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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꼬라지/경제

나선형 악순환과 선순환의 갈림길: 사드와 한국 위기의 구조

나선형 악순환과 선순환의 갈림길: 사드와 한국 위기의 구조

 

웰스(Wells)2009년 자동차산업이 겪고 있는 위기의 나선형구조(Crisis Spirals)에 대해 발표한 적이 있다. 기업이나 산업이 나선을 따라 상향이동(upward positive feedback loops)하기도 하고 하향이동(downward negative feedback loops)하기도 하는데, 일단 상향 혹은 하향의 국면에 들어서면 여러 가지 현상이 상호작용하여 그 방향으로 이동하는 속도가 가속화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모형이 국가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우리가 최근 수개월 동안 목격했듯이 북·미간의 발언 수위는 서로 상승작용을 하며 금방이라도 전쟁이 벌어질 것 같은 걱정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이 모형의 적용 범위를 국가로 확대하면 나선의 개수가 늘어나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그리고 국가경영의 정책목표는 이런 나선 중에서 좋은 나선은 상향이동하게 만들고 반대로 나쁜 나선은 하향이동하게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 한국은 크게 보아 두 개의 나선이 상호영향을 주며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하나는 경제의 나선이며 다른 하나는 외교의 나선이다. 이 둘은 완전히 맞물려 있어서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는 순간 국가는 위기에 빠질 위험이 커진다.

 

한국의 경제나선은 이미 하향순환에 돌입했다. 인구구조 때문이다. 노령인구가 급증하고 있는데, 이들은 두 가지 특징을 갖는다. 하나는 모든 노령자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자산을 보유해서 투자 여력을 가진 계층이다. 두 번째 특징은, 그러나 소비는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많은 노령자들이 일정한 소득이 없기 때문에 소비를 할 능력이 취약한데다, 자산을 가진 노령자들조차도 연금이나, 저축, 부동산 등의 자산이 장차 자신이 당하게 될지도 모르는 질병 등을 위한 보장보험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노령자들은 소비를 급격히 축소하게 된다. 반대로 도전을 하면서, 소비를 주도하여 새로운 경제 활력을 만들어내야 할 청년계층은 그 규모가 급격히 축소되고 있다. 청년실업과 비정규직화는 이런 현상에 기름을 붓는 꼴이다.

 

지금 이런 하향순환을 저지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해외시장에서 국내로 유입되는 소득(수출이나 자본배당금)을 늘리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기본소득이나 비정규직 철폐, 혹은 최저임금 인상과 같은 정책들이 소비를 활성화하여 이런 하향순환의 속도를 지연시키는 것이다. 후자의 정책은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잠식하기 때문에 수출의 감소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물론 기업의 경쟁력이 임금에 의존했던 것이 잘못이라는 지적은 유효하다.) 따라서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키지 않으면서 동시에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자본의 몫을 떼어서 이를 소비활성화 정책에 투입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대타협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경제의 하향순환은 오히려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외교나선이 꽉 맞물려 있다. 1997년 외환위기와 한미FTA를 통해 우리 기업들의 자본은 상당부분 이미 미국자본이 차지하고 있어 사회적대타협의 범위가 국내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반대로 우리의 무역거래는 상당부분을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수출경쟁력을 잠식하지 않는 사회적대타협은 미국의 자본가라는 우리의 정책 범위를 벗어난 그룹이 포함되어 성공하기 어렵다. 미국의 북한 위협이 높아지면 주식시장이 출렁이다가 미국이 발언수위를 낮추면 다시 진정되는 것은 바로 해외자본이 영향을 받기 때문인데, 이 자본의 국적이 미국이어서 미국은 자본시장의 추이를 읽어가며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기존의 수출시장을 지키고 확대하기 위해 노심초사해야 하는 처지인데 이는 중국의 결정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경제나선의 하향 순환을 반전시킬 수 있는 자율적인 정책수단이 별로 없는 외교정책의 문제로 치환되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복잡한데, 우리에겐 남북문제라는 수십 년 된 문제도 안고 있다. 북한전문가들은 북한이 원하는 것은 체제안정성 보장이라는데, 북측은 이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언제나 긴장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선을 돌리는 것으로 보인다. 한때는 재래식 전쟁 위협을 실천에 옮겼다. 서해교전이 대표적인데, 이때 고 김대중 대통령은 금강산유람선을 중단시키지 않아 북측의 도발을 무력화했다. 북측은 이후 미사일과 핵무기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긴장강화의 나선을 미국을 향해 강화시키는 전략이다.

