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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꼬라지

지역경제의 이해

지역경제의 이해

지방 사람들은 자신의 지역에 대기업이 들어오면 지역경제가 살아나니 좋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대기업은 들어올 때 많은 지원금을 줘야하기 때문에 지방재정에 손해를 끼치면서도 조금만 사정이 나빠지면 다시 떠나려고 하니 지역에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둘 다 자신들의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지역경제를 이해하는 첫걸음은 바로 이 부분에서 시작되어야한다.
  
1980, 90년대에 우리 경제학자들은 한국과 대만을 비교하는 말을 많이 했다. 한국은 대기업이 하나만 휘청거려도 경제가 흔들리는데, 대만의 산업은 거의 다 중소기업으로 구성되어 있어 외풍의 영향을 덜 받으니 좋다는 취지의 말이었다. 그러나 경제도약 단계에는 이런 주장이 유효하지만, 새롭게 도약하는 국가가 등장하면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중국이 단순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부문을 싹쓸이 하면서 대만은 중국으로 대체되었다. 반대로 대기업이 있는 한국은 그 생태계 속에 포함되어 있는 중소기업도 함께 생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연구개발과 스케일-업 역량(scale-up, 연구개발결과를 시장에서 팔리는 상품으로 만들어내는 역량)을 갖추고 있느냐의 차이에서 나온 것이지 기업의 크기에 따라 달라진 것은 아니다. 이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면 대기업이 들어와서 손해만 끼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중소기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군산에서 최근 가장 뜨거운 이슈였던 현대중공업의 조선소 문제부터 살펴보자. 우리나라 조선업이 최대의 호황을 누렸던 것은 미국이 1993년에, 1996년부터 강제로 이중선체 탱커선 도입을 의무화했고, 국제해사기구(IMO)도 2010년부터는 이중선체 탱커선 만을 운행하도록 하면서부터다. 이중선체란 선박이 암초나 장애물 등에 충돌했을 때 선박의 외피가 찢어져 기름이 흘러나와 바다를 오염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선박의 옆면과 바닥을 이중 구조로 만든 것을 말한다. 이에 따라 2006~2007년에 세계선박건조량은 최고에 달했다. 그리고 이 때 한국의 조선사들은 밀려드는 물량을 건조하기 위해 군산과 중국 등에 임시 조선소를, 지방정부의 지원금까지 받으면서, 추가 건설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수요가 사라진 지금은 물량이 급감하여 조선소를 폐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연구개발기능이 없는 공장이 폐쇄 일순위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풍력발전기를 제조하는 공장으로 존속시키기를 기대했지만, 그들에겐 글로 쓰기 곤란한 다른 속셈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수년 내에 다시 발주물량이 급증할 전망이어서 조선업의 미래는 밝다. IMO는 2020년부터 연료의 황산화물 배출규제를 도입하여 기존의 선박연료인 벙커C유나 디젤유는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선사들은 엔진을 교체하기 보다는 LNG기반의 새로운 엔진을 사용하는 선박을 새로 발주하는 쪽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보통 선박의 수명을 20~30년으로 보는데, 이중선체 탱커선이 집중적으로 발주되기 시작하던 1993년으로부터 이미 25년이 지났기 때문에 초기에 건조된 이중선체 탱커선들을 수리하기보다는 신규발주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게다가 그동안 우리 조선사들을 괴롭혔던 해양플랜트부문에서도 노하우가 축적되어 새로 발주되는 해양플랜트시장에서 성과를 내기 시작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제품들이 새로운 연구개발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이중선체 탱커선은 설계와 이를 만들어내는 기능공들의 손에 달린 것이었기 때문에 여기에 익숙한 우리 조선사들에게 기회로 작용했지만, 해양플랜트, 특히 LNG엔진기술에서는 일본의 조선업체들이나 미국의 GE, 영국의 롤스로이드 등에게 유리하다. 따라서 초기에는 단순 공장이 아닌 연구시설 가까운 곳에서 선박건조를 시작할 것이기 때문에 수주물량이 늘어나도 군산조선소로 배당되는 시점은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
  
많은 시민들이 염려했던 한국지엠 군산공장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연구개발기능이 없는 단순조립공장이기 때문에 부평공장보다 먼저 물량이 줄어들었다. 지엠 본사가 인도시장이 중국에 이어 새로운 성장 시장으로 꼽히는 데도 불구하고 가격과 품질유지 사이의 역관계라는 딜레마에 빠져 인도시장에서 철수를 결정했다는 사실과 한국지엠의 임금수준을 인도와 비교하면서 한국지엠의 임금이 높다고 압박했던 사실은 한국지엠을 철수시키기보다는 어떻게든 임금을 낮추어 유지하려고 한다는 전망을 가능하게 한다.
  
