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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World!/짧은여행 긴여운:자유버마

영치우노동자연합

영치우노동자연합
2월 10일 오후

늦은 점심식사를 마친 후 오후 4시쯤 되어 영치우노동자연합(Yaung Chi Oo Worker's Association, YCOWA) 사무실을 방문했습니다. ‘영치우’라는 말은 버마말로 ‘새벽’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영치우노동자연합은 모쉐(Moe Swe)의 주도로 학생운동가들과 이주노동자들이 함께 1999년에 설립한 버마노동자단체로 10개 공장의 700여 명의 노동자들이 회원으로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메솟의 버마 이주노동자들의 인권보호, 권리교육, 보건증진 활동과 노동자들의 여러 가지 사회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물론 국제적인 연대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었습니다.

태국 내의 버마 노동자 200만 명 중에 반 정도가 메솟과 인근지역에 있으며 메솟에만 10만 명 정도가 있으나, 1999년까지 메솟의 운동가들은 오직 독재정권과 싸우는 데만 열중했기 때문에 이들의 실정에는 무관심했다지요. 그러는 동안에 버마 노동자들은 고용주로부터 성폭행과 착취를 당하기도 하고, 심한 경우 살해되기 까지 했답니다. 또 공장이 폐쇄되면 오갈 데 없는 이주노동자들이 노숙을 하다가 성폭행을 당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공식통계로도 2002년 한 해 동안 메솟이 속한 탁지방에서 30명의 버마 노동자들이 살해되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YCOWA의 요청으로 그 단체의 주요 활동가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래서 YCOWA는 먼저 피난시설을 만들고 음식을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윤락여성으로 팔려간 이주노동자들을 구조하여 교육시킨 뒤 취업을 하도록 하거나 임신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여성 노동자, 그리고 노동착취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을 보호하면서 교육하고 이들을 위한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또 2002년 9월부터는 의사 1명과 간호사 2명으로 조직된 무료병원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노동현실은 매우 암담합니다. 태국의 법이 정한 최저임금은 1일 147바트이지만 메솟지역의 버마 이주노동자들은 1일 60바트 정도 밖에 받지 못합니다. 일부 악덕업주들은 그나마도 체불하고 있다가 노동자들이 항의하면 적당한 시점에 불법체류 노동자로 신고하여 버마로 보내버린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항의하는 노동자들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여 다른 업체에도 취업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답니다.

그래서 YCOWA는 노동자 권리 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급한 상황에 대해서는 태국의 변호사를 고용하여 법률구조활동을 벌이는데, 지난 6년 동안 1,716건의 소송에서 승리하여 총 1,054만 바트를 배상받았다고 합니다. 또 보호 중인 노동자들이 블랙리스트 때문에 취업이 곤란할 경우 재교육을 통해 다른 업종으로 이직시키기도 합니다. 이런 활동에는 태국법률가회의(The Lawyer Council of Thailand)나 태국의 NGO인 MAP재단과 같은 단체들과의 국제연대가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하나 살펴보면, 2003년 5월 편직물공장에 다니던 한 소녀가 태국 국경수비대경찰관에게 성폭행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다음에 국경을 소개할 때 자세한 배경을 쓰겠습니다만 이런 일은 종종 있다고 합니다. 이 소녀는 YCOWA의 도움을 얻어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이 경찰관은 공개적으로 사실을 시인하고 50,000바트를 배상해 주었습니다.

40대 초반인 YCOWA의 대표인 모쉐(Moe Swe)는 랭군공과대학을 졸업하고 전버마학생민주전선(ABSDF)소속이었다가 영치우노동자연합을 설립한 후 2000년에 ABSDF를 탈퇴했습니다. 그는 88운동 이후 89년 국경지대로 이동하여 카렌족과 함께 정글에서 생활하다가 96년부터 메솟 근처에서 동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거점을 구축한 것이 계기가 되어 처음 이주노동자들을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을 찾은 노동자들이 외친 ‘우리도 버마사람들이다’라는 말에 자극 받아 이런 활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의 이런 활동을 태국의 공장주들이 가만 둘리 없겠지요. 공공연하게 ‘모쉐는 죽어야만 한다’고 말하던 그들은 결국 2003년 12월 그의 목에 10만 바트(당시 환율로 2,500달러)의 현상금을 걸었습니다. 그후 수차례 습격을 받게 됩니다. 특히 그를 도와 함께 활동하던 미국 워싱턴 소재 노동인권단체의 덴마크인 벤트 게르트는 복부에 칼을 맞았고, 다른 활동가들도 공개적으로 테러를 당했습니다. 그는 결국 치앙마이로 피신하여 숨어 지내야 했습니다.

이런 사실 때문에 국제사회가 공장주들을 비난하게 되었고, 국제기구들의 압박을 받은 태국정부가 태국인권위원회를 통해 태국경찰의 안전보장을 약속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홍콩의 어느 노조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이 모쉐의 도피생활을 직접 와서 보고 지학순 정의평화상 시상위원회에 추천하여 YCOWA는 2004년 12월 제8회 지학순정의평화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YCOWA는 2004년 지학순정의평화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이상은 한국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크게 기여했던 고 지학순주교를 기념하여 제정한 상으로 자기 나라에서 평화와 인권에 크게 기여한 공로가 있는 사람이나 단체에 주는 상입니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피스라디오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최대 걱정꺼리가 라디오를 버마로 보내는 수단을 확보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는데, 우리는 이곳에서 아주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의 노동자 10만여 명 중에 약 반은 매년 4월의 명절(이들의 달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때)에 고향을 방문하기 위해 국경을 넘는다고 합니다. 이들 편에 보내면 아주 자연스럽게 버마 내부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끝으로 우리는 모쉐에게 그의 꿈을 물었습니다. 그는 ‘버마로 돌아가 자유 버마에서 모든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노조를 건설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연락처

전화: (66 89) 5659 899, (66 55) 542 622

이메일: zawwinlwin88@yahoo.com 혹은 yaungchioo_info@yahoo.com

주소: YCOWA, PO. Box 37, Mae Sot, Tak 63110, Thail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