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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꼬라지/사회

서울대 입시제도 파문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

서울대가 2008학년도 정시모집에 공인어학시험(토익, 토플, 텝스 등) 성적을 반영하겠다고 해서 소란스럽습니다. 물론 여러 교육단체들의 항의를 받고 철회했지만 이 사건의 뒤에 숨긴 의미를 한번쯤 다시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서울대는 이들 시험성적을 반영하겠다는 계획의 취지가 “공교육정상화를 위해 비교과영역을 반영한다”는 것이었는데 학부모와 수험생의 우려 때문에 철회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사실을 특종 보도한 한겨레신문 기사를 살펴보면 이 우려란 사교육을 부채질한다는 것입니다. 2005년 한 해 동안 토익 응시자 수는 185만 6천여 명이었고 이 중 5만 8천여 명이 초, 중, 고생이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옳은 지적입니다.

사교육 부채질하는 공인어학시험성적 반영

그러나 저는 사교육조장의 문제 외에도 반드시 한번 생각하고 넘어가야할 더 큰 문제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한미 FTA협상에서 미국측 수석대표가 했던 “한국의 공교육시장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SAT(이는 미국의 수능시험입니다)와 인터넷교육시장에는 관심이 있다”는 발언과 관계가 있습니다.

한국은 그 동안 공교육정상화를 위해 시험성적에만 의존하던 입시제도를 다양한 평가방법 도입이라는 방향으로 계속 수정해왔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수능성적도 등급만 공개하게 됩니다. 선진국처럼 대학 스스로 다양한 선발방법을 개발하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미국은 이런 한국에서 SAT를 실시하여 점수를 제공하겠다는 것입니다. 결국 상위권 대학들은 대부분 미국의 SAT 성적을 제출하라고 할 것이고 우리 대학입시를 미국기관이 좌지우지하게 됩니다. 공교육시장을 개방시키지 않아도 사실상 우리 공교육을 지배하는 것이지요.

이런 마당에 서울대가 공인외국어시험성적을 반영하겠다는 것은 미국의 교육시장 개방전략을 도와주는 꼴입니다. 물론 서울대는 공인시험목록에 자신들이 개발한 텝스를 끼워 동반이익을 추구하는 영민함까지 보여주었습니다. 어쩐지 구한말 매국노들의 사익추구 행태와 비슷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한미FTA를 통한 미국의 우리 대학입시 개입을 인정하는 꼴

두 번째로 고민해볼 문제는 미국 최고 명문대학들의 집합소라는 아이비리그의 대학들이 최근 SAT가 교육평등권을 위협한다 하여 SAT 반영을 기피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부유층일수록 사교육을 통해 SAT 대비 집중훈련을 하기 때문에 SAT로 학생을 선발하면 오히려 다양한 인재를 뽑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대학들이 늘어간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대학들이 수능과 같이 숫자로 제시된 성적에 의존하려는 태도에 두 가지 측면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교육을 기득권층의 기득권 유지수단으로 변질시키고 있다는 점과 우리 대학들이 얼마나 창의성이 빈곤한가를 보여준다는 것이지요.

시험은 오히려 다양한 인재발굴 기회를 가로막을 수 있어

세 번째 문제는 앞의 두 문제의 원인일지도 모르는 사실인데, 우리나라 교수들의 다양성 부족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상위권 대학 교수가 되려면 거의 무조건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와야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미국 편중현상은 교수들의 연구주제가 미국에 편중되게 만들고 따라서 암묵적으로 미국의 제도를 좋은 것으로 전제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 유학파 교수가 절대 다수인 것도 바람직하지 않아

교육단체 대표들이 서울대를 방문했을 때 공개토론회를 제안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서울대가 오히려 토론회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이는 공인어학시험성적 반영계획이 얼마나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소신과 철학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논리가 잘 갖추어졌다면 떳떳하게 밝힐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정부의 가장 큰 고질병이기도 합니다만, 파급이 큰 제도를 도입할 때일수록 정보를 사전에 공개하여 다양한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볼 기회를 갖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어쩌다가 서울대가 한미FTA를 오직 자기들의 서랍 속에서만 결정하려는 데서 드러난 이 정부의 폭력성을 따라 하려했는지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