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다산책방, 2024
이 책은 2024년 소설부문 판매 1위라고 해서 손에 잡았다. 소설은 단순해서 순식간에 읽을 수 있다. 다만 번역자가 처음 도입 문장을 번역하기 힘들었다고 고백하는 것처럼 소설의 서술은 매우 섬세한 묘사체로 되어 있다. 그러나 스토리 전개는 복잡하지 않다.
아일랜드의 한 마을에서 석탄과 장작 등 땔감을 공급하며 살아가는 주인공 펄롱은 어느 날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갔다가 석탄 광에 버려진 한 소녀를 발견한다. 그 소녀는 자신을 도망치게 도와달라고 했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자살할 수 있게 강물로 데려다 달라고 한다. 그러나 펄롱은 그 소녀를 수녀원장에게 데려다 준다. 수녀원장은 수녀들에게 그 소녀를 잘 대해주는 모습을 연출하도록 하고 동시에 펄롱에게는 발설하지 말라고 무언의 압력을 행사한다.
이쯤에서 이 소설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게 번역자가 끝에 달아 놓은 해설의 일부를 재편집하여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
‘이 소설에 나오는 막달레나 세탁소는 18세기부터 20세 기 말까지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하고 아일랜드 정부에서 지원한 같은 이름과 명분의 여러 시설 가운데 하나다. '타락한 여성'들을 수용한다는 명분으로 설립했으나, 성매매 여성, 혼외 임신을 한 여성, 고아, 학대 피해자, 정신이상자, 성적으로 방종하다는 평판이 있는 여성, 심지어 외모가 아름다워서 남자들을 타락시킬 위험이 있는 젊은 여성까지 마구잡이로 이곳에 수용했고 교회의 묵인하에 착취했다. 동네 사람들은 세탁소의 실체에 대해 짐작하면서도 입을 다물고 높은 담 안에서 저질러지는 학대에서 눈을 돌린다.’ 이쯤에서 돌아보면 우리네가 목격했던 도가니 사건과 유사하다.
‘어쩌면 이렇듯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의 이야기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사소하다고 생각하며 지나가는 일들이 자신의 이해와는 무관하지만 겪는 사람에게는 끔찍한 일이고, 나아가 그것이 언젠가는 자신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와 고통이 되는 법이다. 그래서 펄롱은 이런 생각에 도달하기도 한다.
‘좋은 사람들이 있지, 펄롱은 차를 몰고 시내로 돌아오면 서 생각했다. 주고받는 것을 적절하게 맞추어 균형 잡을 줄 알아야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사람들하고 잘 지낼 수 있단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특권임을 알았고’
그러나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거기 일에 관해 말할 때는 조심하는 편이 좋다는 거 알지? 적을 가까이 두라고들 하지. 사나운 개를 곁에 두면 순한 개가 물지 않는다고. 잘 알겠지만."’ 그러면서 늘 덧붙이는 말이 있다. ‘"기분 나쁘게 듣지 말고."’
언제나 나쁜 세력은 뭉쳐서 서로 힘을 나누어 주며 나쁜 일을 해치운다. 윤석열의 계엄 사태가 빨리 종식되지 않는 것도 바로 그런 사람들이 온갖 절차와 법을 따져 그럴 듯하게 포장하여 나쁜 짓을 벌이기 때문이다. 이 때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며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말했듯이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만, 그 수녀들이 안 껴 있는 데가 없다는 걸 알아야 해.” …… "교단은 다르지만 다 한통속이야. 어느 한쪽하고 척지면 다른 쪽하고도 원수 되는 거야."’
그러나 펄롱은 그 소녀를 구출하여 자기집을 향해 걸었다. ‘얘가 누구냐고, 세탁소 계집애 중 하나가 아니냐’고 대놓고 따지는 한 부인의 비아냥도 무시했다. 그러다 펄롱은 깨닫는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미시즈 윌슨이 아니었다면 어머니는 결국 그곳에 가고 말았을 것이다. 더 옛날이었다면, 펄롱이 구하고 있는 이가 자기 어머니였을 수도 있었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펄롱이 자신의 양심과 신앙에 따라 그리고 자신의 과거를 극복하기 위해 과감하게 소녀를 구출한 것이 결국 가톨릭교회와 정부가 함께 만들어 놓은 이 악덕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작은 구멍이었음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힘은 한 사람의 선행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정의감에서 나오는 연대에서 오는 것임을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2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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