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말부터 2월초까지 내가 뉴스를 접할 수단이 없었던 동안 나꼼수와 관련된 사건이 크게 뉴스가 되었던 모양이다. 나중에 페이스북을 통해 뒤늦게 파악한 이야기로는 나꼼수에서 정봉주 전의원에 대한 지지를 표시하기 위해 비키니시위를 하라는 멘트를 했고 여기에 호응한 한 여기자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이것이 남성의 마초근성을 드러낸 것이라는 비난과 함께 어느 분이 이일로 ‘나꼼수에 대한 지지를 내려놓는다’고 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분들이 비슷한 의미의 글을 썼다는 사실 정도이다. 물론 나꼼수 측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여 이런 비난을 증폭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사실 지지한다는 말은 간단하다. 가카헌정방송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대통령과 정부여당에 관한 여러 가지 의혹을 제기하였을 때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며 즐거워했다. 이처럼 한 가지라도 생각이 같으면 지지할 수 있다. 그러나 지지를 내려놓는다는 말은 매우 신중한 것이어서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에서 생각이 전혀 다를 때 사용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여전히 나꼼수를 지지한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내 종교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비정규직으로 사람들의 삶을 불안하게 만들고 빈부격차를 가속화 하며 자본의 힘으로 다수의 인간성을 파괴하는 경제사회체제(즉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반대한다. 둘째 사람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모든 행위에 반대한다. 그래서 남북한에서 독재권력을 정당화하고 살인의 핑계로 삼아온 남북한 대치상황을 깨고, 평화로운 공존과 나아가 평화통일을 지향해야한다고 믿는다. 나는 이 두 가지에서 나와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이나 정당, 권력에 반대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에서 일치한다면 다른 부분에서 의견이 달라도 논쟁은 할지언정 그것 때문에 지지를 내려놓지는 않는다.
내가 고 노무현대통령이 후보였던 시절에 선거운동을 돕기 위해 노력했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 지지를 접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그분은 취임초기에 남북관계를 고 김대중대통령시절 이전으로 돌려놓는 특검에 동의했다. 내게 절차적 정당성은 죄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형장의 이슬로 혹은 고문으로 죽게 만든 남북한 대치상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외환위기로 우리나라에 이미 이식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 체제를 더욱 확고하게 정착시키기 위한 한미FTA의 시작은 결정적으로 그분에 대한 지지를 접게 만들었다. 물론 그분이 돌아가신 후 교수들의 서명운동을 주도하였지만, 이는 그분의 다른 업적을 높게 평가했으며 이명박정권의 폭력성에 대한 항거였지 노대통령에 대한 지지선언은 아니었다.
나는 나꼼수 사건으로 지지를 내려놓았다는 분들도 이 같은 원칙과 신중한 판단 끝에 한 것이라고 믿는다. 내 생각과 다른 점이 발견되는 사람마다 지지를 내려놓는다면 결국 모든 ‘선’의 기준이 ‘나’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지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며, 내가 권력을 잡는다면 나도 박정희나 전두환 그리고 이명박처럼 될 것이다. 그래서 지지를 내려놓는다는 말은 자신의 원칙에 따라 신중하게 판단한 후에 비로소 할 수 있는 말이다. (201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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