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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미신/21세기의 기독교인

제3성전 주장은 중동전쟁을 촉발하는 이데올로기이다


제3성전 주장은 중동전쟁을 촉발하는 이데올로기이다
 
요즘 김종철감독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한다고 해서 널리 알려진 제3성전은 기독교는 물론이고 성경이나 심지어는 유대교와도 관계없는 이데올로기일 뿐입니다. 김종철 감독이 만든다는 영화의 내용을 정확하게 언급한 곳은 없지만, 어느 기사에 김 감독이 ‘제3성전 건립을 위해 기도해야하는지 고민’이라고 했다더군요. 그 영화 내용이 그냥 객관적인 사실을 소개하는 것이라면 모르지만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면 그 메시지를 볼 때까지 김 감독이나 그 영화에 대해서는 평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제3성전이라는 주장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마가복음 13:14의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는 것을 보거든’이라는 말씀을 이용합니다. 이는 원래 주님께서 다니엘서 9장의 예언을 인용해 하신 말씀입니다. 유대가 멸망할 때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바벨론에 잡혀 가는 기간이 70년이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다니엘서 9장은 그것을 알게 된 다니엘의 기도로 시작하고 있지요.
 
이들의 주장처럼 성전에 번호를 붙인다면, 제1성전은 솔로몬이 지은 것이고, 이는 유다가 망할 때 소실됩니다. 이를 재건(제2성전)하는 과정이 느헤미야서에 기록된 사역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스룹바벨, 느헤미야, 헤롯을 거쳐 예수님 시대에도 서 있었지요. 주님은 이 성전이 파괴될 것을 예언했고 실제로 서기 70년 로마의 침략으로 파괴됩니다. 마태복음 24장에는 주님이 제자들과 이런 내용의 대화를 하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로마에 의해 멸망할 때 주의할 것을 가르치는 내용이지요. 그런데 이 말씀이 종말에 대한 가르침과 섞여 기록되어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의 멸망과 종말을 혼동하게 된 것입니다.(성경의 장과 절은 후대에 나눈 것이어서 원래는 혼동되게 기록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의 주장을 인용한다면, 제3성전인데 이는 바로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교회 그 자체입니다. 요한복음 2:18-22에는 잘 알려진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유대인들이 너의 권위를 입증할 기적을 보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주님은 너희가 성전을 허물면 3일 만에 다시 세우시겠다고 하시지요. 요한은 친절하게 21절에서 이는 주님의 몸이 바로 성전이라고 설명을 달아두었습니다. 제3성전 건설 운운하는 자들의 있을 줄 알고 미리 입을 막으신 것입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이런 말씀이 사마리아에도 선포됩니다. 요한복음 4:20-26에 있는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우물가에서 나눈 대화이지요. 이 말씀의 중요한 내용은 건물로서의 성전은 없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여인이 ‘어디에서 예배해야하는가?’라는 질문을 하지요. 시온산에 있는 예루살렘에서 해야 하는가? 아니면 사마리아인들처럼 그리심산(그리심산은 출애굽 당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 받는 내용을 선포하여 따라 외치게 했던 산)에서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주님은 둘 다 아니라고 하면서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해야 할 때가 온다고 대답하십니다. 장소는 의미 없고 오직 우리의 중심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바로 그때가 주님이 오신 그 ‘때’라고 선포하십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또 교회(그리스도인의 모임) 자체가 성전입니다. 바울이 쓴 고린도전서 3장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말은 복수와 단수가 정확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아 가장 오해되는 말씀 중 하나입니다만, 원어로는 이 ‘너희’는 단수가 아닌 복수형입니다. 즉 개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제3성전은 건물이 아니고 바로 우리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주신 명령도 ‘성전을 지어라’가 아니라 ‘증인이 되라’인 것입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린도전서 3:16-17)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누가복음 24:46-48)
 
오랫동안, 특히 19세기에 더욱 더, 러시아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던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나라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래서 1890년경에 시오니즘운동이 시작되었지만, 1930년대까지 별 수확이 없었습니다. 유대교는 메시아가 와서 이스라엘을 다시 건설한다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경건한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기다릴 뿐이었지요. 그런데 아브라함 아이작 쿡이라는 랍비가 자기들이 나라를 직접 건설하면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빨리 이루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추종하던 정치인들은 나라 건설을 위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한 푼어치의 가치도 없는 사람들’이라거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몰아내고 자기들이 정착하는 일에 ‘비도덕적인 측면은 전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죽음만도 못한 상황에 몰아넣는 장벽을 건설하기도 합니다. 이는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종교적진리나 도덕조차도 왜곡시킨 채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전형적인 이데올로기입니다.
 
그런데 제3성전과 관련한 논쟁 속에도 똑 같은 이데올로기가 숨어있습니다. 첫째는 이일을 추진하는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이들은 자기들에게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법궤라고 말합니다. 법궤는 모세가 하나님께 받았던 십계명 돌판을 담은 상자인데 솔로몬시대 이래 기록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구약의 모세오경을 통해 이미 말씀이 기록되어 이 돌판은 용도가 다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 자체가 신비한 힘이 있는 것으로 오해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것은 또 다른 우상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진노하여 이스라엘을 전쟁에 패하게 하실 뿐 아니라 이것을 적군에게 빼앗기게 했던 사건으로 미루어 보아 폐기 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한 가지 가능성은 나중에 식민지 시절에 적에게 넘어가 사라진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것이 예루살렘에 세워진 이슬람 모스크의 지하에 묻혀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제3성전을 건설하려면 이슬람 모스크를 파괴해야 하는 것이지요.
 
두 번째 부류는 이를 하나님의 시간표 운운하며 마치 자기들이 하나님의 계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 그 때를 알지 못한다고 하셨던 것은 그 시간이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 아래 있기 때문에 그 시간에 관심을 갖지 말고 늘 깨어 있으라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척척 맞아 떨어진다’는 둥의 말로 성도들을 미혹케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바로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야 비로소 종말이 오고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고 하면서 모스크를 파괴하고 제3성전을 건설하는 것을 지원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랍비 쿡이 주장했던 것과 본질적인 의미가 같습니다.
 
이런 일들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중동은 또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될게 분명한 데도 자기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또 다시 거짓으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이데올로기가 작동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적그리스도 같은 생각이 한국에서 숨 쉴 수 있는 배경의 하나는 바로 예배당(교회당)을 성전으로 부르는 한국교회의 오류 때문입니다. 교회가 바로 서지 않으면 미혹하게 하는 영이 설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