 

북측의 이런 행동으로 나쁜 나선은 더욱 가속적으로 상승되는데, 즉 한··일은 이를 핑계 삼아 중국을 압박해왔다. 제주강정 해군기지는 중국 입장에서는 불만이 있을 수 있지만, 재래식 군사시설인데다 북측의 무모한 행동 때문에라도 모호성을 유지해왔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사드배치부터는 더 이상 모호성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중국정부는 일관되게 외교적 수사뿐 아니라 경제적 보복의 수위를 조금씩 높여왔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절묘한 중립지대이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국경을 맞댄 국가들에 대해서는 국경분쟁의 형태를 띠긴 했지만, 도전을 용납하지 않는 정책을 펼쳐왔다. 베트남, 인도 등과 그러했고, 내부 문제이긴 하지만 국경지역에 속한 티베트에서도 그러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중국은 남북한을 완충지대로 두고 상대하기 껄끄러운 미·일과 직접 맞대면 하는 것을 피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중국이 완전히 세계 제1의 강대국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는 이런 구조를 유지시키려 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는 미·중간의 상호견제와 지정학적 특징을 잘 활용하여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기회를 삼아야할 것이다. 중국과 직접 맞대면 하게 되었을 때의 지정학적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서도 현재의 구도는 유리하다. 통일은 한반도에 대한 이해를 가진 국가들의 수가 줄어들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그동안 북·미는 전략적으로 명확화정책(평화협정을 맺고 체제안전을 보장하라는 요구, 핵개발 프로그램을 불가역적으로 완전히 폐기하라고 요구)을 택해왔고, ·중은 전략적모호성(강정기지에 대해 함구하거나 대북제재에 소극적으로 반응, 금강산관광이나 개성공단을 유지하는 정책)을 견지했다. 그러나 중국이 21세기판 마샬정책이라 할 수 있는 일대일로정책을 발표하거나 사드배치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의견을 표명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서방세계가 중국에 돈을 구걸하러 찾아오는 것을 보고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는 반증이며 더 이상 전략적모호성을 유지하지 않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우리 정부가 모호성을 버리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정부 초기 지금의 한국당 및 바른정당의 전신이었던 야당이 요구한 대북송금특검을 수용하면서부터이고, 이명박 정부에서 금강산관광중단, 박근혜정부에서 개성공단 폐쇄 등 우리도 긴장강화쪽으로 나선을 돌려왔다. 여기까지는 남북문제였지만, 박그네정부가 사드를 배치하면서 이는 더 이상 남북문제가 아니라 한중문제로 확장되었다. 즉 모호성을 버려온 것은 지금의 야당이란 의미이다) 

 

이런 배경에서 본다면, 사드배치 혹은 더 나아가 전술핵 배치와 같은 전략자원의 한반도 전개가 갖는 위험은 분명해진다. ·미는 북측의 행동에 대한 정당한 대응이라고 주장하지만, 중국은 북측의 행동을 핑계 삼아 미국의 중국포위전략에 한국이 첨병으로 나섰다고 분노하는 상황이 더욱 나쁜 방향으로 상승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우리가 더욱 더 전략적모호성으로 소나기를 피해 가야할 처지이다. 그런 우리가 스스로 나서서 레드라인을 설정하거나 공격적으로 MD방어체계의 첨단배치 기지가 되어 대북제재가 아닌 대중제재 정책을 쏟아내는 것은 위기의 나선을 더욱 상승시키며, 경제의 나선을 급격하게 하강시키는 정책이 될 것이다.

(2017.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