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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꼬라지/사회

GS칼텍스의 면세꼼수와 맞장구치는 중앙일보

북미에 한인이 많다보니 여러 가지 한국 신문이 시차를 두고 북미에서도 보통 무가지로 발행됩니다. 그런데 지난 주말 장을 보러가 무심코 중앙일보를 들고 왔다가 어이없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GS칼텍스가 조세 감면혜택을 받고도 약속을 지키지 않자 국세청이 부과한 세금에 대해 대법원이 옳다고 최종 판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가 이를 다시 위헌이라고 판결하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졌는데, 이 논란을 엉뚱하게도 대법원과 헌재의 자존심 싸움인 것처럼 기사를 쓴 것입니다.

 

GS칼텍스의 말바꾸기


사건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GS칼텍스는 1990년 주식을 증권시장에 상장하겠다고 약속하고 그 대가로 707억원을 감세 받았는데, 2003년 상장을 포기했습니다. 따라서 국세청은 약속을 파기 했으므로 감세혜택의 조건이 사라졌으니 다시 세금을 내라고 한 것이지요. 여기까지는 내 상식으로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돌연 이 회사가 세금을 내지 못하겠다고 소송을 한 것입니다. 즉 그동안 감세혜택을 주던 법이 폐기되었으므로 원인무효가 되어 세금도 낼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급심의 의견은 엇갈렸는데, 대법원은 비록 법이 사라졌다 해도 특정 사안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 있으므로 폐기된 법의 조항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옳다고 판결하였습니다.

 

다시 상식적으로 이해되는 판결로 끝난 셈입니다. 그런데 더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헌재에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입니다. 그리고 헌재는 대법원의 판결이 위헌이라고 판정했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3심제 법체계를 갖추고 있어 재판의 판결에 대한 헌법소원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재판 중에도 특정 법조항의 위헌성이 의심되면 소원을 제기할 수 있지만 판결결과에 대해서는 제기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4심제가 되어버리는 모순이 생기기 때문이랍니다. 헌재의 심판 자체가 불법이라는 이야기도 가능해집니다. 그래서 중앙일보는 이 사건의 기사를 쓰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대법원과 헌재의 권력다툼으로 몰고 갔습니다.

 

중세도 아닌데, 면죄부를 사면된다?


이 사건을 보는 국민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적어도 나는 황당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우선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재벌가의 거짓말을 생각했습니다. 죄를 짓고서 사유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하면 처벌을 면하곤 하지요. 이것만으로도 문제입니다. 돈으로 죄를 사면 받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그것마저도 지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흔히 하는 말이 '그것을 조건으로 사면한 게 아니기 때문에 강제성은 없다'고 하면 그만이지요. 잠시 동안 국민의 이목을 속인 다음 잊을 만하면 없었던 일로 하는 것입니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출연하기로 한 재산도 아직 분명한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건의 핵심은 적당히 거짓으로 혜택을 받은 후 슬그머니 없었던 일로 만드는 재벌대기업들의 행동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대법원은 국민의 법 감정에 부합한 판단을 한 것입니다만, 어찌된 영문인지 헌재는 다른 소리를 낸 것입니다. 어떤 법도 영원히 존속하지 않는데, 만약 법이 폐기되어 사후 과세가 불법이라면 무조건 뭉개다 보면 혜택만 보고 끝나게 됩니다. 또 애당초 감세혜택을 준 조건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사건이 종료되지 않았고 따라서 법안의 폐기 여부와 관계없이 감세혜택은 원인무효가 되어 혜택을 주고 받은 것은 불법입니다. 헌재에는 이정도 상식도 없는 것일까요?

 

상식 위에서 핵심을 보도해야 언론


더 꼴사나운 것은 중앙일보의 보도 태도입니다. 이 기사는 법조계가 읽는 법조신문에 실린 것이 아니고 국민이 읽는 일간신문에 실린 기사입니다. 따라서 국민의 분노를 사는 재벌대기업의 뭉개기 행각에 대해 질책하고 더욱 강력한 제재를 요구해야 맞습니다만, 삼성도 비슷한 상황에 있기 때문일까요? 그저 두 권력기관의 다툼으로 둔갑되어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헌재와 중앙일보가 만약 다른 어떤 기업이 같은 상황에 있다고 해도 이렇게 행동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