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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꼬라지/정치

다시 이라크 파병철회를 말한다.

최근 이라크 사태가 심상치 않다. 미국 경호회사 직원에 대한 테러 이후 연합군에 대한 심상치 않은 반격과 계속되는 민간인 납치사태는 이라크 전쟁이 2기에 접어들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바그다드 함락 1주년이 연합국에는 최악의 상황인 제2의 베트남전쟁이 시작 될 조짐인 것이다. 최근 있었던 한국인 억류사건과 일본인 인질사건을 계기로 이라크 전쟁에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어 다시 한번 왜 파병은 절대 안 되는가에 대해 생각해본다.

첫째 이유는 이 전쟁이 부도덕한 침략전쟁이기 때문이다. 부시는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기 전날 기자회견에서 이라크가 “테러리스트들에게는 천국과 같은 안전한 훈련장소를 제공했고 테러리스트들은 미국을 비롯한 다른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에게 대량살상무기 사용도 기꺼이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다국적 사단을 지휘함으로써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주요한 역할을 했던 폴란드의 크바시니에프스키 대통령은 지난 3월 18일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와 관련하여 “그들(미국과 영국)은 우리를 속였다. 대량살상무기 정보에 오도당했다는 점에 대해 불쾌한 심정”이라고 비판하면서 조기 철군을 시사했었다. 물론 부시의 대량살상무기 주장이 거짓이란 사실은 유엔 무기사찰단에 의해 전쟁 전부터 주장되었다. 게다가 전쟁이 발발한 이후 이라크는 진짜로 테러리스트의 온상이 되어 버렸다. 영국언론인 프리드랜드는 이슬람 과격분자들에게 지금의 이라크는 사격연습장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침략 받지 않는 한(그리고 한미동맹이 문제라면 미국이 침략 받는 경우도 포함한다 하자) 사람의 생명을 우롱하는 전쟁은 그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둘째는 과연 군부대를 통해 평화재건을 해야 하는 지는 의문이지만 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평화재건부대가 더 이상 쓸모없기 때문이다. 원래 우리가 파병하기로 했던 지역은 전쟁의 후유증으로 평화재건이 필요했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일방적인 요구에 따라 우리의 파병지역은 북부 쿠르드 자치지구로 결정되었다. 문제는 그곳이 미국과 영국이 오래 전 일방적으로 그어놓은 비행금지 구역이어서 전쟁의 피해가 사실상 거의 없는 지역이다.

셋째는 파병을 주장했던 세력들이 주장했던 국익이 그 근거를 상실했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파병론자들은 이 전쟁에서 우리는 이라크 특수를 누릴 수 있고, 원유공급처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국익을 위해 파병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이 주장이 현실이 되려면 빠른 시일 안에 이라크에 친미 괴뢰정부가 세워져야 하고 그 정부가 치안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미국이 이라크 원유자원의 일부를 우리에게 양보해야만 한다. 내가 보기에 이 두 가지는 모두 다 전혀 현실성이 없다. 오는 6월 이라크에 정권을 이양하겠다던 미국의 계획이 실행에 옮겨지기 전에 미군이 적절한 변명을 하며 이라크에서 철수하는 날이 더 먼저 올 것 같다. 게다가 유전지대에서 독자적인 평화재건 활동은 곧바로 기득권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미국은 이미 한국군 파병 관할지역 선정과 독자 관할권 분쟁을 통해 우리에게 기회를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지막 이유는 국내 문제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투쟁의 역사는 짧게는 지난 몇 십년 전 박정희의 군사독재에 대한 항거로 시작해서 전두환, 노태우에 이르는 기간 동안 반독재 투쟁과 노동운동으로,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는 시민운동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그런데 소위 문민정부라는 YS 시절부터 이런 흐름에 항상 심각한 왜곡이 있었던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이전까지 정권에 참여한 사람들은 변절자로 치부하면 되었기 때문에 개혁 성향의 국민들이 받는 피해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YS시절부터 정권에 참여한 사람들은 그 동안의 투쟁의 대가로 정권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상징성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의 부패는 즉각 수구언론이 개혁을 소망하는 모든 국민들을 공격하는 빌미가 되었다. 국민의 투쟁으로 정치권에 진입했던 그들 때문에 어이없게도 항상 수구언론들이 국민을 바보 취급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의 노대통령과 그 주변의 정치인들도 같은 길을 걷지 않기를 바란다. 국민의 투쟁으로 얻은 민주정부는 결코 그들의 노획물도 전유물도 아니다.

도덕적이지 않은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동참하면 공범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파병의 목표도 달성할 수 없게 되었다. 물론 국익을 챙길 처지도 못 된다. 게다가 이라크의 반미 테러리스트들이 테러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경무장한 우리 병사들을 공격할 것은 뻔한 이치이다. 우리는 결국 우리 젊은이들의 죽음을 목격하게 될 것이며, 국민의 감정이 급격한 쏠림 현상을 나타내 노무현 정부 역시 과거 정부들처럼 국민이 어렵게 만들어준 민주정부의 기반을 스스로 파괴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어디에도 빛은 보이지 않는다.

간곡히 부탁한다. 국제사회와의 약속에 대한 신뢰 문제로 거부가 그리 어렵다면 차라리 탄핵사태라는 초유의 상황을 핑계로 무기연기라는 카드라도 사용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