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와 미신/하나님의 경제학

성찬식에 합당하지 않은 자는 누구인가?

성찬식에 합당하지 않은 자는 누구인가?

 

[오랫동안 이곳 교회 식구들과 함께 고린도전서를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선거가 제 마음을 편하게 놔두지 않아서 묵상내용을 나누는 일에 좀 게을렀습니다. 주의 은혜!]

 

오늘 함께 생각해 보고 싶은 말씀은 고린도전서 1117-34절 말씀입니다. 내가 그동안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말씀은 성찬식에 참여해서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죄를 짓는 것이고 그래서 병들거나 심지어 죽기까지 한다고 합니다.

 

[고전11:27-30]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나는 이 말씀을 항상 무의식적으로 개인적인 죄를 의미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래서 떡과 잔을 앞에 두고 늘 회개의 기도를 했습니다. 회개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성찬식에 참여하는 게 잘못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이해는 방향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먼저 성찬식의 목적을 바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즉 성찬식의 정신은 주의 죽으심으로 우리가 구원받았음을 주의 재림 때까지 전하는 행위라는 가름침으로 보입니다. 바로 성찬을 함께 나눔이 주님을 전하는 행위라는 것이지요. 이 성찬은 사실 주께서 잡히시던 밤에 제자들과 함께 한 만찬이 기원입니다.

 

[고전11:23-26]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그래서 초대교회는 오늘날과 같은 성찬식이 아니라 사랑의 만찬(love feast)이라고 하는 실제 만찬을 실시했습니다. 그게 바울이 이 말씀을 편지에 쓴 원인이 된 것입니다. 문제가 있었습니다. 글자그대로 (자기 기쁨을 위해)먹고 마시는 일이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함께 모여 식사하지 않고 자기들(파당 지어)끼리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먹고 취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부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이 이 사랑의 만찬에 참여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17-22)

 

즉 바울이 죽음까지 거론하며 무섭게 질책하는 일은 가난한 사람들을 배제하는 우리만의 만찬이었던 것입니다. 개인의 경건이나 종교적 신비성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공동체적 죄(communal sin)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살펴야 하는 방법도 판단 받는 것을 피하는 방법도 공동체적입니다. 형제들을 기다려서 함께 만찬 하는 것 말입니다.

 

[고전11:31-34]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 밖의 일들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바로잡으리라.


세상과 함께 정죄 받는다는 말은 영원한 형벌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바로 공동체적인 만찬을 함께 하지 않는 세상을 말합니다. 이는 마치 구약시대에 야훼 하나님의 가치관인 안식일-안식년-희년으로 이어지는 신앙이 아닌 풍요를 비는 바알을 섬기는 세상이 심판받는 것과 같습니다. 이를 실천하지 않는 교회는 야훼를 섬긴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바알을 섬겼던 그래서 망했던 이스라엘과 같은 모습입니다.

 

성만찬은 나의 시장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가난한 자들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아니 내가 먹는 밥 한 끼 한 끼가 성만찬입니다. 내 이웃을 돌아보지 않고 먹는 식사가 바로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는 성찬입니다. 두려움이 나를 돌아보게 합니다.(2012. 12. 13)


(14일 추가) 사실 이 말씀과 그 앞부분인 11장 전반부는 열흘 이상을 묵상해야 했던 말씀입니다. 온전한 이해를 위해서였습니다. 전반부는 다음에 올릴 생각입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일에 탐욕을 부리는 것은 나쁘다고 기독교인들 뿐 아니라 다른 많은 종교나 철학에서도 지적합니다. 심지어는 의학에서도 가장 강력하게 경고하는 부분이지요. 고도 비만이나 잦은 음주가 건강에 가장 무서운 적이라고요. 방송을 통해 의학강좌를 몇 번 들어보니 온갖 성인병의 1차적인 원인은 비만과 과음이라고 하더군요. 사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란 생각도 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는데, 내가 음식을 독점하는 행동을 하나님이 기뻐 하실리가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눔은 남을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바로 나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