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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하나님


붉은 하나님

랴오이우 지음 박명준 번역, 새물결플러스 출판

 

내가 학생 유명한 우스개 소리가 있었다. 이것이 사실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우스개로 지어낸 이야기인지 근거는 확실하지 않다. 아무튼 이런 이야기이다. 어느 유학생이 귀국하면서 막스 베버(Max Weber)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영문판을 들고 왔다가 김포공항에서 연행 당했다는 것이다. 막스를 마르크스(Marx) 혼동한데다, 자본주의(Capitalism)라는 단어가 있는 것을 보고 마르크스의 자본론(당시 우리나라에서 책은 금서 중의 금서였다)으로 오해한 공안원이 불온한 서적을 가지고 들어온 것으로 오해했다는 것이다.

 

이런 기준으로 본다면, 책의 제목 "붉은 하나님" 충분히 오해할만하다. 빨갱이들을 위한 하나님이란 말인가? 게다가 이게 중국의 그리스도인들 이야기라니... 아마 그런 생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다면 금새 당황할 것이다. 그러나 무슨 생각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하든지, 책에 담긴 중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종교말살정책을 폈던 중국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있었는지를 통해 기독교를, 그리고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발견해 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책이 갖는 독특한 의미는 기독교에 대해서 우호적이거나 혹은 악의적인 편견을 갖지 않은 비그리스도인인 작가가 중국 여러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을 만나 인터뷰한 하나님과 기독교, 기독교인의 객관적인 모습이라는 점이다. 중국내 출판이 금지된 반체제 작가이며 천안문 사건을 고발한 서사시 "대도살" 혐의로 수감생활까지 랴오이우가 집필했다. 랴오이우는 중국 정부의 탄압을 피해 2011년에 중국을 탈출하여 지금은 서방에서 활동 중이지만, 중국에서 오랫동안 중국의 보통 사람들 이야기를 주로 써냈던 작가이다. 역시 보통 사람 가운데 하나로 그리스도인들을 인터뷰하여 펴낸 작품이다.

 

책이 기록하고 있는 공산 중국에서 교회 혹은 그리스도인들이 겪어야 했던 경험의 번째는 당연히 교회재산의 몰수와 탄압에 대한 것이다. 19세기부터 많은 선교단체들이 중국의 내지에 들어가 교회와 학교, 병원 등을 설립하여 교육과 구호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재산들을 국유화했던 것이다. 과정에서 삼자교회라고 불리는 공산당이 세운 국가승인교회와 달리, 불법이었던 가정교회의 형태로 존속되었던 교회에 대한 탄압은 매우 심각한 것이었다.

 

다음과 같은 대화에서 발견되듯이, 중국의 공산혁명도 남미의 근대혁명이 그랬던 것처럼 중국의 인민들에게 희망을 주지는 못했던 같다.

 

"혁명이 성공하면 민중이 주인이 되는 나라가 오는 알았죠. 하지만 민중의 삶은 전보다 나빠졌어요."

 

특히 이데올로기는 인민의 사고를 마비시켜 사람들을 광기 어린 악마로 바꾸어 놓는다. 그리고 과정에서 자신들과 다른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을 힘없는 폭력의 대상으로 전락시킬 뿐이다.

 

"일단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와 마오의 정치 선전에 세뇌되고 나면, 인민의 사고는 혼돈 상태가 되고 인간성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혼돈 상태가 최고조에 달하면, 작업반조차도 열광을 제어할 없었죠."

 

어디 공산주의뿐이랴, 비슷한 시기 미국에도 메카시즘의 광기가 휩쓸고 있었고, 그보다 조금 독일의 나치도 민족주의의 기치 아래 유전과 진화 과학을 바탕으로 온갖 학살을 일삼지 않았던가? 모든 이데올로기는 자체로 악이다. 게다가 그렇게 날뛰는 자들은 마치 한국에서 친일파가 시기에 따라 가면만 바꿔 쓰고 광기를 부렸듯이 중국에서도 다를 없었다.

 

" 정부 지지자들인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삼자원칙을 옹호했지만 그들은 위선자들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일본이 침략해왔을 침략자들에게 투항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후에 미국인들이 왔을 때는 미국인들에게 고용되어 지냈던 사람들입니다. 그랬던 이들이 이제는 정부의 비위를 맞추려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자들을 애국자라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사익에 충실하기 위해 종교를 이용하는 기회주의자들일 뿐입니다."

 

둘째는 그런 가운데 믿음을 지켜온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것이다. 그들의 믿음은 매우 건전하고도 강력한 것으로, 탄압과 가난, 질병 등으로 고통의 시대를 지나온 그리스도인들이 겪은 변화를 이야기하는 다음 고백들이 이를 보여준다.

 

"랴오: 회심한 후로 건강 상태가 나아졌나요?

: 병은 아마 악화되었을 거예요. ...(중략)... 처음에 기도할 때는 주로 이기적인 생각에만 머물렀어요. 하나님께 받아야 빚이 있는 기적을 달라고 간구했죠. 결과 ...(중략)... 하나님께서 구원하지 않으시려나 보다 하는 생각을 하게된 거예요. ...(중략)... 인생 자체가 괴로움이었어요. ...(중략)... 목사님은 ...(중략)... 불의와 탐욕과 살인에 깊숙히 빠져 있으면서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개인과 나라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었어요."

 

"이제 저는 주님께 무엇을 달라고 구하지 않아요.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니까요. ...(중략)... 저는 죽는 날까지 주님의 길을 따라가며 구원을 추구할 거예요."

 

"'자네는 이미 공산당 체제 안에서 공직을 맡고 있네. 공산당 체제 안에서 봉급도 받고 혜택도 누리고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다니? 예수가 해줄 있지? 예수가 자네에게 먹을 것을 주나, 옷을 주나?'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작심하고 말했습니다. '지금 사직하겠습니다. 나의 영혼을 죽게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시절을 용서하고 있다. 여전히 박해 속에서 의료선교를 금지 당하고 국외추방을 당하고 있지만 순교자의 가족들은 이렇게 말한다.

 

랴오: 과거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신가요?

: 아니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원망하지 않아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죄인을 용서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하지요.”

 

그렇다면 붉은 하나님은 도대체 어떻게 붉은 것일까? 첫째는 피의 색깔이다. 순교의 길에서 흘린 피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친다면 역시, 그리고 중국 기독교회의 경험도 전형적인 기독교회사 속의 다른 나라들의 경험과 다를 없다. 우리가 놓쳐서는 되는 진짜 붉은 색은 공산주의 중국에서 실제로 인민을 위해 자기를 돌보지 않고 사익을 추구하지 않고 희생하며 살았던 사람들은 공산주의 혁명가들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인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혁명가들 보다 붉은 하나님이다.

 

중국의 그리스도인들은 현재의 중국 사람들이 작은 물질적 이익을 위해 도덕이나 윤리, 법을 무시한 , 무슨 일이든 저지르고 있음을 지적하고 다른 어느 때보다도 지금이 복음의 말씀이 더욱 필요한 때라고 고백한다.


(첨언) 저자는 마지막 부분에서 지금 중국에서 삼자교회가 그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결국 기독교가 확산되는 창구가 것임을 암시하는듯 하다. 만약 그렇다면 내 생각은 회의적이다. 그 체제가 무엇이든 간에 체제에 협조적인 교회는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삼자교회는 이제는 시장주의에 야합하는 또 다른 기회주의를 드러낼 가능성이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