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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미신/21세기의 기독교인

회심과 유사 회심

회심과 유사 회심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정말 회심한 자인가? 아니면 유사(pseudo) 회심, 즉 하나님의 권능에 혹은 사랑에 감동하였고 그래서 세례를 받거나 교회에 나왔지만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자인가? 최근에 읽은 다니엘서에는 유사 회심의 사례가 하나 등장합니다.
  
“1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으니 고는 육십 규빗이요 광은 여섯 규빗이라 그것을 바벨론 도의 두라 평지에 세웠더라 2 느부갓네살 왕이 보내어 방백과 수령과 도백과 재판관과 재무관과 모사와 법률사와 각 도 모든 관원을 자기 느부갓네살 왕의 세운 신상의 낙성 예식에 참집하게 하매 3 이에 방백과 수령과 도백과 재판관과 재무관과 모사와 법률사와 각 도 모든 관원이 느부갓네살 왕의 세운 신상의 낙성 예식에 참집하여 느부갓네살의 세운 신상 앞에 서니라 4 반포하는 자가 크게 외쳐 가로되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아 왕이 너희 무리에게 명하시나니 5 너희는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의 세운 금신상에게 절하라 6 누구든지 엎드리어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넣으리라 하매 7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이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자 곧 느부갓네살 왕의 세운 금신상에게 엎드리어 절하니라”(단 3:1-7)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어놓고서 그 금상을 신처럼 섬기라고 명령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부분만 읽으면 바벨론은 이방국가로 우상을 섬기던 나라이니 뭐가 이상하냐고 물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앞의 2장을 보면 좀 당혹스럽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왕위에 오른지 2년이 되던 해에 꿈을 하나 꿉니다. 문제는 그 꿈의 내용조차 기억하지 못하는데 마음이 매우 불안하여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꿈을 해석해내라고 전국의 학자나 마술사, 점쟁이들을 모두 불러다 명령합니다. 꿈의 내용도 모르는데 그 꿈을 해석하라니 미칠 노릇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꿈을 가르쳐주면 해석해 주겠다고 하는데, 급기야 왕은 꿈을 해석하지 못하면 다 죽이겠다고 선포합니다. 얼마나 그 꿈으로 인한 번민이 심각한 상황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이 꿈이 어떤 내용이었고 그 뜻이 무엇인지 해석해줍니다. 특히 꿈속에 등장했던 거대한 신상의 머리는 정금으로 만들어졌었는데, 그 머리가 바로 느부갓네살 왕을 상징한다고 가르쳐줍니다. 다니엘은, 또 이렇게 꿈을 알아내고 해석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보여주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자 왕은 놀라운 하나님을 찬미하면서 다니엘과 그 세친구들을 관료로 임명합니다.
  
“28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자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단 2:28상)
  
“47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자시로다 48 왕이 이에 다니엘을 높여 귀한 선물을 많이 주며 세워 바벨론 온 도를 다스리게 하며 또 바벨론 모든 박사의 어른을 삼았으며 49 왕이 또 다니엘의 청구대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세워 바벨론 도의 일을 다스리게 하였고 다니엘은 왕궁에 있었더라”(단2:47-49)
  
여기까지만 보면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의 능력에 감탄했고 따라서 당연히 회심을 거쳐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로 다음에 위에서 읽은 것처럼 금신상을 세우고 백성들에게 우상숭배를 강요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나는 이것이 바로 유사 회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경험하거나 목격하고서 놀라게 되고, 그런 놀람 때문에 입으로 나온 말이 다른 사람들이 볼 때 회심한 사람의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회심하지 않은 가짜 회심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게 주님께서 밭의 비유에서 말씀하신 가시밭에 뿌려진 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유사 회심. 이것은 교만과 욕심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느부갓네살은 자신이 바로 정금으로 만들어진 머리 부분에 해당한다는 말을 듣고는 우쭐했을 것입니다. 매우 뿌듯했고 그래서 교만해졌겠지요. 그러니 자신을 상징하는 금신상을 만들자고 속삭이는 자들의 유혹에 넘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심은 그렇지 않습니다. 회심의 증거가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그런 회심으로 가장 극적인 사례가 삭개오의 회심입니다.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 19:1-9)
  
세리의 우두머리로 대표적인 죄인 취급받았던 삭개오였습니다. 그런 삭개오를 보시고 예수께서 그의 집에서 머물겠다고 하시니 삭개오는 기쁨으로 주님을 영접합니다. 그리고 삭개오는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라고 선언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이나 삭개오나 둘 다 하나님의 계시나 주님의 말씀을 듣고 감동하게 되지만 그 결과로 나타난 행동은 전혀 다릅니다. 한 사람은 자신을 과시하는 금신상을 세우고는 백성들에게 섬기라고 강요하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자신의 재산을 내놓습니다. 이 둘의 차이가 바로 회심과 유사 회심의 차이입니다.
  
2014년 봄부터 여름에 이르는 긴 시간을 지방선거를 거쳐 총리와 장관을 뽑느라고 청와대와 정치권이 아무 일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부끄럽게도 그리스도인을 포함하여 많은 후보자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불법으로 사용하여 특권을 누렸던 것으로 드러나 온 국민을 실망시켰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압권은 그리스도인 후보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국민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말이었는데도 교계의 지도자를 참칭하는 자들이 거기에 기름을 붓는 말을 덧붙인 사건들일 것입니다.
  
왜 이런 일들이 끊이지 않는 것일까요? 혹시 이들도 느부갓네살 왕처럼 미국의 선교사나 교회들이 지원해주는 엄청난 물질의 권능에 눈이 어두워져 입으로만 회심했던, 유사 회심 때문은 아닐까요? 나도 또 다른 유사 회심자는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