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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미신/느헤미야묵상

느헤미야를 꿈꾸며 9

끝으로 다시 개혁이 중단되고 나라가 위기에 처하는 아주 간단한 원리를 생각해 봅시다.

첫 째, 암몬과 모압 사람들이 마술사 발람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했었지요. 발람은 그게 위험한 일인 줄 알았습니다만 그렇게 만든 힘은 무엇인지 기억하십니까? 바로 뇌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뇌물을 받지 말라고 하셨지요. 뇌물은 재판 판결을 굽게 한다고요.

두 번째는 무엇입니까?
엘리아십이 성벽 재건에 방해자였던 도비야와 내통했습니다. 도비야는 이스라엘의 귀인들과 혼인동맹을 맺었던 자이지요. 결국 이들은 이스라엘의 적이자, 하나님을 훼방하는 자를 오직 친족이며 힘 있는 자란 이유 때문에 감히 하나님 전의 뜰에 방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혈연, 지연, 학연이 저지른 죄이지요.

세 번째는 백성들이 책임을 다하지 않음입니다.
마땅히 내야 할 십일조를 내지 않자 레위인들이 모두 먹고 살기 위해 다 자기 밭으로 도망갔습니다.

이 세 가지는 언제나 우리 주변에 머물러 있습니다. 직장에도, 교회에도, 나라에도 말입니다. 군사독재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나는 학생 때 이분들을 정말 존경했었기 때문에 더욱 슬프지요) 시절에도 똑 같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라는 여전히 위기이구요.

요즘 교회에서 중요한 연령이 되어버린 친구들을 만나서 이야기 하다 보면, 일부 교회에도 이런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고 합니다. 직장에서는 어떤가요? 많은 기업들에서 기업이란 어차피 돈을 벌기 위해 존재하는 집단이란 것을 실감하지 않습니까?

이 세 가지를 그리스도인들이 막아 나아가지 못하면 우리에게도 희망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언제까지나 기다리시진 않기 때문이지요. 이스라엘의 역사가 그것을 말하고 있지 않나요?

앞에서 백성의 책임을 다하지 않음으로써 레위인들이 다 떠났다는 점을 말씀드렸습니다. 이 말은 중요합니다. 부정과 타락은 소위 사회 상층부로부터 시작되지만 그 파급효과는 모든 국민에게 미친다는 것입니다. 같이 타락한다는 것이지요. 느헤미야가 성벽 재건을 마치고 잠시 페르시아의 왕궁에 갔다가 돌아오니 모든 일이 엉망이 되어 있었습니다. 상층부의 타락이 국민들의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온 것입니다. 그들이 스스로 약속한 모든 개혁 조치를 스스로 다시 어기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결국 그 타락은 다시 지도층으로 역류하게 됩니다. 레위인들이 떠난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을 아는 느헤미야는 백성들에게도 책임을 추궁합니다.

선거 때만 되면 지역감정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물론 그것의 시작은 일부 타락한 정치인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어떻게 되었나요? 국민들이 지역감정에 충실해졌습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다시 여기에 기대야만 하게 되었지요. 악순환입니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 취해진 몇 가지 개혁조치들을 봅시다. 조치가 나올 때마다, 모두 잘된 것은 아니었지만, 모든 조치들에 대해서 이해 당사자들이 반발하지 않은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와 이해관계가 없는 다른 조치에 대해선 또 한 결같이 잘하는 것인데 이해 당사자들의 밥그릇 싸움 때문에 일이 그르치고 있다고 말합니다. 결과적으로 모두 함께 모든 부문을 개혁하여 깨끗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기보다, 나만 빼고 개혁하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모두 같이 타락하여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국민 스스로가 말입니다. 악순환이지요.

누군가 이 고리를 끊어야만 합니다. 그게 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느헤미야를 읽고 묵상한 우리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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