지엠의 또 다른 딜레마는 유럽시장을 완전히 포기하고는 글로벌 메이커가 될 수 없는데, 미국이나 중국산을 유럽에서 판매하기 곤란하다는데 있다. 또 한국의 수입차분류 기준은 지엠이 철수하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다만 이런 목적으로 한국지엠을 유지한다면 유지규모는 목적에 맞는 최소규모가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국지엠의 철수 문제는 유럽지엠을 매각할 때 향후 몇 년 동안 유럽에 재진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는지와 깊은 관련이 있다. 재진출을 할 때는 다시 한국지엠에서 생산한 물량을 유럽에서 판매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연구개발기능이 없는 한국지엠의 유지규모는 판매물량에 융통성 있게 대응할 수 있는 규모가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노동의 유연성이나 특근에 대해 부담을 낮추어야 하는 지엠 본사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압박하여 통상임금 문제에 대해 특혜를 받았던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정도 이야기만으로도 우리는 타지역에 본사가 있는 대기업의 변동성을 흡수할 작은 자율경제가 존재해야만 한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먼저 중소기업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10여 년 전 부터 나는 중국자동차산업을 연구하면서 우리 지역에서 여러 차례 자동차부품기업들을 중국의 A/S용 부품시장에 진출시키는 방안을 추진할 것을 말해왔는데, 우리는 손 놓고 있는 동안 다른 광역단체에서 이를 정책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산업여건은 생물과 같아서 기회였던 상황이 계속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가장 나쁜 것은 지역발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지역정책을 휘젓는 탁상공론이다. 지금이라도 지역의 중소기업 실태를 정밀조사 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어느 시장을 새로 개척해 나갈 것인지 그리고 이를 위해 어떤 연구개발이 필요한지에 대해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만 한다. 이런 과정이 산학연협력이다.
  
더 중요한 것은 내부경제의 발전이다. 중국은 2008년을 전후해서 수출중심 성장모델을 포용성 성장모델로 전환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짐작하는데, 이런 전환으로 말미암아 성장률은 크게 둔화되었지만 중국경제 자체는 더욱 튼튼해지고 있다. 무역을 지렛대로 삼아 성장하던 구조를 인민이 잘살도록 만들어 내국민 소비와 ‘일대일로’정책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 한류가 이 정책의 최대 수혜자였음은 잘 아는 사실이다. 지금 지역경제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내부경제 발전모델이다.
  
전주는 한옥마을 덕분에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군산이 이를 모방하여 근현대역사문화를 모티브로 구도심을 살려내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제 서해안 관광벨트와 같이 이를 좀 더 큰 그림으로 발전시킬 모델이 필요하다. 군산의 근현대역사유산과 부안, 고창의 자연유산을 결합하여 체류하는 관광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좋겠다.
  
진정한 내부경제는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를 내부에서 스스로 생산하여 거래하는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필요한 물건을 외부에서 사다가 사용하는 현 경제시스템은 우리의 필요를 외부의 경제발전을 위해 제공하는 방식이다. 물론 모든 필요를 내부에서 조달할 수는 없고 서로 비교우위를 갖는 상품을 생산하여 교역하게 된다. 그러나 상징성을 갖는 몇 가지가 있다. 먹거리와 전기가 그것이다. 완주군은 로컬푸드운동으로 전북도내에서 가장 지역주민소득이 높은 지자체가 되었다. 완주산업단지로는 농가소득을 높일 수가 없었는데, 로컬푸드운동이 바로 대기업의 변동성을 완충해주는 작은 조약돌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 에너지자립마을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면 좋겠다. 에너지자립마을은 소규모 지역 단위로 필요한 전기를 자체 생산하는 것으로 우리가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전기를 통해 지역 내 고용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지역 내 대학졸업생들의 고용기회일 뿐 아니라 청년들이 마을로 돌아오는 작은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지역경제를 정치권에 맡기는 순간 지역은 망가질 수 있다. 그들은 지역주민이 아니라 오직 선거를 위해 주민의 눈을 현혹시킬 사업을 종종 주장하기 때문이다. 수십 년간 지역경제를 볼모로 잡고 있는 새만금이 그렇다. 이곳에 GMO(유전자조작) 작물을 키우는 대규모 농장을 세우자거나 혹은 국민을 죽음으로 내모는 내국인 카지노를 세우자는 주장이 바로 그 증거이다. 주민 스스로 깨어있지 않으면 방향을 잃은 채 사지로 걸어 들어가게 된다.


(2017.9.24., 이 글은 군산에서 발행되는 시민의 도시 10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