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라 꼬라지/정치

국민경선제에 담는 희망

국민경선제에 담는 희망

 

나는 일부를 제외한 많은 정치학자들을 매우싫어한다. 그들은 어떤 정치적 사건을 말할 때면 언제나 점잖게 혹은 현학적으로 이런 점은 좋으나 저런 점은 결점으로 지적 된다고 말하기를 즐긴다. , 세상에! 세상일엔 언제나 긍정적인 점과 부정적인 점이 함께 어깨동무하고 다닌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당신들의 생각을 말하라. 당신의 철학과 가치관으로 볼 때 그것이 좋다는 것인가? 싫다는 것인가? 그들은 그것을 말하지 않는다. 개혁적인 것처럼 보여야만 누리는 인기와 보수언론의 눈치를 잘 살펴야만 소위 잘 나갈 수 있다는 현실의 상반된 요구를 섬뜩한 머리회전으로 그렇게 풀어내는 것이라면 나의 지나친 편견일까?

 

국민경선제. 우리 현대사에서 4.19를 제외하고 그 어떤 사건이 이보다 더 큰 변화의 시작이랄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 보수언론에 비쳐진 국민경선제의 모습을 보면 난 앞서의 그 편견이 옳다는 확신을 더욱 굳히게 된다. 아무튼 많은 분들이 이 제도의 장단점을 이야기해왔으니까 이 글에서 난 그런 이야기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 다만 우리는 이 국민경선제에 어떤 희망을 담아내야만 하는 지를 생각해 보려고 한다.

 

내가 이 땅에 살면서 정당에 대해 들어온 말 중에 가장 흔했던 것은 “A당이나 B당이나 그 X이 그 X이다라는 말이다. 옳은 지적이다. 보수정당임을 표방하는 당에도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꽤 있고, 개혁정당이라고 주장하는 당도 한심한 수구세력이 전횡을 일삼는 일들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신 분이 있으시다면 이제 속지 마시라. 이것이야말로 보수언론이 빚어내는 고도의 사기극에 다름 아니다.

 

사실상 양당구도가 고착되어온 우리 정치사에서 정당 간에 정체성의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유권자의 투표행위는 지연이나 학연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지역감정을 망국병이라 말하지만 사실은 유권자들에게 지역감정으로 투표하라고 세뇌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특정지역의 유지(부정적 의미에서)들이 개혁을 내세우는 정당의 후보에게 투표하고 또 다른 지역에선 노동자들이 보수를 표방하는 정당의 후보에게 투표하는 해괴망측한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민경선제에 담아야 할 첫 번째이자 가장 큰 희망은 바로 이것이다. 진보정당이어야 할 정당은 진보의 자리에, 중도 개혁당이어야 할 정당은 또 그 자리에, 그리고 보수정당이어야 할 정당은 그들의 자리에 서 있도록 국민이 행동으로 요구해야 한다. 정당을 당 조직의 희망이 아닌 국민의 희망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만드는 일이다.

 

이렇게 정당들이 자신들의 이념적 스펙트럼에 따라 자리 매김이 이루어지면 유권자들은 그 정당의 정책에 따라 지지 정당을 결정하게 된다. 비록 느린 속도이긴 하겠지만 지역감정과 돈 선거 풍토가 완화될 수밖에 없다. 구체적인 달성 방법이 없었을 때는 정책대결과 지역감정 타파, 돈 안 드는 선거를 그토록 열렬히 외쳐왔던 사람들이나 신문들이 정작 그 실현 방법이 제시된 후에는 부정적인 면을 들추어내기에 바쁘거나 또는 양다리 걸치기로 나오는 까닭을 난 이해할 수가 없다.

 

국민경선제가 담아내야 할 두 번째 희망은 소수 정치세력의 제도권 진입에 있다. 비록 그 취지가 어디에 있었던 간에 선호투표제는 이런 희망을 담아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체제는 소수 정치집단의 제도권 진입을 매우 어렵게 만드는 체제이다. 사람들은 흔히 나는 아무개를 지지하지만 그는 당선 가능성이 없으니 현실적으로 다른 누구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소수집단에 속하는 정치인들은 불가피하게 색깔이 다른 정당의 옷을 입고 정치권에 진입한다. 그러다 보니 보수를 내세우는 정당에 개혁과 진보를 주장하는 당 간부가 활동하면서 소외의 쓴 맛을 보는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번 민주당 경선에서 김근태 씨가 중도하차한 일을 가장 아쉽게 생각한다. 그에겐 잔인한 말일지 몰라도 그는 끝까지 가서 앞에서 말한 이유 때문에 1순위가 아닌 2순위로 그를 선택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어야 한다고 믿는다. 당선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해서 제도권 진입을 원천적으로 박탈당하는 소수 정치세력을 생존시킴으로써 우리 사회의 이념적 다양성을 더욱 확대함은 물론이고 소외계층을 축소하는데 선호투표제가 좋은 수단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어야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국회의원선거에서 중선구제와 선호투표제를 도입함으로써 우리 정치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했어야 했다는 말이다.

 

나는 이 두 가지 희망이 다른 무엇보다도 국민경선제에 담아야할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국민경선투표에 참여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게 우리 정치를 말로만 바꾸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바꾸는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20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