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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World!/짧은여행 긴여운:자유버마

국경도시 메솟으로 가는 길

국경도시 메솟으로 가는 길

2월 9일 아침

8일 저녁 호텔 카운터에 9일 아침 5시 30분에 모닝콜을 부탁합니다. 아렌지(함께 갔던 시민행동 이미희 간사의 별명입니다)가 가져온 태국 여행 가이드북에 적힌 정보에는 메솟으로 가는 VIP버스가 방콕 북부버스터미널인 모치터미널에서 7시 30분에 출발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벨보이에게 물으니 우리가 묵은 호텔에서 터미날까지 택시로 30분 정도 소요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계획은 여유 있게 6시 40분쯤 호텔을 나서 7시 30분 버스를 탈 생각이었습니다.

아침 6시 호텔의 아침식사 제공시간이 시작되는 순간을 기다려 아침식사를 합니다. 나는 그 예민한 성격 때문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데다 아침식사를 많이 하지 않는 습관 때문에 적당히 먹습니다만 아렌지와 푸른소(시민행동 오관영사무처장의 별명입니다)는 충분히 먹습니다. 아렌지는 어디가도 굶어죽진 않을 팔자라며 왕성한 식욕을 자랑합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가장 부럽습니다.

택시를 타니 터미널까지 200바트를 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곳에서는 미터요금을 내고 타려하면 가끔 요금을 많이 나오게 하기 위해 빙빙 돌아 시간을 끈다는 설명을 읽은 적이 있는 터라 차라리 그게 낫다고 여기고 흔쾌히 가자고 합니다. 택시는 30분도 채 되지 않아 터미널에 도착했고 우리는 터미널 건물 외부의 매표소에서 메솟행 버스표를 사려고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영어로 소통하는 데 애를 먹습니다. 미국식 영어에 익숙한 나는 그들의 답변을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장이 말했다는 영어발음 이야기가 생각나 슬며시 웃습니다. 영어가 만국 공통어라고 하면서 미국어 만을 가르치겠다는 발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사실 세계에는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나라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들 중에 미국식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는 내가 알기로 미국과 캐나다 뿐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어렵게 하나하나 물어서 겨우 메솟행 VIP버스편이 밤에 출발하는 것밖에 없음을 알게 됩니다. 대신 1등버스가 9시 10분에 출발한다고 합니다. 터미널에서 1시간 40분 이상을 기다려야 합니다. 게다가 9시간 이상 걸린다는 버스여행길이 은근히 걱정됩니다. 1시간 40여분을 기다리는 동안 태국에 도착한 후 처음으로 아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건강히 다녀오라는 당부를 듣습니다.

아렌지만 짐과 함께 두고 우리는 터미널 안을 둘러봅니다. 터미널은 건물이 낡았고 지저분해서 그렇지 매우 넓습니다. 안에서 기다리는 동안 무슨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제자리에 섰습니다. 이건 또 뭐야??? 아하 내가 학생 때 우리나라에서도 매일 있었던 국기 하강식 같은 행사인가 봅니다. 푸른소와 내가 터미널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도중이었는데 우리도 하는 수 없이 제자리에 섰습니다. 모든 외국인들이 우리처럼 엉거주춤 섭니다. 그러나 우리의 아렌지는 용감무쌍하게도 자리에 앉아 자기 볼일을 봅니다. 역시 세대차를 느끼면서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아렌지가 부럽습니다. 운동을 하며 살았다고 하면서도 불필요한 문제를 피하고 싶은 마음을 갖도록 주입받고 자란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는 그 근본부터 다른 것입니다.

시간이 되어 버스를 보니 안심이 됩니다. 우리가 탈 버스는 장거리 여행에 적합한 버스였습니다. 화물칸도 충분하고, 화장실이 딸린 편안한 2층버스였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오래 전 사라진 차장이 승객들에게 서비스를 해주는! 버스였습니다. 차에 오르자마자 간단한 간식을 나누어줍니다. 작은 케잌과 마실 것 그리고 인스탄트 커피가 들어 있습니다. 1층에는 뜨거운 물이 준비되어 그 커피를 타 마실 수 있습니다. 물론 이와는 별도로 중간에 차장이 승객들에게 차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이 버스는 중간에 여러 곳에 들러 승객을 내리거나 태웁니다. 알고 보니 VIP와 1등버스의 차이는 우리 고속버스의 일반고속과 우등고속의 차이처럼 좌석의 넓이만 다를 뿐입니다.

좌석 앞에 받은 간식을 올려놓았습니다.


내 손바닥의 매운 맛에 죽어있는 모기



아, 한 가지 더. 중간에 점심시간이 되어 점심을 어떻게 먹을까 걱정하고 있는데, 버스가 어느 도시의 식당으로 들어갑니다. 우리나라 식으로는 휴게소쯤 될텐 데, 그냥 도시 내에 있습니다. 그리고 차장의 안내에 따라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밥을 타 먹습니다. 태국말로만 설명하고 안내문도 태국말로만 되어 있어 당황스러웠지만 어디 내가 그리 만만하던가요? 눈치가 몇 단인데. 같이 줄지어 서서 밥을 타 먹습니다. 그러고 보니 승차권을 살 때 승차권 말고 다른 딱지를 한 장 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식권이었습니다. 그래서 점심도 간단히 태국식으로 해치웠습니다. 우리 볶음밥 같은 음식인데 주문에 따라 고기 볶은 것을 한 가지 얹어줍니다. 태국사람들이 즐겨먹는 보통 음식이라고 합니다. 푸른소가 얹어주는 고기를 두 가지 지정하니까 돈을 더 내라 합니다. 푸른소는 황급히 한 가지만 받아 돌아섭니다.

