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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음악*사진&생각

루나의 예언 1,2

<루나의 예언 1,2> 프레데릭 르누아르 지음, 강만원 옮김, 창해에서 201212월 발행


 

루나의 예언. 제목의 이미지는 이 책이 무언가 음모론을 담았거나 혹은 신비스러운 종교집단이나 미래 종말에 관한 예언서 같다. 그리고 처음 전개되는 프로로그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나는 역시 내 예상이 맞았구나하면서 여느 소설을 읽듯 읽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소설을 읽는 것은 정말 쉬고 싶을 때 뿐이기 때문에 나의 흥미는 시작부터 반으로 꺽였다. 게다가 프랑스의 다빈치코드라니... 그러나 1권의 처음 두편을 넘어서 셋째 편에 이르면서부터 내 눈은 초롱거리기 시작했다.

 

이 책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유럽과 아시아의 정신 세계가 만나는 번뜩이는 지적 탐구이다. 거기에 소설의 흥미를 가미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평가일 것 같다. 그리스의 철학과 점성학(), 그리고 여기에 로마 카톨릭, 정교회,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를 섭렵하고 다니다가 급기야는 구체적으로 종교이름은 거론되지 않지만 힌두교나 불교의 윤회 사상에 이르기 까지 인간의 모든 종교적, 철학적 탐구를 담아 놓았다.

 

물론 이런 종류의 소설이 갖게 될 치명적인 한계인 소설로서의 흥미를 잃지않기 위해 극적인 반전과 숨은 장치를 만들어 두었다. 이 소설을 한국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김진명의 소설들과 비교하면 흥미로울 것 같다. 김진명의 소설은 전개과정에서 극적인 소설의 재미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의 깊이가 없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마지막 장면에서 허무해지는 경험을 하곤 했다. 그러나 루나의 예언은 반대로 전개과정의 재미도 덜하지 않고, 그 깊이가 매우 깊어서 읽고 나서도 한참을 다시 곱씹어 보고 싶어지는 소설이다.

 

저자가 이 소설에서 찾는 것은, 비록 드러내놓고 추적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종교소설이고, 기독교소설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이 소설을 그런 식으로 분류하면 이 소설을 제대로 읽은 게 아니다. 혹은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이 소설을 읽는다면 아마 많은 독자들이 충격에 빠질 것이다. 소설의 전개과정이 전혀 기독교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운명을 이야기 한다. 이 운명은 기독교적으로 보면 예정일수도 있겠다. 그러나 점성술이나 또 다른 종교에서도 이야기하는 운명, 나아가서 윤회하는 영혼의 운명, 그리고 어쩌면 무속신앙의 예언 대상인 운명에 이르기까지 모든 운명을 포괄한다. 그리고 이 운명에 대항하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다루어진다. 그 운명을 선택하지 않을 권리이자 힘인 자유의지 말이다먼저 나쁜 운명을 끝내는 힘은 자유의지로 선택한 용서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소설의 클라이맥스는 바로 그 자유의지가 사랑으로 꽃핀다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죽음과 탄생이 대비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구원이 암시되고 있다.

 

끝으로 추가하고 싶은 말은 이 소설을 읽다보면 저자의 방대한 지식에 놀라기도 하고 동시에 그런 방대한 지식을 다시 이해하여 번역한 번역자의 능력에 감탄하게 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