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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꼬라지/사회

어떤 이유로도 학살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어떤 이유로도 학살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나는 지난 한달 간을 계속 글을 써야 하는지 참담한 마음으로 지냈습니다. 새해 들어 계속 들려오는 여러 종류의 학살 소식 때문입니다. 아마 세상 소식을 들으며 사는 분이라면 중동의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이스라엘군의 민간인 학살이라든가, 용산의 재개발 지구의 학살 소식, 그리고 강모라는 사람이 저지른 연쇄살인 이야기를 잘 알 것입니다.

학살피해자에서 학살을 즐기는 흉악범으로 변한 유태인들

올 초 이스라엘군은 모든 외국 언론을 통제한 상태에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공격의 대상이 군사시설이나 군인이라고 하지만 많은 목격자들과 증거들은 민간인 학살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시장을 폭격하고, 의약품과 식량을 보관하던 유엔 구호시설과 피해자들을 치료해야 할 주요 병원들을 모두 폭격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틈만 나면 독일의 나찌 치하에서 수많은 동족을 잃었다고 울면서 세계의 동정을 유도하던 그들이 사실은 더 잔인하고 치밀한 방법으로 학살을 자행하고 심지어는 이를 구경하며 즐기는 미치광이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용산 민간인 학살

재개발 사업이 얼마나 큰 이권이 걸린 일인지는 수시로 들려오는 재개발 비리사건만 보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곳에서 밀려나는 세입자들은 그들이 오랫동안 일궈온 삶의 터전과 생계수단에 대해 최소한 보장도 받지 못합니다. 오직 이익이라는 거대한 마귀 앞에 할퀴고 희생될 뿐입니다. 그래서 공정성이 생명인 경찰 혹은 공권력이란 사회적 합의에 의해 문제가 풀릴 수 있도록 안전을 보장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결과적으로 어느 한쪽만의 이익을 보호하게 되는 작전 때문에 벌어진 이 사건은 ‘용산참사’가 아닙니다. ‘용산 민간인 학살입니다. 죽은 경찰관 역시 상관의 지시 때문에 죽음의 자리에 뛰어든 것 아닙니까?

강모라는 연쇄살인범과 다를 게 없어

우리가 보고 있는 이런 집단은 겉보기엔 별 문제 없는 이웃이지만 뒤에서는 흉악한 살인마였던 강모라는 사람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에겐 나찌의 희생자로 동정을 받지만 자신은 학살을 일삼는 것. 시민을 보호해야 할 경찰에게 용역회사까지 앞세우고 대규모 사상자가 날게 뻔히 보이는 작전을 지시하는 것. 사상자와 가족들에게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주는 발언을 하는 것. 모두 다 연쇄살인과 다를 게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철학이나 이념, 종교와 사상도 사람 죽이는 것을 정당화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글자 그대로 악마의 발광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