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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음악*사진&생각

원명원(圆明园, 위안밍위안)과 영국의 뻔뻔한 아편 장사

지난해 여름, 북경에 일이 있어서 갔다가, 전부터 북경에 갈 때마다 가고 싶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던 원명원을 방문했다. 방학 기간이라 중국인 관광객이 넘쳐났고, 더운 날씨에 힘들었지만, 역사를 되짚어 본다. 우리가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아픔만큼이나 학습할 게 많은 역사이기 때문이다.
원명원의 기원은 1700년대 초, 청나라 황제였던 강희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명원은 강희제가 넷째 아들 옹친왕에게 하사한 정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옹친왕이 옹정제로 즉위한 이후 증축했고 이후 건륭제 시절에도 거듭 증축되었다고 한다.

Alafayawoods KIm
베이징 원명원의 파괴된 서양식 정원

그런데 건륭제 말기부터 관리들의 부패로 청나라가 쇠퇴하기 시작했고, 이 시기에는 마침 인도를 식민지로 만들었고, 다시 호시탐탐 아시아를 노리던 영국이 동인도주식회사를 통해 중국의 광둥지역에서 무역을 하고 있었다. 영국은 상류층이 즐기던 차, 도자기 등을 수입해가고 대신 모직물, 면직물 등을 중국에 수출했다. 당연히 영국의 수입초과 무역이었다. 그리고 이를 타개하려고 시도한 것이 바로 아편 무역이다. 영국계 상인들은 식민지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을 들여와 중국 서민들에게 팔기 시작했다.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군사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청나라는 아편 거래를 금지했다.
그러나 이들 영국계 상인들은 아예 무장한 선박을 타고 공개적으로 아편 장사를 했다. 이에 청나라는 1839년 대대적인 아편 단속을 벌였고 이렇게 시작한 충돌은 1839년 11월 영국의 원정군이 도착하여 전쟁으로 발전하였다. 몇 차례의 전쟁을 거쳐 청나라는 영국과 굴욕적인 난징조약을 맺게 되고 홍콩을 빼앗긴 채 5개 항구를 개항하게 된다. 이것이 1차 아편전쟁이다. 요즘 식으로 하면 마약을 공개적으로 거래하게 해달라며 침략전쟁을 벌인 것이다.
그렇게 했지만, 영국의 주력 상품이었던 면제품이 중국에서 별로 많이 팔리지 않았다. 아편을 사는데 은을 다 써버린 중국 사람들이 영국산 면제품이 아닌 중국산 면제품을 사용했던 까닭이었다. 결국 1차 아편전쟁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여전히 차를 수입하고 아편을 수출할 수밖에 없었다.
1856년 영국의 해적선 애로우호가 광저우 앞바다에 정박 중이었는데, 이 해적선을 단속한 중국관헌에 의해 영국기가 내려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1차 아편전쟁으로 광저우 사람들의 영국에 대한 적개심도 한몫했다. 그리고 영국은 영국기가 내려진 것이 국가모독이라며, 다시 전쟁을 벌인다. 이번에는 프랑스도 선교사의 죽음을 핑계로 영국과 연합했다. 1857년 영∙프 연합군은 광저우를 점령하고 민간인 학살 등 잔인한 폭거를 저질렀고, 그대로 북상하여 1858년 북경의 턱밑인 톈진에서 톈진조약을 맺는다. 이것이 2차 아편전쟁이다.
그러나 1859년 청나라의 강경파들이 미국의 도움을 받아 전투에 승리하여 톈진조약이 흔들리자, 1860년 영국은 거대한 규모의 군사력을 파견해 베이징을 함락한 후 외곽에 주둔하면서 수많은 약탈과 방화를 저질렀다. 이때 원명원도 약탈한 후에 방화했는데, 3일 동안 불에 탔다고 한다. 그렇게 2차 아편전쟁은 끝난다.
원명원은 최소한의 복원만 이루어진 채 불에 검게 그을린 폐허 상태로 보존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은 중국 사람들에게는 애국 사상의 교육 현장이기도 했다. 방학이 시작되자 많은 사람이 자녀를 데리고 관람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 폐허를 통해 두 가지 인민교육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관리의 부패가 나라를 망친다는 교육의 실제 사례라는 것이다. 실제로 북경의 공자 사당에는 공자의 사상의 핵심을 ‘관리의 청렴결백’이라고 설명하는 게시물이 있었다. 두 번째는 당연히 서양 세에 대한 경각심이다. 마약을 팔아서 사람들의 피폐하게 만들고자 하는 목적의 전쟁을 벌인 자들이고, 아직도 약탈해간 원명원의 보물들은 전혀 돌려주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김영삼 시절, 일제의 흔적을 지우는 데 급급했던, 그러나 여전히 일제의 농간 속에서 친일을 지배 수단으로 삼는 한국. 반대로 과거 치욕의 현장을 보존하여 늘 스스로 단속하는 중국. 누가 더 지혜로운지를 생각하면서 원명원의 폐허 속을 걷는 여름 오후 시간이 무더운 여름의 태양 때문에 더운 것인지, 마음속의 답답함 때문에 더운 것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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