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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꼬라지

낙후된 전북에 새만금 광신교가 창궐하는 까닭

2004년 12월 10일경부터 벌어진 일련의 사태 때문에 나는 대학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씁쓸한 연말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사태는 공무원노동연맹 전북도청지부가 전북대학의 연구지원비 삭감을 거론하는 성명을 내면서 시작되었지요. 이어서 전북대 총장과 보직교수 등 10여명이 도의회를 찾아가 전북대 관련 예산을 삭감하지 말아달라고 읍소하였고, 도의회는 예산의 칼자루를 쥔 기관답게(?) 위세를 부렸다는 뉴스가 공중파를 탔습니다. 이어서 전북대 새만금연구 사업단 소속 교수들이 “지역과 국가발전을 저해하는 언행을 삼가”하고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을 즉각 중단하라”는 성명을 냈습니다. 나는 이런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비로소 전라북도가 왜 이리도 지지리 궁상인지 그 원인을 알 듯 싶습니다.

나는 2003년 늦가을 새만금 간척사업과 관련한 한 토론회의 사회를 보면서 처음으로 전북대학의 오창환교수를 만났습니다. 그는 새만금 간척사업이, 무조건 강행이라는 전라북도와 농업기반공사의 주장과 즉각 중단과 원상회복이라는 환경단체들의 주장의 대립으로, 결국 전북도민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싸움만 남아 있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양 극단의 주장 사이에 얼마든지 새로운 안이 있을 수 있으며, 새로운 안이 환경단체의 반발을 누그러뜨리면서 전북의 발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동료 교수들과 함께 외부의 자금지원 없이 그러한 방안을 도출하였습니다. 물론 이 방안 역시 토론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는 여러 차례 공개 토론을 제안하였습니다.

아무튼 그런 연구결과를 중심으로 최근에 새만금신구상도민회의라는 조직이 발족하자, 공무원노동연맹 전북도청지부가 새만금 사업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오교수를 직접 겨냥하여 소속대학의 연구지원비 삭감을 거론하고 지역발전의 방해꾼으로 몰아 퇴진운동을 운운하는 성명을 냈다는 것입니다. 우선 이들의 주장이 사실관계조차 왜곡한 폭력임을 지적해야 합니다. 오교수의 연구결과는 새만금간척 중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 한번이라도 이 내용을 읽어보거나 들어보았으면 그런 주장을 할 수가 없습니다.

심각한 문제는 공노총의 이런 주장의 배후에 자리 잡은 전라북도공무원의 의식수준 문제입니다. 그들이 삭감하라고 요구했던 연구지원비는 대부분 국가에서 지원하는 연구비의 대응투자금 성격으로 전체 연구비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전라북도가 이 연구비 지급을 중단하면 국가도 사업지원을 중단할 수 있도록 협약이 맺어진 연구비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공노총의 주장은 전라북도의 발전을 위한 교수들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인 연구 및 교육사업비를 통째로 날려 버리자는 주장이었던 것입니다. 누가 진정으로 전라북도의 발전을 위하는 자들입니까?

내가 더 통탄을 금하지 못하는 것은 이 사태에 대응하는 전북대학의 태도였습니다. 먼저 대학의 총장이라면 공노총이 예산을 가지고 협박을 하면 오히려 당당히 국민의 세금을 자기 주머니 돈처럼 생각하는 그들의 태도에 호통을 쳐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 지역을 대표한다는 대학(나는 이 날 이후로 그런 생각을 버리기로 했습니다)의 총장이 그 정도의 권위를 갖지 못한다면, 이미 전라북도는 볼 것 다 본 것입니다. 그것은 새만금사업에 어떤 입장을 갖느냐 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대학의 자율성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예산권을 빌미로 교수들의 자유로운 연구활동과 대학의 자율권을 침해하려는 시도는 스스로가 독재, 파쇼권력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새만금연구 사업단 소속 교수들만 전라북도의 입장을 대변하여 동료교수를 궁지로 몰아넣는 성명을 내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새만금연구 사업단 소속교수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회주의자의 한 사람인 스콧 니어링은 펜실베니아 대학의 워튼스쿨 경제학과 교수였습니다. 그가 1915년 경 미국의 세계대전 참전에 반대하는 강연을 하고 다니자 대학 이사회는 그를 파면해 버렸습니다. 이 때 같은 대학의 심리학과장으로 니어링의 표현에 의하면 “보수적이고 친영국주의자이며 연합전선을 노골적으로 지지”하던 위트머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니어링 사건: 이사회의 행위가 몰고 온 펜실베니아 대학의 학문의 자유 위축>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나는 니어링에게 관심 없다. 니어링이랑 나는 거의 모든 일에 대해 의견이 엇갈렸다. 하지만 이건 내 문제이다. 그들이 니어링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다면, 우리 누구한테라도 똑 같은 짓을 할 수 있다. 이제 싸움에 나설 때가 된 것이다.”

전라북도에 새만금 광신교가 창궐하는 이유가 보이지 않습니까? 무엇이 문제이고 이를 해결할 방법이 과연 있는지, 그리고 대안은 없는지를 진지하게 연구하고 토론해야 할 대학교수들이 토론보다 동료교수를 궁지로 몰아넣는 성명 내기에 바쁩니다. 대학을 외부의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보호해야할 총장은 거꾸로 나서서 비굴한 행동을 마다하지 않습니다(이것은 경영마인드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국민의 혈세로 이루어진 자금을 전북 발전을 위해 사용하여야 할 공무원들은 이를 무기로 공갈과 협박을 합니다. 덕분에 의결권의 가치를 한껏 높인 도의회 의원들은 거들먹거리기에 바쁘지요.

전라북도가 왜 이리 낙후되어 지지리 궁상을 떠느냐고요? 보이지 않습니까? 지리적인 이유도, 자원의 문제도, 역사의 문제도 이젠 다 뒤에 있는 문제일 뿐입니다. 맨 앞에서 전북의 발전을 방해하고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바로 “사람들” 입니다. 여러분은 나이지리아가 엄청난 량의 매장량을 가진 산유국이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사람이 달라지지 않으면 그 어떤 자원으로도 발전을 이룩할 수 없습니다. 20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