이틀을 연속 잠을 제대로 자지 않아 눈이 무척 피로했는데도 신경만 예민해진 채 잠은 오지 않습니다. 차가 중간 기착지에 들를 때마다 모기들의 공습이 시작됩니다. 하는 수 없이 유리창에 앉은 모기마다 손바닥 장풍 맛을 보여주었습니다. 한참을 가다가 보니 얼마나 많은 모기가 죽어 있는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습니다. 요놈들 태국 모기들이 내 장풍 솜씨를 우습게보았다가 큰 코 다친 것이지요.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한국에서 가져온 작은 지도를 통해 내가 지금 지나고 있는 곳이 어디쯤인지 확인하면서 갑니다. 버스는 중간 중간 여러 도시를 들렸다 갑니다. 방콕을 벗어 난 후론 한 곳을 제외하곤 거의 교통량이 많지 않아 상쾌한 여행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버스는 과속을 할 줄 모릅니다. 가는 길은 한없는 평야였습니다. 아마 방콕을 떠 난 뒤 거의 3시간 반 만에 처음으로 산 비슷한 것이 눈에 띄었는데 이 산은 산이라기보다는 경주에 흔한 옛 왕릉 정도의 크기였습니다. 그곳에 이르자 비로소 멀리 산다운 산도 보입니다만 이내 다시 끝없는 평야가 펼쳐집니다. 날씨가 따뜻해서인지 한쪽 논은 벼가 제법 자랐는가 하면 바로 옆의 다른 논은 이제 농사를 시작하려는지 불로 태운 상태입니다. 이렇게 농사를 지으니 세계 제일의 쌀 수출국이 된 모양입니다.

한쪽에선 벼가 자라는가 하면

바로 옆 논은 농사가 시작되지도 않았습니다.


오후 3시쯤 탁(TAK)이라는 지방도시에 들렀다가 출발 한 후 지도를 보니 직선거리로는 30-40분 정도 소요될 거리입니다. 그러나 거기서부터는 산길로 들어섭니다. 가파른 산길에서 버스는 그야말로 거북이걸음을 합니다. 제법 깊은 산이어서 그런지 산 정상 부근에는 대나무와 억새가 자라고 있어서 우리나라의 강원도 어디쯤 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또 미국식 관광표지판인 'Scenic Area', 'Culture Tourist Village' 등이 눈이 띕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만 이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랍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적겠습니다.

3시간여를 달린 후에 처음 본 산

탁을 지나자 산길이 시작됩니다.



버스 안을 살펴보니 우리 옆에 앉아 있는 중간에 승차했던 사람들 가운데 몇 사람의 모습이 유난히 어둡습니다. 젊은 부부거나 연인사이인 것으로 보이는 커플조차 대화하는 모습에 전혀 생기가 없습니다. 동남아 사람들은 원래 저렇게 무미건조한 것일까요? 옷조차도 에어컨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따뜻하게 입었습니다. 국경이 가까운 때문인지 군데군데 군 검문소가 눈에 띕니다. 잠시 후 마지막 검문소에서 여권 검사가 시작됩니다. 하사관쯤으로 보이는 나이 들은 군인이 우리 여권을 보더니 ‘꼬레아!’라고 외치며 환하게 웃습니다. 그러나 옆자리의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익숙하게 짐을 챙겨 차에서 내립니다. 그리고 모두 길가의 군부대 앞의 모여 섭니다. 그리고 버스는 언제 그들을 태웠었느냐는 듯 그냥 길을 재촉합니다. 그제서야 깨닫습니다. ‘아, 이들이 바로 불법 체류 중인 버마인들이로구나.’ 그래서 그들에게 아무런 웃음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조국에서 탈출하여 남의 나라에 빌붙어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의 슬픔을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아마 우리 선조들이 만주나 시베리아에서 같은 슬픔을 겪어야 했겠지요? 갑자기 고려인이나 조선족의 과거와 현재가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이들을 두고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바로 'Resort Area'가 있고 다시 종일 보았던 평야지대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드디어 메솟 지역인 것입니다. 메솟 터미널엔 오후 5시 20분 쯤 도착했습니다. 8시간 20분쯤 버스를 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파트너인 DPNS 사람들과 통화한 후 잠시 기다리며 방콕으로 돌아가는 차 시간을 확인하고 있는데 우리를 태우고 갈 사람이 도착했습니다. DPNS 사무실에 도착하니 6시경이 되었고, DPNS 총무(general secretary)인 능웨-린과 콩-예 등이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맞아줍니다. 종일 걸렸던 국경도시 메솟으로의 버스 여행이 끝나는 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