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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꼬라지

나의 살던 고향은... 폭염의 도시, 전주

나의 살던 고향은... 폭염의 도시, 전주

-전주 종합경기장 부지의 용도-



내가 고등학생 때까지 살았던 고향, 전주는 기린봉에 올라서 내려다보면 도시 전체가 나무에 가려져 주택을 알아보기가 힘든 곳이었다. 고향을 떠난 지 30여년이 지나 돌아와 다시 기린봉에 올랐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나무가, 숲이 통째로 사라졌다!!!

 

더 끔찍한 일은 내가 돌아온 후로도 계속 해서 도심의 나무가 사라지고 있었다. 화산의 한 자락을 없앤 것은 롯데그룹이었다. 이미 그 산자락의 일부를 아파트로 바꾸었던 그들은 진북터널 쪽 산자락 역시 없앴다. 나중에 사업주체는 바뀌었지만 시작은 롯데가 했다.

 

그런데 종합경기장 부지를 이 롯데그룹에 넘겨서 복합 쇼핑몰을 짓겠다고 한다. 물론 잘 갖춘 쇼핑몰도 필요할 것이다. 도시로서의 면목을 세우려면 말이다. 그리고 그런 쇼핑몰 덕분에 좀 살만하다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마 나도 가끔 시간을 보내는 곳으로 잘 이용할 것 같다.

 

그러나 이제 좀 제 정신으로 도시를 살펴보자. 내가 1960년부터 2009년까지 전주를 포함하여 우리나라 주요 지역의 기온변화에 대한 통계분석을 했던 적이 있다. 가장 온난화가 크게 진행된 지역은 산업화로 가장 오염도가 높은 울산이었다. 그리고 도시화가 가장 지나치게 이루어진 서울이 근소한 차이로 뒤를 이었다. 그리고 전주는 산업화나 도시화가 극단적으로 진행되지 않아서 중간쯤에 해당했다. 도시화가 이루어지지도 않았고 산업지역도 아닌 추풍령은 전혀 온난화가 진행되지 않았었다.

 

그랬던 전주가 급격히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젠 툭하면 전국최고 폭염도시로 뉴스에 오르내린다. 나는 전주에서 먹고살만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내가 어렸을 때는 비록 부자도시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살기 좋은 도시’라는 말을 들었다. 지금은 살기도 힘든 도시가 되어버렸다.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다. 얼마나 부자가 되어야 먹고살만한 도시가 될까? 아니, 가장 부유한 도시인 대전이나 울산에 가서 물어봐라. 어느 도시 하나 먹고살만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다수인지. 먹고살만하다는 것은 부의 크기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가치관 즉 정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살만 하다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삶의 질이 결정한다.

 

온도만이 문제가 아니다. 논밭과 산을 깍아 만든 신시가지마다 주차장은 물론 인도조차 확보되지 않은 길들은 그냥 길 자체가 주차장이고 무단보행 천지이다. 막개발을 넘어서 개발이라고 이름만 붙여 놓고 온통 파괴를 자행한 까닭이다. 오래 전 지역균형발전정책에 따라 지역혁신도시 사업을 추진할 때, 나는 서울에서 여러 분야의 혁신전문가들을 6개월간 매주 한 사람씩 불러다가 세미나를 하는 연구팀에 속해서 연구한 적이 있다. 그 과정에 전주로 내려오기로 한 공공기관의 지역혁신 전문가들과도 세미나를 했는데, 그 때 나는 그들에게 전주로 이사 올 생각인지를 물었던 적이 있다. 그들의 대답은 똑 같았다. '전주를 돌아보십시오. 서울보다도 더 엉망으로 개발된 도시에 이사 가고 싶겠습니까?'


전주는 이미 전주사람들 스스로 자신의 삶의 환경을 박탈해버린 도시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아직도 모르는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목표를 위해서 지금 누릴 것을 포기할 뿐 아니라 앞으로 계속 누려야 할 것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도시라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 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대다수의 서민들이라는 점이다. 그들에게 더 부자가 되자고 살살 유혹해 놓고선 뒤로는 그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며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전주종합경기장 부지를 어떻게 사용할지를 놓고 설왕설래한다. 앞에서는 반대의 목소리를 내면서도 뒤로는 청소업체를 지역 업체로 선정해야한다든가 하는 식의 서약서 작성을 요구하는 소리도 들린다. 아니다. 그곳은 도심 숲 공원이 있어야 할 자리이다. 전주시의 발전 궤도를 바로 잡을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최악의 도시로 나아갈 것인지의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곳이 바로 종합경기장 부지이다.

 

진짜 전주시가 추진해야할 가장 시급한 일은 현대식 쇼핑몰이 아니라 깨끗하고 효율적인 현대식 버스터미널이다. 내가 외지의 손님들을 부를 때마다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전주는 아직도 시골이네요'라는 말이다. 시골정거장 수준의 터미널이 주는 인상은 바로 전주를 1980년대의 도시로 인식하게 만든다. 환경은 다 파괴되었는데 얻은 것은 30년쯤 낙후된 도시라는 것이다.

 

이러고도 사람이 모여드는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고 있다고? 지금 돌아서지 않으면 안 된다. 더 파괴가 진행되고 나면 남는 것은 최악의 도시라는 불명예로, 돈만 모아지면 당장 떠나야지를 중얼거리게 만드는 도시가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