가 되어주신 창동염광교회의 최기석목사이다. 아내는 그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고 결혼을 앞두고 함께 그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다. 그분은 늘 한 주간에 있었던 주요 뉴스 중에서 하나를 이야기하면서 그날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으로 세상사를 보는 시각을 열어주셨다. 그래서 지방에 내려 간 뒤에도 한동안은 매년 송구영신 예배를 그 교회에서 드리곤 했었다. 지금은 은퇴하셨는데, 건강이 안좋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을 떠나와서 마음이 안좋다.


(그분과의 일화를 소개하는 것이 어쩌면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추가한다. 신혼여행 후 인사드리러 찾아뵙고자 했으나 그분 끝까지 거절하셨다. 이유는 간단하다. 선물 받지 않으시겠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심방와서는 들어오시면서 할레벌떡 물을 찾으신다. 그리곤 끝나기가 무섭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다. 준비한 다과를 꺼내오자 난 이미 오자마자 대접을 받았으니 되었다고 하면서 떠나셨다. 그분의 자동차는 소형차인 엑셀이었다. 교회에서 아무리 교회 크기에 걸맞게 큰 차로 바꾸라고 했지만 거절하셨다. 내가 어느 장로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보다못한 어느 장로가 사적으로 그랜저를 사 주었다. 키를 받으면서 목사님은 몇 차례 다짐을 받으셨다. "이 차 분명히 전적으로 제게 주시는 것이지요? 완전히 제 개인 소유인 것이지요?" 그렇다는 대답을 듣고선 바로 대리점으로 가셔서 엑셀 6대로 바꾸어 부교역자들과 나누어 가졌다.) 


그러고는 한 동안 기억에 남는 목사가 없다. 아니 한 사람 있다. 그분 역시 강도사 신분으로 내가 청년부 부장을 맡고 있던 군산의 한 교회의 청년부를 지도했는데, 젊은 그분과 함께 청년부를 끌어갈 때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러나 깊은 관계를 만들기 전에 담임목사에게 속된 말로 찍혀서 하루 아침에 쫒겨났다. 나와 막 깊은 신앙의 대화를 시작하던 그가 내게조차 연락도 못하고 떠났다. 수요일 저녁예배 후 토요일까지 관사를 비우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암튼 나는 그가 떠난 다음날 예배시간 광고에 유학을 위해 사임했다는 말을 듣고서 모든 일의 전말을 눈치챌 수 있었다. 따라서 깊은 기억을 나누기에는 턱없이 교제의 기간이 짧았다.(지금은 이렇게 담담하게 말하지만 당시의 내 분노는 정말 컸다. 그렇다고 소란을 일으켰다는 말은 아니다. 조용히 부장직을 사임했다. 결국 그 교회는 사분오열되고 재판에 감옥가는 사람까지 생기고 말았다.)


내가 한국을 떠나 잠시 나그네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다니던 전주서부중앙교회의 노재석목사도 기억에 깊이 남아있다. 그분은 전형적인 강해설교를 고집하는 분이다. 덕분에 나는 내가 스스로 성경을 읽으면서 단편적으로 내안에 쌓아놓았던 것들을 정리하면서 내 신앙의 깊이를 더할 수 있었다. 물론 내가 이곳에서 고민하기 시작한 일들을 함께할 작은 교회가 발견된다면 사정은 조금 달라지겠지만,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그 교회로 돌아갈 생각이다. 그분의 설교를 교인들이 깊이 받아들이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항상 남는 분이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목사가 바로 이곳 윌러비교회의 Mark이다. 제목에는 성탄절 예배가 주는 감동이라고 해놓고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사실 오늘 성탄절 예배에 참석해서 그의 원맨쇼에 가까운(^^) 예배인도를 보고 나오면서부터 이글을 쓰고 싶었는데, 게을러서 이곳시간으로 성탄절 밤에 쓴다.


오늘은 성경을 낭독하는 방법도 달랐다. Mark와 청년 한 사람이 나와서 예수 출생 부분의 성경을 몸으로 제스쳐와 함께 교대로 낭독했다. 연기 능력이 없으면 목사도 못해먹을 것 같다(^^) 그런데 오늘 성탄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에 가보니 교회에 여러 장의 그림이 걸려있었다. William Kurelek(우크라이나 태생의 캐나다 화가이자 작가)의 그리스도 탄생 그림(Nativity)인데, 제목은 A Northern Nativity(유튜브로 보기)이다. "만약 그곳에서 일어났던 일이 이곳에서 일어난다면... 그때 일어났던 일이 만약 지금 일어난다면... 누가 기적을 볼 수있을 것인가? 누가 선물을 가지고 올 것인가? 누가 그들을 맞아들일 것인가?"하는 질문들이 그림에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이질문들이 바로 오늘 예배의 중심 주제이다. 찬란하게 빛나는 도시에는 주의 어머니가 묵을 곳이 없다. 쉴 곳 없는 그런 곳을 헤매는 마리아와 요셉, 그러나 그리스도는 언제나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들로부터 환대를 받는다. 가난한자, 부랑자,외국인들에게 말이다. 그들이 바로 그 영광의 순간을 목격하는 복을 받는다.


Mark는 피아노 앞으로 가더니 클래식 캐롤은 사람을 평안하게 하는 음을 사용한다고 몇개의 음절을 치면서 들려준다. 그리고는 재즈나 블루스는 불편한 음을 사용한다고 다시 몇개의 재즈곡 음절을 들려준다. 그러면서 말한다. 미국의 흑인노예들은 슬픔에 차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음을 사용하여 캐롤을 불렀다고. 그러더니 재즈 캐롤을 멋지게 피아노로 연주한다. 나는 이제껏 이렇게 감동적인 재즈 연주를 들은 적이 없다. 흑인노예들은 그렇게 주님을 환영했다.


갈릴리는 또 어떤가? "어찌 갈릴리에서 귀한 것(정확한 표현은 요한복음 7:41-그리스도, 7:52-선지자)이 날 수 있느냐?"고 했다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말을 기억하는가? 갈릴리는 사마리아보다도 더 북쪽지방이다. 나는 왜 그렇게 오랫동안 성경을 읽으면서도 이 사실을 오늘에야 기억하게 되었을까? 언제나 북쪽지방은 외적의 침입으로 황폐해졌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먹고 살만한 게 있거나 힘이 있는 사람들은 다 남쪽으로 내려갔다. 그래서 그곳에 남아 사는 사람들은 남쪽으로 내려가 굶어 죽으나 갈릴리에 남아서 외적에게 죽으나 다를 게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이방인들까지 득실거렸다. 오 주님... 그곳이 바로 우리 주님이 오신 땅이다.


동방박사들? 그들은 하나님이 금하셨던 점성술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어라? 이상하지 않은가? 왜 우리 주님이 오신다는 징조가 별에 나타나고 또 율법으로 엄격히 정죄받던 점성술사들이 이를 발견하고 주님 탄생의 의미를 깨우치며, 첫 축하의 영광을 안게 되었는가? 그것도 외국인의 신분으로.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은 외국인인 로마사람과 접촉해야 한다고 해서 세리를 그리도 미워하지 않았던가?


그렇다. 주님 오신 메시지는 너무나 분명하다. 우리는 우리의 눈과 귀를 닫은채 다른 복음을 읽고 있었고 다른 소리를 듣고 있었다. 왜 누가가 이렇게 기록했는지를 애써 모른채 하고 살아왔던 것이다.


[눅 1:46-53]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눅 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