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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음악*사진&생각

나의 올드 오크

나의 올드 오크 홍보 포스터

켄 로치 감독, 2023년 개봉

오래전 같은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았던 터라 어떤 분위기일지는 미리 짐작할 수 있었다. 전작에서는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수상(한국에서는 그녀가 위인전에 포함되어 어린이들에게 영웅으로 세뇌되고 있지만, 많은 영국사람들에게는 한 사람의 악마일 뿐이었다)이 세계 최초로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면서 벌어진 결과를 한 가족의 삶을 따라가면서 보여주었다. 그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던 사회복지제도가 직장을 잃은 그들을 어떻게 배신하는지를 보여주는 신자유주의 영국의 가난한 자들의 삶.

이번에 관람한 ‘나의 올드 오크’는 전작의 연장선에서, 시리아 난민을 영국의 폐광된 탄광도시, 더햄에 정착시키면서 발생하는 에피소드이다. 폐광으로 일자리를 잃은 주민들은 그렇지 않아도 팍팍한 자신들의 삶이 난민들이 들어와 더욱 불편하다고 근거없는 적개심을 드러낸다. 그러나 시리아에 문제만 없었다면, 여자 주인공 야라는 시리아에서 평화롭게 사진작가로 성장해갈 사람이었다.

이들을 화해시키는 것은 음식이었다. 함께 음식을 나누는 것. 이 행위가 영국이라는 부자나라에 사는 사라진 산업의 노동자들을 움직이는 힘이었다. 그리고 이 음식을 나누는 경험이, 이 영화의 거의 마지막 에피소드인, 야라의 아버지가 시리아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위로하러 찾아오는 동기라는 짐작을 하게 한다.

남자 주인공 TJ는 이들을 포용하면서 친구들을 설득한다. “삶이 힘들 때 우린 희생양을 찾아. 절대 위는 안 보고 아래만 보면서 우리보다 약자를 비난해. 언제나 그들을 탓해. 약자의 얼굴에 낙인을 찍는 게 더 쉬우니까." TJ의 말이다. 왜 가난할 수록 자신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든 보수정당에 투표할까? 아마 TJ의 말 속에 해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감독은 결국 그런 사람들끼리 연대와 단결 (Solidarity)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진으로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내가 볼 때, 바로 연대야 말로 진보임을 드러내는 유일한 통로이다. 대기업 노조가 절대로 진보가 될 수 없음은 이것, 즉 아래를 향한 연대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신자유주의로.
신자유주의는 가진자들이 더 쉽게 부를 증식할 수 있도록 모든 비효율성을 제거하는 체제이다. 여기서 후자에 주목하면 좋은 체제로 오해하게된다. 그래서 대처나 레이건이 영웅으로 소개되는 웃픈 일이 벌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목적에 해당하는 ‘오직 가진자들이 더 쉽게 부를 증식할 수 있도록’에 주목해야 한다.

당시 영국과 미국은 노동자들의 연대로 기업들이 돈을 벌 수가 없었다. 가난한 나라들은 노조 없이 저렴한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자유무역을 주장하던 미국과 영국이 과거에는 강력한 기업경제를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자유무역은 자기들이 돈을 버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자유무역을 하면 무역적자가 심각하게 증가한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자국내의 생산은 비효율적이라고 노조를 공격하면서 공장을 닫고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이었다. 대신 영.미의 절대적인 힘을 사용하여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기 위해 자본의 국경철폐를 관철시킨다. 이를 바탕으로 해외직접투자를 통해 후진국에서 생산한 값싼 물건을 들여와 판매하는 체제를 구축한다. 반대로 자기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IT, 의약 등의 분야를 수출산업화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했다. 주로 지식재산권에 대한 폭 넓은 인정이 그것이었다. 이를 혁신을 위해 필요한 조처라고 주장했지만, 심지어 미국 내에서조차 지재권에 대한 포괄적인 인정이 오히려 혁신을 방해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FTA(자유무역협정)는 후발국가들의 산업을 특정한 몇 개의 산업만 남기는데 기여했다. 많은 학자들이 산업의 다양화가 중요하다고 주장했지만 반대로 한국의 산업은 특정 몇 개로 더욱 집중화되었다. 어느 나라든지 그 특정산업을 지배하는 사람들은 대기업 노동자들까지도 영.미의 가진자들과 같은 특혜를 누리고, 한 나라 안에서도 그 산업에 속하지 못한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거나 열악한 삶으로 밀려났다. 그래서 경제는 성장하지만, 그 성장이 오히려 많은 사람들을 끝없는 추락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경제의 강건성(robustness)은 떨어져 국제정세 변화에 더욱 취약해졌다.

이 지점이 바로 더햄의 탄광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사라진 배경이다. 비효율이 아니라 다른 가난한 나라의 임금에 비해 비싸다는 이유로 제거된 일자리이다. 국민소득이 수만달러나 하는 부자나라에서 이에 반 쯤 되는 임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횡포의 피해자들이었던 더햄의 주민들이 자기들보다 더 열악한 상태에 있던 시리아 난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현실이 이 영화의 배경이다.

그리고 이 상황을 반전시킬 힘은 ‘연대와 단결’ 뿐이라고 감독은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