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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의 토대 Common Ground

공통의 토대란 여러 집단이, 비록 서로 이질적인 집단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이슈나 주제에 대해서는 같은 주장이나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그 공통의 주장이나 생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비슷한 말로는 연대(solidarity)’를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만 연대는 유사집단끼리 공동의 보조를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공통의 토대와는 다릅니다. 이 말은 영어의 ‘common ground’(이 말은 이곳 밴쿠버에서 발간되는 진보잡지의 제목이기도 합니다)를 우리말로 바꾸어 본 것입니다. 공동의 기반, 혹은 공통의 토대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이 개념이 여러 시민단체들, 내 입장에서는 교회에서도, 신중하게 검토해볼 만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입장에서 보면, 교회도 그렇고 각종 운동단체나 진보기구들도 모두 다 작은 차이에서 시작된 갈등이 끝내는 분열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서로 증오하며 으르렁거리기 일쑤이지요. 교회로 국한해서 말하자면, 작게는 개 교회의 분열에서 시작하여 교단으로의 분열은 대부분 작은 차이에서 시작된 갈등이 그렇게 만든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분열의 역사 뒤에는 그 조직의 중심 권력을 자기 혹은 자기편이 가지려는 헤게모니 싸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분열의 역사에서 돌이켜 통합의 역사로 나아가는 움직임이 있어야만 하고, 또 그런 움직임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고 믿습니다. 그러한 통합을 위해 우리가 먼저 정리해야할 머릿속의 개념이 바로 공통의 토대라는 것이지요.

 

먼저 교회라면 어느 선까지를 이단으로 간주하고 배척해야 할 것인가 하는 기준이 되는 믿음의 공통의 토대를 작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앙의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사도신경이라든가 각종 신앙고백서들이 이미 오랫동안 이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고백서들은 교단 중심으로 작성되거나 혹은 전통을 계승하고 있고, 특히 기독교의 변질된 모습에 대한 반성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기독교 세계관이나 신앙고백들에 근거하여 새롭게 공통의 토대를 정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각 교회나 교단은 이 토대를 기본으로 자기 교단이나 교회의 특징이 반영된 교육을 시킬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 토대를 부인하거나 변질시키면 나와는 다른 집단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기준이 될 것입니다.

 

진보진영이 통합움직임을 보였을 때 제가 가장 우려했던 것은 바로 이런 공통의 토대가 없이 통합하고 있다는 걱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통합진보당은 진보라는 이름 자체를 우스개꺼리로 전락시키는 역사 앞의 죄인들이 되었지요. 소위 당권파 때문이었던, 유시민류의 본질 때문이었던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통합이 아니라 공통의 토대를 작성하고 여기에 기초하여 정책과 선거연대를 하는 것이었겠지요. 어차피 헤게모니 장악이라는 정치적 동물의 속성을 버릴 수 없다면 아예 다름을 인정하고 공통의 토대를 기초로 시너지를 얻는 게 더 바람직했다는 생각입니다.

 

종교 간의 연대는 어떨까요? 사실 모든 종교가 다 같다거나 모든 종교가 같은 신에게 나아간다는 주장은 철학적으로 있을 수 없는 전제입니다. 그래서 종교간 연대를 이런 관점에서 접근하거나 바라보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안에 대해서 국한한다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서 아프리카 기근을 해결하기 위해 각 종교가 가진 신앙고백을 서로 나누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일한 종교정신으로서가 아니라 각자의 서로 다른 종교적 관점에서 한 이슈에 대응하는 것이지요. 그 종교가 무엇이든지 우리는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적십자사를 기독교적 색채가 있다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슬람 진영은 적신월사라는 같은 역할을 하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결국 국제적십자사적신월사연맹(사진은 이들의 엠블럼)을 만들어 공동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요나서를 보면 요나가 탄 배가 풍랑을 만나 배 안의 모든 사람들이 생명을 위협 받게 되었을 때 선장은 사람들에게 모두의 구원을 위해 각자의 신에게 기도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것이 공통의 토대 운동을 생각하는 내 마음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