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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음악*사진&생각

평화, 그 아득한 희망을 걷다

평화, 그 아득한 희망을 걷다, 송강호, IVP



내 생애에 경험한 가장 큰 충격을 꼽으라면 나는 아마 2003년이었던가? 임영신, 유은하(후에 유가일로 개명) 두 사람이 이라크 전쟁에 반전평화활동가로 찾아가 인간방패로 나섰을 때의 충격을 꼽게 될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이 생명을 걸고 그 폭격의 현장을 찾아가게 만들었을까? 사실 나는 학생운동을 어깨너머로 구경하던 시절부터 시작하여 그때까지 오로지 내 나라 한국의 민주화를 벗어난 다른 나라나 또는 인류의 평화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무지한 수준을 넘어서 무관심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했던 그들의 행동은 나의 신앙을 돌아보게 만들었고, 우리 주님이 가르쳐주신 산상수훈의 팔복 가운데 하나가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임을 새삼스럽게 그리고 진지하게 다시 생각하게 했다. 이 경험이 2008년 설날, 태국의 메솟에 있는 버마 난민촌을 방문하게 만들었던 직접적인 이유였다. 워낙 한 가지에 몰입하지 못하는 성격 탓에 그후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지 못해 여전히 아쉽지만 말이다.


그 후 나는 뉴스앤조이를 통해 평화운동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송강호라는 이름과 '개척자들'이라는 단체에 대해 듣게 되었다. 그는 나를 무척이나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그가 국제활동을 중단하고 제주도 강정해군기지 건설현장에서 주민들과 함께 싸우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단 한번 강정에 잠시 들렸다 가는 사람으로 지나친 적 밖에 없는 나는 늘 강정마을과 개척자들이라는 단체에 빚진자처럼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해 이 책이 발간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리고 유가일이 그 책의 추천사를 쓰면서 그를 '불편한 영웅'이라고 했다고 했다. 그렇다. 그는 늘 스스로 믿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인으로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이 책을 쓴 송강호는 장로회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연세대 대학원에서 교육철학으로 석사학위를 마친 뒤 다시 독일의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실천신학으로 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책의 프로로그는 앞 서 이야기 했듯이 유가일이 썼다. 그리고 이어지는 1부는 그의 삶을 인터뷰로 추척해 간다. 그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평화운동에 눈을 뜨고 개척자들을 세웠으며, 강정에 오기 전에 했던 평화학교 등에 대해 이야기 한다. 2부는 어떻게 강정에 오게 되었고 무슨 일을 하다가 구속되었는가를 기록한다. 그리고 3부는 재판과정에 있었던 일들과 함께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 평화운동을 했는지를 구술하고 있다. 또 감옥에서 보낸 수개월 동안의 삶을, 생각을 일기로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3부의 끝은 아들 한별이가 쓴 자기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쓴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글이 실려있다. 이글을 읽다보면 정말 자랑스러운 부자관계를 부러워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서방에서는 예수를 믿는다고 박해를 받던 시대는 끝난 것 같지만, 사실 이 때의 종교의 자유가 과연 진정한 자유인가에 대한 의문을 품었던 적이 있다. 그냥 세상의 흐름에 적당히 혹은 적극적으로 순응하며 잘 살다가 일요일 하루 교회에 나가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믿음의 전부라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아니 그 정도의 자유는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도 있다. 그러나 지금 미국과 한국의 보수교회가 질겁하듯이 공공 장소에서의 복음전파를 규제하는 미국 일부 주에서의 종교자유는 어느 정도라고 평가해야 할까? 그런데 하물며 성경의 가르침대로 실천하며 사는 자유는 사실 지구상 어느 국가에도 없다. 종교의 자유는 자본과 국가권력에 도전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의 자유이다. 본질적으로 중국 수준 이상의 자유를 가진 나라는 없다.


끝으로 그가 쓴 일기 중에서 한 대목을 옮긴다.

'내게는 전쟁없는 세상을 꿈꾸게 된 것이 저주다. 재앙과 저주가 내게 씌워진 것이 고통스럽지만 행복하다. ...... 평화에 대한 희망은 내게 저주이자 구원의 기쁨이다. ...... 전쟁과 군대와 군사기지가 없어지는 때와 기한은 신의 손에 달려 있을 뿐, 내가 알 바 아니다. 나의 임무는 폭력의 시대 속에 출루하는 것이다. 모든 노력을 기울여 그 누군가는 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 8월 31일 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